失政, 해외 망명, 두 번째 임기 승승장구… 페루 가르시아 대통령
기업·사회친화적으로 정부의 모습도 바뀌어야
15일 방한한 알란 가르시아(61) 대통령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이른 아침 40분간 이어진 기자회견 중에도 '실패한 리더'나 '불안한 승자'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그는 전날 일본에서 FTA 협상을 타결한 데 이어 한국과의 FTA 가서명식에 참석하러 온 길이었다. 페루는 작년 경제성장률 9.8%를 기록하면서 초고속 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남미의 케네디'였던 그였으나
25년 전 36세 나이로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케네디'라 불렸다. 남미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반(反)제국주의·민족경제를 내건 정당(APRA) 후보가 집권하기는 창당 60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첫 임기는 파국으로 끝났다.
자리에서 물러난 1990년 물가인상률이 7649%. 집권 5년 누적 인플레율은 220만200%를 기록했다. GDP는 20%가 깎였고, 1인당 연소득은 720달러로 30년쯤 후퇴했다. 후임자는 -9억달러의 재정을 물려받았다. 빈곤층도 집권 초 41.6%에서 1991년 55%로 늘었다. 그러면서 파리 고급주택가에 집을 사고 딸을 프랑스 사립학교에 보냈다. 결과는 부패혐의로 쫓기면서 8년 10개월에 걸친 해외망명.
◆次善으로 선택된 사연
15년이 흐른 2006년 6월 페루 수도 리마는 대선 전날까지도 어수선했다. 당시 취재 중에 만난 유권자들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次惡)의 선택'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가르시아는 80년대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각인돼 있었고, 급진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지지 후보였다. 가르시아는 유세 중에 스스로 "실수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선전한 끝에 가까스로 집권했다.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은 "그가 미더워서라기보다 우말라가 당선되면 차베스의 꼭두각시가 될까 두려워서"라고들 했다.
◆"남미에 구태의연한 좌파는 없다"
두 번째 임기에서 그는 완전 탈바꿈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실용 노선을 칭송했다. 현재 남미 13개국 중 좌파 집권이 9개국인데, 15일 회견에서도 가르시아 대통령은 "남미에 구태의연한 좌파는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중도파다. 이제 부유층의 부를 갈취해 경제를 운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가 힘을 키워가는 방식은 옳지 않다. 기업친화적 사회친화적 정부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도 했다. 페루는 2008년 중남미 경제 분석기관인 라틴 비즈니스 크로니컬이 꼽은 '중남미에서 사업하기 좋은 나라' 3위였다. 올해는 8% 성장을 내다본다.
◆내년 대선출마 안돼
가르시아 대통령은 연임금지 규정에 따라 내년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주요 후보 5명 중 4명은 자유무역과 외자유치, 물가억제와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현행 정책을 지지한다. 다시 출마한 우말라 후보조차 지금은 차베스와 거리 두기에 바쁘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 방한 때도 전용기가 아닌 일반 항공편을 탔다. 일본 APEC 정상회의에 갈 때도, 또 14일 한국에 올 때도, 원래 이코노미석을 끊었지만 일본항공(JAL)측이 예우 차원에서 비즈니스석을 줬다. 그는 평소 "해외 순방 때 전용기 탈 돈이면 가난한 인디오 마을에 학교 하나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작년 11월 방한 때 산책을 하다 바지가 찢어졌던 에피소드도 널리 알려졌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식사시간 동안 찢어진 바지를 뚝딱 수선해주자, 훗날 페루에 온 한국측 관계자들에게 "그 신속함을 보며 한국의 발전 이유를 알았다. 이 바지는 양국 우정의 상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