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0일(일) 14시42분03초 KDT
제 목(Title): 음녀사상에 대한 글을 시작하면서...
전 포스비 보드에 글을 주로 올리고 있는 hbh라고 합니다. 한때 키즈 보드에 글을 올리면서 `사탄'소리도 들었고 얼마전에 어떤분은 `정신병자'로 모시더군요...
전 포항이 우상숭배가 심한 도시임을 지적했을 뿐인데 어떤 분이 `사탄의 도시'로 뻥튀기를 하는 바람에 참 난처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사탄의 제일 전략을 터득하고 계신것 같더군요. (정녕죽으리라->죽을까 하노라->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포스비에 올린 글의 답장이 키즈에 올라와잇는 것도 놀랍고... 아주 마음껏 요리를 하셨더군요. 제가 올린 글은 천주교가 음녀사상을 이어받은 말세의 타락종교임을 밝히는 글이었는데 워낙 많은 분들이 저를 욕하고 협박까지 해서 어쩔 수 없이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천주교에서 빠져나온 어떤 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좀 더 신중한 자세로 네피림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탄의 전략, `음녀 사상' 및 `바벨론 비밀종교'를 확실하게 파헤쳐보기로 하였습니다.
에덴 동산의 타락에서부터 지금의 천주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탈바꿈을 하며 자신의 정체를 위장해온 `바벨론 비밀종교', 그리고 창3:15에서부터 오늘날 한국 교회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주님의 언약을 통하여 자신의 마지막 때를 알고 발악하며 하나님 형상 닮은 인간을 실패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실체를 폭로하고자 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면서 벌써 부터 마음 속에 칼을 세우고 이를 가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아마 좀 다른 영에 속한 분들이 아니면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과하게 넘치는 분들이겠죠.
포스비의 글을 어떤 분이 읽고 왜 그리 교만하냐고 하시더군요. 제가 교만해도 좋고 정신병자여도 좋고 심지어는 사탄으로 몰려도 좋습니다. 제 글에 동의 하고 돌아오는 천주교 교인 한명과 이 악한 세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리고자 하는 한명의 일꾼에 이 글이 읽혀지기를 원합니다.
몇몇 키즈의 터줏대감 여러분... 공허한 비판이들랑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눈으로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신다면 기뻐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hbh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0일(일) 14시53분51초 KDT
제 목(Title): 음녀사상을 파헤친다(1)창조와 타락의 이유
음녀사상을 파헤친다(1)창조와 타락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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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음녀사상은 그 근원인 사탄의 출현과 인류의 타락을 알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실패시킨 사탄의 근원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불순종의 여지를 주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제 생각을 먼저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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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안타까와하여 하와를 지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담이 외로움을 호소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아담이 가진 그 외로움에 대해 이해하고 계셨고 그 외로움은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외로움을 이해하신 하나님은 그 자신도 외로우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므로 늘 혼자 결정하고 시행하셨던 것입니다. 의논할 대상도, 외로움을 나눌 대상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크고 깊은 외로움을 나누고 그분을 이해해 드릴 대상일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손수 흙을 빚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위해서 자기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창조하시고자 완벽한 자유를 주셨고 이 자유에는 배반의 자유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대상은 흠이 없어야 했고 사랑의 대상이 가진 자유 또한 흠이 없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굴레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배반으로 입을지도 모르는 상처와 아픔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시면서 또한 완벽한 자유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완전한 축복도 주셔서 주께서 엿새동안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습니다(창1:27,28).
인간은 하나님의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 서사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존재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천사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루시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루시엘에게 온갖 재능과 지식을 다 주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잘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겔28:13-14).
루시엘은 최고의 아름다움과 권세를 가진 피조물이기는 했지만 인간처럼 하나님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루시엘은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세를 가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인간의 창조를 시기했고 결국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월권이었습니다. 본래 천사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들어 수행하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습니다(히1:14).
하나님께서 이를 묵살하고 창조의 작업을 진행하자 루시엘은 동료천사들을 선동,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그는 하늘에서 추방되었으며 이때부터 영광스럽던 천사 루시엘이 저주받은 루시퍼, 사탄이 된 것이었습니다(사14:12-14).
