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3) - 수필가 김수봉
“어머니 손톱에 남아있는 봉숭아 꽃물”
돋보기로 확대시켜 보는 듯한 선명도와 치밀성
문장·언어의 연금술사와 같은 매력이 마음 사로잡아
고향 흙의 깊은 사랑…범상한 참삶의 멋 담담히 되살려
2002. 11.27(수) 00:00
김수봉(65)씨는 남도의 수필가 중에 단연 발군이다.
그의 수필을 읽다보면 산문시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이고 은빛 찬란한 햇살이 아침 정원의 나뭇잎에 반사돼 시야에 들어오는 그런 문장과 언어의 연금술사와 같은 매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는 정밀묘사는 마치 사진사가 자신이 선택한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듯이, 그가 묘사하고자 하는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는 돋보기로 확대시켜 보는 듯한 선명도와 치밀성이 있다.
그리고 산업화로 인해 스러져 가는 우리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애틋한 보호의식에 젖기도 한다.
또한 뚜렷한 주제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끈기 있게 자라는 생명의 노래를 쓰고 있다.
굽힐 줄을 모르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항상 아래를 굽어살피며 위로 지향하는 그 정신 자세가 깃들어 있다.
그의 삶이나 문학적 성과물, 혹은 그 특징은 공해나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 순수한 바탕에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자아를 형성해 나아가는 ‘쑥’의 삶이요 인생이라 하겠다.
“첫 봄 뗏장 밑에서 쑥잎이 돋는다./아직도 가까운 산허리에는 흰 눈이 버짐처럼 얼룩져 있는데, 음 2월 저수지 둑 양지에는 우북우북 희고 보드라운 쑥잎이 돋는다.”(중략) “베어버리고 캐 내고, 짓밟히고 다시 문들어져도 다시 돋아나는 쑥. 어떤 나무 어떤 꽃은 자리 타박도 많아 정한 모래, 기름진 흙을 가려 자라고 꽃피운다지만 이 쑥은 어디서고 자라고 피어난다. 황토땅 마른땅 진구렁도 마다 않고, 고산준령이나 심산유곡, 바위틈 응달에서도 소탈하고 왕성하게 피어난다” (‘쑥’중에서)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일반적으로 수필이라면 설명조가 대부분이지만 그에게서는 정밀가공을 하는 첨단산업의 핵심에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예리한 관찰력과 치밀한 묘사로 간결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치밀한 묘사를 하기위해서는 좀더 복잡하고 섬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간결성이란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다.
“노안역에서 차를 내린다. 완행열차 비둘기호라야만 멎는 간이역이다. 작은 역사와 길지 않는 프랫폼, 한일자로 죽 늘어선 전나무가 그대로다. 첫 번째로 나를 반겨준 것은 이들이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둘뿐, 머리에 커다란 박스를 인 중년 아주머니는 서둘러 역사를 벗어나고 있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미루적거린 것은 거기 어딘가에 저 지난 날 내 발자국의 흔적이 남았을 것 같아서다./기차통학생이었던 나는 이 역마당을 발이 닳게 드나들었다.” (‘역말가는 옛길’중에서)
그의 생가는 나주역과 노안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필자가 찾아갔을땐 늙은 노모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언덕너머 큰 대로가 뚫려 있지만 김씨가 어릴적 광주로 통학하던 그 길은 지금의 거리에 비해 훨씬 멀고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검정교복을 입고 통학기차를 타고 등하교를 하면서 그는 문학적 꿈을 다져왔다. 예전의 노안역은 헐리고 이전했지만 그 형태는 어느정도 남아 있었다. 좌판이 널려진 장터, 그리고 약국, 국밥집, 선술집 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묻어 있는 냄새가 이곳 저곳 풍긴다. 김씨가 살던 역말까지는 십리길, 어려을 때 십리길은 멀고도 가까운 거리다. 이 작품전면에 그의 어렸을때의 고민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보다도 더 아프게 나의 가슴을 쳤던 것은, 마지막으로 만져본 어머니의 손, 그 손톱에 남아 있는 봉숭아 꽃물이었다. 그 봉숭아물은 어머님이 발병 초에 병 때문에 한가해진 몸이 무료했던지 어느날 당신의 손녀인 내 여섯 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앉아 우리집 꽃밭에 몇 그루 핀 봉숭아꽃을 따서 함께 동여맨 것이었다. 당신께도 있었던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지나가버린 헛된 날들을 아쉬워하며 손가락마다 함께 매었을 그 봉숭아 꽃물.”(‘봉숭아 꽃물’중에서)
봉숭아 꽃물을 이렇게 절실하게 묘사한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소꿉놀이 하거나 누님과 동생이 앞마당에 심어진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꽃물들이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김씨의 기억엔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손녀의 동심이 어우러지고, 투병생활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절실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코 끝이 찡하게 감동이 울려온다.
