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뻬레그리노스에게 일임해야 할 까미노?
벙크 11개에 22명을 수용하는 자그마한 알베르게의 깊은 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릴 뿐 쥐 죽은 듯 조용한 침실을 빠져나갔다.
안락한 잠자리지만 잠 못 이루기는 여느 날 밤과 다를 것 없기 때문이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의 총총한 별 무리가 어찌나 깨끗하고 맑은지.
공해 없는 이베리아 반도의 밤이 늘 그러하지만 비가 많이 내린 뒤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연거푸 며칠씩 비를 맞는 우기에도 걸었지만 초유의 장시간에 걸친 폭우 속에서 시각장애인
처럼 더듬거리며 걸었다.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밤.
이 때야 말로 오카리나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고 싶었지만 한 밤인 것이 유감이었다.
비에 젖었기 때문에 널려 놓은 미니 사무실(recepcion)에서 휴대품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본
벽의 단어가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Pousada de Peregrinos'
알베르게 데 뻬레그리노스(Albergue de Peregrinos/순례자들의 집)의 다른 표현인 듯 한데
'Pousada'가 눈엣가시처럼 걸린 것이다.
폰 미니사전을 뒤져보았으나 스페인어에는 'Posada'가 있을 뿐이며 'Pousada'는 같은 뜻의
뽀르뚜게스(Portugues)다.
뽀르뚜갈어를 사용하고 있을 리 없고, 혹 아스뚜리아스어?
(아직껏 풀지 못한 '아우가'(auga)도 있는데 새벽에 떠났기 때문에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하도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것(단어 하나)이 시비거리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한다 해도 걷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감당하지 못할 시련은 아니잖은가.
다만, 매일 밤 잠을 자지 못하는데도 일상이 정상적인 것이 불가사의일 뿐.
그래서, 이 불가사의를 감당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 분의 지극한 관심으로 돌리고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상쾌한 기분으로 일과를 시작한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시야가 전무했던 어제가 오래 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 아침.
6시쯤, 알베르게를 나와 이름은 거창하나 소로인 아스뚜리아스 대로(Av. Asturias)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마따데로 개울(Arroyo de Matadero)을 건너 곧 FR-1길에 들어섰다.
갈리씨아 대로(Av. Galicia)로 변한 FR-1길로 엘 프랑꼬 시청(Ayuntamiento de El Franco),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산 미겔 교구교회(Parroquia de San Miguel)와 관광 사무소(Ofi
cina de Turismo)가 함께 있는 아스 낀따스 복합 문화센터(Complejo Cultural As Quintas)
등의 밀집지역인 다운타운을 통과했다.
제재소(Hijos de Vidal Bedia) 옆을 지나고 풀숲 무성한 길 따라 개울(Arroyo Salgueiros)을
건넌 후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도로에 다시 올라서는 등 이른 아침부터 번다스러웠다.
그러나, 노르떼 길이 거의 직선인 N-634국도로를 타지 않고 마치 희롱이라도 하는 듯 국도를
좌우로 들락거리고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단축길에 다름아닌 국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옛길 추구에 올인하는 것이 뻬레그리노의 본분인
것도 숙지하고 있기에 이른 아침부터 숨바꼭질하듯 걸으면서도 상쾌한 기분일 수 있었다.
어제의 경우는 불시의 악천후로 인해 분출된 일시적, 내적 갈등이었을 뿐이다.
라 까리다드를 뒤로 하고 발데빠레스(Valdepares/El Franco의 교구마을)의 마을 아 론다(A
Ronda)의 들머리와 역시 발데빠레스의 마을인 산 뻴라요(San Pelayo)를 지났다.
노르떼 길이 산 뻴라요 예배당(Ermita de San Pelayo) 앞에서 국도(N-634)와 평행하며 이어
지는 다음 마을은 발데빠레스.
주민수가 244명(2013년 현재)으로 교구 마을과 동명의 중심마을이다.
까미노 마커는 산 바르똘로메 교구 교회(Iglesia Parroquial de San Bartolome), 발데빠레스
교구 공동묘지(Cementerio parroquial de Valdepares)에서 국도를 건너 엘 프랑꼬 마을로
직진하는 소로를 노르떼 길이라고 안내한다.
평탄하고 광대한 농지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데 국도와의 위치를 달리 할 뿐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또 있다.
까미노 마커의 안내가 없으면 어떠냐, 같은 방향이면 되지.