공중으로 쫓겨난 사단은 마음에 분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하늘의 천사 삼분의 일을 함께 타락시켰으며 자신의 영화를 한순간에 빼앗긴 모든 원인을 인간에게 두고 그들을 실패시키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복수극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를 경계하사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고 대비하라 하셨습니다(창2:15). 아담이 주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사이, 뱀(=사탄)은 혼자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 하와를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 즉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과 인간의 완벽한 자유를 위해서 두었던 약속인 선악과를 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탄이 썼던 전략은 다름아닌 `거짓말'과 `평등'이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교묘하게 하와를 속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부추겨서 불순종과 반역을 유도했던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존재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사는 존재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여야만 모든 축복과 사랑을 누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말을 따랐으므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롬3:23).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도, 축복의 대상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고 육신적으로 저주를 받아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했으며 그 운명이 사탄에게 사로잡혀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엡2:2-3, 요8:44).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그 순간에 우리에게 더 크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오히려 종의 형상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고 그의 사랑을 회복하고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2장).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가 바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고 주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여인의 후손'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깨뜨려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킬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에게 함께 하시어 모든 사탄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믿고 구하는 것마다 들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창3:15는 사탄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사탄은 그가 능히 `여인의 후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해서든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모르게 하는데 전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오히려 더 발악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망가뜨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거짓 여인', `음녀'를 등장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론 비밀종교', `음녀사상' 및 모든 우상숭배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참고: 김성일,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hbh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0일(일) 15시15분57초 KDT
제 목(Title): 음녀사상을 파헤친다(2)네피림시대
사탄은 `마귀'라고도 하는데, `이간자', `끼인자'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끼어서 그 사랑을 깨뜨린 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이 `아가페'의 사랑을 사탄은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사탄이 천사였을 때에 피조물중 최고의 지식과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기는 하였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완전한 사랑'을 가진 인간을 이 천사는 시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을 알았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네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3:1-2)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13:8)
사단이 가진 것들은 이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탄이 알고있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뿐이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안목의 정욕'을 이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공격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아가페'의 사랑을 잊도록 유혹하였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첫 사람 아담을 타락시켰을 때, 아담은 주님께서 주신 더 크신 `사랑', `여인의 후손=메시아'의 언약을 붙잡고(창3:15) 여자의 이름을 `하와= 생명=모든 산자의 어미"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난 `가인'이라는 아들은 바로 이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6)
그는 언약을 놓치고 아우를 시기하여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뻔뻔하게 주님 앞에서 아우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변명까지 늘어 놓습니다. 이리하여 `처음 살인한 자', `거짓의 아비'가 되었던 것이며 이는 모두 마귀에게서 난 것이었습니다(요8:44).
가인의 후손들은 이 가증한 것들을 이어받아 인류 타락문화의 시작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가인의 아들 `에녹'은 근본 밭 토지를 버리고 `성'을 쌓아 하나님 떠난 문명의 출발이 되었고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하여 분쟁의 씨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악함은 대가 지날 수록 더하였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이로다." (창4:24)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죽은 아벨 대신에 `셋=대신'을 주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창4:26). 셋의 자손들은 언약을 수호하였으며 가인의 타락한 에녹과는 달리 셋 계보의 에녹은 주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들리워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죄로 물들은 가인의 라멕과는 달리 셋의 라멕은 노아를 낳고 그에게 언약을 심었습니다(창5:28-29).
그러나 사탄은 끊임없이 공격했고 결국 셋의 후손들도 점차 무너져갔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6:1-2)
셋의 아들들은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했고 그들의 좋은 대로 아내를 삼아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메시아 언약'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취함을 `사랑'이라 하지 않으시고 `좋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그들은 언약을 등지고 영적으로 죽어 육체가 되어버려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창6:3).
사람들은 차차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였고 그들에게는 사탄의 악함이 더해졌습니다.
