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겨울에는 군고구마가 최고야
나는 봉투에서 군고구마 하나를 꺼내 창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도 군고구마 하나를 꺼내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먹음직스런 군고구마의 노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속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군고구마의 맛은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역시 겨울엔 군고구마가 있어야 한다니까.”
“너야 사계절이 다 겨울이었으면 좋겠지. 그럼 군고구마를 매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치? 계절은 역시 겨울이어야 한다니까. 근데 말야, 군고구마 장수는 여름에 뭐할까?”
“글쎄 뭐할까?”-인터넷에 실린 ‘소피스트라’는 필명의 작품 중에서 인용
군고구마가 생각나는 겨울이 돌아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겨울이면 군고구마를 좋아한다. 앞에 인용한 작품에서도 설명했듯이 한 쪽이 시커멓게 탄 고구마를 벗겨내면 여인의 속살처럼 노롯노롯한 알맹이를 드러낸다. 어찌나 뜨겁던지 입속에 우겨넣었던 노란 고구마를 도로 뱉어내어 입김으로 후후 불어서 식히고 나서 다시 입에 집어넣는다. 고구마를 씹는 맛은 어머니 젖꼭지를 입에 넣은 듯 달콤하고 물컹하고 따뜻했다. 마음은 소년스러워 지고 기분은 짠해진다.
우리가 어려서 학교에 다닐 때는 어려운 살림에 학비를 마련하느라 간단하고 돈이 적게 들며 몸으로 품을 파는 장사를 하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아이스케키와 찹쌀떡을 파는 장사였다.
“아이스케키 사려~ 달고 시원한 얼음과자~” 아이스케키통을 멘 고학생은 학교가 파하면 아이스케케통을 둘러메고 본정통을 중심으로 쉴세도 없이 돌아다닌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찹쌀덕 장사다. 일본 말로는 앙꼬모지다. 찹쌀떡 장사는 네모난 상자에 찹쌀떡을 가득 넣어 메고 집이 밀집한 골목길을 누빈다. “찹쌀떡 사~려”하고 외치면 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어이 참쌀떡~ 여기 찹쌀떡 주세요.” 하고 주문하면 찹쌀떡 장사는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며 찹쌀떡 한 봉지를 건넨다. 찹쌀떡이 붙지 않게 솔잎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찹쌀떡이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눈을 감고 소리로만 맛을 봤다.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아이스케키 장사”를 한 L군이 있었고 찹쌀떡 장사를 한 H군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80이 넘은 추억속의 친구들이지만 그 당시 어려운 가정환경에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이 아니면 힘들었다. H군은 전교학생운영위원장을 했고 음향기기장사를 해서 작은 기업가가 되었고 L군은 졸업후 장사를 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
내가 젊어서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 하던 시절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 한 시간이라도 만남의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사들고 장충공원이나 덕수궁 나무 밑에 앉아 호호 손을 불며 뜨거운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상대방의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 손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손가락 채 빨아먹고 싶었다. 우리 둘은 고구마와 리어커에서 파는 우동 매니아였다. 비록 배는 빈곤했지만 둘의 가슴은 풍요로웠다. 그게 우리들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군고마는 사랑의 추억을 키우는 마중물 역할을 했고 빈속을 채우는 포만감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지금 젊은이들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 들려 비싼 외제커피와 빵을 먹거나 피자를 먹는다. 인스탄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어려서 티 없이 순수하고 맑게 나누던 순애보식 사랑방정식이 없다. 그 때는 빈곤도 사랑이었듯이 군고구마, 단팥빵, 각기우동도 사랑의 일부였다. 최고가 짜장면이나 돈까스였다. 사랑은 물질을 수반해야 풍요럽지만 사랑은 가난해도 정신적으로 결합하면 바다처럼 포만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여유롭게 아내와 함께 나가서 먹는 불고기나 초밥이나 스테이크보다도 60년대 말 충정로 거리에서 사먹던 따끈한 각기우동 한 그릇과 군고구마와 따끈한 커피가 더욱 추억으로 떠오르고 내 자신의 생각을 젊게 한다.
지금도 가끔 글을 쓰는 밤이 되면 아내가 고구마를 렌즈에 구어서 가져다주곤 한다. 젊었을 적 연애시절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노란 고구마를 입에 넣노라면 막혔던 다음 구절이 술술 풀리기도 하고 소원했던 사랑도 깊어진다. 역시 글을 쓸 때는 기분이 좋아야 활자화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법인가 보다. 그래서 겨울에는 군고구마장사가 보여야 진짜 겨울이다.
군고구마에는 천진난만한 시골 아낙네의 땀방울과 휘어진 척추의 아픔이 담겨 있다. 서정과 순수함도 묻어 있다. 그래서 소설에는 글을 쓰며 군고마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군고마에는 어렸을 적 찌든 가난이 배어 있고 수확할 때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포만감도 담겨 있다. 땀과 눈물이 빚어낸 소중한 먹거리다. 나는 군고마를 먹을 때마다 흰 수건을 덮어쓰고 고구마 밭이랑을 매시던 시골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중고등학교 시절 하학하며 달밤을 따라 귀가할 적에 몰래 서리해서 옷에다 흑을 문질러 털어먹던 둥글고 긴 고구마가 떠오른다.
앞에서 인용한 필명 ‘소피스트’의 “군고구마 장사는 여름에는 뭘할까?“를 읽으며 문득 대칭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아이스케키를 팔겠지...하는 결론이었지만 실제로는 요즘 여름에는 아이스케키장사를 볼 수 없다. 모두가 슈퍼에서 대기업이 기계로 찍어낸 아이스바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그러니 군고구마 장사가 여름에 아이스케키장사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군고구마 장사는 여름에는 무엇을 할까?
아마도 여름에 손수레 장사를 하거나, 막일을 하거나, 아니면 겨울에 팔 고구마를 가꿀지도 모른다. 작년 여의도성모병원앞에서 마주쳤던 그 고구마장사 할아버지를 금년 겨울에도 병원앞 골목길에서 만나봤으면 좋겠다. 만나면 꼭 군고구마를 사가지고 와서 아내와 함께 옛날을 추억하며 다시 한 번 밋밋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겠다. 12월 막장을 마감하는 창밖에는 제법 큼직한 눈송이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군고구마가 생각나는 한겨울이다.군고구마장사는 여름에 무엇을 할까? 그것이 궁금하다(201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