오늘의 까미노에는 이런 경우가 자주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살라베에서 살라베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으니
기초지자체 이름과 동일하며 교구마을 발데빠레스에 속해 있는 엘 프랑꼬를 지나고 뽀르씨아
강을 건널 때는 피게라스로 가는 노르떼 길을 양자 택일해야 한다.
전자와 후자에 오피씨알(oficial/공식적)과 바리안떼(variante/변형)라는 다른 전치사를 붙여
구분할 뿐인 2개의 길 중에서 선택한다.
"뽀르씨아~똘~바레스~피게라스"의 전자와 "뽀르시아~깜뽀스 데 살라베~따삐아 데 까사리
에고~피게라스"의 후자 중.(전자는 바레스에서 한 번 더 택일해야 하지만)
후자가 후발인 것은 분명하나 후발이므로 더 매력적이라는 논리도 성립된다.
아스뚜리아스의 마지막 해안로니까.
실제로 중세 이후에 절대 다수의 뻬레그리노스가 이 길을 택했단다.
진작에 후자를 택한 나는 2개의 기초지자체 엘 프랑꼬와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경계가 되는
뽀르씨아 다리를 건넌 후 주저 없이 우측의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 길로 들어섰다.
넓지 않은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뽀르시아 아파트 단지까지 완만하게 올라갔다.
올라선 후의 광대하고 검붉은 옥토와 그 뒤로 하늘과 맞닿은 끝 없이 아득한 바다.
굼뜨게 걸어가는 제트기들의 하얀 발자국이 길게 생겼다 사라지며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으나
솜털 구름 몇 점이 떠있을 뿐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
갈 길 바쁜 늙은 나그네의 걸음을 자꾸 더디게 하는데 간지럼을 살짝 느낄만 하게 비단 바람만
이따금 찾아오고 있는 아침나절의 들길.
일진광풍 후의 고요한 평화?
전일의 오전과 극과 극으로 대조되는 분위기에 심취되었는가.
살라베에서 살라베를 묻는 어이없이 싱거운 코미디언(comedian)이 되었으니.
아끼(aqui/여기요)
백수를 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외모와 달리 89세인 노옹의 걸음을 보살피고 있는 70세 부인의
대답을 잘못 알아들은 내가 다시 물었다.
꽌또스 킬로메뜨로스 데 아끼?(Cuántos kilómetros de aqui/여기에서 몇 Km 되냐구요)
어디냐고 물을 때는 여기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aqui'(여기)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귀찮은 듯 신경질적이 된 노녀가 역으로 물어왔다.
께-스 살라베?(Que es salave/살라베가 뭡니까)
살라베가 지명이 아니고 딴 무엇이기라도 하느냐는 질문은 빈정대는 말임이 분명했다.
더 이상 말을 나눠서는 안되겠다 싶은 생각일 때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중년녀.
까미노와 뻬레그리노스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듯 하며 신중한 이미지의 여인이다.
데 돈데 아 돈데(de donde a donde/from where to where)
즉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왔다.
아침에 라 까리다드에서 시작했는데 리바데오 강을 건너 갈리씨아 주로 넘어가려 한다는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남은 갈 길을 자상하게 설명했다.(내 목에 걸려있는 지도를 펼쳐놓고)
그런 후에 그녀도 궁금했는지 내 나이를 물었다.
'오첸따 이 우노'(81)라는 내 말에 놀란 사람은 그녀 보다 신경질적이던 노녀.
믿어지지 않는다며 미안한 듯 금세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이 해프닝에는 도로 관리 당국의 책임도 있다.
무명의 지방도로에도 마을 들머리 도로변에는 마을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 도로공사를
하느라 표지판이 철거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
옥신각신한 꼴이 되어버린 마을(Campos y Salave)의 교회(iglesia de Santa María de Sa
lave)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으니까..
기초지자체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4개 교구 마을 중 하나인 깜뽀스 데 살라베의 교구교회로
19c에 세웠단다.
긴 직선으로 뻗은 들길은 지겹도록 드나들던 국도(N-634)와 접근하는 듯 하나 만나는 일 전혀
없이 따삐아 데 까사리예고 한하고 외로운(?) 길이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들렸을 곳이 도중에 있다.
우측, 바다쪽으로 자리한 너른 '자연보호구역'인 '라구나스 데 살라베(Lagunas De Salave)'.
홍보물에서 보았지만 경이로운 자연인데.
가는 방향의 우측 길가의 건물.
오뗄(hotel)인데 왜 할아버지의 집(La Casa del Abuelo)이라는 이름일까.
늙은이가 주인인가 늙은이를 우대하는가.
택시 정류장도 있지만 건물에도 정류장에도 인기척이나 차량의 흔적이 없다.
