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순례여행(29) - 1월 18일: 보길도의 일출의 감동을 안고 완도로
새벽에 일어나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류영구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짐을 꾸리고 예송리로
갔습니다. 부지런한 어부들이 아침 일찍부터 바위위에서 다시마를 뜯고 계셨습니다. 열
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시대의 어른들은 저렇게 살아오셨
습니다. 새벽부터 농토에서 바닷가에서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하여
이만큼 우리가 살게 되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바다는 늘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줍니다. 늘 내륙지방에서 살았던 내가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부산으로 갔을 때에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을 때 감격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지요. 바다는 낭만이고
바다는 힘이고 바다는 창조이고 바다는 생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녹산사랑의 교회를 섬기면서 거의 10년 가까이에 바닷가에 살다가 1년 전에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이사 온 필자에게 여전히 바다는 영감 그 자체로 남아 있습니다.
예송리를 가는 길은 간단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바닷가와 산길을 통해서 산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지만 꽤 먼 길이었고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험하기도 했고
오르막길은 힘들기도 했습니다. 산에는 소나무들이 잘 우거져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지팡이가 있어서 류목사님과 나는 지팡이를 하나씩 잡고서 등반을 했습니다. 이윽고
평평한 길에 도달했고 조금 더 가니까 전망대가 나타났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올해 초 안면도 영목항에서 해맞이를 기다리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일출을 기다렸는데 일기관계로 결국 일출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가장 남쪽에
있는 보길도 예송리 해안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었으니까 행운입니다.
갑자가 붉은 태양이 뚜렷한 모습을 지니고 떠올랐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주변을 붉게 불들이다가 떠오른 태양, 우리들의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창조의
신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대지를 밝게 해줍니다. 태양은 우리
인간들에게 빛과 열기를 가져다줍니다. 저 태앙은 날이면 날마다 떠올라서 우리들에게
희망과 꿈을 줍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불렀던 찬양을 다시 한 번 읊조려보았습니다.
"나도 세상 살 동안 햇빛 되게 하소서"
예송리 일출의 감동을 마음에 간직한 체 윤선도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늘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윤선도는 인조가 청나라의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한 후에 하늘 아래에 두 황제가 있는데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
하는 한탄 속에 제주도에 가서 살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 보길도에
들렸는데 이곳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곳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류영구 목사님은 전문가
이상으로 보길도와 운선도에 대해서 재미있고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작품활동을 했던
정자에 대해서도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만들었고 겨울철에는 온돌까지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이 흘러가는 냇가를 막아서 한쪽에는 연못을 만들었고 그 옆에는 그 연못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연못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옛사람의 지혜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윤선도는 문에만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라 외적의 침략에 대비해서 사병을 이끌고
병자호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참여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삶이란 늘 시류에 물들기 쉬운데 끝까지 자신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선조들의 기개와
충절이 늘 마음속에 감화를 줍니다. 바울사도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면서 충성을 요구했는데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뚜렷한 확신 속에 생겨난 충성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일이
어렵고 재미없고 오랜 시간의 헌신이 필요할지라도 그것을 지키는 인내와 충성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뜻을 구현해가는 우리들의 인생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침식사를 사모님이 정성껏 준비해서 식사를 한 뒤에 작별을 했습니다. 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남아서 류목사님은 최근에 보길도에서 조성하는 공원에 가보자고 해서
공원에 가서 잠시 관람을 했습니다. 한창 공원을 만드는 과정 가운데 있었습니다.
동백나무숲으로 만드는 공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냇가였는데 홍수로 인해서 물 흐름을
돌려서 다른 쪽에 냇가를 만들고 나서 전에 있던 냇가 자리에는 공원을 만드는
공사였습니다.
농협차를 탔습니다. 이 차를 타고 노화도까지 가게 됩니다. 내 앞에 탄 아주머니는
얼굴과 머리에 피부악질로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멀쩡한
얼굴도 고치는데 보기에도 흉한 모습을 하고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인생살이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이 노화도에 치료를 하러 가는 지 일하러 가는 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는 저런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종종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도 힘든데 본인은 매우 힘이
들겠지요. 이 땅에서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상의 깊은 상처를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이지선씨의 삶과 신앙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주님, 이지선씨도 축복해주세요.
