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 “서문”이 없고 “범례”만 있는 이유는?
환단고기 원서를 처음 볼 때 들었던 이 의문점은 비단 나만 느꼈던 것이 아닌가 보다. 유교 경전의 대가께서 환단고기 서두에 “서문”이 없다는 사실에 짜증까지 내시는 것을 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
Q1. 책 서두에 “서문”이 없다지만 누가 봐도 <범례>라 하는 부분이 “서문”인 것이 자명한데.....
Q2. 계연수 어르신께서 사회에 불만이 있으셨나?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왜 “서문”이라 안하고 구지 <범례>라고 이름을 지으셨는지..... ^^;;;
이 문제를 풀기 앞서 먼저 서문과 범례의 뜻 부터 알아보자.
<서문> 책의 첫 부분에 내용의 개요에 대해 간략하게 적은 글로 책의 맨 앞에 나오는 글. ☞ “유교 경전”의 첫 시작이 서문으로 시작된다.
<범례> 1) 족보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을 주는 말이나 족보의 규모, 편찬 순서, 자손 배열의 순서 등을 기록한 글. 2) 족보 편집 시 범례는 서문 다음에 편제한다. ☞ “족보”에서 기록 내용을 아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였다. (실제로 범례가 없으면 족보책에서 본인 조상을 찾지 못할 정도이다.) 3) 후대에 와서 <범례>는 “논문”의 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자 들에게 참고가 될 주의사항, 즉 본문에 나오는 용어, 약어, 기호, 인용 등에 대한 설명이나 기술(記述) 방법을 나열하는 것을 범례라 부르게 되었다.
☞ “성리학 유학 경전”에서는 <서문>이 중요하고 ☞ “족보”책에서는 <범례>가 중요 하다.
<힌트> 환단고기의 범례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범례, 즉 “족보”에서 쓰이던 범례 형식이다.
공식질문 Q1. 왜 환단고기에는 서문이 없는가? 사실 서문의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1) 책 이름을 환단고기라 짓게된 유래를 적은 범례의 첫 시작 부분과 2) 축언 내용에 해당하는 범례 마지막 부분이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공식질문 Q2. 왜 서문의 형식을 없애고 첫 시작을 <범례>라 하였을까? 그것은 이 책을 조선의 성리학 입장에서 보지 말고, 한 개인의 “족보”, 민족의 “족보”로 봐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태백일사”라는 책 자체가 성리학의 조선이 멸망 한 후 “환국-배달-삼한-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의 종통을 이어 받는 <새로운 국가>가 세워질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Korea 정통을 부여해 줄 역사 사료로서의 의미 부여를 위해 모아놓은 고대 역사 사료집이었다.
더군다나 환단고기가 출간 된 것은 성리학의 조선이 망한 그 다음 해 1911년 이었다.
환단고기를 엮어서 출간한 계연수 선생에 입장에서는 역서책이라기 보다 민족의 정체을 밝혀주는 <한민족 족보>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리학적 냄새가 나는 <서문>이란 단어를 빼고 족보의 서두에서 볼 수 있는 <범례>라는 형식과 단어를 책 머리 시작에다 상징적인 의미로 각인한 듯 하다.
<결론> 환단고기는 시조 “환인”으로 시작된 9천년 국통 선조의 존함과 생몰연대, 제사일과 살아 생전의 치적을 집대성한 “환” 민족의 <족보책>이다. |
출처: 개벽 밸리 원문보기 글쓴이: Marsh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