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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9일 성령강림 후 열여섯 번째
성경 ; 에스더 7:1-6,9-10, 9:20-22, 약5:13-20, 막9:38-50
제목 ; 믿음으로 기도드릴 때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성도의 능력과 그 맛을 잃
어버리고 있습니다.
①(원인)기도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연고로 기도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ㄴ.바르게 살지 못하여 기도의 능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ㄷ.지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②(과정)죄악에 밀려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그 맛을 잃은 까닭에 사회의 거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죄와 고난에 빠진 이들을 구원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ㄷ.감사할 일이 있으면서도 주님께 찬양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결과)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ㄱ.자신이 지은(도모한) 죄(악)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그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ㄴ.다른 사람에게도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의로운 자의 기도를 속히 들어주
십니다.
①(원인)하나님은 구원의 주님이 되십니다.
ㄱ.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ㄴ.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②(과정)의로운 자와 함께 하십니다.
ㄱ.의로운 자가 간절히 기도할 때에 큰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ㄴ.낙심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③(결과)바른 성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ㄱ.믿음의 식구를 도와줄 경우에는 상을 베푸십니다.
ㄴ.바르게 사는 자를 통하여 구원의 기쁨을 나누게 하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세상에서 빛이 되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①(원인)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
니다.
ㄱ.이웃과 국가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ㄴ.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ㄷ.우리 모두의 생명과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②(과정)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ㄱ.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도답게 바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ㄴ.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ㄷ.낙심자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주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③(결과)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웃과 구원의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ㄱ.이웃과 구원을 기쁨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ㄴ.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써 더욱 능력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4.파견사
목사 : 바르게 살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크신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신앙이 큰 위기에 놓여 있음을 깨닫고,
생명과 평안을 위하여, 그리고 바르게살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런고로, 제 맛을 잃어버린 신앙을 회
복하고 능력 있는 믿음을 얻기 위하여 기도에 힘쓰십시오.
회중 : 아멘. 죽도록 수고해도 결국은 죽어야 하는 인생이건만, 우리는 신앙을
소홀히 하고 썩어질 것만을 위하여 일해 왔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우리의 모든 일이 온전케 되고 복이 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이제부터
는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을 위하여 꾸준히 기도하면서, 마음과 시간과 물질
을 바쳐서 섬기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가 되어 살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시편 124편)
만약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했을 때, 그
들의 분노가 우리를 향하여 불타올랐을 때, 그들은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
입니다. 홍수가 우리를 삼켰을 것이고, 급류가 우리를 뒤덮었을 것입니다. 넘
치는 물들이 우리를 휩쓸어 버렸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분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오,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시고, 참 기쁨과
평화를 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이 시간, 구원을 받
은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서 주님께 경배를 드리오니,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
고, 우리를 축복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주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살고자 원하여 이 자리에 나왔습
니다.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할 때, 우리로 하여금 하나
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를 통하여 구원받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의로운 자의 기도는 큰 능력과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하신 말씀을, 우리가 기
억합니다. 하오니, 기도의 능력을 기대하기 전에,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십시오.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도답게 바른 인생
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인류의
참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이스라엘아, 말해 보아라.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어떻
게 되었을까?
회중 : 만약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했을 때,
그들은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입니다.
목사 :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울타리가 그들의 이빨에 찢어지
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회중 : 우리는 새처럼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물은 끊어졌고, 우
리는 벗어났습니다.
다같이 :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분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8.예화
1)우리 생활에 소금만큼이나 꼭 필요한 것이 있을까?
우리지역 서산에도 소금과 같은 사람이 있다. 대산읍 영탑리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강경환 씨다. 한 평생 천일염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악수하기 위해 그가 내민 손에 당황한다. 어디를 잡이
야 할지…. 그는 두 손목이 없는 1급 장애인이다. 하지만 “괜찮아유∼, 아무데
나 잡아두 돼유∼” 하는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어디를 잡아야 할지 망설였던
상대방의 마음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잘린 팔목을 잡는 순간,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이내 알게 된다.
