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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가 뺑뺑이 돌다.
매일의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별로 변하지 않은 생활을 하다보면 인생유전人生流轉이란 말이 실감난다. 조영남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고 노래했듯 지구도 돌고 놀이공원의 대관람차가 돌듯 우리의 삶도 돌고 있다. 얼마 전에 나는 큰 수술을 받은 후에 공원이나 산길을 따라 힘겹게 몇 바퀴씩 돌았다. 맴맴 코끼리 돌기를 하다가 일어서면 어지러워 넘어질 듯하다가 비틀거리다 용을 쓰며 앞으로 걸었다.
수술을 마친지 십여 시간이 지나 복부를 부둥켜안고, 링거와 진통제가 주렁주렁 매달린 폴대를 밀며 병실복도를 걸었다. 체온이 37도 이상이 되어 2시간마다 0.2도씩 상승하다가 저녁에는 38도에 육박하였다. 이를 관계치 않고, 나는 2시간마다 병실복도로 나서 뺑뺑이를 돌았다. 병실에 들어서면, 아들이 “아버지 기침소리만 크게 내지 말고 작은 기침소리가 나더라도 복부가 울리는 기침을 하세요. 다시 한 번만 더!”라는 잔소리를 하니 복부를 부둥켜안고 심호흡을 하고서 다시 산소호흡기를 댔다.
병상에 누우니 어제 수술 전의 정경이 떠올랐다. 장송곡이 조용히 흐를 것 같은 수술 대기실에서 배드에 누운 내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간호사와 마취의痲醉醫의 간단한 질문이 있은 후 눈을 감았다가 깨어나니 병실입구였다. 수술의 긴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보다는 아픈 복부를 보니, 복강경 수술을 한 상처가 사격장의 표적지에 남은 탄환의 흔적과 같았다.
50일 전만 하더라도 몸속에서 검은 양귀비꽃이 피어 야위어가는 데도 알지도 못했고, 각혈하듯 흘러내리는 출혈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그렇게 낮아졌는데도 무식하게 열심히 살아왔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독버섯이 암이 되어 조용히 독을 뿜으며 나에게 덤벼들어 피곤이 가시지 않고 시름시름 앓게 하더니 아예 죽이기로 작정했나 보다. 마지막까지 발악한 복통으로 시달렸던 내 모습이 큰 돌을 굴리며 높은 산으로 오르는 시지프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집도했던 여의도중학교 제자인 의사가 “지금부터 약 5 ~ 6년 전에 발병된 것으로 사료됩니다만....”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육식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고 음주나 흡연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 주병인主病因이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53년 간 다녔던 교회가 몇 해 동안 심각한 분쟁에 휩싸여 갖가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당시 나는 교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매일의 생활은 힘겨웠고, 분쟁에 휘말리기 싫어 교회의 재판부의 기소위원을 않겠다고 하였으나 억지로 맡게 되어, 교회의 장로라는 직분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분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있었다. 그러나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교회를 위하여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려 하니 나에게 다가온 스트레스가 심하였다. 평소 싸우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나는 분쟁 당사자들에게 고소를 내려놓고 서로 화해하여 하나가 되자고 권유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분쟁이 일어나면 교인들이 극단極端에 서게 되어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져 간다. 더구나 토의를 하다가 사고의 관점이 서로 다른 중직자들에서 큰 소리가 오가면 관계 형성에 역기능이 교회에 미치게 된다. 그러다가 시험에 들어 허수아비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한국 교회가 한계에 부딪쳤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아 자성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정도밖에 안되니,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를 하나님께 되묻지 않으면 스스로 평화만 있는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분쟁이 지속되다 보니, 처음에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목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명분아래 분쟁이 시작되었다가, 본래의 명분이 상실되고, 목사지지파와 반대파가 서로 이겨야 한다는 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 과정 에서 분쟁 당사자들은 교회의 본질과 성경말씀은 도외시 하고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누구의 권면도 듣지 않는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황폐하고 무너진다고 주님께서 말씀으로 경계하였지만, 일단 시작된 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쥐불이 번져 온 산을 태우듯 점점 번져 나갔다.