네피림은 `네파야=떨어지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것으로 `떨어진 존재에 사로잡힌 사람', 즉, `신접한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그들에게는 사탄의 악한 힘이 더해졌고 고대의 용사가 되었으며 그들에게는 온갖 죄악이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창6:4-5)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잃은 슬픔과 네피림 들의 악함을 보고 근심하시다가 결국 인간을 지었음을 한탄하시고 이를 모두 쓸어버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창6:7)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8)
KJV 성경에 따른 원문에 의한 해석을 보면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더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여호와는 주님의 한숨과 노하심 속에서 주님이 인간에게 주셨던 `완전한 사랑'을 깨달았고 주님은 그를 `당세의 의인'이라 하시고 그를 통해 새로운 인간의 역사를 여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홍수 심판'이었습니다.
hbh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3일(수) 01시33분07초 KDT
제 목(Title): 음녀..(3)사탄을 멸하시지 않는 이유
(3)왜 하나님은 사탄을 멸하시지 않는가?
하나님께는 하나님만이 가지신 속성이 있습니다. 한번 정하신 뜻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막기위해 온갖 거짓말과 음행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축복과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관리하고 주님을 찬미하도록 지음받은 천사였습니다(겔28:12-14).
사탄이 비록 타락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천사였을 때 주신 지혜와 권세를 없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변치 않으심'은 사탄에게는 오히려 타락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이킴이 없으시고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에 사탄이 천사일때 받았던 지혜와 권세 또한 없애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이 사탄의 세력을 꺾고 불순종하였던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가지신 분(마28:16)을 이땅에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분이 바로 구약의 메시야, 신약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이를 B.C.490년경 천하를 재패했던(에1:1)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과 유대인 왕비 `에스더', 그리고 유대와 원수지간(삼상15:8-33)이었던 하각 사람의 아들 `하만'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하스에로 왕은 B.C.480년에 헬라를 침공하였다가 살라미스 전쟁에서 대패하고 귀국하면서 추락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압제 정치를 벌입니다. 이때 아하수에로 왕은 간신 하만을 총리로 세웠으나(에3:1) 하만은 그의 종족과 원수였던 유대인들을 멸하고자 하여 왕의 조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여인의 후손'을 막아보려는 사탄의 보이지 않는 계략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 최후의 날이 점점 다가 올 때, 에스더는 사흘을 금식하며 기도한 후 죽기를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을 찾아갑니다. 왕의 마음을 돌이키는데는 성공하였지만 한번 내린 조서는 취소할 수 없기에(에8:8) 왕은 대신 자신의 인장인 반지를 빼어 에스더에게 주었고 이에 에스더는 유대인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고 대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대적 하만은 처형되고 인장은 유대인 모르드게에게로 넘어가 대적과의 싸움의 승패는 뻔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에8:11-12).
하만에게 주어진 조서에 대해 왕은 에스더에게 왕의 모든 권한을 담고있는 인장을 에스더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큰 지혜와 권능을 받았지만 우리안에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모든 권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성령이 내주하고 있습니다(마28:18, 고전3:16).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므로 우리의 싸움은 마치 승패가 결정된 축구경기 재방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순간 위기가 있어 우리를 낙심케하지만 그 결과를 아는 이상 우리는 담대하게 일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왕,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날마다 승리하게되는 것입니다(요일3:8).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이 메시아 언약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에 이르기까지 결코 변함이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은 단순한 히브리 민족의 역사서가 아니라 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주신 생명보다도 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사단은 정사와 권세 잡은 자를 통하여 끊임 없이 `여인의 후손'이 오실 언약의 핏줄을 단절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약 붙잡은 에스더의 기도는 언약의 핏줄인 유대 민족을 멸망으로부터 구해내었고 480년 후 마침내 그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hbh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3일(수) 01시34분17초 KDT
제 목(Title): 음녀..(4)무지개언약
(4)무지개 언약-변치않는 하나님
네피림의 타락을 보고 주님은 땅에서 숨쉬는 모든 것들을 멸절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앞 글에서도 보았듯이 주님의 말씀은 타락한 천사에게 주셨던 권세도 다시 뺐으시지 않을 만큼 변함없는 것이었습니다.