어떤 사정으로 쎄라도(cerrado/휴업)?
이름 때문에 멀고 먼 남의 나라 숙박업소 형편을 궁금해 하는 극동의 늙은 나그네.
나는 트러블메이커?
고소를 머금고 나홀로 길을 재촉하는데 집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다운타운이 다가오고 있는 듯.
얼마쯤 지나 무명의 농로는 해변으로 다가가며 '산 마르띤 길'(C./San Martin) 이름을 갖는다.
해변에는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도 자리하고 있다.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세요(sello/stamp)만 받고 나왔다.
공립(Municipal)이며 30베드에 도나띠보(donativo/기부제)라는데.
조금 더 진행하다가 또 문제가 발생했다.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본의 아니게 트러블메이커(troublemaker)가 되어버린 것.
다운타운 들머리 해변의 보건소(Centro Salud Tapia de Casariego) 앞을 지날 때였다.
치료받으러 왔는지 보건소를 나오는 한 영감에게 물었다.
피게라스(Figueras)에서 리바데오(Ribadeo)로 건너갈 수 있느냐고.
다리(puente/bridge)가 놓여 있느냐는 뜻이다.
내게 있는 안내 책자는 구본(舊本)이기 때문인지 아스뚜리아스와 갈리씨아, 양 지방을 가르는
리바데오 강 하구에 다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도선을 하거나 아주 멀리 도는 길을 택해야 한다.
깜뽀스 이 살라베에서 브룰(Brul)~똘(Tol)~베가데오(Vegadeo/A Veiga)~아브레스(Abres),
또는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바레스(Barres)~까스뜨로뽈~베가데오에서 위 루트와 합류하여
아브레스~로우렌사에서 리바데오 길과 합류하는 먼 우회길을 가야 하니까.
길 걷는 데에만 올인하는 순례자에게 원근이 무슨 의미 있겠는가 마는 순례자라 해서 수구(守
舊)만을 고집해야 하는가.
나는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없으면 전혀 불능한 일 외에는 현장에서 임기응변한다.
그래서 까미노 정보도 미리 확보하지 않는다.
미리 대처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이 10km 미만으로 다가오는 지점에서 물어본 것이다.
다리가 있단다(아이 뿌엔떼/hay puente)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확인하는 버릇 때문에 도로를 청소하는 중년남에게 다시 물었다.
당혹스럽게도 그의 답은 상반되었다
없다고(노 아이/no hay)
인터벌 (interval)을 두지 않고 물어본 것이 잘못이었는가.
귀가 밝은지 중년남의 말을 듣고 버럭 소리를 지른 영감.
그래서 둘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알지 못하면 모른다고 대답해야지 왜 틀린 답을 하느냐고 나무라고 있지만, 아마도 나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리라.
자기의 답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석에서 딴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것이려니. . . .
에스빠뇰(español)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다.
이따금 시비 현장을 목도하는데 참으로 하찮은 일로 목청을 높이기 일쑤다.
이 경우도, 설영 내가 자기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해도 자기의 연배를 한참
벗어난 외국 영감인데 그렇게 맞장구쳐야 하는가.
아무튼,사람들을 끌어모은 이 해프닝이 나로 인해 발생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민망스럽기는
했으나 이 와중에도 그 청소 중년남에 대한 연민이 일었다.
아무리 근년에 나들이를 하지 못했기로서니 상거가 10km도 되지 않는 강에 긴 다리가 건설된
것을 모르고 있다니.
노동자 복장으로 공공 일에 투입될 만하다면 모자란 면이 있다 해도 시청(視聽)은 가능하련만
이렇게도 깜깜하다니.
이런 경우(시비)에 상책은 없다.
끼어 드는 것은 하책이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중책은 되겠다 싶어서 살며시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산 마르띤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가까운 곳에 관광안내소(Oficina de Información
Turística de Tapia de Casariego)가 있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11시 30분에 문을 열겠다는 메모지가 붙어있는 안내소.
사무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잠시동안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몇이 허탕치고 갔다.
아직 11시도 되기 전이라 그냥 갈까 했으나 시비거리를 제공한 미안함 탓일까.
왠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어졌다.
노느니 염불한다?
기다리는 동안에 시청과 19c말에 봉헌했다는 산 에스떼반 교구교회(Parroquia de San Este
ban de Tapia de Casariego)를 비롯해 몇 곳을 살펴보았다.
기초지자체와 그 청사 소재지 마을이 동명인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Tapia de Casariego)
2천명 이상이 거주하는 큰 마을이다.
