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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결론적으로 황홀공주께서 원하시는 신랑감은, 세상의 것에 미혹되지 않는 하늘의 부귀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저는 추정합니다.”
“이 섭선은 우리 공주마마의 뜻을 따라 제작된 거라, 전 잘 모르지만 대단히 일리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해석에 의하면, 이 시문의 뜻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네, 과연 어떤 천재가 그 심오한 뜻을 밝히 해석해서 우리 공주마마의 배필이 될 수 있을지, 심히 의문스럽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 휴식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사회자가 잠시 정회를 선언한 후 30분 후에 모임은 다시 이어졌다.
김이한이 재차 단 위로 올랐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두 고개를 넘었습니다.”
“몇 고개를 넘어야 하나요?”
“그건 공자님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최대 스무고개까지 있습니다.”
“오늘 밤 종회終會하는 시각이 몇 시죠?”
“자정에 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좀 있군요. 그렇다면 그 시각까지 가기로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좀 색다른 질문입니다. 공자님은 혹시 좋아하고 잘하시는 스포츠가 있습니까?”
“전 만능 스포츠맨입니다.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혹시 무예는 연마하신 적이 있나요?”
“그건 제 전공입니다.”
“오, 그래요? 보여주실 만한 게 없을까요?”
“검술, 차력술, 경공술, 장풍술, 권각술, 활쏘기, 기마술, 권총 사격 등등 무엇이든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무얼 보여드릴까요?”
“오, 너무나 화려하군요. 뻥이 아니길 빕니다.”
그녀의 말에 청중이 모두 웃는다. 김이한은 입을 굳게 다물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녀가 묻는다.
“기마술이나 권총 사격, 활쏘기 등은 따로 장을 마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여기서 간단히 보여줄 수 있는 경공술이나 장풍술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그거야말로 가장 쉬운 겁니다. 좀 어려운 게 없을까요?”
“네, 우선 쉬운 것부터 보여주시죠.”
“딱 하나 골라주세요.”
“먼저, 장풍술을 보여주세요.”
“그걸 전문용어로는 격공장隔空掌 혹은 벽공장劈空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혹시 베니어판 같은 게 있습니까?”
“아, 베니어판은 없고요. 그 대신, 가만있어라.”
그녀의 뇌리에 대체물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상대로 하다가는 다칠 우려가 있습니다.”
“다치지 않게 가볍게 보여줄 수는 없을까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아주 가볍게 보여드리죠. 자원하는 분으로 세 분 정도, 몸이 아주 건강한 장정을 선정해서 이리로 불러주시겠습니까?”
루비가 청중을 둘러보며 말한다.
“여러분도 들었다시피 지금 이분이 장풍 시범을 보이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몸이 건강한 장정들 세 분만 자원해서 이리 올라와 주세요.”
잠깐 휘둘러보는 사이, 장내가 조용하더니 여기저기서 세 남자가 올라온다. 모두 체격이 우람한 청년들이다. 그들이 무대로 올라와 청중에게 인사하자 청중이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자, 세분은 저를 마주 보고 관중석에서 잘 보이도록 제 앞으로 서주시면 되겠습니다.”
김이한은 그들을 종대 일렬로 세웠다.
“세 분의 앞뒤 간격을 1미터 정도로 해주시고요, 자세는 태권도 전굴前屈 서기로 해주세요. 뒤에 서신 분은 앞에 계신 분이 뒤로 넘어지려고 할 때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세 사람이 청중에 측면을 보이며 각기 전굴 자세로 버티고 섰다. 김일한은 맨 앞 사람으로부터 약 3미터 떨어진 곳, 그의 정면에 마주보고 섰다.
“제가 하나, 둘, 셋을 세겠습니다. 셋과 동시 속칭 장풍이라는 게 발출되니, 그 순간 손바닥 부딪쳐 서로 밀기 게임을 할 때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미십시오.”
세 장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겠는데요, 그래도 힘이 매우 셉니다. 뒤로 밀려나지 않도록 제가 셋을 셀 때, 앞에서 돌진해오는 사람의 몸을 막는다고 상상하며 양손을 힘 있게 내미십시오.”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사회자도 과연 장풍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해 하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준비 되었으면 대답해 주십시오. 준비되었습니까?”