창3:15의 언약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홍수 심판때 이미 멸망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끊임없는 도전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아니하시고 노아를 통하여 메시야를 향한 새로운 구속사를 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창6:18)
노아는 매를 드는 아버지의 눈에서 주님의 한 없으신 사랑을 보았고 메시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언약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자 모형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 지라도 방주 안에 들어 온 자는 살았으며 홍수 심판을 믿지 아니한 자는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어떤 의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걷히고 아라랏산에 이른 노아는 감사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에, 노아에게 주님은 다시 창2:28의 놀라운 축복을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1)
그리고 다시는 물로 심판치 않으시리라 약속하시면서 무지개를 주시고 그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인간과 세우셨던 언약과 홍수 심판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3)
그러나, 이것이 사탄의 최후는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세운 언약을 방해하기 위해 새로운 계략을 꾸며냈으니 노아의 둘째 아들,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의 목표물 되었던 것입니다.
h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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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3일(수) 01시35분31초 KDT
제 목(Title): 음녀..(5)저주받은 가나안
(5)저주받은 가나안
방주 바깥으로 나온 세상은 참담했습니다. 모든 육지의 생물이 사라지고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있던 짐승과 새들만이 남았습니다. 비축했던 양식이 거의 없어지자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담 이후 `밭의 채소'만을 먹었던 인류는 이때부터 육식을 시작하였고 야수를 포함해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유지했던 인간과 동물세계에 드디어 `약육 강식'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창9:2).
그러나 고기를 먹되 그 `생명되는 피'는 먹지 말라 하시고 피를 모두 흘리고 난 후 먹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의 피'를 사람에게서 찾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쏟고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창3:15 언약을 의미합니다(창9:3-6).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은 다시 이어졌고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게 사로잡히면서 그 저주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새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였고 포도를 거두었는데 노아가 너무 기쁨이 넘쳤던 탓인지 그만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장막안에서 벌거벗고 말았습니다(창9:20-21).
원래 반항적인 둘째 아들의 본성일까요, 가나안의 아비 함이 이를 보고 아비의 허물을 고하매 장자인 셈과 막내 야벳이 뒷걸음질로 장막안으로 들어가 아비의 허물을 덮었습니다.
후에 그 사실을 안 노아는 `가나안의 아비' 함을 저주하여 가나안이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될 것임을 예언하였고, 아비의 허물을 감춘 셈과 함에게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9:26-27)
셈에게는 주님은 `여인의 후손'으로 셈의 계보에 오실 그리스도의 축복을 주셨고 야벳은 셈의 장막안에서 창대케 하도록 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리워지지 않던 아담과 하와의 허물을 짐승의 가죽으로 덮으시듯,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바로 이 장자, `셈'의 후손으로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을 들추어서 더 죄악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사탄은 이 `가나안의 아비' 함의 후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우상 및 문명의 근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을 잘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왜 함을 `가나안의 아비'라고 부르고 또, 함이 잘못할 것에 대해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나안'은 `메시야가 오실 땅', `천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예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을 대적한 온갖 우상숭배에의 출발이 되었고, 이리하여 하나님 떠난 문명과 우상숭배가 `가나안'이라는 단어 하나로 대표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가나안의 손자인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은 여호와를 대적하여 일어선 첫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니므롯과 바벨탑, 그리고 황후 세미라미스, 유복자 담무스의 등장은 인류에게는 너무나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고 이때부터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 언약이 사탄의 `음녀사상'으로 인해 점차 잊혀지고 정사와 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나안의 저주, 그것은 인류사를 피로 물들게 했던 온갖 음행과 죄악의 새로운 출발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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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5일(금) 05시03분30초 KDT
제 목(Title): 음녀...(6)니므롯과 바벨탑
(6) 니므롯과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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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글들은 특별한 자료가 없이 주석성경, 김성일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를 참고로 하여 쓴 글입니다. 저의 의견이 많이 포함되어서 객관적이지 못한 표현들이 많지만 이야기의 맥은 성경 말씀을 근본으로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자료를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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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을 볼 때마다 들판의 야수과 맞서 용맹함을 떨치던 함의 후예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흑인들은 바로 이 함 족속의 후예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은 함족의 후예들에게 비옥한 숲과 들의 맹수로부터 생명을 보존하고 보다 넓은 땅에 충만하도록 용맹함과 함께 진취적이며 활달하고 낙천적 기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점차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 붙잡히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약자를 지배하고 타락하는데 쓰이고 말았습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창10:8)
가나안의 저주받은 핏줄에서 니므롯이라는 `영웅호걸'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인간의 능력을 좇게되는 `인본주의' 사상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니므롯은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없애고 자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그의 뛰어난 지혜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이는 곧 `정사와 권세'를 통한 사단의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엡2:2).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창10:9)
`앞에서'는 `againt'의 뜻으로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선 첫 지도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성은 속담에 등장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불어 히틀러나 나폴레옹같은 대단한 선동가이기도 했습니다.
