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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열 대통령 내란 재판에서 <사형>이, 김용현 국방장관은 무기징역이 구형되었습니다. 다음 달(17)에 선고가 있을 예정인데 <사형 확정>이 나올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내란이냐 아니냐?" 가 관건인데 개인적으로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분 전환 차원의 트래킹을 나갔습니다. 복장을 단디 해서 그런지 어제보다 훨씬 여유가 생겨서 공원 웨이트도 하고 길거리 자전거 페달도 거든히 100개씩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행복을 위해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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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고 50년을 발악했는데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이 짓거리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죄와 벌>에서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명언은 라스콜니코프의 여정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 그는 다시 인간으로서의 삶을 찾게 됩니다. 결국 인간의 고통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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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죄를 통해 고통을 경험하고, 소냐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연민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 고통이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죄와 벌>의 두 가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중 첫째는 고통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임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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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과연 살인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 초자아로서 본성인 <이드>는 언제까지 나폴레옹과 싸워야 하는가? 공리주의와 그리스도적 사랑의 차이는 무엇인가? 라스꼴리니꼬코프의 사상과 이념은 정당한가? 누가 비범한 사람에게 살인의 권한을 주었는가? 나폴레옹의 지배의 의지(영웅과의 동일시)는 오늘날 무엇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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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다룬 핵심은 범죄 그 자체가 아니라, 범죄 이후 인간에게 남는 것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법 이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는 도망칠 수 있었고, 합리화할 수 있었고, 공리주의로 자신의 살인을 포장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를 무너뜨린 것은 처벌이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인간은 법을 초월할 수 있다”는 나폴레옹적 사유로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이는 공리주의의 극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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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행복을 위해 한 명의 생명은 희생될 수 있다는 사고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제는 여기서 인간이 숫자로 환원된다는 점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단호합니다. "인간은 계산될 수 없는 존재이며, 고통을 회피하는 순간 비인간이 된다" 라스콜니코프가 무너지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그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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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은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입니다. 그러나 <죄와 벌>의 시선에서 보면, 법의 형벌은 사건의 종결일 뿐, 인간의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처벌이 끝난 뒤, 그 인간은 어디에 서 있는가? 라스콜니코프는 유형지에서도 여전히 고통받지만 그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열림입니다. 소냐와의 관계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는 회개이며, 기독교적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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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가 “무엇이 유용한가”를 묻는다면, 그리스도적 사랑은 “누가 함께 고통받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라스콜니코프의 내면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습니다. 이드(욕망-우월감-지배 의지)와 초자아(도덕, 책임, 타인의 얼굴)의 갈등 같은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은유입니다. 오늘의 지도자일 수도 있고, 정치권력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나는 예외다”라고 믿는 개인의 내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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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드가 초자아를 완전히 이기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정당화한 채 타인을 수단화합니다. 그때 범죄는 발생하고, 사회는 뒤늦게 법으로 대응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 동시에 행복을 고통 없이 얻으려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라스콜니코프의 비극은 행복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건너뛰려 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고통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문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할수록 더 잔인해지고, 고통을 통과할수록 더 인간다워집니다. 