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贈) 좌찬성(左贊成) 굉(竑)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
아버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증(贈) 영의정(領議政) 백령(百齡)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양씨(梁氏)이다.
나이 21세에 부부가 다죽고 아들이 없어 부모가 애석하게 여기고 조정(朝廷)에 청하여 단(端)의 아들 정원(挺垣)으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일찍 작고 하신 것이 너무 애석하여 돌에 전자로 새겨 묘앞에 세워 오래 전하도록 하였다.
군은 바탕이 온공하고 아름다우며 수려하고 밝으며 속과 겉이 옥과 같아 물질을 좋아하는것이 없었다. 글씨 연습하는 버릇이 있어 해서(楷書) 쓰는법이 날로 진취하여 많은 종형제가 글씨를 잘쓰는 이가 많았으나 모두 군을 따라 잡을수가 없다고 일렀다.
남원(南原) 윤형준(尹衡俊) 찰방(察訪)의 따님에게 장가들으니 판서(判書) 휘(諱) 돈(暾)의 손녀이다.
문중에 들어오자 시부모가 기뻐하며 <재질이 뛰어나고 성품이 얌전한 신부다> 하였다.
몇해를 살고 병이 드니 윤씨(尹氏)는 밤 낮으로 옷을 벗지 않고 약과 음식을 손수 스스로 조리하고 다리며 의복이 더러워지면 반드시 몸소 빨래하기를 10개월을 하루같이 하였다.
병이 몹시 위급하자 윤씨가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걸 알고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다가 집 사람이 구원하여 소생하였다.
이미 죽으니 음식을 끊고 제사지내는 일 외에는 신을 신고 문지방을 나오지 않았다. 장사를 마치고는 더욱 수척하여 손수 두통의 봉서(封書)를 써서 상자에 넣어두고 시어머니와 결별(訣別)하고 마침내 죽었다.
글가운데에 대를 이을 일을 말하여 말이 몹시 뛰어나게 슬프니 듣는 자가 애통하여 옷깃을 적시지 않은 이가 없었다.
아/ 그대는 덕을 심은 가정에서 태어나 이미 재주가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부인도 또 뜻을 따라 열행을 이루어 부모가 크게 슬퍼하였으니 어찌 천도가 아니겠느냐?
단의 아들이 풍족하고 복이 넘쳐 그대에게 뒤를 잇게 하고 능히 어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으니 또한 효자와 효부를 천양 구천에서 위안 할 만하니 어찌 천도가 아니겠는가?
명에 이르기를,
재주는 어찌하여 어질고 행실은 어찌하여 맑으며 수는 어찌하여 넉넉하지 못하였는가?
내조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어 목숨을 덜어 그대를 따랐으니 그 향기가 열열하였네.
유택의 좋은 명당에 무덤돌을 깎았으니 슬프다. 이에 구슬을 묻는도다.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이 찬(撰)함
출처 : 동복오씨 대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