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경 시집 <경배합니다>(사이펀)
◉출판사 서평
계간 문예지 《사이펀》을 발행하는 배재경 시인이 신작 시집 『경배합니다』(사이펀)를 ‘사이펀현대시인선’ 6번으로 출간했다. 시전문지 《사이펀》을 발간하는 사이펀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고 첫선을 보이는 시집이다. 시인의 이번 시집은 지난 10여 년의 시들을 모은 시편들이다. 물론 2022년 시집 『하늘에서 울다』(작가마을)를 펴냈지만 대다수의 시가 사회적 소재만으로 묶은 시집이었던 것.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 특유의 고백적 시편들을 펼쳐 보인다. 그는 고향인 경주와 유년의 기억들, 불우한 가족사, 그리고 생활 속에서 태생한 시편들까지 자기 고백을 한다. ‘고백시’라는 장르적 작품을 쓰고자 한 시들은 아니지만 배재경 시의 내면적 정서들을 김준태 시인, 권성훈 평론가로부터 고백적 시편들임을 명명 받고 있다. 이는 수사(修辭)가 남발하는 현대시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시들이지만 담담히 자신의 내면을 훑어나가는 서정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고 있다 하겠다. 경기대 권성훈 교수는 배재경 시집 『경배합니다』 의 시적 특징으로 ‘존재’에 초점을 두고 “없음의 비존재가 있음의 존재로 기능하게 되며 존재의 본질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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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젊음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시를 써야 할 터인데,
그 젊음을 송두리째 날렸으니...
그저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또다시 웅크린 적막을 쏟아낸다.
202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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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비평
이번 배재경 시인의 시편들은 존재와 비존재로부터 언어를 수혈받으며 생태계의 근원적인 원리를 추궁하는 것에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세계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을 탐구하기도 하며, 존재해야 할 것이 존재하기도 하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존재적 물음을 제기하며 “사유의 저장소”에 기록하고 있다. 그의 사유의 저장소는 존재를 통해 비존재를 배양하거나, 비존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실체에서 비실체로의 이행이라는 사실이다. 이로써 배재경의 시가 놀라운 언어적 생존력의 가능성을 비실체의 영역까지 확장하는데 근원적인 존재의 불안한 “저 출렁이는 갈증”(「만추―사과」)을 해소하며 “아, 저 뜨거운/잘 익은 젖가슴”의 ‘생태적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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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약력
시인 배재경은 1966년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94년 《문학지평》, 2003년 《시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게릴라》, 《문학풍류》, 《가마문화》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계간 문예지 《사이펀》 발행인 겸 편집주간이다. 시집으로 『절망은 빵처럼 부풀고』, 『그는 그 방에서 천 년을 살았다』, 『하늘에서 울다』, 『경배합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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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으로
모기의 독백
당신의 피를 응원합니다
태양을 벗 삼아
울뚝불뚝 근육질의
당신의 피를
흥건히 베어 물겠습니다
세상 모든 주사는 따끔합니다
단 한 번!
따끔!
당신의 피를
우주의 건강을
저장소 가득 배달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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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합니다
기역자로 하루를 사는 노파
집 밖 동리 마실 나간다
지팡이 쥔 손이
상수리껍질처럼 울울허다
저물고 저물어야 가질 수 있는 기역자
젊은이들에게는 바늘귀의 틈도 주지 않는 기역자
그렇게 값비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역자를 싸들고
마실 나간다
노파의 등판 위로 아로새겨진 무수한 샛길들이
어서 자신의 길로 오라고 아우성이다
채마밭길의 푸르름들이며
눈보라의 차디찬 들판에 늘브러진 늑대들이며
메마르고 갈라진 논두렁길도 보인다
저만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밥 짓는 모락모락 연기 피어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며
지아비를 떠나보낸 전쟁터의 피란길도 아슴아슴하다
이 마실 길을 얼마나 더 걸어갈지
기역자 가득 햇살들이 열심히 부채질인데,
나는 우두커니 차를 세우고
기역자 사라진 그 밭길에
기역자 흉내를 내어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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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질문
간혹 엉뚱한 질문이 나를 당혹시킨다
그러고 보면 바보스런 질문에 질문을 성실히 키우지 못해
내 인생이 많이 쏟아져 갔다는 생각
하지만 그녀는 왜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가?
결혼을 앞둔 조카에게 이혼은 언제 할거냐
고, 묻는다거나
막 썸을 타는 딸에게 오늘 데려온 놈은 100일을 채울거냐
고, 따져본다면
허공에서 분사되는 태양처럼
내 얼굴은 열압탄으로 붉게 타오를거야
자기 어디가?
나?
바보, 너에게 가고 있잖아!