니므롯은 인간이 하나님을 잊도록 만드는 몇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 첫번째는 `근본 밭 토지'를 떠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경은 2, 3차 산업과는 달리 `천기'에 많이 의존하여야 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농경사회에서는 `경쟁과 소유' 보다는 `협동과 나눔'이 원칙이므로 그들의 사회는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파괴하는 것이 사탄의 첫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사람들을 모아 성읍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처음으로 했던 작업도 바로 `놋'이라는 성읍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가인=소유', 그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성읍에서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명하신 `근본 밭 토지'를 떠나 탐욕으로 가득찬 `인본주의의 요새'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와는 달리 도시에서는 굳이 땀을 흘리지 않아도 상업 및 지배관계에 의해 소유를 착취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떠나서 얻은 잉여의 시간과 노동력은 타락의 불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라멕'의 고백을 통해 당시 성읍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창4:23-24). `도시'라는 자체가 `하나님 떠난 문명'을 상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이러한 방법을 통해 효과를 보았던 사탄은 다시 같은 방법으로 인간을 타락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니므롯은 백성들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창11:4)
대홍수의 두려운 기억을 간직한 노아의 후손들에게 `하늘에 닿는 높은 대'는 좋은 미끼가 되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주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능력'을 내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벽돌을 만들어 거대한 대를 쌓기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바벨탑'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늘을 찌를듯 높이를 더해가는 대를 보면서 `인간 능력의 위대함'에 대해 감탄하였고 점차 여호와를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니므롯은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온 백성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 대해 걱정하시고 결국 언어를 혼잡케 하여서 그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단절하셨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따라 분파가 나뉘었고 분쟁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성쌓기를 그치고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창11:5-8).
이는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 창1:28과 창9:1의 성취였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이용하는 전략에 실패한 사단은 이번에는 `여인의 후손', 메시야의 모조품을 만들어내 사람들을 미혹하기 시작했으니 그가 바로 `니므롯의 환생'인 담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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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5일(금) 15시32분33초 KDT
제 목(Title): 음녀...(7)바벨론과 음녀종교
(7)바벨론-음녀종교의 근원
셈족은 아라랏산 부근에 머물면서 여호와의 뜻을 쫓으려 했던 반면 함의 후손들은 산에서 내려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강들 사이의 땅) 평원에 정착하였고, 그중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은 두 강의 상류를 지나 윗바다(지중해)와 마주보는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야벳의 자손들은 서쪽의 타우르스 산맥을 지나 바다를 끼고 좀 더 전진하다가 결국 바닷가의 땅에 자리를 정하였습니다(창10:5).
가나안의 후예 니므롯은 바벨과 앗수르, 니느웨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나라를 건축하였습니다(창10:9-12).
예수님이 오셨던 즈음의 저명한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는 니므롯과 그의 왕국 바벨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해 그토록 모욕적이고 경멸적으로 격동시킨 자는 니므롯이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을 하나님 경외하는 것에서 돌이킬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알고서 정부를 서서히 폭군정치로 바꾸어 갔다. 그러나 군중들은 니므롯의 결정을 따를 태세가 되었다. 여하한 고통도 남기지 않고 또한 손톱만큼의 나태도 용인치 않은 채 탑을 세웠다. 그리고 수많은 일군들이 고용되었기 때문에 탑은 높이 올라갔다. 그들이 탑을 세운 곳은 지금은 바벨론이라고 부른다" (요세푸스 <유대인 고대사>)
당시의 사람들에게 `니므롯'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그의 명성은 `부활' 내지는 `환생'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니므롯이 죽고나서 사람들은 니므롯의 몸을 토막내어 여러 지역으로 보냈는데 성경에도 이와 같은 관습이 등장합니다(삿19:29, 삼상11:7). 그가 죽은 후 바벨론 백성들은 심히 슬퍼하였으며 급기야 황후였던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후에 세미라미스는 유복자로 알려진 `담무스'(Tammuz)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는 그를 초자연적으로 잉태하였으며 태양신이 된 `니므롯'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창3:15).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의 완벽한 모조품이었던 것입니다.
