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등치는 기술"
김유훈 (밴쿠버 문인협회)
내가 아내와 결혼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내 나이 서른 살에 만난 스믈 셋의 아가씨는 어느덧 50줄의 중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잘 해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켜 미안함을 갖고 있지만 남자 체면이 뭔 지 오히려 큰 소리만 쳐서 할 말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아내를 위해서 해 준 일이 있는 데 바로 아내의 등을 쳐주고 지압을 해주는 일이다.
30년 전 같은 신학생 중에 시각장애인 전도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시무하는 곳이 회현동 남산 입구에 있는 한맹교회였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대부분 앞을 못보는 장애인 들이였다. 그리고 약 300 여명 중 절반 정도가 그들만의 안마기술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인왕산 밑에 있던 한국 맹아 학교에서도 그들의 장래를 위해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미국의 유명한 한국인 강영우 박사도 실명 후 이 학교에서 안마를 배우기도 하였다. 마침 내가 신학생 시절 실습 과제로 이들과 함께 한 달가량 같이 봉사하며 일하였다. 그러나 내가 봉사한 것 보다 오히려 나는 그들로 부터 특수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앞이 안 보이는 그분들은 손 끝의 예민한 부분을 잘 살려서 온 몸의 경혈 부분을 찿아 지압으로 치료해 주는 데 그 효과는 대단하다.
한국에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까지 한의학은 우리의 의학이였다. 그리고 침술과 쑥뜸은 그 효과가 높은 신비의 전통의술이다. 그리고 한의학의 한 지평으로 전통안마를 들 수 있는 데 손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물리치료, 스포츠 마사지,그리고 추나요법 등의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치료방법은 한방과 시각 장애인들로 인해 그 비법이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몸의 각 부분을 다루는 안마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어디를 가도 있는 민간 치료 요법이다.
내가 우연한 기회에 우리의 전통 지압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을 위해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을 위해 실습하였고 차차 그 영역을 넓혔다. 내가 목사가 되어 심방 할 때, 아픈 사람을 보면 손이 먼져가서 그들을 위해 안마를 해 주었다. 어쩌면 의사가 환자를 보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아닌 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목사에게 기도는 우선이지만 손만 조금 대고 몸을 잘 만져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질환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목,어께, 허리,그리고 등이 결리고 아프면 동양의 처방, 즉 침이나 뜸 혹 안마의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동양의 처방을 강조하면 아내는 나에게 "의학적 근거도 없는 돌팔이"라고 하기도 한지만 나의 지압과 안마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비록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그동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손으로 그 아픈 부분을 잘 만져주어 효과 본 일이 수 없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나는 두 아이들에게 어려서 부터 손으로 어깨와 등을 풀어주었는 데 딸아이가 잘 전수받아 나에게 쓸 때 보람도 있었다.그러나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내가 아내를 위한 기술이 내 수입과 아내의 수입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반비례 한다는 사실이다. 30년 전 어려웠던 신학생 시절 나는 공부하고 아내는 직장을 다녔다. 그러나 가장인 내가 아내를 위한 일은 힘들게 일하는 아내의 어께와 등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이다. 그리고 Regent College의 유학생시절, 나는 커피샵에 다니며 힘들어 하는 아내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후 아내는 다행히 사무직에 취직되어 나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사 사례가 별로 없는 이민목회를 할 때, 직장을 다니는 아내를 위하여 내 손은 쉬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좀 피곤하여 대충 대충 하면 아내는 순간 눈치채고 "당신, 뭐 처갓 집 산소 벌초하듯 하네!"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느날 내가 목회를 그만두고 트럭일을 하면서 부터 상황은 역전되었다. 며칠 씩 집을 떠나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아내가 나에게 배운 기술로 내 어깨와 등을 만져주었다. 나는 지난 7-8년동안 트럭일을 열심히 하였다. 대형 트럭을 몰고 미국과 카나다 곳곳에 수 없이 돌아다니고 여행을 잘 하였으나 작년부터 불어닥친 불경기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시 우리 집에서도 안마사의 역할이 다시 역전 되었다. 내가 일이 없어 집에서 쉬게되면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를 위해 다시 그 녀의 등 뒤에서 어깨며 허리를 부드럽게 그리고 세게 주물러 주고 나중에 등도 탁탁 쳐 주는 일이다. 그리고 아내가 "아 시원해! 이제 그만!"하면 나의 임무도 끝난다.
며칠 전 신문에서 바로 나와 같은 기술로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진 창원이란 분의 기사를 보며 내 눈은 번쩍였다. 그 사람은 1급 시각 장애인이며 한맹학교에서 교사로 8년 동안 앞을 못보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 출신이였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겪고 실험한 결과를 책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짧은 표현을 빌리자면 "안마는 과학입니다. 체온으로 사랑을 전하는 몸짖이고 병을 다스리는 치료요법 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삼육대학교 이학박사로 우리의 오랜 전통을 가진 맹인안마의 우수성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중이다.
그 분의 말이 바로 내가 그동안 느낀 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아내를 위하여 등을 만져주고 쳐주는 이 기술은 나의 체온으로 아내 사랑하는 몸짖이고 그녀의 아픈 부분을 치료하는 요법이라 지금은 말 할 수 있다.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