사형이 확정되든, 무죄가 선고되든, 철학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법은 사건을 끝내지만, 고통은 인간을 끝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감옥에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습니다. 그 자유는 무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는 용기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죄해서 인간인 것이 아니라,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인간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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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죄를 제거하고 싶은가, 인간을 회복시키고 싶은가? 우리는 질서를 원하나,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나폴레옹을 처벌하면서, 내 안의 나폴레옹은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응쌍팔 8회>입니다. 1988.12. 도봉구 쌍문동입니다. 옛말에 욕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진 세월을 대변한다고 하였는데 서로 속이고 거짓말로 아첨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나도 남을 속이고 독설을 퍼부으며 상처 내기를 경쟁하듯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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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응!..." 아침이 밝았구나..." "택이 아부지 언제 그리 이쁜 장갑을 꼈어요?" "택이가 줬어요. 생일 선물이라고요(무성)" 사업장은 며칠째 손님이 없고 눈이 오는가 싶더니, 어제오늘은 북녘땅처럼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어제 택(박 보검)이 놈 지 아버지 인터뷰하는 비디오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컷에 여심 꽤나 울렸겠더라고요. 아침 일찍 골목길 눈을 쓰는 봉황 당 사장님 손에 예쁜 벙어리장갑이 끼어 있습니다. 일화가 립 서비스를 해줘서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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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현 너 머리 색깔 예쁜데(덕선)" 덕선이가 머리 염색한다고 크라운 맥주 큰 거 3병을 땄습니다. 맥주 3병이면 염색약을 사는 것이 나은 거 아닌가? "엄마 지갑에서 3만 원 없어졌대... 너 아냐?(보라)" 가계부 적는 덕선이네 집에서 30,000원이 없어졌다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일화-보라-덕선-노을 순으로 도미노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결국 귀신이 곡할 노릇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빠인 동일이가 범인일 것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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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 딩 때인가 가로 20cm 세로 30cm 정도 되는 나무 저금통이 우리 집에 있었는데 하단 끝에서 3cm 정도 연결 부분을 있어서 가끔씩 숙련된 솜씨를 발휘하여 돈을 빼고 뒤처리를 깔끔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갑작스러운 수사 착수를 선언하고 6남매를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그때 큰 누나는 돈 벌러 서울에 갔고, 5남매가 한 사람씩 우리 집 대공 분실로 들어가 조사를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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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직고하면 선처해 줄게(엄마)" 필자는 냉전시대를 살아온 본능으로 절대 형사 말은 믿지 않습니다. 울 어머니 별명이 "형사"거든요. 그날 5남매는 울 어머니의 심한 고문을 받았고, 남동생이 태형을 견디지 못해 총대를 매는 것으로 일단락된 적이 있습니다. 동생아! 미안해! 형이 범인이야! "근데 엄마 노을이가 아닐까?(말하지 마라! 상처받을라) 나는 안 삐뚤어져... 나 노을이랑 겨우 한 살 차이야...흑흑흑!(덕선)" 정봉이가 대학에 또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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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잘못 들은 것일 수 있어(라미란)"내가 다시 한번 전화해 볼게...괜찮다 또 보면 되지 뭐... 떨어지니까 시험이지 어깨 펴라!(성균)" 우리의 호프 정봉이가 7수에 실패하고 심장 판막 수술 일정이 잡혔습니다. 미란이 심란한 마음을 다 잡아 보려는 듯 아모레, 주단 학 화장품 방판 아줌마를 부릅니다. 당연히 정환 이 아버지는 2시간 동안 집을 쫓겨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줌마 세 명이서 얼굴에 종이 팩을 하고 드러누웠습니다. 여자만 4명이 있는 저는 이 광경을 몇십 년을 보았고 결혼하고도 또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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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남자도 마사지 하는 것이 크게 흉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도 기분이 꿀꿀할 때는 오이도 얼굴에 붙이고 종이 팩도 곧잘 붙인답니다. “오늘은 왠지 따끈따끈한 온돌방에 누워 마사지 받고 싶어라~ “ 방 판 하는 아줌마가 라미란 여사에게 피부 좋다고 열라 립 서비스를 날리자 미란이 좋아 죽습니다. 나도 이런 립 서비스 좋아합니다. 정환 이가 걸핏하면 코피를 흘리고 정봉이가 심장 판막 수술을 하는 것은 유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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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주 아토피만 생각하면 저나 봉팔이네 부모들은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예주야, 미안해! "누나 어디 가세요?(선우)" "남자 친구 만나로!(보라)" "어떡하냐?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는데(정환)" "아니야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선우)" 덕선이가<담다디>에 맞춰 춤을 추며 제대로 까불어 댑니다. 정환이는 꼽다고 하고 택이는 마냥 좋아 죽습니다. 에예공! 결혼은 택이랑 하는 거야 알쥐?(아빠)" "야! 택이 오랜만에 왔는데 시켜 먹자. 라면이 뭐야(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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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내가 극장도 못 찾아갈까 봐(택)" "너 코피... 