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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봉의 철쭉을 기대하며... (백운산2-7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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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남 (2006/04/27 1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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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봄은 반을 훌쩍 넘었다. 3월부터 5월말까지 92일 동안 100번 이상 변한다는 봄의 날씨는 그 변덕스러움이 요즈음은 50대 남자의 마음과 같다고 한다.
여의도 벚꽃 길은 눈꽃(雪花)대신 꽃눈(花雪)이 바람에 춤을 추며 머리 위에도 길바닥에도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지난 주에는 회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무이 도에 있는 해병대 병영훈련 체험 캠프에 입소하여, 모처럼 자연과 바다를 벗삼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을 즐기자” 는 해병대 슬로건 아래 I.B.S 해상훈련과 체력훈련(P.T체조)을 통한 정신적 육체적 강화훈련을 받았는데,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양보와 희생을 배웠고, 또 내가 아닌 우리를 알고 돌아왔다.
우리 백두대간 팀도 기회가 된다면 한번 참가하는 것도 단체로 산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90kg 고무 보트를 매고 산 정상까지 산악훈련(절대 땅에 내려놓을 수 없다.)>
I.B.S 해상훈련은 육상에서는 힘이 들었지만, 막상 바다에서의 실전훈련은 묘미가 있었다.
 < I.B.S(Inflatable Boat Small) 해상훈련 무이 도에서 출발하여 실미 도까지...>
실미도에 도착하여, 다시 구보로 산을 넘어 훈련장에 도착했다.
< 실미 도에서 : 잠시 과거로 돌아가서 사라진 영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훈련 탓인지 그 다음날인 일요일엔 몸살 기운에다 오지가 아팠다. 대관령이 영하로 내려간 이날은 바람도 심하게 불고 날씨는 다시 겨울이었다. 날씨 변덕을 핑계 삼아 하루종일 이불 속에 있었다.
다시 반갑지 않는 황사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어둠과 동시에 황사가 짙게 깔리더니 다행스럽게 봄비도 내린다는 예보다. 정말로 19일 새벽에는 봄비 치고는 많은 비가 천둥 번개와 함께 흙비가 내렸고, 우박에다가 강풍 마저 불어 피해가 장난이 아니다.
봄 날씨가 도대체 왜 이런가? 다음날은 하늘이 망령이 들었는지, 태백 등 강원도 일대에 또 폭설이 내렸다. 봄 날씨는 변화무상 하다더니 정말로 보여줄 수 있는 종류는 다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도 봄비는 하루종일 도시의 황사를 씻겨내며 우리를 돕고 있었다.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낙엽 밟는 소리 그리고 겨울의 눈 쌓이는 소리도 좋지만 난 특히 심할 정도로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면 똥차를 끌고 무작정 집을 나서는 버릇이 있는데, 이유는 빗물이 자동차 지붕에 따다닥 하고 부딪치는 양철 소리가 너무 좋다.
그사이 교통사고로 다친 집사람도 모든 분의 염려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집사람 몸은 다쳤지만 대신 보상비를 조금 받아 용돈과 생활비로 충당했다.
산행 전날은 집사람이 아프다는 핑계로 2인분을 내 배낭에 집어넣고, 내일도 황사라는 기분 나쁜 일기예보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 마련한 남색 등산복을 입고, 집을 나선 것은 5시10분이었다. 안개 인지 황사인지 주위는 희미했다.
교대 역에 도착하자, 오랜 만에 온 노랑머리 유 기사님이 지하철 입구에서 반긴다. 결혼식 다녀 왔다고 얘기 하길래, 첫날밤 잘 치렀냐고 했더니 본인이 아니고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단다.
박 사장님은 한 사모님이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가는 바람에 혼자 오셨단다. 그런데 김오곤님 이나 이동배님처럼 혼자 왔을 때의 즐거운 표정과는 달리 조금은 허전하고 불안한 모습이다. 아마 유럽에는 잘 생긴 남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신 모양인데, 그래서 난 절대 혼자 안 보내고, 떼를 써서 쫓아가던지 아니면 아들을 동행 시킨다.