그를 제대로 일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2008년 11월경, 이름도 없
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 해 주셔요.’란 메모만 남기고 대산읍 소금 50포대,
지곡면 30포대, 성연면 40포대 등, 여러 읍면동사무소 현관 앞에 소금을 쌓아
놓은 일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직원들도 몰랐다. 나중에 수소문해
알아보니 그가 강경환 씨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지가 15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자가 아니다. 바로 몇 해 전까지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물론 염전
도 자기 것이 아니고 임대다. 아내의 평생소원이라던 아파트를 장만한지도 얼
마 전이다. 그런 그에게 “애써 지은 소금을 다 퍼주고 나면, 당신은 뭐 먹고
사느냐?”는 물음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두개를
줘유∼”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
돕는 거란다. 이것이 그의 마음이다.
장애가 있는 그가 일반인도 하기 힘든 염전을 어떻게 경영 할 수 있었을
까? 며칠 전 대산읍에 들릴 일이 있어 영탑리에 갔다. 탁 트인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이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바둑판처럼 갈라진
염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경환 씨의 직장이다.
멀리서도 양손목이 없이 일하는 그의 모습은 특이해 보였다. 하지만, 능숙
하게 삽질을 하고 있다. 삽의 삼각진 머리에 오른손을 끼우고 왼손으로는 삽대
를 받쳐 소금을 얹고 있다. 삽질을 제대로 하는데 3년이 걸렸단다. 하물며, 세
상을 살아가기 위한 이것저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그가 올해 들어서 소망이 있다고 한다. 올해 초, 그동안 해오던 봉사
를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밀알」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
들에게 소금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아직까지는 그가 밀알의 대표 겸 직원이
고 또 후원자다. 그의 서글서글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소근으로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이 보인다.
자기 몫을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에 이런 양반이 또 있을까 싶다. 한평생
소금을 만들었기에 소금을 닮은 것일까? 이런 사람이 있어 이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희만이 있다.
글쓴이 : 서산시장 유상곤
2)의심으로부터의 해방
‘크리스천’과 ‘희망’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의심의 성(城)’이라
불리는 성(城)이 있었다. 그 성의 주인은 ‘절망’이라는 거인이었다. 그 거인은
다음날 아침, 그들을 찾아내어 매우 어두운 토굴에 감금시켰다. 그들은 거기서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지내야 했다.
목요일 아침, 거인은 그들에게 돌아와, 그들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
도로 흠씬 두들겨 팼다. 다음날 아침, 그가 다시 와서는 “여기서는 도저히 살
아남을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자살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충고하였다.
거인이 돌아가자 ‘크리스천’이 울부짖었다. “이런 식으로 사는 게 옳은지,
아니면 죽는 게 옳은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어. 내 영혼은 이미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
그러자, ‘희망’이 그를 위로하고 참아내도록 용기를 주었다. 다음 날, 거인
은 그들을 성의 뒷마당으로 데려 가서, 그가 이미 해치워 버린 사람들의 뼈와
해골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자, 그는 다시 그 들을
매질하여 토굴에 집어넣었다.
토요일 밤이 깊어지자 그들은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는 다음날 아침
이 밝은 때까지 계속되었다. 날이 밝아 오기 직전에, 크리스천이 외쳤다. “난
얼마든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가 있는데, 이런 토굴에 갇혀 있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내 마음속 에는 ‘약속’이라는 열쇠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이 의심의 성에 있는 어떤 자물쇠도 다 열수 있는 열쇠가 아닌가?”
그리고 그는 곧 그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은 너무나 쉽게 열렸다. 그리고
크리스천과 희망이란 사람은 함께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낌
없이 성 밖으로 걸어 나왔고, 곧바로 왕궁을 향한 큰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모
두 안전한 길로 접어든 것이다.
<존 번연의‘천로역정’중에서>
3)기도의 응답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육상종목 3관왕에 오른 ‘월마 루돌프’는 어렸을
때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 때 소아마
비에 걸려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월마’를 위해서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월마’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3년 만에
‘월마’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 ‘월마’는 자신은 걸을 수 없다며 자포자기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는 ‘월마’가 소아마비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
은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다면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월마’에게 ‘믿음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걸을 수 없으니,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월마’는 어머니의 확신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도 걷기 위해 끊
임없이 노력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비록 절뚝거렸지만, 걸어서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
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그는 다시 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느
덧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의심치 않았고, 그런 끝없는 시도가 올림픽 3관왕을 이
루었습니다.
그녀가, 올림픽 결승전의 출발선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어머님의 목소리
가 들렸다고 합니다. “월마, 한 번 더 뛰어봐, 넌 할 수 있어!”
