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2차 미숭산(美崇山)-733.5m
◈산행일:2007년 06월24일 ◈날씨:오전-흐림/오후-흐림
◈위치: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하빈리 합천청소년야영수련원
◈참가인원:49명 ◈산행소요시간:4시20분(09:20~13:40)
◈교통(우등고속관광김기준기사):마산(07:17)-칠원요금소(07:33)-칠서휴게소(07:40-08:05)-현풍요금소(08:29)-성산요금소(08:48)-해인사요금소(09:06)-수련원주차장 하차(09:16)
◈산행구간:수련원→산성서문→미숭산→청금정→주산→고분군→대가야왕릉전시관→주차장
◈산행안내 : 전체(김기수) 선두(박윤식), 중간(신종섭), 후미(전임수)
◈특기사항 : 경북 고령군·읍 쾌빈1리 소재 그린월드(☏054-956-7007)에서 목욕
◈산행메모: 금년도 장마가 3일전부터 시작되었다. 예보대로 우중 산행을 각오하고 집을 나선다. 차창을 세차게 때리던 빗줄기가 칠서휴게소에 들어가니 그친다. 26번도로가 왕복4차선으로 확장되어 현풍과 고령 사이를 가깝게 한다. 해인사요금소에서 나오며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1분쯤 진행하니 합천청소년야영수련원표지를 만나 좌회전한다. 고속국도 교각 아래를 통과하여 야로초등학교를 좌로 보내고 구불구불 올라가니 청소년야영수련원주차장이다.
가스가 짙게 덮어 시계는 50m도 안 된다.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浩然之氣가 새겨진 큰 돌을 오른쪽으로 보내니 이어서 美崇山城 안내판을 만난다.
안내판 왼쪽 산길로 올라간다.
밋밋한 오름이다. 두터운 각목으로 만든 목계단도 만난다.
왼쪽으로 돌아서 오르는 길이 반복되다가 키 큰 소나무 아래로 바윗돌들이 자리한 곳에서 숨을 고른다(09:57-10:01).
바람 한 점 없고 사방은 안개로 가득하다. 안개 욕(?)을 즐기는 모습이다. 조금 오르니 좌우로 기다란 석성을 만난다. 지도상으로 미숭산성의 서문이다.
<增補文獻備考에 “합천 美崇山城은 야로폐현의 동쪽에 있는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497m인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성 안에는 우물이 여섯, 못이 하나 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해발757m의 미숭산 꼭대기에 자리한 이 성은 언제 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산성과 가까운 곳에 가야시대의 고분군이 있어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 성은 산꼭대기부부분에서 자연 지세를 따라 돌로 쌓은 산성이었으나 지금은 다 무너져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 성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입 때나 왜구의 침입 때 인근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통신의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이 성은 예로부터 군사적 거점으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라 추정된다. 이 곳의 봉수대는 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남쪽으로 초계(오늘날의 합천군초계면지역) 미타산과 연결되고 동쪽으로 고령현 망산과 연결된다.” 고 하였다.>
3분쯤 오르니 샘터를 만났는데 풀숲을 이리저리 헤쳐보지만 물을 떠서 마실 쪽박이 없어 그대로 통과한다. 널찍한 풀밭에 조성된 헬기장을 지나
갈림길을 만난다. 배낭을 벗어두고 왼쪽으로 진행하니 미숭산 정상이다(10:13-18).
“미숭산(美崇山), 해발733.5m, 陜川郡” 이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뒤에는 산불감시초소다. 미숭산성 안내판과 지도에는 이 산의 높이를 757m라 했는데 표지석과 따로 노는 이유가 뭔지? 주위조망은 아직도 안개의 몫이다.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배낭을 메고 직진하니 조금 전 지나온 헬기장이 오른쪽이다. 밋밋하게 진행하니 고령군에서 세운 표지철이다(10:29).
경북고령군쌍림면용리에 소재한 미숭산은 해발733.5m로 미숭산성의 유래는
<고령군과 경남합천군의 경계 상원산(上元山)에 위치한 것으로 고려말 정몽주의 門人인 安東將軍 李美崇이 이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 소환에 불복하고 이태조軍과 접전하며 상원산에 석성을 쌓고 대항하다 순절한 곳으로 이후 미숭산이라 불린다. 망향대, 장군수, 東西南門 등 그 흔적이 남아있고 1960년대에 고령 古墳保存會에서 갑검릉(甲劍陵)을 발굴한바 갑의, 창, 고려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반룡사2.65, 주산5.95km 이정표도 있다.