수많은 해변과 소규모 만과 곶串/岬), 항구가 있는 그림같은 해안마을.
관광 명소라 깨끗한가 청결해서 명소가 되었는가.
관광안내소 직원이 예고한 대로 왔다.
작고 가냘프나 차분한 이미지의 중년 여인이다.
청소녀와 나누는 대화 중에 이하(hija/딸)와 에스꾸엘라(escuela/초등학교)라는 단어가 등장
하는 것으로 미루어 어떤 일로 인해 딸의 학교에 다녀오느라 부득이 근무시간을 활용한 듯.
조금 전에 시비거리를 만들고 온 리바데오 강의 다리의 유무는 '유'로 확인되었고, 피게라스로
가는 해안로도 자상하게 안내했다.
기다리게 한 반칙의 미안함 때문인지 친절하고 성의있게.
광활한 들판에서도 외롭지 않게 한 브라질레냐와 따삐아 전용 까미노마커
노르떼 길은 산 마르띤 길에서 서쪽 끝 로스 깜뽀스 해변(Playa de Los Campos)을 지난다.
그러므로 갈리씨아 대로(Av. de Galicia)에 연결만 되면 어느 길을 택해도 무방하다.
관광안내소를 나온 나는 해변길을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려고 정북의 따삐아 항구로 직행했다.
아주 긴 해안은 아니지만 노르떼 길에서는 굴지의 아름다운 해안에 들 것이다.
그만그만한 해변이 띄엄듸엄 있어서 해변마다 정차중인 서핑나들이 밴(van)들이 있다.
아침나절과 달리 바람이 제법 불어서 나가고 들어오는 서핑 마니아들의 표정이 밝은 것 같 다.
물을 상대로 하는 모든 운동, 해양스포츠의 기본은 수영이다.
수영을 못하면 다른 아무 운동도 할 수 없다.
한데, 나는 물에서는 맥주병이다.
그래서 내게 서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태평양 해안을 도는 일본 시코쿠헨로에서도, 뽀르뚜길 해안에서도, 여기 노르떼 해안길에서도
단지 바라볼 뿐 전혀 내키지 않은 것이 물에서 하는 레저 스포츠다.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를 벗어난 지점의 갈리씨아 대로 우측 건물의 부수 벽에 'SANTIAGO DE
COMPOSTELA 229km'라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어제 낮, 우아녀의 마을(Villapedre)에서 229km였는데 그 새에 전혀 걷지 않았단 말인가.
친절 또는 호의는 고마우나 바르지 못한 안내는 하지 않으니만 못한데.
따삐아 해변 남쪽 끝에는 서프학교(Escuela de surf/Camino Surfhouse Asturias)가 있다.
서프 마니아들에게는 낙원이겠지만 나 같은 뻬레그리노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집이다.
노르떼 길은 갈리씨아 대로를 따라서 앙길레이로 강(Rio Anguileiro)을 건넌후 자그마한 오뗄
(Hotel la Xungueira) 앞에서 갈리씨아 대로와 헤어진다.
이어서 축구장을 돌아가는 우측의 지방도를 따라서 로스 깜뽀스 해변공원 입구로 간다.
서프하우스에서 축구장을 왼쪽에 두고 강(다리)을 건너면 상당히 단축된다.
예전에는 이 길(다리)이 없었기 때문에 원거리로 돌아가야 했겠지만.
이후의 노르떼 길은 다시 들길이다.
오전보다 엄청 넓고 더 풍요로운 들판이다.
마을은 커녕 외딴 농가나 오레오(horreo/곡물창고)도 없고 권태를 느낄 만큼 긴 직선 길이다.
십자 또는 'T'자 교차로가 있으나 다행히도 꼰차(concha/가리비)와 플레차(flecha/화살표)로
된 까미노 마커가 꾸준히 안내를 하고 있으므로 헤맬 염려는 없다.
따삐아 해안에서 완전히 멀어진 이름 모를 들길에서 낯익은 뻬레그리나(Peregrina)를 만났다.
며칠 전(5월29일) 무로스의 알베르게(Casa Carmina)에 함께 묵었던 브라질레냐(brasileña/
Rio de Janeiro)로 현재 바르쎌로나에 거주한다는 플로레스(Ivelise Flores)다.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 관계라는데 한 밤을 동숙했으며 이렇게 허허한
들판에서 재회했으니 우리의 이 만남은 동아줄 같은 인연에 따른 필연일까.
환갑 지난(2015년 기준/facebook에 1954년생) 여인인데 홀로, 마치 근거리 나들이 가듯 아주
작은 백팩 하나 메고 있다.