나의 모교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회 내에 소수의 싸움이 점차 편싸움이 되어 아무리 말려도 진정되지 않았다. 이 분쟁이 심화되어 노회와 사회법정에 고소를 하고, 잘. 잘못을 따지다가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가 나다 보니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지나갔다. 교회의 성장에 교회의 분위기, 목사, 교인들의 열정, 재정 등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모두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싸움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교인들이 분열되어 교회를 떠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끝내 교회를 궤멸시킨다. 교회의 분쟁은 다름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과 진리를 말살하게 되는 암과 같이 치명적인 데미지를 가할 수도 있다.
한국의 교회가 사랑과 법, 이상과 현실, 천국과 속세의 틈바구니에 끼어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교인이 많고 재정이 넉넉한 큰 교회와 훌륭한 설교를 하는 목사가 있는 자랑할 만한 교회가 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허술하게 남을 정 죄하고 죽이려 달려들면서 싸움을 하여 교회의 성장하려는 것이 누구를 위한 패러다임인가? 혹 하늘의 방법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인간적인 방법인가 묻고 싶다. 요즘에 이 방법으로 교회가 성장되었던 적이 있는지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교회의 싸움으로 번진다면, 이 방법이 최악의 방법이라는 것은 싸움이 끝나야 알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분쟁의 후유증이 한 세대 이상 가게 되는 것을 교인들이 왜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교회가 분쟁을 하면서까지 성장해야 하는 것은 그 당위성이 아무리 옳다 하여도 주님께서 결단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주님의 말씀과 근본적으로 상반되며 성령의 도움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심에서 야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에는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원만하여야 한다. 이것이 부족하면 바벨탑이 쌓아져 분쟁의 단초가 되어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분쟁은 빨리 소진시켜야지 갈 데까지라고 결심하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 교회가 분열되어야 분쟁이 끝이 나게 되고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이것으로 인하여 교회가 전보다 형편이 어려워진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교회와 교단들이 분쟁을 조기에 꺼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교인들이 떠나게 되고 끝내 분열될 것을 알면서, 작은 승리를 꾀하다 보니 화해를 거부하여 둘 다 죽게 된다. 교회가 분쟁이 났을 경우에 주님이라면 어찌 하셨을까? 골백번을 물어도 상대에게 져 주어라고 한결같이 대답하셨을 것이다. 왜냐 하면 왼 뺨을 맞거든 오른 뺨을 돌려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져주어라는 뜻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지는 것이야 말로 최후에 이기는 길이며, 화평으로 나아가 월계관을 쓰고 천국에 이를 것이다. “선한 싸움이 아니라면 져라.” 이것이야 말로 분쟁에서 승리하는 요령으로 말씀에 새겨진 로고스이며 쉐마이다.
평소 교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사랑과 화평이다. 그러나 막상 분쟁이 있는 교회는 용서와 관용은 접어두고, 기독교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행해야 하는 사랑은 펴지도 않은 성경 속에 꽁꽁 숨겨둔 액세서리였다. 분쟁이 있는 곳에는 정의(righteousness)와 공의(justice)라는 말을 많이 거론한다. 이 두 용어가 자주 혼돈되는데, 정의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지켜야 하는 바른 도리’라면, 공의는 선악을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적극품성(積極禀性)으로 재판(judge)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이들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한다. 신의 품성을 자신의 권위인 양 여기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므로 법의 정신은 만인에게 공정함을 기초로 하는데, 교회에서 힘이 없는 이에게 엄격하게 적용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망각되었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면, 교회법은 그리스도의 정신 아래 생명을 살리는데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우려면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 형제의 상처부터 싸매주지 못한다면 불공평한 저울이다. 싸우는 곳마다 법이란 맨 말미에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에 사랑이 법의 완성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였다.