9.설교예문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 번째 주일
성경 ; 에스더 7:1-6,9-10, 9:20-22, 약5:13-20, 막9:38-50
제목 ; 더욱 능력이 있는 믿음을 갖기 위하여
구약에 있는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무엇을 위해서
죽어야 할지, 그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아주 좋은 책입
니다.
에스더는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된 사람입니다.
원래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는 와스디였는데, 그만 왕의 미움을 받아서 폐출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에스더가 간택이 됨으로써 왕후의 자리
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의 사
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도움을 받아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그만 모르드개가 그 당시 페르시아의 왕 다음으로 최고의 권력자
인 하만의 비위를 거스르는 바람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든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완전히 멸절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
개는 왕후로 있는 에스더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왕에게 부탁해서 멸절당할
위기에 있는 유대인들을 구원해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왕후라고 해서 아무 때나 마음대로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가까이 오라고 지시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왕에게 접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 왕후로서도 어떻
게 해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법을 어기면서 왕에게 접근했다가는 죽임을 당
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여기는 모르드개의 부탁을 쉽
사리 들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하기를 “왕후께서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때를 위한 것인지 누가 압니까?”하고 다그쳤습니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위기에 처할 경우,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비에 자리에 오르도록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르드개가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자, 에스더가 드디어 결심
을 하고 모르드개에게 말하기를 “법을 어기고서라도 왕에게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죽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기회를 엿
보고 있다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어느 날, 에스더는 아름답게 몸단장을 한 후에 왕이 거처하는 방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안뜰로 나아갔습니다. 드디어, 왕이 에스더를 발견했습니다. 황홀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에스더를 발견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
더 왕비에게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왕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스더는 왕을 접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차근차근 유대인 구출작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잔치자리를 마련하고서 왕과
하만을 동시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폭
로함으로써 자기 동족을 억울한 죽음에서 구출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에스더가 잔치를 열고 두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에스더는 이전보
다 더 정성을 들여서 몸단장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가 너무 아름
다우면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왕은 너무나 아름다운 에스더를 보
게 되자, 정신을 잃고 말하기를 “내가 무슨 소원이든지 이루어주겠으니, 이제
그대의 소원을 말하시오! 이 나라의 반절이라도 떼어주겠으니, 무엇이든지 원
하는 대로 요구해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에스더 왕비는 임금에게 “왕이 저를 어여삐 보신다면, 그리고 제 요
청을 들어주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이것이 제 소원입
니다. 그리고 제 민족도 살려주십시오. 이것이 제 요청입니다.”라고 말했습니
다.
아하수에로 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저렇게 아름다
운 왕비를 죽이려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한 왕은 “누가 감히 그런
흉악한 일을 계획했으며,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에스더에게 물었습니
다. 이제 에스더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앞자리에
있는 하만을 가리키면서 “우리 동족의 철천지원수는 바로 이 앞에 앉아 있는
하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만은 유대인들을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했다가, 그만 그 자
신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방식으로 죽은 줄 아
십니까? 사실 하만은 모르드개가 단지 자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
고 해서, 모르드개와 그의 동족을 모조리 죽일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
는 특별히 높은 장대에 매달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높이가 무려 23m
나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높은 장대에, 하만 그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의로운 사람이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난다
(5:16)’고 했습니다. 에스더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동족을 구원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의롭고 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
도를 들으시고, 그녀가 아무 탈 없이 아하수에로 왕을 만나서 그의 마음을 움
직일 수 있도록 그렇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에스더가 자기만 살 생각으로 그의 동족이 멸절당하는 것을 못 본
척하거나 애써 외면을 했더라면, 과연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그녀는 행복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버지나 다름없는 모
르드개도 죽고, 그녀의 형제와 친척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텐데, 어찌
그녀 혼자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만일 그녀가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에스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의 후손들로부터 두고두고 원망과 비난
을 들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그녀의 온당치 못한 행실을
가만히 내버려두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그녀
를 귀하게 쓰시려고 페르시아 왕비가 되게 하셨다면, 에스더가 자기만 혼자 살
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외면했을 경우, 하나님께서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로운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만일 에스더와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사실 우리에게도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닥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고
로, 우리는 언제나 신실하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애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닥쳤을 때, 에스더처럼 올
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1.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
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다 갖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고민하면서 괴로
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엉터리로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
이라도, 다른 사람이 좋지 않게 평하면, 엄청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별로 좋지 않은 믿음을 가졌더라도, 그 사람 자신은 좋은 믿음
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래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은 싫어하게 되어 있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둠의 세력과 내통하고