20년의 나이와 백팩 무게의 갭(gap) 때문에 그녀를 앞세웠는데 이 여인은 한 손에 든 비닐팩
에서 한 움큼의 체리(cherry)를 꺼내어 딴 봉지에 담아 내게 주고 갔다.
(갈리씨아 땅인 강 건너편 리바데오에서 오늘을 마감할 요량인 나와 달리 좀 더 가겠다던 그녀.
실제로는 정 반대로 뒤바뀌었고 노르떼 길에 이어서 뽀루투, 세비야, 잉글레스, 쁘리미띠보 등
까미노스에 대한 5개월의 대장장을 알고 있는 그녀는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응원을 보내왔다)
왼쪽의 N-634 국도와 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나란히 가는 노르떼 길은 깔람브레(Calambre)
마을을 흐르는 페르나다 개울(Arroyo de la Fernada)을 건넌다.
깔람브레는 기초지자체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교구마을 세란떼스(Serantes)에 속한 마을.
한참 후, 꼬르나요(Cornallo/Serante에 속한 마을)를 통과하는 똘 강(Rio de Tol)을 건너가고
라 뻬넬라(La Penela/Serantes마을)에서 또 개울 (Arroyo de Peligos)을 건넌다.
농로에 불과한 길은 TC-3 지방도에 편입되며 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현상은 마을 안내판에 2개의 이름(스페인어와 갈리씨아어)이 등장한다는 것.
비록, 갈리씨아 지방이 지근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은 아스뚜리아스 지방인데도 갈리씨아
지방의 방식(바스끄 지방도 그러하지만)을 벌써 쓰고 있다니.
동일 조건에 있는, 바스끄 지방과 접경인 깐따브리아 지방은 그렇지 않은데 왜?
TC-3지방도를 잠시 따르던 노르떼 길은 비야밀(Villamil/세란떼스의마을)을 지난 후 지방도를
떠나 산 로렌소 예배당(Ermita de San Lorenzo-Santa Gadea) 앞까지 간다.
서쪽의 리바데오 강 하구(Ria de Ribadeo)는 약간 거리감을 느끼게 하나 발 아래로 다가오는
뻬나론다 해변(Playa de Penarronda).
아스뚜리아스 주의 두 기초지자체인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와 까스뜨로뽈(Castropol) 사이에
있으며 2002년10월 3일에 천연기념물(Monumento Natural)로 지정되었다는 해변이다.
길이 600m, 넓이(중간) 315m의 이 명품 해변의 마을은 까스뜨로뽈의 9개 교구마을 중 하나인
바레스(Barres)다.
그러므로,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와는 작별하는 해변이며 곧(1시간쯤?) 리바데오 강을 건너게
됨으로서 아스뚜리아스 지방과의 완전한 아디오스도 하게 된다.
따삐아 다운타운 이후 산 로렌소 예배당 앞까지는 한결같은 까미노 마커의 안내로 무사했다.
그러나, 예배당 앞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가 뻬냐론다 개울(Arroyo de Peñarronda)을 건넌
후 까스뜨로뽈 지역에는 고맙고 사랑스러웠던 까미노 마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지만 그 까닭을 이해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쪽 루트에 대한 관심과 무심의 차이.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 지역에서 안내를 충실히 하는 까미노 마커가 관계자들의 관심과 애정의
표시라면 어떤 형태의 안내판도 없다는 것은 지역 관계자들의 무심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어쩌다 눈에 뜨이는 황당한 사제(私製/뻬레그리노스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마크는 무심하고
비협조적인 까스뜨로뽈 지역관계자들에 대한 뻬레그리노스의 비판을 의미하고.
쁘리미띠보 길이 걱정되지만 아디오스 아스뚜리아스!, 올라 갈리씨아!
같은 주(아스뚜리아스) 안의 지자체 간에도 배턴 터치l(baton touch)가 원활하지 못하다니?
아스뚜리아스 지방에 대해서는 깐따브리꼬 지방을 떠나 진입할 때 부터 불만스러웠다.
다음에 걷게 될 쁘리미띠보 길이 걱정될 정도로.
결국, 갈리씨아 지방으로 넘어가기 전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커녕 맥이 빠지게 하다니.
이처럼 비협조적이며 무심한 지역이라면 굳이 루트에 충실하려고 애쓸 것도 없지 않은가.
어차피, 순례길(pigrimge)이란 하나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니까.
동서로 놓인, 건너가야 하는 다리를 바라보며, 서진하는 길이면 아무 길이나 걷는 중이었다.