양 여사님은 부부동반 해외여행으로 한번, 이번에는 산소땜에 또 한번 못 오신단다. 그러다 보니 이젠 얼굴 모습마저도 기억이 아물거린다.. 계속 참여하겠다던 초롱꽃에핀 이슬님도 전철을 놓쳤는지 보이질 않는다.
소 사모님은 감기 몸살에도 불구하고 가기 싫다는 정 지점장을 끌고 나오신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리에 앉자 마자 두 분다 네 눈을 감는다.
6시30분이 아직 멀었는데, 사장님이 안달이시다. 죄도 없는 선미 씨와 영주 씨만 늦게 왔다고 야단 맞고, 버스는 정각에 출발 했다. 언니 PC방에서 거금으로 구입한 바나나우유도 박 총무로부터 하나씩 배급 받았는데, 그날 집사람은 내가 2개만 먹은 줄 아는데, 사실 4개나 먹었다.
잠시 눈을 감았나 싶었는데, 벌써 죽전이다. 차창 밖에 우리 팀이 보이는데, 윤성노 사장님과 애교 만점인 권명자 사모님이 보이질 않는다. 나머지 죽전 팀을 태우고 출발한 시간은 6시50분이었다. 그런데 다빈 이가 이상스럽게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버스는 매번 방문한 인삼랜드 휴게소를 상춘객 핑계로 그냥 통과하고, 조금은 한적한 덕유산 휴게소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8시53분이었다.
오늘은 속이 조금 좋지않아 한정구님의 권유도 뿌리치고 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아마 에델님이 준비해온 아침식사를 하는 도중에 생각이 나신 모양이다. 그 고마움에 먹은 것 보다 더 배가 불렀다.
하마터면 고아가 될뻔한 왕 회장님을 마지막으로 모시고 휴게소를 떠난 시간은 9시20분이었다.
사장님이 오늘의 산행계획과 백두대간 1주년 행사계획도 말씀하신다. 시리봉 어깨와 아막 성터에 가는 날엔 항상 비가 왔다는데 이번에는 우리 대원들의 착한 기를 받았는지 날씨는 지나치게 쾌청하다.
발명품 대회에서 1등 했다는 원준 이와 사진담당 한정구님 그리고 꽃 박사인 이영수님의 노고를 박수로 대신하고, 진짜 보배인 우리의 총무님을 위한 박수를 마지막으로 기나긴 설명을 마쳤다.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었는지 버스도 여유작작 하게 달린다. 도로변에는 연두색 풀들이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고, 개나리 꽃잎은 땅을 노랗게 만들면서 몸을 초록으로 갈아입는다. 멀리 보이는 산도 회색 나뭇가지 위에 연두 빛 푸르름을 더한다. 들판 산기슭에는 하얀 꽃을 뽐내고 피어있는 조팝 나무가 지천이고, 때늦은 진달래도 간혹 보인다.
지리산휴게소에 버스가 도착한 것은 10시05분 이었다.
< 사치재에 있는 지리산 휴게소에서 하차하는 대원들....>
모두들 산행준비를 하는데, 한정구님은 화장실 앞에서 벌써부터 꽃 타령이다. 봄이 되면 그놈의 야생화 때문에 물가에 내보낸 아이들처럼 걱정스럽다.
오늘의 산행일정 및 예정 코스는 다음과 같다.
