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은 적어도 7세기 말까지는 로마에서 지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나, 크레타의 안드레아 성인의 글에 나오는 강론에서 이 축일의 기원에 대하여
알 수 있다. 공식적인 교회 기록으로는 찰츠부르크 주교대의원회의 문헌에 이 축일이
오늘 날짜로 나온다.
제1독서
<그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 미가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주님의 힘을 입고, 그 주 하느님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3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최초의 감실 조성풍 신부님
가끔 부모님보다 앞서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효라고 하신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때 이른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미사는
다른 어떤 미사보다도 안타까움과 힘든 분위기에서 봉헌됩니다.
지난 봄 한 젊은 수녀님의 장례미사에 참례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신앙적으로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즐거움인 것을 알겠지만,
젊은 딸을 앞서 보내신 어머님의 눈물 앞에서는 함께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당신의 아드님을 앞서 보내신 성모님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예리한 칼날에 찔리듯 아프셨을 그 마음을 새겨보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픔을 참아 안고 이겨내신 성모님의 마음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처럼 성모님의 온전한 봉헌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봉헌으로 외아들 예수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이야말로 ‘최초의 감실’이십니다. 어디든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달려가려고 대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 바로 그 최초의 감실이 성모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모님의 탄신을 기쁨으로 더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렁각시
이제 일흔을 바라보시는 나이에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어 기쁘게
살아가시는 어머니가 나는 자랑스럽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내셨듯이 나의 어머니 또한 예외는 아니셨다.
6·25전쟁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어머니는 열두 살이셨고 그후의
고생담은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모자란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계셨던 아버지와의 결혼과 녹록하지 않은 시집살이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온갖 궂은 일을 억척같이 해내셨으며
수입의 대부분을 자식들 뒷바라지에 쓰시고 허리 한번 펴실 여유가 없으셨던
어머니. 그 자식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좀 편안하게 사실 만하자 아버지의
발병으로 근 6년에 걸쳐 병수발을 하시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까지
아프셔서 두 분의 병간호를 혼자서 다 감당해내셨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후에도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묵묵히 해내셨던 어머니. 10년 가까이 당신의
삶을 온전히 아버지와 할머니께 헌신하시고 두 분 다 평안히 선종하신 후 어머니는
지금 자식들이 모시겠다는 청도 마다하시고 건강하니까 혼자 지내시는 것이
자유롭고 좋다고 하신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시고, 성서쓰기, <생활성서> 읽기,
레지오 마리애 활동으로 이웃의 아프신 분 찾아가 위로하기, 친구들과 여행다니기
등을 하며 지내시는 지금이 당신의 생애 중 제일 행복하시다고 한다. 요즘은
텃밭에 심은 고추, 가지, 상추, 쑥갓, 열무, 파 등을 키우시며 새벽에 밭에 가셔서
예쁘게 자란 싱싱한 푸성귀들을 뜯어 신부님 몰래 사제관 문 앞에 갔다 놓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나는 그런 어머니께
별명을 하나 지어드렸다. 행복한 우렁각시라고….
이혜숙 |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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