“참새란 놈은 선뜻 소쿠리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소쿠리 밑에는 먹음직스런 쌀알이 뿌려져 있건만 참새는 주위를 감감 돌 뿐, 결코 들어가서 주워먹지 않는다. 이만저만한 경계심이 아니다/(중략)어느 땐가는 할머니께서 헛간에서 이삭을 바수고 있었는데, 참새떼는 할머니의 치마 곁에까지 와서 낟알을 쪼아 먹곤 하는 것이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하고 헛간에 앉아 있어 보았다. 그러나 참새떼는 결코 내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너희들 안잡을테다’라고 아무리 시치미를 떼고 있어 봐도 나의 마음 저 깊은 속을 참새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야비다리치다‘ 중에서)
유소년기의 참새를 잡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참새 잡던 이야기를 통해 유심유욕(有心有慾)의 세계와 무심무욕(無心無慾)의 세계를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살아가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 무욕세계에의 접근법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 마음에 기심(機心)을 품는 것은 기심(欺心)이므로 미물까지도 알아차리는 초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의 ‘수필로 쓴 고백적 수필론’에서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마시고 싶었고 예술의 하늘을 맘껏 날고 싶었다. 또 기술의 벌판을 모두 뛰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모함임을 진작 알아차렸다. 바다에서는 허우적거렸고 하늘에서는 추락했고 벌판에서는 헤맬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라고 자신이 쓰는 수필문학에 대한 담담한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그의 수필영역은 다양하다. 전라도 언어와 어릴때의 추억을 실타래처럼 풀어내기도 하고, 고향이야기를 남도의 정서로 옮겨 놓기도 한다. 또한 신변의 이야기를 통해 바른 사회만들기의 소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수필은 모두 깍듯한 균제와 조용한 예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들 붓 가는 대로 씌어지는 것이 수필의 방향이라지만 그런 따위 너절한 잡문과는 거리가 먼 품격을 지닌 것이 그의 글이다. 고향의 맏형이 들려주는 구수한 정담이랄까. 겨울밤에 식구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군입정으로 텃밭 귀퉁이의 움 속에 갈무리했다 꺼내 먹는 시원한 무맛, 혹은 저녁놀 비낀 어둑어둑한 개울의 수면 위로 치뛰는 피라미떼가 튕기는 날렵한 은빛. 말하자면 우리 현대인이 얼마 전에 떠나와 잊고 사는 고향과 고향의 흙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든가 범상한 생활 속에서 놓치기 쉬운 참삶의 멋을 그의 수필은 담담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글=이재창 편집부국장
사진=김기식 기자
그의 작품은 대학교재에도 많은 언급과 함께 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전남대 교재 ‘한국의 언어와 문학’에 ‘문풍지’가, 조선대의 ‘한국어문학’에 ‘무명베 수건’이, 그리고 동신대 교재 ‘언어와 문학’에 ‘그 날의 기적소리’가 눈길을 끈다. 그만큼 탄탄한 문장력과 감각적인 묘사는 다른 군말이 필요없다.
그가 문학에 뜻을 둔 것은 대학 입학전 광주제일고에 재학중에 문학적 역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교 3학년때 이성부, 문삼석, 전양웅씨 등과 ‘순문예’란 동인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으며 3인 공동시집 ‘생의 낙원’을 발간했다. 그 당시 김현승, 주기운 선생님의 지도와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조선대 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학보에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가 문단에 발을 늦게 딛은 이유의 하나는 굳이 등단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과 아울러 좋은 글을 쓰면 그만이다는 자신의 소신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1978년에 송규호, 김구봉, 이삼교, 김옥애 등과 함께 결성한 ‘전남수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수필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82년 첫 수필집 ‘전라도 말씨로’를 발간한 이후 84년 주위의 권유로 그동안 거절해 오던 문단의 관문을 거친다. 그 작품이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뜨락을 쓸면’이다. 그후 8인수필집 ‘황토에 부는 바람’과 두 번째 수필집 ‘예던 길 앞에 있네’ 세 번째 수필집 ‘역말가는 옛길’, ‘환상의 魚信을 찾아’, ‘그날의 기적소리’를 발간했으며, 그동안 각종 문예지에 5~6백여편의 수필을 발표해 왔다.
그는 1937년 전남 나주읍 청동리 역말마을에서 태어나, 광주서중과 광주일고를 졸업한후 조선대 국문과를 나왔다. 그후 조선대 부속고교와 살레시오고교에서 교사생활을 40여년 하다가 2000년 8월 정년퇴임, 지금은 전남대 평생교육원 문창과와 YWCA 문예강좌에서 수필을 가르치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글 ; 이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