< 백두대간 2-7 구간 산행지도>
◎제2구간 백운산7차 계획(2006년 04월23일) <승우 여행사 제공>
◎등반 코스(거리 및 소요예정 시간) 사치재(499m)-> (1.20km/0:35)-> 산불산(697m)-> (0.25km/0:06)–> 무덤(665m) 무덤(665m)-> (0.70km/0:15)–> 새맥이재(560m)->(1.00km/0:40)–>시리 봉 어깨(776.8m) 시리봉어깨(776.8m)-> (1.00km/0:35)–> 아막성산(781m)-> (0.70km/0:25)–> 아막성터 아막성터(0.70km/0:20)–> 601.4봉-> (0.30km/0:10)–> 복성이재(550m)
◎ 등반거리 : 약 5.85Km ◎ 예상 산행 소요시간 : 약 3시간06분(휴식시간 제외) ◎ 실제 산행 소요시간 : 약 3시간08분(휴식시간 제외) ◎ 휴식 시간 : 약 20분 ◎ 총 산행 소요시간 : 약 3시간28분(휴식시간 포함)
주) 실제 산행을 한 상세 결과는 아래의 산행일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백두대간 즈려밟기 제2구간(백운산) 7차 (04월 23일) 산행일지>
(출발장소**) (도착장소**) 출발시간 도착시간 예상 실제 (거 리)(휴식)
(사치재****) (산불산****) 10시22분 11시18분 35분 43분 1.20km 13분 (산불산****) (무덤******) 11시18분 11시27분 06분 09분 0.25km 00분 (무덤******) (새맥이재**) 11시27분 11시38분 15분 11분 0.70km 07분 (새맥이재**) (시리봉어깨) 11시45분 12시25분 40분 40분 1.00km 00분 (시리봉어깨) (아막성산**) 12시25분 13시00분 35분 35분 1.00km 00분 (아막성산**) (아막성터**) 13시00분 13시20분 25분 20분 0.70km 00분 (아막성터**) (601.4봉***) 13시20분 13시40분 20분 20분 0.70km 00분 (601.4봉***) (복성이재**) 13시40분 13시50분 10분 10분 0.30km 00분
이번 제2구간7차 구간은 지난번 2구간3차 산행(06.01.22)시 하산한 사치 재에서 복성이 재 까지다. 이 코스 또한 사치 재부터 복성이 재 까지 전구간이 백두 대간의 마루 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도 선두에 사장님 후미는 이해준 대장이 맡는다.
<지리산 휴게소 마당의 노송....>
배낭을 정리하고 산행을 준비한 후 지난 번 하산했던 사치 재로 10시10분 발 걸음을 옮겼다.
사치 재는 지금도 주능선인 대간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간 종주 군들이 가끔씩 지나 다니는 고속도로의 차량을 피해 무단 횡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산행 때도 이슬님이 토끼 굴을 통과하지 않고 무단 횡단했다가 박 총무한테 혼난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이슬님 만이 제대로 마루 금을 밟았고, 나머지는 지하 토끼 굴로 우회했으니 우리는 그를 무작정 야단만을 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지하통로로 연결된 마루 금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박 총무님>
대간 주능선이 잘려나간 사치 재(499m)를 뒤로 하고 대간 표지 이정표를 따라 다시 대간의 주능선을 오른다 출발시간은 10시 22분이었다. 오늘도 이변이 없는 한 3시간 반 이상은 걸어야 할 듯 하다.
경사를 오르면 바로 산소 2기가 보인다. 산소의 왼쪽을 돌아 소나무 숲 사이로 가파른 급 경사를 15여분 올라가면 타버린 소나무 무더기가 나타나고, 그 사이를 힘들게 2~3분 정도 더 오르면 작은 헬기 장인 공터가 나타나고 길게 능선이 이어진다. 공터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0분 이었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른 후 공터에서...>
오르는 도중에 사장님이 두릅나무를 발견하고는 “심 봤다” 하고 외친다. 몸에 좋다는 말에 마치 촛불처럼 나무 꼭대기에 나와있는 두릅을 확보하여, 뒤도 돌아보지않고 먹어치운다. 해외여행으로 사모님도 안 계시는 박용주 사장님은 혼자 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열심히 드시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입안에서 감도는 그 작은 향과 씹는 촉감은 별맛이었다. 목안으로 꿀꺽 삼킨 뒤에야 후미에 있는 대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공터에 올라서자 우측 아래로 우리가 출발한 지리산휴게소가 보인다.