한팀인 동 유럽 어느 나라(국적을 말했으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의 두 청년을 만났다.
이 루트에서는 플로레스에 이어 2번째 만난 순례자들이다.
그들도 뻬나론다 해변을 돌아 나와 아무리 찾아 헤매도 까미노 마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
처럼 리바데오 강 다리를 향해 무작정 가는 중이란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던가.
이왕이면 해안쪽 길이 좋을 듯 해서 리바데오 강 하구(Ensenada de Arnao)로 갔는데 어이
없게도 지나치게 많이 걸었다.
공원(Área recreativa Campo de Arnao)에서 공항(Aerodromo de Ultraligeros) 외곽 3면을
다 돌아서 다리에서 가까운 아르나오 해변(Playa de Arnao)으로 갔으니까.
입구에서는 아주 작은 규모로 보이지만 꽤 넓고 안팎에 아무 편의시설도 없기 때무인지 한가
롭고 조용한 해변이다.
산또스 교(Puente de los Santos)가 지호지간으로 다가왔다.
1983~87년에 리바데오 강(Ria de Ribadeo o del Eo) 위에 신축하였으며 2007~08년에 확장
했다는 다리다.
확장이란 인도(교)의 증축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침나절에 만난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중년 청소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
길이 612m의 다리를 건너서 오늘을 마감할 예정인데 아직 해가 중천에 있으므로 다리 옆 공원
(Area recreativa del Puente de los Santos)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플로레스를 또 만났다.
낮에 말한 대로 더 가겠다는 그녀를 앞에 보내고 조금 더 머물렀다가 다리에 올라섰다.
드디어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지방 갈리씨아 땽에 진입했다.
갈리시아의 동쪽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아스뚜리아스 지방(Comunidad Autonoma /Autonomous Community)의 아스뚜리아스 주
(Provincia/Province)에서 갈리씨아 지방의 루고 주(Lugo)로,
기초지자체(Municipio/Municipality) 까스뜨로뽈에서 리바데오(Ribadeo)로 이동한 것.
아디오스(Adios) 아스뚜리아스!, 올라(Hola) 갈리씨아!
아스뚜리아스가 최초의 까미노인 쁘리미띠보 길의 발원지(Oviedo)를 자부한다면 갈리씨아는
모든 까미노의 성지(최종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ostela)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공립 알베르게를 확충하고 있으며 지방 내의 공립 알베르게는
입실료를 통일하고(2015년 현재는 6€) 있다.
타 지방에서 볼 수 없는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메뉴도 자주 눈에 띈다(2011년의 체험).
노르떼 길은 강 건너서 좌측으로 가지만 알베르게의 안내 표지는 우측을 향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리바데오의 북단을 타고 개설되었으며 알베르게는 마을 북단에서도 더 떨어진 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에스뜨라다 도 빠로(Estrada do Faro) 길을 따라 몇십 걸음 가다가 돌아섰다.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와 그 주변에 가게가 없겠기 때문이며 다운타운을 살펴볼
요량으로 그랬다.
같은 길을 역(逆)으로(남으로) 조금 내려가서 강가의 산 미겔 예배당(Ermita de San Miguel)
이후 시내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한 음식점(Bar-Restaurente) 앞을 지나다가 출입구 옆에 걸린 칠판의 큰 글씨가 돋보였다.
'Peregrinos Menu 8€'
빨려가듯 안으로 들어간 내게 나온 8€의 '뻬레그리노정식'은 성찬(盛饌)이었다.
바게뜨 한 토막이 오늘 먹은 전부라 식탐이 날 수 밖에 없다 해도 다 먹어칠 수 없는 양의 돼지
갈비(노르떼 길에서 내가 가장 즐겨 먹는데)와 반병의 비노가 기본 메뉴인데도 더 주겠단다.
(디카에 담았을 뿐 기억나지 않는 옥호, 아쉽다)
갈리씨아 입성 환영만찬(?) 치고는 푸짐했다.
남은 일은 시내를 돌아본 후 알베르게로 가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7km 전방인 빌렐라로 갔다.
식사 중에 계획을 바꿨는데, 이 변경에는 빌렐라 길을 상세히 안내하며 무난하게 갈 수 있다는
음식점 주인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포식으로 넘치는 듯한 체력과 시간의 활용이었을 뿐이지만 리바데오 측에는 배신?
돌연 이유가 하나 늘었다.
4년전에 터득한 지혜(?)로, 위치가 애매하고 불편한 시골 알베르게가 한가롭고 조용하다는 것.