니므롯이 `태양신'이었다면 세미라미스는 `신의 아들'을 낳은 `신의 어머니'였으므로 같은 경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여신 숭배사상', `음녀종교'의 출발이었습니다. `태양신'은 곧 `여호와'와 동일시 되었고 이름도 `바알=주님'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대다수는 예배를 신비적인 상징이나 형상을 통하여 진행하였읍니다. 니므롯은 태양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태양상, 물고기, 기둥, 동물 등으로 상징되었는데 의식적인 불을 붙여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이교도의 상징들은 카톨릭 의식과 제복에 빠짐없이 나타납니다.) 금송아지는 `담무스'의 상징이었는데 이는 구약을 거쳐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대표적인 형상우상입니다.
이런 바벨론적인 우상숭배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책망하였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3)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5)
이러한 우상숭배는 사람들의 흩어짐을 따라 여러나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헤로도토스, 분젠, 레이야드 등 유명한 역사가들은 이집트의 종교제를 포함한 모든 우상숭배가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히스롭 <두개의 바벨론>).
로마가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세계적인 대국이 되었을 때, 원활한 통치를 위해 여러 이교국가들의 신들과 종교들을 자기들의 종교에 흡수하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히스롭 <두개의 바벨론>). 바벨론이 이러한 모든 이교 우상숭배의 원천이었으므로 로마의 종교 또한 이러한 바벨론 `음녀종교'에 깊게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한 핍박은 다름아닌 이러한 로마제국 내에 성행하던 이교도적 우상숭배와 관습, 신조들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수용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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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7년07월26일(토) 03시33분42초 KDT
제 목(Title): 음녀..(8)마리아 숭배의 이교적 기원
(8) 마리아 숭배사상의 이교적 기원
바벨론의 수많은 기념비 중에는 어머니 여신 세미라미스가 그 아들 담무스를 팔에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백성들은 지상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어머니와 어린아이'를 경배하는 관습이 같이 전파되었습니다. `바벨'에서 언어가 혼잡케 된 이후에 이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여러나라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여신을 아스다롯(Ashtoreth)이라 부르며 경배하기도 했습니다(삿2:13, 삿10:6, 삼상7:3-4, 12:10, 왕상11:5, 왕하23:13).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에베소 지역은 당시 이러한 여신 숭배가 극에 달했던 지역으로 그들은 젖이 백개가 넘개 달린 다이아나(Diana)를 다산의 상징으로 경배하였습니다. 다이아나는 머리에 바벨탑의 상징인 탑 모양의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이 여신들은 거의 모두 `바다의 거품'속에서 나왔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집트의 유적지에서 어머니 이시스 무릅에 앉아있는 아이 호루스를 찾는 것은 매운 쉬운 일이라고 합니다. 베벨론으로부터 여러 국가로 다른 이름과 형태로 확산된 이 거짓 경배는 결국 로마와 로마제국 전역에서 국교화 되었습니다.
로마제국 내에서 어머니에 대한 경배는 매우 인기가 있었고 기독교 국교화 후에도 이 어머니 여신 숭배사상을 버리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로마의 종교꾼들은 고심하다가 `마리아와 아기예수'를 생각해내고 이를 미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리와 성경을 고치고 엄청난 거짓말들을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음녀사상'이 드디어 교회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틴 대제의 (거짓이라고 알려진) 회심 이후 각종 이교사상과 관습들이 기독교 안으로 침투해 오기 시작하였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이 `음녀숭배'였습니다. 급기야 431년에 에베소 회의 때는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리아 숭배사상이 이교도에서 왔다는 증거는 그 호칭 `마돈나(Maddonna)'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니므롯은 태양신이 된 후 `바알'로, 그 아내 세미라미스는 `바알티'로 불리웠는데 이를 해석하면 `나의 부인(My lady)'였고 라틴어로는 `메아 도미나(Mea Domina)", 이탈리아 어로는 `마돈나'가 된 것입니다. 페키니아인들 사이에서 어머니 여신에게 쓰던 `바다의 부인(The Lady of the sea)'이란 칭호도 마리아에게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늘의 황후'로도 불리우는데 이는 마리아가 태어나기 여러세기 전 어머니 여신의 칭호입니다. 