<산불 봉 방향 우측 아래로 지리산 휴게소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산 철쭉과 잡목이 우거진 산길이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다. 다만 산불로 인한 그 처절함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난 1994년 겨울에 이어 95년 두 번의 산불이 났던 곳 이라는 데, 그래도 생각보다 그 상처가 많이 나은 것 같아 다행이다. 다시 오른쪽 방향인 능선으로 발길을 돌린다.
길은 완만만 내리막이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나게 하는 현장을 우리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타버린 잡목 밑으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잡목과 키 작은 철쭉나무 길을 조금 벗어나자 억새풀 지역이 나타나고, 바로 급경사로 내려간다. 능선에 올라선 후 다시 내리막 경사를 5분 정도 내려서면 다시 억새 밭이 나타난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산불 봉(697봉) 전경>
억새풀 사이를 헤집고 다시 697봉을 향해 오른다. 697봉 정상 바로 밑 양지 바른 곳 묘지에서 첫번째 휴식을 취한다. 시간은 정각 11시를 알리고 있다.
<양지바른 산불 산(697봉) 정상 바로 밑에서 첫번째 휴식....>
묘지 위에는 할미꽃 밭으로 착각 될 정도로 할미꽃이 즐비하다. 고부랑 할미, 갓 피어난 할미,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휴식시간이 길어진다. 아무도 얘기를 안 했지만 지금 우리는 몸 상태가 좋지않는 다빈 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별미는 역시 이정애님의 누룽지 설탕 튀김이었다. 그 사이 사장님의 설명도 이어진다.
<휴식 중에 오늘의 점심 식사메뉴(?)를 짜고 있는 사장님과 여사남.>
뒤를 돌아보니 오른편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고남 산이 보이고, 그 정면 아래에는 따사로운 풍경의 운 봉 마을도 보인다.
<따스한 봄볕에 백두의 두 미녀들의 미소…>
다빈 이가 도착하고, 의료담당 전찬진님의 치료가 끝난후, 다시 출발을 한 시간은 11시13분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산 철쭉과 잡목을 헤치며 다시 경사를 오르는데 암릉 한 가운데에 애기 대포바위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대포바위를 지나고 바로 전망이 터인 봉에 이른다.
<암릉 사이 가운데 애기 대포바위가...>
697봉인 산불 산에 오른 시간은 11시 18분이었다.
산불 산이란 이름은 아마 과거에 큰 산불이 났던 곳이라 그렇게 부르지 않나 생각한다. 사치 재 능선에서 697m봉까지의 산은 전체가 산불로 인하여 보기가 흉하다. 쉬지 않고 바로 내리막 경사를 따라 걸었다.
다시 내리막 경사로 길이 이어진다. 내리막 길도 주위는 산철쭉 군락이다. 내리막 경사를 내려서고 바로 오르막 경사를 올라서자 마자 왼쪽으로 무덤이 있다는데 직접 확인은 못했다. 무덤지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27분 이었다.
휴식 없이 오른쪽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나무 숲으로 된 위험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면 산소를 이장한 듯 큰 돌들이 늘려있고, 승용차까지 올라온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마루 금 까지 올라온 렉스턴 승용차..>
그리고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면 중간에 산소 1기가 나타나고, 또 한번 내려서면 작은 우마차길이 나타난다. 이곳이 새맥이 재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왼쪽으로 가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대간 길을 걷는다.
우리 아니 내 눈에는 야생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꽃 박사님은 잘도 찾아낸다. 아마 꽃 향기로 찾아내는 것은 아닐까.