가까운 에스빠냐 광장(Plaza de España)에서 산따 마리아 도 깜포 교구 교회(Iglesia Parro
quial de Sta. María do Campo)에 들렀다.
프란씨스꼬 수도원에 속했던 중세의 교회란다.
눈요기를 끝내고 산 프란씨스꼬 길(Rua San Francisco) 따라 데뿌따씨온 길(Rúa da Depu
tacion)에 들고, 이 길을 통해서 리바데오를 완전히 떠났다.
오후 4시가 넘었는데, 7km를 소화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빠듯하겠기 때문이었다.
고대, 철기시대부터 거주했다는 아주 오래된 마을이며 재건을 거듭하고 왕의 까르따 뿌에블라
(carta puebla)를 받아 부흥했다는 마을의 궁금한 것들을 풀지 못한 아쉬움을 간직한채.
타향살이 하다가 고향땅에 들어선 느낌인 갈리씨아.
데뿌따시온 길은 잠시 LU-P-5207((Rua San Lazaro)이 되었다가 스포츠단지Campo de Fut
bol Municipal Pepe Barrera) 앞에서 왼쪽 삔또르 피에로스 길(Rua Pintor Fierres)이 된다.
리바데오 본(本)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후 N-642국도와 철길을 건너 오베(Ove)를 지났다.
리바데오에 속해 있으며 27개의 분산된 마을의 총 주민이 387명(2014년현재)이라는 교구마을.
인적이 끊긴 마을도 있으며 최소 1명~최대 71명의 마을,
이 마을(오베)의 구심점은 단연, 17c에 봉헌된(훗날 적잖이개축했다지만) 교회(Iglesia Parro
quial de San Juan (Ove/San Xoan)란다.
예 까지도 가벼운 오르내림이 있었지만 오베~ 빌렐라 길은 산(Monte de Santa Cruz) 하나를
완전히 넘어가는, 약간 힘드는 길인데 포식 상태라 조금 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모처럼 전망 좋은 길이라 한결 수월했다.
정상(Mirador de Santa Cruz)에는 산따 끄루스예배당(Ermita de Santa Cruz)과 갈리시아의
대표적인 민속악기(bagpipe) 주자(gaiteiros)를 기리는 기념비(monumento)도 있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은 빌렐라 한하고 편하다.
리바데오(downtown)를 떠날 때부터 자주 있는 갈림길 마다 까미노 마커(가리비/concha)와
갈리씨아 특유의 4각 기둥)의 안내를 받으므로 맘 놓고 걸을 수 있고.
(아스뚜리아스 길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가리비의 지시방향이 아스뚜리아스와 정 반대다.
한동안은 혼란스러운데 별난 쪽은 갈리씨아가 아니라 아스뚜리아다.)
까르멘 예배당(Capilla de Carmen)이 빌렐라 진입을 환영하는 듯 초입에 서있다.
예배당 마당 벤치에 앉아서 정담(情談?)을 나누고 있다가 반가운 듯 인사를 하며 알베르게를
가리키는 젊은 한 쌍
본 적이 있는 듯한 그들이 나도 반가웠으며 얼마 후에 한 집에 묵게 되었다.
어렵잖게 빌렐라의 아우베르게 무니씨빨레(Auberge Municipale/Albergue Municipal/공립
알베르게의 갈리씨아語)에 당도했다.
외딴 곳에 자리한 2층 건물에 2층 벙커로 24명을 수용하는 시설인데 입실 꼴찌인 내가 7번째
라니 2층은 통째로 남은 상태.
대개 리바데오에서 끊는데다 어중간한 위치가 이유?
알베르게 초입에 음식점(Restaurante A Pena-Vilela)이 있으나 휴업 중이다.
무슨 사연인지 마을에서 유일한(?) 식당이 문을 닫았으니, 순례자들에게 소위 바가지 씌우는
것으로 악명 높다는 까사 도냐노(Casa Doñano)로 바가지 쓰러 가야 하나.
리마데오에서 포식했으며 도중에 빵 배달차에서 산 바게트(0.85€)가 있는 내게는 무관하지만.
주민이 90명(2014년 현재)인 빌렐라는 지자체 리바데오의 12개 교구마을 중 하나인 꼬벨라스
(San Vicente de Covelas)의 19개 자연마을 중 하나다.
젊은 여인(Hospitalera)이 다녀갔다.
입실료 받고 세요 찍어주는 2가지 일을 했는데 2가지 의문점도 남겨 놓았다.
갈리씨아가 공립 알베르게의 입실료를 6€로 통일했다는데 왜 5€만 받았을까.