사랑과 미움은 양면성이 있어 사이가 원만할 때에 수면 아래에 있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서로 헐뜯고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된다. 놀랄만한 일은 상식 이하의 것도 세 치의 혀로 조삼모사朝三暮四, 조변석개朝變夕改를 저글링이나 퍼즐 맞추기를 능숙하게 하는 요술쟁이처럼 말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극도의 미움은 이미 형제를 살인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게 하고 할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끝내 죽을병으로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바로 그 나라는 사랑과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싸우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긴 다음에 그 말을 행할게.”라고 말을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머리로 믿은 관념적인 신앙인이 되어 가슴으로 행함으로 믿지 못하였다.
고난을 받으며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안디옥 사람들아! 걸음을 멈춰 서서 사랑을 잃은 21세기의 세대와 한국의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다오. 말씀의 본질을 지키려고 순교로 세워진 한국의 교파가 분열이 심화되더니, 한 세기가 지나 순교와 헌신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 물질주의, 권위주의와 세속주의로 팽배되어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교회가 회칠한 무덤이 되어버렸구나. 오호라! 한국의 교회가 사랑을 잃고 형제를 용납하지 못하더니, 끝내 저주 아래 죽음을 자초하여 무너지는 여리고성이며 여우에 농락당한 울타리로구나. 미리암이여, 드보라야! 승전의 노래를 그치고 베옷을 입고 돌밭에 엎드려져라. 한국의 교회여! 어찌하여 교회의 울이 훼손되는 줄도 모르고 서로 미워하더니 끝내 포도밭을 엉망으로 만든 여우만 길렀구나. 오호통제라!
싸우는 교회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비신앙적으로 살아왔던가를 알 수 있다. 싸움꾼들은 “싸울 때는 사랑 이야기는 좀 접읍시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라고요. 웃기는 소리를 마오. 교인들이 시정잡배와 같이 되면 말께나 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인 것이요.”라는 가치관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아무리 교회에 인내심이 있는 순종의 종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일만 되면 싸워대니, 싸움에 질린 교인들이 하나 둘 다른 교회로 떠나버려 황량하게 된다. 한국의 교회여! 정신을 차리고 작은 언덕의 성 소알에서 소돔의 멸망을 바라보아라.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는데, 이렇게 분쟁이 격화되니 그러한 곳은 유황불이 떨어진 소돔과 고모라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회야, 한국의 교회야! 너를 위해 재 위에 앉아 통곡하는 이가 없느냐? 아 슬프도다. 예레미야여! 왜 이 세대의 한국의 교회를 외면하며 눈물을 거두십니까?
나는 교회가 돌무더기가 남은 돌밭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밤에 울부짖었다. 제발 싸우지 말고 고소를 취하하라고 말하였으나, 내 자신이 당회에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엘라 휠러 윌컥스(Ella Wheeler Wilcox)의 ‘인생을 살아가며’에서 “...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의 결점을 찾지 말라.╱그리고 네가 그걸 찾아내더라도 슬기롭고 온유하려면, 눈도 좀 감아주고.....”라는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과 원칙 주장하면서도 점점 종교적 본질보다 아집이 나를 앞세웠던 것 같다.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교인 어느 누구도 다치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아이러니 하게 내가 교회 내에서 제발 싸우지 말고 화해를 하자고 하면서, 내가 바로 그 명분으로 싸움의 중심에 소용돌이에 점점 빠져들어 갔으니, 내 자신이야 말로 그야 말로 모순투성이였으니 못났도다.