<산행 도중에 야생화를 관찰하는 이영수님.....>
사치 재에서 1시간 정도는 걸었을까? 다시 철쭉나무와 잡목 숲을 그리고 소나무 사이로 2분 정도 더 내려가니 경운기가 다닐 수가 있는 길이 나타났다. 이곳이 새맥이 재다. 도착한 시간은 11시 38분 이었다.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 새맥이 재에서 2번째 휴식을.....>
땀이 온몸을 적신다. 초코렛 몇 알과 캔디로 허기를 달랜다. 체력유지를 위해서는 영양보충은 물론 몸의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물과 간식을 계속 먹어야 한다
왜 이런 힘든 일을 돈을 들여가며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내려 올 것을 왜 올라가느냐고 묻는 친구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아름다운 산하와 야생화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고 즐기면 되고, 축구나 야구경기도 텔레비전으로 보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세상은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운동장의 관중이 진정 바보가 아니듯이, 우리도 고통을 즐기며 산을 오르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단체사진도 찍었다.
< 새맥이 재에서 휴식 후 단체사진 한 컷...>
새맥이 재를 출발한 시간은 11시 45분 이었다. 다시 배낭의 끈을 조이고 머리를 모자 속에 깊숙이 집어넣고, 시리 봉 방향인 오르막 길 급경사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급경사지역을 올라가면 길은 완만한 경사를 오르고 또 내려간다.
그러다가 오솔길을 만나는데, 주위는 철쪽보다 소나무가 많고 사이 사이에 분홍색 진달래가 아직도 아름다운 자태를 여기 저기서 뽐내고 있다. 하늘에서는 산새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지저귀고 대원들의 콧노래도 앞 뒤에서 화음을 더한다.
< 진달래 꽃 길을 즐겁게 지나는 대원들.....>
오솔길을 지나자 길은 같은 길인데 주위에는 불에 탄 나무는 아니고 간벌을 한듯한데, 자세히 보니 살아있는 생나무도 제법 많이 잘려져 있다.
< 간벌(間伐) 구간을 지나는 대원들.>
한참을 걸어 마지막 경사를 올라서자 다시 철쭉 군락지로 변하더니, 헬기 장이 나타나고 오른쪽 능선으로 시리 봉이 보인다 시리 봉 어깨에 도착한 시간은 12시25분이었다.
<시리 봉 어깨 헬기 장에서 이해준 후미대장.>
휴식 후 40분 이상을 걸었는데도,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는지 휴식을 주지 않는다. 시리 봉(776.8m)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시리 봉 왼쪽 어깨를 돌아서 바로 대간 길로 접어든다.
지금부터는 철쭉나무와 잡목으로 수월한 산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쭉나무 숲을 헤치며 가야 되기 때문에 주위의 경관을 볼 여유도 없다. 그냥 무상무념(無想無念)으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키 큰 철쭉과 싸리 나뭇가지는 가끔 얼굴을 때린다. 철쭉나무와 잡목 숲을 헤치고 정신없이 걸었다. 길은 다시 경사를 만나고 다시 소나무 숲으로 변한다.
< 노송 숲길을 힘차게 오르며..............>
그러다가 교대로 나타나듯 또 철쭉 밭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꽃이라도 활짝 피었으면 향기에 취해 힘이라도 덜 들고 정신없이 갈 텐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산 철쭉과 싸리나무를 헤치며 올라 가는데 정면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선 바위가 보인다.
< 선 바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정상우님 내외분.>
선 바위를 왼쪽으로 끼고 올라선 전망이 터인 곳에 이른다. 전망이 좋은 이곳이 781봉인 아막성 산이다. 사리 봉 어깨를 지나 781봉까지는 철쭉이 방해만 않는다면, 완만한 오름 길이며 평탄한 길이다. 781봉에 도착한 시간은 13시00분이었다.
< 781봉에서 본 다음 산행 지(5월 14일)인 봉화 산 전경.>
산행 중 배낭을 매고 잠시 쉬는 것 이외는 휴식이 없는 듯하다. 선미님이 힘들어 괘성을 지르는데도 사장님은 그냥 가신다. 781봉에서 휴식 없이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정면 멀리 돌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이 보이는데 그 곳이 아막 성터이며, 대간 길이다.
< 아막 성터의 전경.>
백두 대간의 마루금은 산성 터를 지나 복성이 재로 계속 이어진다.
