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리포트 pt.1
국제체스심판 자격증 획득을 위한 싱가포르 원정기
2006년 12월 18일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 싱가포르 에어라인 SQ607에 탑승하기 위하여 탑승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우선 이번 여행은 국제심판 자격증을 따는 일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보다 조금 더 큰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나뿐 아니라 이번 여행의 동행인 오정엽 선생님이나 송진우 선생님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국제심판의 숫자가 늘어나는 일은 한국 체스 커뮤니티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여행을 마친 이후에도 출발 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체스 커뮤니티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 반드시 국제심판들이 여럿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5년도 아니고 향후 십년 후도 아니고 바로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비싼 항공료와 숙식비를 지불하고도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이는 단순히 최준일이라는 개인의 실패뿐만 아니라 한국체스 커뮤니티에도 확실히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만큼 한국체스 커뮤니티에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한편으론 여러 가지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 나의 동행인 오선생님과 송선생님은 비교적 느긋한 분위기로 스튜어트 로벤[Stewart Reuben]이 쓴 ‘체스 주최자의 핸드북[The Chess Organiser's handbook]’을 훑어보고 있었다. 나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책을 꺼내들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규정들이 상당히 까다롭고 내가 미처 몰랐던 내용들도 심상찮게 나왔다. 마음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영국 심판자격증[British Arbiter]을 갖고 있고 다년간 영국에서 체스활동을 하였던 송진우 선생님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인천국제공항과 창기[Changi]싱가포르공항을 왕복하는 싱가포르 에어라인에는 많은 수의 한국인 승무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기내식도 한국인의 구미에 맞는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전반적인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외국을 나가는 나에게는 기내 서비스의 발전상이 매우 놀랍게 느껴졌다.
인천과 창기 국제공항은 항공거리로 대략 6430Km 정도 떨어져 있고 한국에서 싱가포르까지는 대략 6시간, 싱가포르에서 한국까지는 대략 5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였다. 물론 비행시간의 차이는 지구의 자전방향에 기인한다. 또한 싱가포르와 한국 사이에는 1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한국이 1시간 빠르다. 또한 위도에서도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12월의 한국과 다르게 싱가포르는 한 여름의 날씨이며 우기이다. 여러 가지로 환경이 급변하는 여행이므로 이후 싱가포르를 방문할 한국 체스인들은 이 점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창기 국제공항으로의 착륙은 여의치 않았다. 여러 번 공중에서 선회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정시간보다 수 십분 늦게 도착하였다.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비행기 출입이 공항의 용량을 초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역날씨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의 12월은 절정에 달한 우기이기 때문이고 12월 18일 당일에도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리며 천둥도 치고 있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싱가포르에 도착한 2006년이 1869년 이후 최고의 강수량을 기록한 해였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닌 듯하다.
입국수속을 마친 세 사람은 수화물을 찾아서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예정된 숙소인 호텔 로얄[Hotel Royal]로 향하였다. 택시는 일제 토요타로 짐칸이 꽤 넓었고 무엇보다 기본요금이 처음 1Km에 2.5 Sin$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240m/10cent씩 추가되는 택시 요금은 우리나라보다 저렴하였다. 한국보다 훨씬 부유한 싱가포르가 이렇게 저렴한 택시 요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참고로 2006년 12월 현재 싱가포르 달러와 한국원화의 환율은 대략 1Sin$/610~620원 정도이다.
호텔로얄까지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기억한다. 택시요금 또한 25~30 Sin$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의 찜통 같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호텔로얄의 냉방은 캐나다의 겨울을 연상시켰다. 서둘러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현지시각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다음 날부터 쉴 새 없는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싱가포르 체스연맹 측에서 호텔로얄에 간이 사무소를 설치해놓고 체스업무를 위해 들어온 투숙객들의 안내 창고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곳 간이 사무소를 통하여 강의장소와 이후 있을 토너먼트 장소, 그리고 그 곳으로 가기 위한 교통수단 등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호텔로비에서 짐을 옮기려 하고 있을 때 바로 이 간이 사무소 앞에 앉아서 주변 사람과 담소를 즐기고 있는 이그나시오스 룡[Ignatius Leong]씨를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왜소한 체구로 신장은 165정도 되어 보였고 사진으로 본 것보다 머리숱도 없고 더 늙어 보였다. 이렇게 볼 품 없는 사람이 세계체스연맹의 실세라는 사실은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을 되새기게 하기 충분하였다.
첫댓글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