밤마다 교회의 바닥에 꿇어 앉아 교회의 용서와 화평케 되기를 부르짖었으나, 교인들의 싸움은 더 격렬하기만 했다. 친구들도 마음이 나누어져 얼굴이 굳어져 있다. 심지어 내가 속한 남선교회 총회 준비를 마치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밖이 시끄러워 내려오니, 이유도 없이 두 친구에게 멱살도 잡혔으니, 이는 나의 부덕한 소치였으니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기도도 찬송도 변질되고 말씀도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당회를 하면 안건이 점점 말씀에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아무도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아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감정이 격해져 큰소리가 났고, 회의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짜증부터 내었다. 밤에 잠이 자주 깨었으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속이 늘 거북하였다. 지금 와서 분쟁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단지 교회의 분쟁으로 타교회로 떠났거나 남아있는 교우들에게 용서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혹 나에게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이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록 떠났지만 내 신앙의 본향이자 첫사랑인 모교회와 교인들에게 기도로서 문안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힘이 있는 자는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힘이 없는 이가 정의를 부르짖어도 고난을 당할 때가 많다. 마치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피해자들에 고자질을 잘 했던 시지프스가 제우스에게 천형을 받아 무거운 돌을 산정에 올리다가 내려오면 다시 끌어올리며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그는 그 고자질이 정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나, 달리 생각하면 힘이 있는 신들에게 부당하게 천형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말도 못하고 고난을 당하는 이들 중에 시지프스처럼 뺑뺑이를 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주안에서 바로 살려고 바란다면 모두 잊어버리고 스스로 짐을 지려 말고 주님께 그 짐을 맡겨버려야 한다. 살려고 뺑뺑이를 돌며 걸을 때도 있다. 그러나 미움의 그림자 속에서 원망으로 걷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장막 속에 망가진 세간들도 많지만, 그러한 단련 속에 영혼은 정금처럼 빛을 발하며 하늘의 평화와 영원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병실에서 일어나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이 새벽에 순간순간 나를 어루만져주시며 위로해주시는 부드러운 손길이 다가왔다. 한없는 탄식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품에 안겼다. 그러다가 병실 밖으로 폴대를 끌고 걸으니 드르르끼끼 마찰음이 나자, 병원에서 만난 형제자매인 김종찬 목사와 포천에서 온 이 권사도 나의 보폭을 맞추어 함께 뺑뺑이를 돌았다. 폴대의 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렸다. 이 소리가 굉음이지만 사랑의 소리가 된다면야 크게 울려라. 우리들은 수술 전후에 실의에 빠지거나 두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하며 기도를 하였더니 힘을 얻었고 그들의 병실을 찾아가면 반겨주었다. 퇴원하던 날, 긴 편백나무 가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으니, 씩씩대며 욕심도 없이 살아왔던 세월의 가로街路에 어느 누구도 고생했다며 부르는 소리조차 없다. 이제 나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으나, 이것을 굴리며 시지프스처럼 산정으로 올라가야 할 오기밖에 없는 듯하다. 뺑뺑이를 돌자꾸나.”라고 달래며 평소보다 긴 글을 쓴 것이 오두방정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으로 잠시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늘의 사람들아! 나그네가 갈 길도 먼데 싸워가며 길을 걸었다니 우리 모두 바보천치였음이 틀림없다.
마치 긴 터널을 통과한 듯이 글을 썼다. 이 글은 만고에 빛나는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가詩歌나 잠언도 아니라, 질곡의 골짜기를 헤매었던 나와 너와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을 거칠게 표현했을 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저리도록 아팠던 것은 너무도 교회와 교우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혹 이 글에 공감하여도 무덤덤할 것이며, 반감으로 욕하며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피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지난 일을 모두 잊고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예수쟁이로 바로 살기를 소망한다.
나도 빨리 뺑뺑이만 도는 시지프스를 닮은 존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향유享有하고, 더 이상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어 심연으로 던져 버려야 한다. 이제 누구와도 만나도 “살롬”이라고 말하며 화평을 가슴에 담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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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장로님 무거운짐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하시길....
또한 주님과 침묵의 기도 시간을 즐기시며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미련한 시지프스인것을..
시지프스의 삶이 있었기에 천지를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오..
그래서 앞으로는 '살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도 생긴것 이라오..
사랑합니다.. 공장로..
친구들의 위로에 늘 감사하오.
이 장로님, 걱정 마시길...
글을 썼을 때에 이미 내려두었으니 가능했던 것입니다.
공장로님! 8개월이 지났네요~~
오늘에사 귀한 글을 읽었다오.아픔이 병으로 또 수술로 그리고 회복으로....
머리카락 한점도 빠지지 않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지극히도 사랑하시는구나 생각했었지만 감사하네요.
내려놓고 비움을 배워야겠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윤 장로님! 과찬이요.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무수히 뺑뺑이를 돌았던 거요.
이제는 더 이상 뺑뺑이를 돌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