< 복성이 재로 연결되는 국도(우측 화면 바깥쪽이 복성이 재)>
781봉을 출발한 시간은 13시00분이었다. 완만하면서도 가끔은 급경사인 내리막으로 내려서자 돌무더기가 조금씩 보인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돌무더기는 산행을 힘들게 한다. 왼쪽으로는 돌탑도 한 두개 보인다. 걸으면서 잠시 기도를 했다. 그사이 몸은 지금은 허물어진 옛 성터를 지나고 있었다. 아막 성터에 도착한 시간은 13시20분이었다.
< 아막성터를 오르며.>
아막 산성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기 쟁탈전을 벌였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한다 아막 산성은 시리 봉과 복성이 재 사이에 있으며 전북지방 기념물 제38호다. 산성의 크기는 둘레 632.8미터이며, 북쪽에 수구와 북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쪽에는 높이 약 4m 정도이고, 1.5미터의 원형 석축으로 된 정호지(井戶址)가 있다고 한다. 눈으로 추측만 하고, 확인을 못하고 내려 온 것이 안타깝다.
아막산성은 백제가 점령할 때는 아막 성으로 불리고, 신라에서 주도권을 잡았을 때는 모산 성으로 불리던 곳이라 한다. 이 산성의 불리는 이름에 따라 백제와 신라가 국운을 달리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도 기와 조각 같은 파편들과 많은 돌들이 백제와 신라가 벌인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무언으로 얘기하는 듯하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고는 바로 눈을 떴다. 그때 전사한 사람들의 영혼들이 이곳 성터를 맴돌면서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돌탑에 돌을 정성스럽게 쌓으며, 기도하는 우리 모습을 보고 그 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고작 100년 후면 여기 서있는 우리는 그때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 이런 마음을 알았을까? 억울하게 죽었던 이가 뱀으로 환생하여 바위 무덤 속에서 우리를 애타게 지켜보고 있었다.
먼 곳에서 보는 것 보다 현장의 아막 성터는 아담하고, 포근했다. 오늘은 더 이상 휴식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바로 복성이 재로 향했다. 대간 길인 성터 양지바른 곳에는 산소1기가 너무나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산성의 돌무더기 너덜 길을 조심스럽게 딛고 내려서다가 어느 대간 팀이 만들어 바위 속에 꽂아둔 조그만 판자로 된 대간 안내판이 너무 이색적이고 고마웠다.
< 허물어진 아막 성터를 조심스레 내려가며............>
너덜 길을 내려서자 마자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그리고 소나무와 잡목 숲을 뚫고 능선을 올라서면 다시 급경사 내리막 길로 접어든다. 급경사 내리막 주위는 어마어마한 철쭉 군락 지인데 철쭉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철쭉사이에 때늦은 진달래가 몇 그루 활짝 피어있어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철쭉 군락 지... >
다시 뒷동산 같은 길이 나오고, 소나무 숲 사이로 진달래가 우리를 반긴다. 마치 신랑 신부가 지나는 아치형 꽃길 같은 분위기다. 다시 오르막 경사를 만나 마지막 힘을 다하여 능선을 올라선다, 산행시간으로 봐서는 601.4봉에 올라선 것이 틀림없는 듯 하다. 601.4봉을 도착한 시간은 13시40분이었다.
지금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내리막이다. 하지만 대간 길은 안내 리본이 없어 혼자서는 찾기가 쉽지않은 길이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복성이 재 뒤쪽에 있는 재를 만난다. 시간은 13시38분이었다. 사장님이 안계시면 아마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바로 버스를 탔을 텐데, 마지막 마루 금을 위하여 정면의 낮은 능선을 오르고 내려서는데, 발 아래 쪽으로 큰길이 보인다.