있는 악한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욕심이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살지 못하도
록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도 결국은,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믿음의 용기보다는, 좀 더 오래 살
아야겠다는 욕심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에스더가 동족을 사랑하는 마
음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귀히 여겼더라면, 그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선택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잘해야 하나님의 은총
과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쯤은, 아무리 초보적인 신앙인이라도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욕심과 두려움이 그런 믿음의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되는 것이고, 주님
보시기에 좀 답답하고 안타까운 믿음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일주일에 열 번을 나오든, 아니면 한 달에 한 번만 나오든, 믿음생
활을 하는 것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에스더처럼 그런 용기 있
는 결단을 하려면, 그리고 베드로처럼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을 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원지
기가 전정가위로 과일나무를 늘 다듬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악한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말씀의 칼을 아주 날카롭게 잘 갈아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악한 욕심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할 때, 말씀의 칼로 무찔러서 이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손이 죄짓게 하면 그 손을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두 손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만 갖고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과 눈이 죄짓게 하면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성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성치 못한 몸으로 천국 가는 게 더 낫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과격하기 이를 데 없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이처럼 말
씀하신 것은, 어떻게든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
이 말씀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옥에서는 죄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에서는
모두가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아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일
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
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고 싶어서, 우리는 주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다음에 소개해드리는 것은, 충남 서산시장이 쓴 글입니다.
「우리지역 서산에는 소금과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 대산읍 영탑리에서 소금
을 생산하는 강경환 씨다. 한 평생 천일염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가 악수하기 위해서 내민 손을 보고 당황하게 된
다. 어디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두 손목이 없는 1급 장애
인이다. 하지만, 그는 “괜찮아유∼, 아무데나 잡아두 돼유∼”하는 구수한 사투
리와 함께. 어디를 잡아야 할지 망설이는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2008년 11월경, 이름도 없이 ‘어려
운 이웃에게 전달해주셔요.’라고 쓴 메모만 남기고, 120포대가 넘는 소금을 여
러 읍면동사무소 현관 앞에 쌓아 놓은 일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직
원들도 몰랐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가 강경환 씨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가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지가 15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자가 아니다. 바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였
다. 물론, 염전도 자기 것이 아니고 임대한 것이다. 아내의 평생소원이라던 아
파트를 장만한지도 얼마 안 된다. 그런 그에게 “애써 지은 소금을 다 퍼주고
나면, 당신은 뭘 먹고 사느냐?”고 하는 물음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두개를 줘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어려운 이웃
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소금이 돕는 거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마음이다.
장애가 있는 그가 일반인도 하기 힘든 염전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었을
까? 며칠 전, 나는 그의 염전에 들른 일이 있다. 멀리서 봐도, 양 손목 없이
일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특이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주 능숙하게 삽
질을 했다. 삽의 삼각진 머리에 오른손을 끼우고, 왼손으로는 삽 대를 받쳐서
소금을 얹고 있다. 삽질을 제대로 하는데 3년이 걸렸단다. 하물며, 세상을 살
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그런 그가 올해 들어서 소망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올해 초, 그동안 해오
던 봉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밀알’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단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금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아직까지는, 그가 밀알의 대표
겸 직원이고, 또 후원자다. 그의 서글서글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소금을 가지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이 눈에 보인다.
자기 몫을 챙기기에도 바쁜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한평
생 소금을 만들었기에, 그가 소금을 닮은 것일까?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이 세상은 아직은 살만하고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산 시장 유상곤.」
그런데 얼마 전에, 강경환 씨가 TV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양 손이 멀쩡하게 다 있었더라면, 과연 나는 그 두 손을 가지고 지금까
지 무슨 일을 했을까? 아마 어쩌면, 나쁜 짓을 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다시 말해서, 그 두 손을 가지고 좋은 일을 많이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쁜 짓을 더 많이 행했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가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전적
으로 틀린 말이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우리의
손으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을 더 많이 행
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스스로 자문자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을 통한 훈련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배워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아주 못된 성품과 악한 습관들을 잘
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더욱 굳세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2.그렇습니다. 우리는 더욱 능력이 있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하고 애써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금은 좋은 것
이지만,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
는 소금의 우정을 가지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릴 경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빈축과 조롱을 받게 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험한 소리를 들으면서 짓밟힘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말로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세상이 두렵거나 죽음이 무서워서, 그것을 모른 체하면 안 되는 것입
니다.