체질이 대 체질..." 정봉(안재홍)은 자신의 보물 상자(전화번호부-우표 수집-사각 퍼즐-LP-일기장 등등)를 모조리 정리해 정환(류 준열)에게 주고 죽음을 준비합니다. 나는 매사 심각한 정봉이가 너무 좋습니다. 술에 취해서 언제나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사 오는 동일 때문에 일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남편 용안에 시퍼런 멍을 내고 말았으니 능지처참을 당해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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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가 과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남친의 불륜 사실을 확인했으니 누군지 몰라도 그놈은 이제 뒤졌습니다. "왜 남의 남자 친구가 니 오빠야?... 키스했니?(보라)" "너한테 미안해서... 친한 친구니까... 보라야 미안해! 정말... (친구)" '됐어 그만해 나 오늘부터 그 오빠 안 봐! 너도(보라)" 찹쌀 떡 메밀 묵!" "동생아! 오늘 형이랑 같이 잘까?(정봉)" "아빠 눈 왜 그래(엄마가 돌 던졌어)" "오늘 연탄불은 제가 갈아 드리지요(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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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세요(없다고 해) 없다고 하라네요(노을)" "나 잘 거야! 깨우지 마!(보라)" 전화를 해도 안 받고 집에 찾아와도 소용없으니 이제 이별만 남은 셈입니다. 선우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택이는 끝났나?... 이겼겠지... 덕선 아 니가 택이 좀 데려와!" "야 가방은... 또 안 갖고 왔지... 뭉그적대지 말고 빨리 갔다 와!(덕선)" "정봉아! 밤 먹자 내일부터 금식이니까(미란)" 의사가 왔다간 뒤 정봉이가 우울해져서 이불을 뒤집어써버렸습니다. "정봉아!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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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라 좋아하면 제정신이냐? 또라이지 또라이(덕선)" <마니또>놀이에서 택 이가 선택한 여자는 덕선이었고 함께 영화를 본 것도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케미 조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덕선(혜리)은 우연히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노을(최 성원)을 목격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하였는데 결국 3;3 패싸움으로 번집니다. "노을아! 왜 울어?" 경찰서로 연행된 아이들을 찾으러 일화가 오고 동일이 오고 학주까지 왔고 상대 여학생 언니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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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언니가 보호자랍니다. 우리가 각박한 세상에서 살지만 내 새끼 귀한 줄 알면 남의 세끼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울 딸내미가 중 딩 때 일진하고 맞 짱 트는 사실을 확인하고 뒤로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어젯밤에 에스더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고 한 잠도 못 잤습니다. 같은 반 민정이라는 애가 금쪽같은 울 딸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코지를 해대며 심지어는 방과 후에 따로 전화해서 딸애랑 친한 아이들에게 싸움을 걸었고 벌써 몇 번은 불러갔다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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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습니다. 가족들끼리 언젠가 찜 방에 갔다가 우연히 남자 중 딩 들을 대면했었을 때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었는데 아니라 다를까 제 예감이 맞았습니다. 만약 방학 중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교장, 학생지도 샘을 찾아가 난릴 쳤을 텐데 지금은 방학 중입니다. 아침에 사마리아 여인을 묵상하다가 너무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주님은 남편을 여섯이나 바꾼 여인에게도 찾아가시어 편견 없이 사랑을 베푸셨지만, 전 어젯밤 잠 못 이룬 가운데 민정이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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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의 옹졸함이여! “ 알고 보니 노을이 여친도 고아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해코지 대상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대상입니다. 보라가 담배가 떨어져서 나갔다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친 과 만났습니다. 하필, 선우가 빨래 걷으러 갔다가 다 보고 있습니다. “ 실수야,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가지고...내가 미친놈이야, 미안해! 한번 만 봐주라(남친)“ ”미안하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 난 형 난 용서 못 해! (보라)" ”난 너처럼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여자는 처음 봤어... 넌 여자로서 최악이야! (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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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못 됐 처먹었네. 넌 나한테 걸렸으면 디졌어. 보라가 주먹을 불끈 누르고 오열합니다. 왜,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된 줄 아시나요? 대개 어느 한쪽이 더 애절한 구애로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동하여 다른 한쪽이 마음을 열 때 사귀게 되지요.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불꽃이 튀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한 쪽의 희생이나 헌신에 기대어 그 사랑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의 호의를 당연시하고 늘 받기만 하고 심지어 한눈까지 판다면 더는 사랑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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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들고 빗물도 눈물도 닦아주는 남자 선우가 나타났습니다. “저 형 누나 진짜 모른다. 