잘 포장된 도로가 대간의 마루금인 산허리를 자르고 가는 길을 막고있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 복성이 재이다. 복성이 재는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서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로 넘는 고개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마루금인 복성 이재(550m)에 도착한 시간은 13시50분이었다. 산행 안내 판에는 복성 이재에서 사치 재까지 7.2km로 표시되어 있다. 도상 거리는 약5.85km이지만 우리는 오늘 8km는 족히 걸었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우리는 주류 팀인 후미를 기다리면서, 오늘 못다한 휴식을 충분히 취했다.
<우리를 기다리게 해놓고 주류 팀은 집사람의 복귀를 자축하면서 한 컷.>
휴식을 하는 동안 이동배님은 원준이를 위해 말총과 버들피리를 만들고, 에델님은 주류팀에서 탈출하여, 낭군님을 위해 쑥을 캐고 있는 것 같다. 잠시 후 버스는 도착하고,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한정구님이 보이지 않는다.
< 복성이 재 이정표와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 백두대간 전용버스.......>
아마 꽃을 따라 무작정 딴 길로 빠진 모양이다. 한참 후에야 엉뚱한 길에서 나타났고, 나머지 사진을 찍은 후에야 출발 할 수 있었다. 수분령 휴게소 식당으로 출발한 시간은 14시23분 이었다.
오늘은 청국장으로 식사를 했는데, 사장님이 감추어둔 두릅나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결국은 구경을 못했다.
< 점심을 맛나게 먹었던 기사식당 전경.>
식사 후 15시20분 우리는 식당을 출발하여, 시간의 여유도 있고 해서 논개 생가도 방문하고, 때마침 만개 했다는 마지막 벚꽃도 구경하기로 했다.
< 논개 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는 백두가족....>
창가를 통해 벚꽃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원경씨가 “뒤를 봐요!”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곳에 화장실이 있는 줄 알았다.
사장님 권유로 논개 생가에서는 분수대에 동전도 꽤 많이 도둑맞았다. 혹시 그 돈을 여행사와 나누어 가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 논개 동상 앞의 유료 음악 분수대에서 사장님의 매상은 자꾸 올라가고...>
오는 길에 잠시 저수지 밑에 있던 원래 논개생가를 복원한 곳을 방문했는데, 관리가 엉망이었다. 단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중국명: 孼費水 部內修理)인 이슬님이 기타를 들고 마루에서 공연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 오늘의 하일라이트!! – 이슬님의 통기타 라이브콘서트... 사진이 흐린 것은 사람들이 너무 흔들어대서 그렇습니다.>
오는 도중에는 버스에서 잠시 내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가랑비와 함께 보는 벚꽃 길은 가슴 한곳에 담아두기에는 충분했다.
< 빗속의 벚꽃 트레킹.....>
귀가 길 버스 안에서는 언제 또 홑잎 나물을 뜯었는지 김순성 사모님이 비닐봉지에 소중히 담아 지난번에 맛을 못 본 한정구님 손에 살짝 쥐어주는데, 마치 할머니가 외 손주한테 용돈을 몰래 쥐어주는 것처럼 사랑과 정이 넘쳤다.
또한 주당들이 안주만 들고 목말라 하길래 내가 보관하고 있던 비상 음료인 6개월 분량(본인 기준)의 복분자를 꺼내어 정 지점장에게 주었더니 동시에 뒷좌석의 김오곤님의 목에서는 깔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는 단 30초 만에 그들은 바닥을 비웠다.
잠시 잠이 들었는데, 사장님이 죽 암에서 내릴 분 준비하란다.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창 밖을 보니 죽 암이 아니고, 죽전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정구님이 놓고 내린 물건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때 뒷좌석에서 총무님이 “다빈 이가 모자 놓고 내렸네요” 소리친다. 장래순님이 전화로 대답한다. 기름이 묻어있으니 잘 빨아서 돌려주세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해주신 사장님과 승우 여행사 직원 여러분 특히 우리의 안전대장인 유 기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참! 왕 회장님 미국에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오…
5월 14일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2006년 04월26일 사무실에서
사진: 한 정 구 글씀: 여 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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