잡목이 우거진 숲길에 발걸음을 뗄 때마다 풀이 발목을 스친다. 선두는 신발에 물이 들어갔겠다. 걱정은 잠시 소나무 숲이 시작되며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촉촉하게 젖은 숲에서 뿜어나오는 솔 향이 더 진하게 상큼하게 느껴진다.
쉼터시설이 있는 반룡사갈림길을 지난다(10:56).
반룡사는 오른쪽으로 1km란다. 직진하는데 오른쪽 아래에서 염불소리가 올라온다. 바람이 인색하다 해도 너무 인색하다.
쉼터시설이 자주 나타난다. 잠시 숨차게 치고 오르니 8각정(11:20-42).
지도상의 청금정이다. 떨어져서 볼 때는 번듯했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통나무들이 부식정도가 심하다. 전망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었는데 안전을 위해 누군가가 계단을 해체했다. 해체된 나무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식당을 차린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다른 팀들까지 보태지며 왁자지껄하다.
진행방향으로 주차장590m 앞두고 만난 이정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고 고속도로다. 오른쪽으로 틀면서 내려가니 좌우가 임도로 이어지는 주차장이다(12:53).
2대의 승합차량이 있고 자갈과 블록이 깔렸고 쉼터시설, 음수대, 이동식화장실도 있다.
광장을 가로질러 밋밋하게 내려간다. 앞에서 볼록한 주산이 다가온다.
우리가 가야할 능선이 좌우로 구불구불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청금정만 볼록할 뿐 안개가 덮은 그대로다. 낮은 봉에 올라선다(13:05). 4분간 아래로 내려가서 원목으로 지어진 시설물에 식수대도 있는 쉼터도 만난다.
눈 아래로 보였던 주산이 어느새 앞을 막아선다.
소나무숲길을 밋밋하게 진행하다가 오름으로 진행하니 갈림길이다(12:24).
뒤로 전망대(청금정)2560m, 직진으로 왕릉전시관1590m, 좌로 주산정상250m다. 왼쪽으로 올라가니 난간줄과 통나무계단을 만나며 치솟는다.
이정표와 표지철이 있는 주산에 올라선다(12:31-37).
主山은 고령읍 지산리에 소재하며 해발310.3m다. 충혼탑으로 가는 길은 직진과 오른쪽의 두 방향인데 오른쪽방향이 100m 가깝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고분군을 만나고 경주에 온 착각에 빠진다.
지석리고분군이다. 커다란 봉분마다 “지석리고분 제00호” 가 새겨진 조그마한 표석이다. 고령시가지를 굽어보며 마지막 휴식(12:53-13:00).
사적 제79호로 지정된 고령지산동고분군(고령지산동고분군) 안내판도 만난다.
<이 고분은 고령읍 주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축조연대는 대가야시대로 추정된다. 남쪽의 제일 큰 무덤이 금림왕릉이라 전하고 있으며 이외의 대형고분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1977년부터 경북대와 계명대박물관에서 고분을 발굴하면서 고분의 성격이 일부 밝혀져 대가야에 대한 역사연구가 활발해졌다. 특히 제44호 고분에는 중앙에 主石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副石室이 있으며 그 둘레에 32개의 殉葬을 위한 작은 石槨이 발견되었다. 이와같은 사실은 순장제도를 실증적으로 밝혀주고 또한 이 고분이 우리나라최초의 순장묘임을 확인시켜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관, 금동관장식품, 금귀고리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武器類, 馬具類, 土器類 등이 있다.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금관이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인데 경주지역 이외에서 출토된 금관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고분군을 벗어나니 둥근 건물에 내려선다.
대가야왕릉전시관이다.
계단으로 내려가니 장군상과 기마상을 만나고 취향대로 추억을 사진에 남긴다.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감한다.
멀지도 않은 가까운 거리에 이런 코스가 있었다는 자체가 감격이다. 참석 못한 회원은 크게 후회할 코스라 생각된다.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잠깐 펼친 이벤트에서 좌중을 끌어들이는 김주용회원의 꽹과리 솜씨가 돋보였다.
☆승차이동(14:03)-목욕(14:06-15:11)-26번도로(15:14)-5번도로(15:26)-현풍요금소(15:35)-영산휴게소(15:54-16:08)-칠서요금소(16:17)-임시총회 및 단합대회(16:28-18:26)-마산도착(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