노화도에서 완도의 화룡포항까지 가는 배의 바닥은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워서 찜질하는 여유를 누렸습니다. 나는 눕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바다를 보기도 하면서
배 여행을 즐겼습니다. 보길도의 여행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냥 완도만 들렀다가
가려고 했는데 엉뚱하게 보길도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참 우리의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 윤선도의 문학세계를 접하면서 꼭 한 번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으니까 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완도에 도착해서 우선 이곳저곳을 다녀보았습니다. 늘 오고 싶었던 곳이어서 다니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했습니다. 한 눈에도 완도는 어업중심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도해의 중심에 있고 수많은 어선들이 항구마다 가득했습니다. 완도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했습니다. 한 때 해신 장보고를 촬영한 것으로 이곳 완도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장보고는 이곳 완도와 완도 앞바다인 장도에 청해진을 세워놓고
중국과 일본과 동남아시아와 더 멀리 서남아시아까지 연결하는 해상무역을 활성화시켜셔
조국을 해양왕국으로 이름을 떨치게 했던 영웅입니다. 이곳 완도사람들은 해신 장보고
사랑이 굉장했습니다.
걷다보니까 완도성광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터미널 홍보물 코너에 성광교회의
홍보지가 있었는데 그 교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에 카페도 있는 것 같아 들리려고 하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열심을 내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일에만 치우쳐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지역주민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완도타워에 오르니까 완도 근처의 여러 섬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운 섬, 먼
섬, 바다에는 김 양식, 미역 양식, 전복 양식하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배들이 오가는
모습도 들어옵니다. 일층에는 선물 코너도 있었고 이층에는 완도의 각 섬들을 소개하는
사진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슬로시티로 알려진 청산도에 대한 소개는 각별
했습니다. 빠른 것이 최고가 아니기에 이곳에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로 자전거보다는
걷기를 즐긴다고 합니다. 우마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결국 청산도는
방문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방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완도타워에서 내려서 완도 여객 터미널에 잠깐 들렀습니다. 이곳에는 제주도 가는
배편도 있었고 완도에서 슬로 시티로 알려진 청산도로 가는 배도 있었습니다. 여객터미널
에서 나와서 걸어서 신지대교를 넘어서 신지도로 가고 그곳에 있는 송곳에서 강진군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완도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완도에서 3일 동안을 머물게 됩니다. 가는 길에
최경주 공원이 있었습니다. 최경주는 완도출신의 골프 선수로 PGA 세계골프선수권
대회에서 몇 회 동안 우승한 적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하나 하나를 믿음의 마음으로 친다는 최경주 선수의 말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자신의 번 돈을 고향의 후배들을 위하여 장학금으로 희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완도군민들이 이곳 출신 최경주 선수를 기념해서 후원금을 모아 이곳에 공원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지역주민의 마음속에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이 신실하게 살아가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최경주선수는 완도주민의 자랑이면서 동시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인 크리스천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주님, 최경주 선수를 더욱 사랑해주시고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최경주 선수가 주님의 신실한 아들로 당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최경주 선수가 자신의 달란트로 많은 사람들을 섬기게 하소서!"
시내를 다니다 보니까 꽤 지쳤습니다. 낮에 보았던 찜질방에서 일박을 하기로 작정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김밥집이 있어서 김밥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어떤 때는
식사를 즐길 때가 있지만 혼자 먹는 식사는 해결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즐기는 것과
식사를 해결하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눌 때는 행복하지만
혼자서 식사를 해결할 때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은 못됩니다. 역시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행복할 때가 교우들과 함께 식사를 나눌 때입니다. 어떤
신앙의 연조가 길지 않은 성도는 밥 먹는 재미로 교회를 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만큼 교회에서 함께 먹는 식사가 맛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접하는
밥상 공동체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가장 자연스러운 사랑의 공동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곳에 부모의 사랑이 녹아있고 형제들의 사랑이 녹아있습니다. 이 자리
에서 가족들끼리의 만남이 있고 대화가 있습니다. 이 밥상 공동체는 인간들이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늘 함께 가져야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찜질방에서 샤워를 한 뒤에 냉방으로 갔습니다. 그렇지 춥지는 않았습니다. 냉방에는 나
혼자였고 찜질방 전체에도 손님들이 많지가 않아서 이곳에 오랫동안 찬송을 부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찜질방 냉방이 나에게는 조그만 빈들판이 되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빈들판은 늘 어디에 있든지 가장 행복한 시간을 줍니다. 왜 사람들이 할 일없이 찜질방
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여행 중에 찜질방을 내 집처럼 생각
하면서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매우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찜질방 문화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종종 찜질방에도 낯을 찡그리게 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인격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모습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 가운데는 항상 서로를 향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님, 이곳 완도의 주민들을 축복해주세요.
이곳에 있는 모든 가정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주옵소서!
완도사람들의 마음에 신맛이 사라지고 단맛으로 채워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