조금 전에 소개해드린 강경환 씨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믿
음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웃사랑 실천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는 교회에서 배운 대로 믿음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 무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듭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 것을 서약하고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넘어졌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무디는 산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던 중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 이제는 됐다!’ 생각하고서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한 달도 채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금, 유명한 부흥 목사님으로부
터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서는 부흥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하
지만, 이 방법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디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는 화인 맞은 양심을 가졌는가보다. 성경에
서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길가의 마음처럼, 씨가 자라지 못하는 마음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혐오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펴든 성경에서 로마서 13장 17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으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
라.’ 그래서 무디는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전 미국의 역사를 새
롭게 바꿔놓는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더욱 굳건한 말씀의 능력을 지니기 위하여, 언제나 항상 하나
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시험
을 이기고 승리함으로써,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뿐만 아니라, 우
리 모두 우리 후손에게 참으로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강림 후 열여섯 번째
성경 ; 에스더 7:1-6,9-10, 9:20-22, 약5:13-20, 막9:38-50
제목 ; 생명과 평안을 다시 찾은 날
얼마 전에 이미 한 번 말씀드렸듯이, 돌아오는 12월 19일은, 내년 2월 25
일에 취임하게 될 18대 대통령의 선거일입니다. 누가 대통령으로 뽑히게 될는
지 알 수 없으나, 지금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우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박근
혜 씨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안철
수 씨, 그리고 친구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나선 문재인 씨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무총리를 지낸 바 있는 정운찬 씨,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왔던 강지원 변호사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도, 여러 사람이 더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분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아주 큰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판
단하고, 그런 우리나라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
어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거의 멸망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한 단계 위로 상향조정되었다는 아주 반
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대통령 후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분들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머리가 좋을
것이고, 공부도 많이 하신 분들이며, 경력도 화려하신 분들이니, 이분들의 이
야기가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여간, 이분들이 모두,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원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중의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던지, 그
분이 우리나라를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고 기
대를 걸어봅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요?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분들 중에서
어느 한 분이 대통령이 되면, 그분이 말한 것처럼, 정말 우리나라를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형편
이 얼마나 더 좋아져야, 과연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
지금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별로 다 휴대폰을 갖고 있습니
다.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동네에 전화 한 대가 있
을까 말까 했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나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을, 개인별로 거
의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자가용을 한 대 이상 다 갖고
있습니다. 차를 세워놓다시피 해도 한 달에 평균 20만 원 정도의 유지비가 드
는데, 어떤 집은 두 대 세 대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이 정도인데도, 앞으로 얼마나 더 잘 살아야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어느 일개 주(州)보다 더 작은 한
반도, 그것도 반 토막이 된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제규모 10위권에 들었으
면, 누가 봐도 잘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입니
다.
아무튼, 앞으로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모든 국민의 욕구를 다 만족
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새로 결혼하는 ‘신혼(新婚)가정마다 아파트 한 채씩
주겠다.’고 하는, 허풍쟁이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약속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못살겠다!’고 하는 국민의 아우성소리
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령, 대통령이 직접 모든 국민에게 일일이
밥을 떠먹여 주게 된다 하더라도, 굶어죽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아
마, 하나님이 오셔서 이 나라를 다스리신다 해도, ‘살기가 힘들다’는 말은 여전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만 과도한 요구를 할 것이 아니
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일에
힘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개인이나 가정보다는, 국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
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분수(分數)를 알고 지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입은 다른 사람의
절반(折半)이 안 되는데도, 쓰는 것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쓰려고 한다면, 그
런 가정이 과연 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되든지, 자신이 맡은 일에 최
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얻게 되는 수입이 얼마가 되든지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입이 얼마가 되든지, 내가
번 돈이니 내 맘껏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항상 근검절약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쓰고 남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나보다 더 어렵
게 살거나 못사는 사람들을 적극 도와주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족(自足)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을 부
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을 망가지
게 하거나 실패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자체도
결국은 그 욕심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컨대, 무슨 일이든지 욕심
을 갖고 행할 때에는, 그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스더서에는, 명예와 욕심을 버림으로써 승리하게
된 사람과, 지나친 명예욕 때문에 일생을 망쳐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
습니다.