우리집 대문은 사라진지 오래다
달이 아무리 화장을 하여도 빛이 나지 않는 거리에서
우두커니,
자기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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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訃告
사촌 형님의 집은 사람의 온기를 찾기 힘든 적막의 군단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 무지막지한 적막의 부대를 빠져나오려 형님은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단 한 명의 구원병도 없는 고요와 쓸쓸함의 병사들과 대치하며 피눈물을 흘렸을 터, 갑자기 牛舍의 소 한 마리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쏟는다. 그도 형님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양이다. 마당의 늙은 누렁이는 죽담에 근육을 죄다 훑어낸 환자마냥 퍼질러 앉아 옴짝달싹도 안한다. 며칠 전 족제비에게 두 마리가 물려가고 남았다는 어미 잃은 병아리 한 마리만 뒷담에서 모이를 쪼고, 평상에는 어젯밤 먹다 남은 막걸리 통과 김치 두어 조각만이 형님의 마지막을 대변해주고 있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형수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다. 대리미요, 이제 저 양반 편할낍니더! 형수의 편할낍니더란 그 말이 갑자기 칼날처럼 심장을 베어든다. 니는 우짜든등 도회 나가 성공하래이~ 늙은 어미만 남겨둔 채 대처로 나가는 열다섯 내게 3만원을 꼬옥 쥐여주며 형님이 던진 말 한마디가 쓰나미의 세상을 살아가는 마지막 힘이었거늘, 대리미요, 애들은 잘 커지요? 황망한 남편의 주검 앞에서 눈물보다도 내 안부를 묻는 형수. 그러나 형수 가슴은 이미 천 갈래 만 갈래 다 헤져 있으리라. 세 자식들 중 어느 하나도 형님의 주검을 거두는 놈 없으니... 형님은 최근까지 심장병에 무리가 있음에도 아픈 형수를 대신해 농사며 밥하고 살림하는 집안일까지 했다7. 지난주엔 세 자식들이 모여 아버지, 어머니 사후 재산분할로 서로 다투었다는데, 형수가 새벽에 아버지 임종을 지키라 연락했건만 5월 늦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오질 않고 가장 먼 곳에서 부고를 받고 온 내게 대리미요, 형님 이제 갔심더! 라고, 여름날 낫에 베인 풀잎처럼 내뱉었다. 촌마을 외딴집이라 가차이 이웃도 없다. 거동을 못하니 형수는 그냥 자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까징 멀쩡했는데...... 고마 나보담 먼저 갔심더,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데... 그제야 형수가 울음보를 터뜨린다. 형수는 형님과 산 50여 년의 시간들을 다 토해놓듯 운다. 울음보는 형수의 심장을 가르고 마을의 샛강을 적시며 저 아득한 형산강으로 꾸역꾸역 흘러든다. 그렇게 형수의 哭은 오래도록 고향집 안마당을 11월의 바람처럼 배회했다. 형님, 이제 편히 가시소. 여기 걱정 붙들어 매고 거서라도 평안하소!
*대리미: 도련님을 부르는 방언. 시동생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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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셨다
엄마가 오셨다
58년이 지나 엄마가 오셨다
나는 마중을 더디게 나간다
나는 마중을 아주 더, 디, 게, 나가본다
엄마는 어디를 가셨다 이제 온담!
58년 동안 뭐 하셨을까?
나는 또 58년 동안 왜 엄마를 찾지 않았지?
그렇게 어느 날
엄마는 세 동생과 나타났다
아! 내게 동생이 셋이라니!
엄마는 기적쟁이구나
갑자기 내게 동생 셋을 안겨주는 능력이라니
이제 나는 부자다
엄마가 있고 형이 있고
이쁜 여동생 둘과 잘생긴 남동생 하나
그렇게 김금희 여사가
한 꾸러미 선물을 안겨준다
엄마! 그냥 받으면 돼?
근데, , ,
이제는 또 가지 마!
얼른 병원 문 박차고 나가자 응?
*김금희: 58년 만에 만난 어머니 이름. 만나고 1년 만에 와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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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外島
외도를 꿈꾸는 사내
언제나 그날만을 생각하며 분기탱천해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그 부드럽고 쫀득한 살결들을 잊을 수 없다
어둑어둑, 밤의 테러분자 네온들이 활개 하는 저녁
사내는 외도에 젖어, 홀로 주점을 찾는다
다시 완벽한 외도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터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아내는 깊게 깊게 잠이 들었고
살금살금 집을 빠져 나와 줄기차게 새벽을 달려 찾아들었던
그 황홀한 출렁임을 넘어 끓임없이 탐닉했던
겨울 영등철 격정적 뜨거움을
밤을 허물며 솟구쳐 오는 미명의 바다가 온몸을 휘감는다
두 손이 으스러지도록 부여잡았던 절정의 클라이막스를
되새김질하는 사내,
마구 출렁인다 다시금
그날의 흥분으로 속곳이 다 젖어든다
사내, 주말의 외도를 꿈꾸며 행복하다
*외도: 경남 거제시 해금강에 있는 섬.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
*영등철: 음력 2월을 말한다. 낚시꾼들에게는 대물 감성돔을 낚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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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목차
배재경 시집 경배합니다
목차
제1부
모기의 독백
경배합니다
불구의 질문
아내는 여행중이다
어떤 부고
백일홍 편지
가을 손님
신보안사령관
남해금산에 들다
금산에서 별따기
내일은 내일이다
달맞이 레지스탕스
새들의 정원
제2부
이방인을 만나다
상어 아가리 속으로 -아쿠아리움에서
지상의 감옥
애인
대상포진
그림자놀이
쑥부쟁이
계란밥
개는 개다
제임스 웹
서울 예수傳
로드킬
토요일이었고 유월이었다 -장마
제3부
복권방으로 오세요
그녀의 오케스트라 -5월
외도
막차
야간열차
비는 그리움으로 온다
석기 동무
해후
그 섬에
광장
빛나는 야성
산중에서
남산에서 우두커니
대릉원
제4부
동백
어떤 해후
엄마가 오셨다
적우
폭우
합천아재
목련
벚꽃
봄, 봄, 봄,
입추
만추
바다
적막
그대 어디 계시나요 -유병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