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성교육 vs. 성폭력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
성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입장은 정말 다양하다. 가정이 아닌 밖에서 전문가에 의해 받는 것에 대한 신뢰와 관심의 정도에도 역시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성인이 되기 전에 받아야 되는 교육으로 인식은 되어 있으나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유인 즉, 성교육이 아이들에게 성(性)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며 그래서 학업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성교육이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부모님들의 입장은 ‘남녀칠세부동석’ 그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는 부모들이 고지식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성(性)’에 대해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에게 대응하는 것이 경험에 빗댄 것 외에는 제시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면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엎질러진 물은 일단 닦아야 한다. 그 물이 알고 봤더니 썩은 물이든지 중요한 물이었든지 간에 일단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얼른 닦아 내야 한다. 성교육전문가로서 느끼는 아쉬움이 바로 성교육의 실시 빈도와 관심의 정도가 ‘엎질러진 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있다. 물이 담긴 그릇을 안전하게 잘 두고 엎지르지 않기 위한 교육이 선행되기 보다는 물을 엎지른 아이를 질책하며 훈육을 엄하게 한다는 것이 현재의 성교육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인지 선행학습으로 이루어지는 성교육에 대해 아이들이나 부모의 반응이 사뭇 비슷하다. 안타까울 만큼 성교육의 중요성을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아니 ‘자식이 사건의 당사자가 될 때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을 일회성으로 해보았자 효과가 없다며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도록 돕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있어 성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교육 시간이 일회성이 되지 않도록 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현실인 것 같다. 효과성 있는 성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알면서도 교육시간의 할애에는 인색하고, 막상 교육시간이 주어지면 반기지 않는 이상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정말 제대로 된 성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부모들은 자식들이 2차 성징을 맞이하기 전부터 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준비된 부모라는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나길 손꼽아 고대하며 하나라도 속하게 되면 이내 진지한 태도를 갖추려 하고 그때부터 아이 ‘단속’이 시작된다. 성교육은 단속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충돌이 발생되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러다가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사건 사고가 피부 가까이 느껴지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된다. 그러면서 자식의 부모로서 자신의 기준에 가장 타당한 것으로 수습하기 위해 모든 방법들을 줄 세우기 시작한다. 결국 폭력위원회의 결정 또는 피해자와의 합의 또는 판결에 따라 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에 응하게 되는데 대부분 선택이 아니라 강제에 의한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세상에서 제시하는 것이 맘에 안 든다는 부대낌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자식 앞으로 내려진 결정은 분명 『성폭력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이지만, 부모로서 앞서는 마음은 자식에게 성교육을 미리 해주지 못해서 생긴 불상사라는 생각이 있어 자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조건 ‘성교육’이라고 이야기 하며, 그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세하게 요청을 한다. 여기서 커다란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리의 아이들은 성에 대한 이해교육이 진정 필요하다. 이 성교육이라는 키워드 안에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정보제공과 함께 범죄․피해예방교육이 모두 포함 된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생애주기별로 제공되는 것이 성교육의 형태인데, 사건관계자의 위치에 놓인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교육 내용의 경우는 이것과 상당히 다르다.
우리의 아이가 성폭력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에 놓여졌다는 것은 관계형성의 미숙을 발단으로 하여 타인과 공감하기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에서 이를 교정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학생 부모들이 말하는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성교육’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가 잘 성장하기 위한 교육은 후속적으로 지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피해를 발생하게 된 요인 관련하여 아이가 받아야 하는 것은 ‘공감하기’ 훈련이다. 타인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에 행동 수정이 스스로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로 인해 타인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교정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사고의 전환을 이루고 이를 통해 행동수정이 되어 재발을 방지하게 된다면 교육프로그램의 참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 성장을 이루어 가는 것에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 맑고 밝게 상처 없이 성장하여 세상을 헤쳐나간다면 부모로서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가장 큰 행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의 안위만을 우선으로 하여 ‘내 자식에게 좋은 것’, ‘내 자식을 위한 것’만을 고집한다면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규정된 범죄가 참으로 많고 더군다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상 행동이 가득한 현실 속에 우리의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것에는 결국 준법정신과 윤리의식, 시민사회정신이 가장 큰 해결책이 된다. 자유로움만을 제공 받은 아이는 자율을 놓치게 되고 꾸중 없이 커버린 아이들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고, 결국 몸담고 살아야하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를 외면하고 외면당하는 현실에 놓이게 될 것이다. 성교육은 특별한 정보가 있는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논리적이고 인지적인 프로그램이다. 성교육의 열의만으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범되는 모델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차이 부터 성역할까지 모든 것을 아우를 수가 있다. 성폭력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은 반성을 기본으로 삼는다. 아이의 삶을 윤택하게 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교육을 받으면 우리 아이가 나아지겠죠’ 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삐뚫어진 과거를 재정립시켜주는 것이다. 아이는 늘 나아지는 쪽으로 당연히 성장한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제공하고자 하며 꼭 보려고 하는 효과는 아이의 과거가 아이 발목을 잡지 않게 하기 위함에 있다. 다시 강조하여 말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늘 나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 어른들은 이를 최우선으로 명심해야 할 것이다. <행가래로 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