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저널 지령 900호에 부쳐...}
“새로운 종로의 비전, 설계 기대”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종로를 사랑하고, 종로에서 사랑받는 신문”
내가 사는 종로의 지역신문 <종로저널>이 어느덧 지령 900호를 맞이하게 되었다. 참으로 대견스럽다. 종이신문은 점점 독자들이 사라지고, 더욱이 지역신문은 그 무대가 한정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악조건이 닥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꾸준하게 영세한 자본을 갖고도 젊음의 정열 하나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까지 왔다. 참으로 칭찬할만한 업적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각 고장의 지역신문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없어지는 말 그대로 명멸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종로저널>은 꾸준하게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의 사명에 대하여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명은 공정언론과 시시비비의 모토를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종로는 언필칭 정치1번지 일뿐더러 고궁을 비롯한 문화의 자산이 모두 몰려있는 곳이다. 따라서 행정적으로도 제약이 많다. 문화중심이라는 자부심을 제쳐두거나 잃는다면 사람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로를 찾아오는 까닭은 종로에 와야 한국적 정취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종로의 맛을 알려주는 역할을 지역신문이 해주는 것이고 그 가운데 <종로저널>은 충실하게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옛것을 찾는 것도 그러하고 그런 옛것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주는 것도 지역신문의 몫이다. 때로는 문화라는 큰 간판 아래 비리도 싹트기 쉽고, 문화를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시민 생활이 억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종로저녈>은 날카로운 필봉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이렇게 종로구민의 욕구를 반영하는 신문이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이제 900호 지령을 채우고 난 지금 종로는 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름 아니라 새 정부의 대통령은 청와대 입주를 포기하고 새로운 장소로 옮기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1번지를 떠나 생소한 3번지로 기려는 것이다. 이유는 이해가 된다. 지금의 청와대는 왕조시대 근정전이나 다를 게 없다. 본관은 대통령 한사람만 덩그라니 있고, 그를 돕는 승지들은 저 문밖에 있으니 고립된 군왕처럼 백성의 숨결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민주주의 시대의 사무실 구조가 아니었다. 여기서 많은 폐단이 온 것이다. 기록만 보더라도 이곳을 거쳐간 대통령이 사후에 한 사람은 자진(自盡)하였고, 세 사람은 유수(幽囚)의 고통을 톡톡히 당했다. “그게 왜 장소 때문이냐?”란 반론도 일리는 있다. 또 지관(地官)의 은밀한 밀고로 이전론이 영향을 받았다는 괴담도 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마다 한번쯤 이런 이전론을 내세운 것을 보면 무엇인가. 현 청와대는 민주화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구조의 결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 그러면 대통령실이 이전한다면 종로는 정치1번지가 아니라 10번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대통령이 떠나면 각종 규제가 풀릴 것이라고 반가워할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오히려 한국적 전통과 정취가 사라진 종로는 맛이 갈 것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러한 때 지역신문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해온 <종로저널>은 새로운 환경 변화에서 무엇인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어야 할 것이다. 지령 900호를 맞이하는 <종로저널>에게 이제 새로운 종로의 비전이나 설계를 위해 큰 기대를 걸어 본다.
[2022년 3월 24일. 종로에 사는 한 노인의 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