세요(sello/stamp)는 각 알베르게의 심벌(symbol)에 다름아닌데 왜 아직도 리바데오의 것을
사용하고 있을까.
성수기에 리바데오의 알베르게가 만원이면 7km쯤 더 가서 머물 수 있다.
그 밖에는, 체력의 한계 또는 의외의 일로 인해 중도에 머무는 경우 와에는 뻬레그리노 맞기가
용이하지 않겠다.
까미노에서 보기가 어렵지 않은 아반도나도(abandonado/폐가) 마을 처럼 될 수도 있겠다.
3년 전(2012년)에 오픈했는데도 아직껏 세요를 마련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 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 몇 개의 길(Camino)을 걸으며 숱한 밤을 보낸 갈리씨아 땅.
6개월 대장정의 첫 밤을 보내며 갖게 된 떨떠름한 생각 떨쳐버리려고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저리도 티 한점 없이 맑고 둥근 달(음력 보름이었나?)이 높고도 높이 떠있고 총총한 별
무리가 하늘을 덮고 있을까.
내 청소년 시절에는 우리나라의 밤하늘도 늘 저랬는데. .. .
조금 못살아도, 다소 불편해도 저런 밤하늘 아래에서 잠들고 싶다.
자기 세요 없는 알베르게에 대한 연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훗날(쁘리미띠보길)이야 어떠하던 지겨운 감이 들어가기 시작한 아스뚜리아스지방을 탈 없이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치 타향살이에서 고향땅에 들어선 느낌으로 바뀌었다.
전에, 오래도록 스페인의 길을 걸은 후 뽀르뚜갈 길을 걷다가 국경을 넘어 스페인 땅을 밟았을
때 마치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로 돌아온 느낌이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계 속>
<아래 사진들은 내가 걸은 노르떼 길을 구글지도를 어렵사리 추적, 조금씩 편집한 것들이며
읽는데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올렸다.
내가 찍은 사진들과는 계절적으로 또는 사실감의 차이가 불가피하지만(때로는 혼 빠진 몸에
비유될까), 그럼에도 걸으면서 찍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도둑을 원망한다고 해서 돌아올 리 없는 사진들.>
라 까리다드 지역의 까미노마커 십자가(위)와
산 미겔 교구교회(아래)에서 비달 베디아 목재소 ~ 발데빠레스~엘 프랑꼬 마을까지(아래)
이 구간은 까미노라는 이름으로 압박하지 말고 뻬레그리노스로 하여금 자기 의지대로 가도록 자유구역으로
개방하면 어떨까.
뽀르씨아 강 다리를 건넌 후(위)
지자체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광대한 들판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꼰차(가리비)와 노란 화살표를 묶어서 독자적으로
만든 특유의 까미노마커(navy blue 바탕에 gold concha와 arrow)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아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드넓은 들판에서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필요한 곳에는 꼭 그가 있으니까.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의 알베베르게(위)가 소박한 해안별장 같은 느낌이다.
보건소(아래 1)와 관광안내소(아래 2)
따삐아 데 까사리에고 시청(위 1)과 산 에스떼반 교구교회(위 2)
따삐아 해변(아래)
어제 비가 그친 후 '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A Santiago de Compostela) 229km' 라는 비야뻬드레에서
여기까지 걸었는데도 산띠아고가 여전히 229km 남았다니?(위)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에 제자리 걸음만 했단 말인가.
하지 않으니만 못한 틀린 안내(위)
따삐야 데 까사리에고의 다운타운을 벗어나 앙길레이로 강을 건너면 축구장을 지나 산로렌소 예배당 앞까지
다시 해변의 광활한 들판이다(아래)
산 로렌소 예배당 이후에는 리바데오 강 다리 한하고 따삐야의 까미노마커를 볼 수 없다(위/아래)
같은 아스뚜리아스 지방인데도 따삐야와 다른 지자체의 까미노에 대한 부족한 열의를 읽게 한다.
리바데오 시청(위 1,2)과
리바데오 교구교회(Iglesia Parroquial de Sta. María do Campo/아래 1,2)
리바데오 다운타운을 벗어나 4각 가리비 기둥의 안내를 따르면(위)
정상(Mirador de Santa Cruz)에는 산따 끄루스예배당(Ermita de Santa Cruz)과 갈리시아의
대표적인 민속악기(bagpipe) 주자(gaiteiros)를 기리는 기념비(monumento)가 있다(아래)
완만한 내리막 길이 끝나면(위)
까르멘 예배당을 지나 식당(Restaurante A Pena)에 이어 알베르게(Auberge Municipale/Albergue Municipal)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