“네!”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씩씩하게 대답한다.
김이한은 맨 앞 사람 3미터 전방에서 앞뒤로 약간 다리를 벌린 채 평범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자, 그럼 숫자를 셉니다. 명심하십시오. 셋을 셀 때 손을 앞으로 뻗는 것.”
일한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바로 그 순간이다. 갑자기 온 천지가 암흑으로 변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 이거 무슨 일이야?”
잔뜩 긴장하고 있던 청중은 너도 나도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전기가 나갔다! 정전이오, 정전!”
사회자도 청중도 모두 당황하는 사이, 전기가 곧바로 들어왔다. 장내가 환해지자 청중들은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무대 위에 세 장정이 여전히 서 있는데, 낭패를 당한 듯,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 김이한의 모습도 여전하다.
루비가 장내를 진정시킨 후 김이한에게 묻는다.
“자, 갑작스런 정전으로 청중에게 장풍 쏘는 광경을 보여드리지 못했는데요,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보여주실 수는 없습니까?”
“얼마든지요. 백번 천 번도 좋습니다.”
다시 무대 위에서 세 사람이 일렬로 섰다. 역시 김이한이 같은 위치에 서서 수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셀 때, 김이한은 양손바닥을 교차시켜 가슴에 모으고 있다가 양손을 가슴에서 뗌과 동시 오른 손바닥을 홱 비틀며 손바닥으로 앞을 치듯이 가볍게 내밀었다.
그러자 김이한과 마주보고 있는 맨 앞의 청년이 어떤 물체가, 곧추 세운 양 손바닥과 세게 부닥치는 듯 몸이 반동을 일으키며 두세 발 뒤로 밀려나 넘어지려 한다. 뒷사람이 그의 등을 떠받쳤는데, 두 사람이 모두 힘에 밀려 뒤로 넘어지려 했다.
맨 뒤에 있던 건장한 청년이 그 두 사람의 후진을 방어하다가 세 사람이 동시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김이한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았고, 기합 같은 것도 지르지 않았는데, 당하는 사람들은 무척 센 힘을 받았는지, 매우 놀라는 표정이다. 세 사람이 손으로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비 운과 보조 사회자로 서 있던 에머럴드, 사파이어도 크게 실색한 얼굴들이다.
“어머나! 장풍이란 게 정말로 있었네요.”
청중들도 놀랐는지 일순 조용하다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그 때 청중 가운데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믿을 수 없소!”
“그건 눈속임이오!”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지려 한다. 루비는 즉시 장내의 소란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제가 볼 때는 진실인 것 같은데, 여러분의 판단은 저와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장내에서 소리를 질렀다.
“경공술輕功術을 보여주시오! 그러면 믿을 수 있소!”
경공술은 경신술輕身術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다른 할 일을 선택하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놀라운 기예를 터득하고자 평생을 바쳐 내공內功(기공氣功)과 외공外功(신체의 외적 기능)을 단련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성과에 도달하는, 무술의 한 부문이다.
루비 운이 김이한에게 묻는다.
“처음에 경공술도 보여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가능할까요?”
“얼마든지요!”
김이한이 흔쾌히 대답한다.
“어떻게 보여주시겠어요?”
“제자리에서 경신술로 높이뛰기를 해 보이겠습니다. 여기 혹시 줄자가 있습니까?”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냥 어림짐작으로 구경하십시오.”
“물건을 치워드릴까요?”
“아뇨. 전혀 필요 없습니다. 제 위로 장애물은 없죠?”
이렇게 말하며 김이한이 머리를 들고 공중을 쳐다본다.
“네, 하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 혹시 신발에 특수 용수철 장치를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신발을 벗고 실시하겠습니다.”
김이한은 신을 한 쪽에 벗어놓은 다음, 양말까지도 벗어서 맨발임을 사람들에게 보였다.