누나 따뜻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선우)” 드라마에서 2년 전 상항이 오버랩 됩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검은 교복을 입고 있는 보라와 선우의 데칼코마니를 상상해 보시라. "이럴 때는 그냥 우는 거야 선우야!(보라)" 그래서 누나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 같습니다. 기습 키스를 하고 도망치는 선우는 계속 진도를 잘 빼고 있습니다. 잘한다. 선우! 보라는 과연 선우의 마음을 받아 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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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술을 하루 앞두고 정봉 이는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왜 그래, 정봉아! 왜? 잠이 안 와! 무서워?... 걱정하지 말고 얼른 푹 주무시게(미란)" “ 엄마는 강한 사람이잖아요.(정봉)” 보호자 침대에서 동생 정환 이가 잠들어있습니다. 늦은 시간 홀로 대기실에 우두망찰 앉아있던 미란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담당 의사가 전에 한 말이 걸렸는지, 아니면 짠했는지 이번엔 걱정하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를 합니다. 이 대목에서 모든 엄마 아빠들은 눈물이 날 것입니다. 라미란 중대장 짱입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2.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시대와 언어의 책이다. 하나는 죄와 구원, 신과 회개의 언어로 쓰였고, 다른 하나는 자유와 선택, 책임과 불안의 언어로 쓰였다. 그러나 두 책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인간을 붙잡는다. "인간은 자기 행위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1. 사형은 법의 언어이고, 고통은 존재의 언어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는 법 이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직후부터 도망칠 수 있었고, 공리주의로 정당화할 수도 있었으며, “내란이냐 아니냐”처럼 정의의 경계를 흐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 속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노출된 존재, 즉 자기 행위의 전부를 떠안은 ‘대자적 존재’가 된다. 법이 사형을 선고하든, 무기징역을 선고하든, 혹은 무죄를 선고하든 상관없이 그는 이미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를 규정한다. 그래서 사형은 인간을 끝내지 못한다. 법은 사건을 끝내지만, 존재는 끝나지 않는다.
2. “모든 인간은 자기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 그때 문제는 ‘어떻게’다
라스콜니코프도 행복을 원했다. 윤리적 인간이 되고 싶었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문제는 목적이 아니라 경로였다. 그는 고통을 통과하지 않고 결과만 취하려 했다. 사르트르는 이를 '자기기만(bad faith)’이라 부른다. 자유롭지 않다고 믿음으로써 자유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 “나는 예외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나폴레옹이다”라는 믿음. 이 순간 인간은 타인을 숫자로 환원한다. 한 명의 생명은 ‘계산 가능한 비용’이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단호하다. 인간은 계산될 수 없는 존재다. 사르트르는 더 잔인하다. 그 계산을 선택한 책임에서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한다.
3. 나폴레옹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구조다
<죄와 벌>의 나폴레옹은 단지 정복자가 아니다. 그는 “나는 법 위에 있다”고 믿는 모든 인간의 은유다. 사르트르의 언어로 옮기면, 이는 초월하려는 욕망이 책임을 거부할 때 발생하는 폭력’이다. 이드(욕망, 우월감, 지배 의지)가 초자아(타인의 얼굴, 책임, 윤리)를 압도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정당화한 채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다. 그때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 된다. 사회는 뒤늦게 법으로 응답하지만, 이미 인간은 붕괴되어 있다.
4. 공리주의와 그리스도적 사랑, 그리고 사르트르의 잔혹한 중간지대
공리주의는 묻는다. “무엇이 더 유용한가?” 그리스도적 사랑은 묻는다. “누가 함께 고통받는가?” 사르트르는 여기에 신을 두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선택해야 한다.” 사랑은 명령이 아니며, 고통은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는 순간, 인간은 이미 선택한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유형지에서야 자유를 얻는다.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자기 행위를 부정하지 않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5. <응답하라 1988> 고통이 인간을 인간으로 남겨두는 방식
당신이 불러낸 쌍문동의 장면들은 철학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핵심이다. 정봉의 겁, 미란의 눈물, 보라의 오열, 선우의 우산, 동일의 실수, 일화의 분노, 덕선의 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도덕이 아니라 서투른 책임의 연쇄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누구도 계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고통은 관계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라스콜니코프가 인간으로 돌아온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죄를 끝내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형은 통제의 언어이고, 무죄는 법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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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존재는 판결 이후에도 계속된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한 선택의 총합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덧붙인다. “그리고 그 선택을 고통 속에서 끌어안는 순간, 인간은 다시 인간이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죄를 제거하고 싶은가, 인간을 회복시키고 싶은가? 우리는 나폴레옹을 처벌하면서, 내 안의 나폴레옹은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고통 없는 행복을 꿈꾸며, 타인의 불행 위에 집을 짓고 있지 않은가? <죄와 벌>과 〈존재와 무>가 만나는 지점에서, 답은 하나다. 인간은 무죄해서 인간인 것이 아니라,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인간이 된다.
2026.1.16.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