렘7:18-20을 보면 하늘 황후에 대한 경배사상이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리우는 `성모'라는 호칭도 중국의 고대 여신의 호칭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여신 이시스에게 붙여진 이름인 `하나님의 어머니'는 천주교 미사 통상문에 그대로 등장합니다. 이 의미는 마리아가 예수의 육신적인 어머니를 넘어서 그야말로 신을 창조한 영광된 지위를 가졌음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이스와 호루스의 초상화가 감독의 공식적 승인에 의해서 교회로 그대로 들어오기도 했으며(스미스 <인간과 신들>), 그 초상화에 꽃으로 된 틀을 둘러싸는 관습도 마리아 숭배사상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시스는 머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초승달 위에 서 있는 것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와 같은 형식의 그림이 `카톨릭 교리 문답 소책자' 속에 마리아의 삽화에 그대로 나옵니다. 마리아의 발 밑에는 뱀이 있는데 이는 `여인의 후손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창3:15)를 교묘히 바꾸어서 사단을 물리치는 왕되신 권세가 마리아에게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 광장(성 베드로광장) 중앙에 보면 끝이 뾰족한 탑이 하나 서 있고 베드로 광장 주위에는 여러개의 원주 석상이 서있습니다. 이러한 주상은 이교도들의 태양신 숭배 혹은 남근 숭배사상과 관련되어있는 유물로서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통치하는 바티칸 중앙에 그러한 흉물이 서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의 워싱턴 메모리얼도 매우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디오도루스(Diodorus)는 바벨론 여와 세미라미스가 세운 130피트 높이의 오벨리스크를 언급하고 있으며 성경엔 넓이가 9피트이고 높이가 9피트 정도인 오벨리스크가 등장합니다(단3:1-7). 오벨리스크가 가장 많이 세워진 곳은 이집트로서 그중 몇개는 몇개의 오벨리스크는 다른 나라로 옮기워졌습니다(뉴욕 중앙공원, 런던, 로마).
로마 교황청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화강암 재질로 높이가 83피트에 달하며 무게는 320톤이나 나갑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후 37-41년경 칼리큘라(Caligula) 황제에 의해 이집트 태양신 숭배의 중심지인 헬리오폴리스로부터 로마로 옮겨온 것입니다. 헬리오폴리스는 벧세메스(Bethshemesh)에 대한 희랍어 이름으로 구약성경은 이 오벨리스크를 `벧세메스의 주상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렘43:13).
1596년 교황 식스도(Sixtus) 5세의 칙령에 의해 로마의 경기장으로부터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입니다. 수많은 일꾼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손상을 입힐 경우 교황이 사형에 처한다고하는 특명까지 내려졌습니다. 이 위대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후 교황청에는 수백개의 종소리와 대포소리가 울려퍼졌으며 미사를 드리면서 교황은 수많은 일꾼과 말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본래 오벨리스크는 바알(니므롯)의 상징인 태양경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위대한 삶의 제공자인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또한 성적인 결합을 통해서 생명이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태양을 향한 남근을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성경의 `우상'이라고 번역된 많은 히브리어 중에는 `맡체바'(matzebah)라는 것이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서있는 우상' 오벨리스크를 의미합니다(왕상14:23, 왕하18:4,23:14, 렘43:13, 미가5:13).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재앙들은 거의 `다산'을 상징하는 우상숭배물들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의 이교숭배자들이 세운 `문어귀에 똑바로 세운 투기의 우상'도 오벨리스크로 추정되며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남근 숭배사상에 빠져있었습니다(겔8:5, 스코필드 주석성경). `가나안'의 후손 혹은 `사탄'으로 간주되는 두로왕의 스파이 `히람'이 솔로몬 성전 건축에 끼어들어 세운 두 개의 주상도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기에 온갖 우상숭배에 젖어 결국 망하였고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분단된 뒤 북이스라엘은 인종혼합정책에 의해 언약이 완전 말살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지역으로 당시 유대인은 이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였습니다(김성일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이교도 원주들도 자주 남근의 `비밀'형태로 간주되었는데,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이교도 여신 신전의 현관에 있는 원주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 디오니수스(Dionysus)는 이 남근(phalli)을 나의 계모 헤라(Hera)에게 바친다."