“자 보세요. 제 발바닥에 이상한 점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김이한은 잠시 호흡을 고르다가 아무런 기합이나 요란한 자세 없이 무릎을 살짝 구부려 가볍게 위로 뛰어 올랐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마치 공처럼 튀어 상승하는데, 육안으로 보기에 근 3미터 정도 솟아오른 것 같았다. 그가 내려올 때는 처음 솟구칠 때와 달리 천천히 내려왔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한동안,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면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그 때 누군가로부터 박수가 시작되고 이어 장내는 박수와 환호 물결이 넘실거린다.
“헤이! 브라보!”
“멋지다!”
“사람이야 귀신이야!”
“오늘 밤 말로만 듣던 최고 무술을 보았네!”
“무예의 대가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피아노 줄이야! 아까 정전되었을 때 신속한 조처를 취한 거라고!”
“아, 그게 정말이야!?”
“구식 피아노 줄을 아직도 사용하나? 저건 초음파 이용 공중부양이라고!?”
“그래 맞아! 초음파 공중부양이다!!!”
“그럼! 모든 게 속임수다!”
장내가 좀 소란해지자 루비가 진정시키며 김이한에게 묻는다.
“공자님은 연세도 많지 않은데, 그 어려운 절예를 언제 어떻게 터득하셨나요?”
김이한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를 하지 않는다.
“거봐 거! 그건 사기라고!”
무대 아래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럼 그렇고말고!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장풍이나 경신술로 사기를 치면 되나?”
다른 걸걸한 목소리가 무대로부터 멀지 않은데서 나온다.
“자, 세 번째 고개는 여기서 접는 게 좀 아쉬운데요, 검술을 한 번 보여주실 수는 없습니까?”
“어떤 걸로 할까요? 서양 펜싱, 일본 검도, 중국 검술, 우리나라 전통검술 등등.”
“기왕이면 우리 전통의 검술이 낫지 않겠습니까?”
“장검 한 자루만 준비해 주십시오.”
“제 장검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곁에 있던 사파이어 림이 허리에 찬 장검을 혁대에서 풀어 김이한에게 공손히 건넨다.
“그럼 무대 위를, 최소한 원의 직경 5미터 정도까지 깨끗이 정리해 주십시오.”
물건이 정돈되자, 김이한은 장검을 왼손에 들고 장내를 향해 한차례 인사를 건넨다.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나고 난리다.
검집을 빼어 사회자에게 건넨 후 김이한은 장검을 바른 손에 수평으로 들고 바른 자세로 단정히 섰다. 팔괘검八卦劍의 기식起式, 시작 자세다.
그의 검술 시연은 약 1분 정도 진행되었다. 직경 5미터의 공간 안에서 그는 뛰고 날고 차고 치고 베고 가르고 찍고 휘두르고 찌르는 등 갖은 자세를 연출한다.
그의 짧은 시범이 끝나자 다시 한 차례 박수갈채가 마치 천둥처럼 쏟아진다. 이번에는 아무도 사기니, 속임수니 하는 말들을 내뱉지 못했다.
검으로 보여주는 그의 동작들이 너무나 현란하고 그의 몸놀림이 섬전閃電처럼 빨랐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 솟구치는 신형은 가랑잎처럼 가벼워보였기 때문이다.
검의 동작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범이 끝나고 김이한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밤이 점점 깊어간다. 다시 한 차례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세 번째 무대가 전개되었다. 먼저 십여 분 동안의 악기 공연이 있은 후, 김이한이 무대로 또 다시 올라왔다.
“제가 신랑감 후보도 아닌데, 하루저녁을 온통 차지하는 게 가한지 모르겠습니다.”
김이한의 말에 루비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 밤은 네 고개로 끝내고 싶은데, 아마도 네 번째 고개를 넘다 보면 자정이 거의 다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험한 고개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조국사祖國史 테스트입니다.”
“오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혹시 전해 받은 섭선에서 일월복숭아와 일월산수도 외에 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아, 표지 속 내지에 숨겨 놓은 그림과 문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질문하시면 제가 하나하나 답변하겠습니다.”