‘에스더’라고 하는 여인은, 비록 유대출신이지만, 그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페르시아 왕국의 왕비가 되는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권력자였던 ‘하만’의 음모로 말미암아,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한 순간에 다
죽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에스더는, 그의 동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
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물론,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에스더는 많은 고민을 해
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이 다 죽게 되면, 너는 별 수 있겠느냐?’고 하
는,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경고를 듣고, 에스더는 동족을 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
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그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개인적인 욕심과 안일함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에스
더는 자신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욕심을 버렸던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를 하고, 그녀는 동족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동족을 죽음에서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은 그 이전에 누리던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하만’이라는 사람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대신’이라는 아주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서,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유위부족(猶爲不足)하여 임금님처럼 행세하고 싶은 욕망을 갖
고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그의 그런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왕이
관리들에게 명령하기를 ‘언제나 하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하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대인 출
신 ‘모르드개’만은 무릎도 꿇지 않고 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드
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이었으므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향하
여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화가 머리끝
까지 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 죽일 것이 아니라, 모르드개와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여
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한 일입니까? 단지, 자기에게 절을 하
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한 것도 정말 엉터리 같은 짓이
지만, 모르드개 한 사람이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속한 유대
인들을 다 죽이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악독하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입니
까?
어쨌든, 하만은 자신의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왕의 윤허도 받
아놨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 뜰에다가는,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높이가
23m나 되는 교수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놓
았던 그 높은 교수대에, 모르드개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하만’ 그
자신이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될 줄, 하만이 꿈엔들 생각
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은 이후, 유대인들은 매년 12월 14일 저녁 해질 때부터 15일
해질 때까지 ‘부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 국가 내에 살던 모
든 유대인들이 완전히 멸절 당할 뻔했으나,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헌신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인 것입니다.
에스더서 9장 21-22절에는 ‘이날은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안을 되찾은 날이다. 그리고 이 날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통곡이
변하여 환호성으로 터져 나온 날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유대인들은 서로 선물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유대인들이 멸절을 당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
었던 것은, 왕후 에스더가 모든 명예와 욕심을 다 버리고, 자신의 동족인 유대
인들을 위하여 몸 바쳐 희생할 각오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자기 자신만의 안녕과 영화를 생각하고서 자기 동족을 외면했더라면, 그 당시
의 유대인들은 영락없이 완전히 멸절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봤듯이, 하만은 쓸데없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하루아침
에 그 모든 부귀영화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가 세워놓은
교수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되는, 참으로 부끄럽고도 아주 비참한 죽음을 맞
이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만이 보여주었던 그 ‘욕심’과 ‘교만’
이라는, 참으로 무섭고도 험난한 이 장애물을 잘 이겨내고, 우리가 원하는 천
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라.
즐겁거나 감사할 일이 있는가? 그렇거든, 주님을 찬양하라(5:13)’고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병든 자가 있을 경우에는,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받도록 하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음으로 기도드릴 때, 주께서 그를 치료하여
낫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의 병이 어떤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주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다(5:15)’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우리를 필요로 할 때에 올바르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에스더’라는 연약한 여인이 자신의 동족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
기에 처해 있을 때에 자신의 몸을 던져 동족을 구원하고, 장로는 병자를 위하
여 기도해줌으로써 그 병을 치료해주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과 물질을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존재가치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 반대로 우리 자신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릇
되게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함으로써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빌려주셨을 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그분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사람 중에서 하나라도 죄를 짓게 하면,
그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막9:42)”고 하셨습니
다. 그만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보다 좀 더 극단적인 말씀도 하셨습니다.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찍어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 갖고 천국
가는 편이 낫다(47)”고 하는, 아주 무서운 말씀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용함으로
써, 우리에게 생명과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
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좀 더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
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렇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자기 동족 유대인을 위하여 헌신’을 하는 것에 대해서 쉽
게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말하
기를 “왕후께서 그 자리에 오른 것도, 바로 이런 때를 위한 것인지 누가 압니
까?”라고 다그쳤습니다. 이에, 에스더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
리라’는 각오로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처럼 이 땅에 태어났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런 사실을 가리켜서 ‘시대적인 사
명(使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대적인 사명’도 잘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
나님의 자녀로서 선교적인 사명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어디를 가든지 꼭 필요한 존
재가 되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