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Color Purple‘의 원작가 엘리스 워커의 글입니다
남자와 노는 법
남자는 여자의 영적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자들은 ‘좋은 남자는 흔치 않다‘는 사실에 대해 성토하고 번민한다.
’남자와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의 기준을 낮춰야만 하는 걸까? 남자와 함께 살기 위해 크게 타협을 봐야만 하나?
아니면 방향을 틀어서 같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놀아야만 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물론 그래도 된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설사 ‘영적 우정’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여자들이 남자와 관계를 엮어가면서, 예전보다 좀더 현실적이면서 좀 덜 낭만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세상엔 좋은 남자가 분명 있다. 여자가 지금껏 그랬듯이.
가부장제 때문에 상처받은 남자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남자는 여자가 그러하듯 진정한 자기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권력의 불균형은 남자가 신체적으로 훨씬 강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지 않다면 여자도 남자만큼은 강해질 수 있다. 나로선 사실 여자가 더 강하다고 말하고 싶다.
여자의 몸은 인류의 후손을 잉태하는 강인함을 물려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명력 자체를 키우고 지속시킨다.
가장 앞서갔던 남자들도 그토록 거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활용한 경우는 드물다.
여자는 사유도 하고 모유도 준다. 참으로 경이롭고 강한 존재다.
우리는 남자와 함께 노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남자와 어떤식으로든 관계를 맺는다면 ‘놀이’라는 면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자들은 그간 너무 지나치게 진지했다.
내 경우를 말해보자면, 노는 걸 즐기는 남자와 함께라면 언제나 무척 행복했다.
10년 남짓 결혼생활을 했는데, 아이 하나를 낳고 나자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 유쾌함이
어느덧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고는 슬퍼졌다.
그때를 돌이켜보자면 첫5년은 기뻤고, 다음 2년은 그럭저럭이었고,
마지막 3년은 참기 힘들 만큼 지리멸렬하고 지겨웠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하나 있긴 했지만, 숨 막힐 것만 같은 상황에서 계속 같이 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결혼이후에 나만큼이나 즐기길 좋아하는 다른 남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나만큼이나 걷고 말하고 춤추고 수영하고 여행하고 책읽고 시를 써주길 즐기는 남자였다.
우리는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고 서로 씻겨주고 함께 먹고 영화보고 캠핑을 떠났다.
별나라에서 사는 것만 같았다! 이런 삶의 방식은 내 영혼에 어울렸다.
그런 삶이 허락하는 자유로움 덕분에 나는 쉼 없이 소설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고,
내 아이에게 좀더 너그러운 엄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남자가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성숙해가는걸 지켜보는건 기뻤다.
그 사람은 놀랄만큼 깊어졌다.
이전 결혼생활과는 달리, 우린 함께 살지 않았다. 바로 그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던 것 같다.
함께 살아보려 일주일 정도 시도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는 그 후 13년동안 우린 각자의 집에서 지냈다.
나로선 남자와 여자가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 운명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멋지게 살아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 역시 10년동안의 결혼생활 가운데 5년은 그렇게 해냈다.
그와의 13년이 저물어갈 즈음, 그러니까 한 평생을 남자들과 친밀하게 지낸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여자를 사랑하는 경험을 하지 않은 채 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사귀고 있던 남자는 그걸 충분히 이해할 만큼 눈이 트여갔다.
하지만 한 여자에 몰두하게 되자, 시간을 두 사람 몫으로 나누어가며
경험의 농도를 옅어지게 만들고 싶지않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와 몸을 섞는 건 내개 영적인 소명이었다.
그건 ‘생명력’ ‘창조’ ‘대모’ ‘성스러운 여성상’을 숭배하는 행위였다.
게다가 너무나도 관능적이고 놀랄만큼 안온했다.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격렬한 변화에서 오는 불안감을 일단 이겨내고 나자,
그런 경험이 얼마나 숨통을 틔어주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고, 나 자신도 충격을 받았다.
40대 후반 즈음에 여자 연인을 사귀기 시작한 후, 50대 내내 여자 연인들과 지내오면서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50대가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한번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
내게 제일로 유쾌했던 발견은 남자 연인과 함께든 여자 연인과 함께든 성행위는 근본적으로 같다는 사실이었다.
여자쪽이 좀 더 유리하긴했다. 아무래도 몸에 대해 더 잘 아니까 말이다.
물론 ‘좋은’ 남자 연인이 되려면 어때야 한다는 흔한 통념을 사뿐히 뛰어넘는,
굉장히 예민하고도 제대로 알고 있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남자와 함께할지 아니면 여자와 함께할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기 위해, 우주의 창조물인 나라는 사람의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면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내 경험으로는 유동성이 중요한 것 같다.
물을 유심히 살펴서 어떻게 흐르는지를 지켜보라. 물은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간다.
물은 어디에 있더라도 자신의 본질을 보존하고 즐긴다. 여자라는 존재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그러한 존재다. 우리는 남자 아이와 여자아이를 잉태한다.
우린 서로에게 쉽사리 사랑을 느낀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인 우리의 부모님도 쉽게 사랑하곤 한다.
여자와 남자 연인을 함께 사귀면서 완벽하리만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양성을 연결시키고 양성 모두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걸 깨닫기가 이렇듯 쉽기 때문이다.
첫댓글 자유로운 느낌은 있으나 크게 부럽거나 가슴에 와 닿진 않네요. 전 예전에 여자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었는데ㅎㅎ
마지막 단락은 발도르프적 내용이 담겨 있네요 ...유동성. 내면의 이끌림. 물의 본질등등.
멋진 개성의 삶이 네요!! 나도 개성있게 용기있게 살고는 싶어요.
난 부럽다.
몸과 마음이 경계없이 자유롭고,
상대와 영적 진화를 함께하고
그러면서 자기를 잃지않아
상처주지않고 상처받지않는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관계..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게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서로 이성간에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무난히 잘 살다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는것 ....
저는 이런 삶이 좋아요. 무난히...무사히 사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