이러한 이교도 신전의 유물들이 어떻게 교황청에 파고들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천주교 신자들은 이를 알고 있는 것인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음녀의 의미는 간음한 여자로 설명되며 복음과 여러 우상숭배를 혼합한 카톨릭을 의미합니다.
넓게는 창3장에서의 타락 이후 바벨론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장악하고 하나님 만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우상의 세력을 지칭합니다.
다음은 유니텔 카톨릭 동호회에서 퍼온 글입니다.
문>성서에 의한 구원의 상황을 성서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세례는 물로 받는 수세(水洗)외에도 화세(火洗), 혈세(血洗)가 있다던데 그것은 무엇이며 성서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답> 모든 인간이 받아야 할 구원의 길은 넓어야 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먼저 혈세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를 보기로 합시다. 요한 복음 15장 12절부터 13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게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울 보면 생명을 바칠 때 극도의 사랑은 모든 장애를 무너뜨리고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분의 가르침 때문에 생명을 걸고 그것을 증거한다면, 예컨대 세례성사는 받지 않았지만 신앙 때문에 생명을 바친다든지, 또는 양심의 도덕적인 근거 때문에, 또는 어떤 순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순교자들은 최고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혈세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다음의 화세의 문제인데, 자신이 범한 죄를 붙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참회하면 역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루가 복음 23장 42절부터 43절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우도(右盜)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하고 간정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도는 분명히 물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서 자신이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면서 참회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이 직접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그분의 윤리도덕대로 정확하게 살고 죽음 앞에서 일생의 죄를 하느님께 참회한다면 구원의 길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위의 유니텔에서 퍼온 참고자료에서도 보셨듯이 천주교회의 구원론의 가장 큰 특징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고(요14:6),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받는 길이며(롬8:2), 예수님만이 우리를 실패시킨 악의 세력에서 구원하신다는(요일3:8) 것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위 참고자료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에서는 심지어 도덕적 양심에 따라 사는 무신론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길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승인 교리자료에 근거)
성경의 어디에도 이러한 말은 없습니다. 천주교회에서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보아도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교황의 말이 제일권위를 가지며 다음이 교리, 성경은 세번째입니다. 얼마전 진화론을 인정하는 교황의 발언이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전면부정한 것임에도 받아들여진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천주교의 구원론의 핵심인 공덕설을 살펴보기로 하죠. 공덕설은 사효성의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즉 구약시대에서 피를 뿌리면 그 효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듯이 칠성례전에 참여만 하면 그 효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원리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언약을 성취하시고 새 계명을 주신 것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 구약의 율법에 묶여있는 것입니다.
7성례전에서는 꼭 정해진 형식대로 하여야 하며 심지어는 꼭 지정한 물이나 특수한 기름을 씁니다. 7성례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7성례전을 통하여 공덕이 쌓여집니다. 공덕이 100이 넘으면 천국에 가지만 공덕이 모자라면 연옥에 갑니다. 공덕이 아예 없으면 물론 지옥에 가겠죠. 연옥에 가서도 후손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보속하면 연옥의 조상이 천국으로 올라간답니다. 공덕이 100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성인이라고 하며 이 사람들이 천국가고 남은 공덕은 교회가 보관합니다. 즉 천주교회에 있어서 교회는 공덕 보관소요 공덕판매소입니다.
고해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주교신자들이 벌이고 있는 `내탓이오' 운동은 바로 고해의 첫 순서입니다. 천주교가 사회봉사를 그렇게 잘하는 이유도 그 근본은 `행위를 통한 구원' 혹은 `행위를 통한 죄사함'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할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죄에 대한 보속은 행위뿐 아니라 물질로도 가능한데 때문에 많은 재력가들이 죽기전에 전재산을 교회에 바칩니다. 천국가기 위해서이죠. 중세시대 한때 영토의 5분의 4가 교회 재산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지금도 천주교회는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죠. 교황청과 황제의 싸움은 사제임명권 및 면직권에 대한 다툼이었던 걸 아시죠. 그 근본원인은 이 사제임명권이 이 어마어마한 땅의 소작료와 직접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교황을 돈주고 사는 경우도 있었고 동시에 3명의 교황이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천주교는 복음을 말하는 듯하면서 철저한 마리아 및 성인 숭배, 행위를 통한 구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종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