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예대마진
은행업은 이제 전 산업을 통틀어 순이익을 가장 많이 내는 업종으로 바뀌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절반 가까운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직원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길 거리로 쫓겨나고 주주들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주권을 들고 망연자실하였다.
외환위기는 우리 금융계에 관치금융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모든 것이 선순환이 된다면 관치금융이나 시장경제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금융 소비자인 국민들은 공익성을 우선하는 관치금융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게 어디 있겠는가. 국민을 위한 공익성과 사익을 추구하는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대립하는 개념이 아닌가.
금융자율화는 자금의 순환과 금리의 결정을 시장경제에 맡겨 스스로 수위를 조절하므로 위기 자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만 관치금융은 그런 기능이 없다. 이는 마치 힘으로 둑을 막고 있다가 수압에 못 견뎌 그 손을 놓아 버리면 둑이 붕괴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1997년의 외환위기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은 관치금융의 한계를 보여 준 시금석이었다.
공익성과 적정이윤의 조화
은행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 틀림 없지만 업무 성격으로 보아선 공기업에 가깝다. 은행의 예금창조는 통화량에 연동되고 예. 대출 금리의 변동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상업은행 역시 국가경제 전체로 보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역할을 보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은행의 공익성이 필요한 이유이며 그 과정에서 소비자로부터 적정이윤을 보장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관치금융이 공익성을 명분으로 은행의 적정이윤 마져 보장해 주지 않았다면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자율화는 역으로 공익성은 사라지고 수익추구에만 올인 하는 역기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적정이윤도 못 벌던 은행이 초과이윤으로 떼돈을 벌고 있으니 그 손해는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인 전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세상에 어떤 제도라도 완벽한 것은 없다. 역사가 언제나 돌고 도는 것은 사물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복잡한 예대마진 구조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은행의 예대마진은 1.5%이다. 그것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 유통수익율에 가산되는 스프레드 금리일 뿐이지 실제 은행의 예대마진은 아니다. 은행예대마진은 자금조달 평균금리와 대출운용 평균금리의 차이이다. 따라서 고율의 정기예금 의 예대마진은 떨어지는 것이고 저율의 요구불 예금은 예대마진이 늘어난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최근 3년간 은행 정기예금의 평균 금리는 4%수준이다. 여기에 요구불예금의 비중이 약 30%정도 되므로 평균 조달금리는 약 3%수준으로 추정된다. 현행 대출의 평균금리가 약 6.5%-7%수준이므로 여기에 평균 조달금리를 공제하면 실제 예대마진은 3.5%-4%정도 될 것이다. 다만 은행에서 지준이 부족하여 이를 메우기 위하여 콜자금을 차입하면 4.5%,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할 경우에는 약 5%의 금리를 부담해야 하므로 전체적인 예대마진은 3-3.5% 수준으로 다소 내려온다.
규모의 경제에 역행하는 예대마진
은행업의 기본적인 이익 구조는 대출 운용수익에서 기초원가인 예금이자를 공제한 예대마진이다. 이것은 일반기업의 매출이익에 해당되며 인건비등 경비를 공제한 금액이 영업이익인데, 경비가 일정하다고 볼 때 대출 운용자산이 늘어날수록 이익이 증가한다. 은행은 제조업체와는 달리 변동비는 거의 없으므로 이 공식은 거의 일치한다.
이것이 은행간 예금이나 대출 유치경쟁이 격화되는 이유이며 외형적으로는 완전경쟁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가 은행업의 경우에 가장 적합하며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비용의 점유비가 감소하므로 상품가격을 낮추더라도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원리이다.
앞서 실제 예대마진에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예대마진은 1.5%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여 과거와 대비하여 보면 현행 예대마진은 폭리 수준임을 알 수 있다. 10여년 전 은행의 일반대출 금리수준이 12%일 때 예대마진은 1%였던데 비해 현재는 금리수준 6-7%에서 예대마진 1.5%이다. 이는 원가개념으로 과거에는 11원에 사서 12원에 판매하므로 수익률은 약 10%였지만, 현재는 4.5원에 사서 6-7원에 판매하는 격이므로 수익률은 33.3%이다.
따라서 원가개념으로 보면 과거보다 약 3.3배의 이윤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한다면 금리가 내린 비율대로 0.5%의 예대마진이 원가개념에 맞는다. 물론 금융업을 제조업이나 도소매업에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점에서는 모든 업종이 동일하다. 이는 은행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 근본요인이다.
새로운 기준금리를 만들어야
변동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 유통수익율 역시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도성 예금증서는 전체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액의 5% 미만이라고 한다. 더구나 은행은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하여 대출재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님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양도성예금은 과거 관치금융 시대에 꺾기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즉, 은행에서 대출을 해 주고 싶으나 자금이 없을 경우 대출고객으로 하여금 양도성예금을 들게하고 그 증서를 매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출고객은 할인이자를 부담해야 하므로 실제 대출금리가 늘어난다. 이는 과거 사채시장의 전주나 증권사의 돈 있는 고객의 재산 증식 수단이었던 결코 정당하지 못한 자금조달 수단의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은행마다 우량고객에게 적용하는 프라임레이트가 대출의 기준금리가 되고 영국에서는 은행간 거래 금리인 리보가 기준이 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콜 금리처럼 중앙은행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은행 스스로 결정한다.
은행에서 대출재원 확보를 위해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한다면 이는 무기금 자기앞 수표와 마찬가지로 위법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한국은행에서 은행간 콜금리를 정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양도성예금증서 유통 수익률을 고집하는 것은 대출자에게 고율의 금리를 받기위한 고도의 사기적 수법이다. 이는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이 시장기능에 맞춰져 있지 않으며 얼마든지 가격 농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예대마진을 낮춰라
우리나라의 GDP는 1996년 약450조원에서 2006년 약 850조원으로 90%가 증가하였으므로 금융자산 규모도 그 정도 수준으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앞에서 고정비용이 일정하다고 볼 때 자산 규모가 두배 정도 늘어났으니 수익 역시 두배로 늘어나게 된다. 은행이 만일 적정이윤만을 추구한다면 예대마진을 지금의 절반정도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비용이라는 변수가 문제이다. 은행의 고정비용은 총수익의 약 절반수준이고 이 역시 물가상승에 따라 두배 정도 늘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변수들을 종합하면 은행은 동일한 예대마진으로도 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과거보다 약 1.5배의 수익을 더 거두고 있는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현행 예대마진은 10여년 전의 1%대비 50% 상승한 1.5%이다. 예대마진만으로도 은행은 과거보다 약 2.5배의 수익을 거두고 있으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대통령이 카드수수료 인하를 촉구하였음에도 업계 자발적으로 이를 실현하지 못하자 재경부에서 테스크 포스팀을 만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 이는 시장경제를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서민 경제를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리라 본다.
은행의 예대마진 역시 금융비용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과 중소기업을 살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은행이 수익의 극대화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주들의 출자가 아닌 국민의 부를 빼앗아 이를 실현하는 것은 국민경제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