“우선 불타는 보검을 들고 서서 불타는 심장모양의 그림을 찌르는 듯한 그 인물도는 어떤 역사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건 젊은 시절의 해모수 임금(서기전 260-195, 재위 서기전 238-195)이 불타는 천광검天光劍으로 설이매雪二梅 공주의 불타는 심장을 겨누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 검은 설이매를 향한 불같은 연정검戀情劍이고, 설이매의 불타는 심장은, 역시 해모수를 향한 불같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뭐, 들어보니 그럴듯하군요.”
“그 속에 내포된 은의隱意는 무어죠? 즉 그 그림이 섭선에 있는 까닭 말이에요.”
“화가이기도 했던 설이매 공주는 두 사람의 연정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겼는데요, 그림 속에 문구를 넣어 서로의 불타는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무슨 문구죠?”
“바로 이것입니다.”
燃 情 不 燒 消 戀 弗 연 정 불 소 소 연 불
정은 불태워도 살라지지 않고 그리움은 끄려 해도 꺼질 수 없네
“근데 왜 그 그림이 섭선 속에 들어가야 하나요?”
“거기엔 이런 밀의가 숨어 있습니다. 황홀공주님과 혼인하는 분은, 평생 황홀공주님의 일편단심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자신도 종신토록 황홀공주를 불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 정과 그리움의 불은 서로 간에 꺼지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제 추측이 아마 맞을 겁니다.”
“호호호! 우리 공주마마의 일편단심 충절과 애정을 받을 그 남자 분은 천하에 둘도 없는 행운아일 거예요.”
김이한의 입가에 보기 좋은 웃음이 감돌았다. 장내에서 몸에 황홀공주의 섭선을 간직하고 있던 열 한 사람의 총각들은 가슴이 뛰고 정신이 황홀해졌을 터.
“그럼 이제 마지막입니다. 삼삼오륙칠칠은 어떤 역사를 담고 있고, 그 문구가 섭선 속의 남아장부 그림 아래 새겨진 까닭이 무언지를 설명해주시면, 공자님은 다섯 번째 고개를 무난히 넘기시게 됩니다.”
“아, 그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죠. 그건 서기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서기전 4세기 초엽으로 관통되며 다시 서기 7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시간이 충분할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정해진 시각은 자정이니까요. 그 때까지 이야기가 마무리되든 되지 않든 그냥 나누었으면 합니다.”
김이한은 신비육수와 관련된 기나긴 이야기에 들어갔다. 온 청중은 그의 화술에 완전하게 빨려들고 백악산아사달 시 환화궁은 축제의 열기 속에 잠들 줄을 모른다.
그러나 청중과 열 명의 사나이들을 더욱 가슴 깊게 사로잡은 것은, 루비 운홍옥, 에머럴드 이녹옥, 사파이어 임청옥의 그 매혹적인 미모들과 절세적인 자태들이었다. 설레는 젊음의 가슴들은 황홀공주의 시녀들이라는 이 세 여인을 은밀히 관찰하면서 황홀공주는 얼마나 황홀한 여인일까를 마음껏 상상하곤 했을 것이다.
비록 삼년 전 황홀공주가 미스 백악산아사달 진이었다고 하나, 그 후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외부활동을 삼가며 궁 안에서 조용히 자기 내공內功을 연마하는데 전력했기 때문에, 그녀의 낯을 본 사람은 별로 없었고, 방송이나 신문지상으로 혹 일별一瞥한 사람도 삼년이 지나는 동안 그녀의 얼굴을 거의 망각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그녀의 백악산아사달 진 입선 사진은 무슨 일인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각 개인이 사적으로 저장하고 있던 화면 속 사진이나 프린터로 인쇄한 사진들조차 거의 대부분, 감쪽같이 없어지거나 색상이 완전히 바래 흔적조차 소멸되어 버렸다면, 아마 애독자님은 도저히 믿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서기 21세기의 과학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화궁의 밤 깊은 망각 속에서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황홀공주의 신화가. 루비 운홍옥 등 세 시녀가 서쪽 하늘의 아름다운 노을무리라면, 황홀공주는 동쪽하늘에 곧 밝아올 곱디고운 무지갯빛일까?
백악산아사달 성, 국사재현 축제의 밤은 전 세계 관광객 무리들의 어우러짐 속에 점점 깊어간다.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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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6. 5. 22. 늦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