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밖에 안 된 순이가 주인공이다. 순이는 시집온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그녀가 겨우 열다섯 나이에 시집을 온 것은 가난한 부모가 입을 덜기 위해 딸을 집에서 내보냈기 때문이다.
순이는 낮에는 하루종일 노동을 해야 하고, 밤에는 남편의 정욕에 시달린다. 아직 어린 순이는 남편이 두렵기만 하여 몰래 헛간 따위로 숨어들어 잠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들켜 방 안으로 끌려오기 일쑤이다.
쉬지 말고 일 하라는 시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듣는 일도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오늘도 집이 떠나갈 듯한 호통에 순이는 몸을 빨딱 일으켰다. 아침을 짓고, 보리를 찧고, 점심을 장만해 모 심는 일꾼들에게 날라야 한다. 밥, 국, 반찬 등을 머리에 잔뜩 인 채 시내를 건너던 순이가 현기증을 일으켜 졸도한다.
눈을 떠 보니 방 안이다. 원수 같은 방에 눕혀져 있다. 무서워서 순이는 방 밖으로 뛰쳐나온다. 시어머니가 밥과 국을 못 먹게 만들고 사발을 둘이나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며 매질을 한다.
해는 저물고, 순이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혼자 운다. 분명한 까닭도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원통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어쩐 일인지 그 광경을 본 남편이 하지 않던 위로의 말도 하지만, 순이의 마음이 평온해지는 일은 없다.
그때 문득 성냥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순이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솟아난다. 밤이 왔다. 집에 불이 나고, 순식간에 지붕 위로까지 화염이 솟구쳐 오른다.
그 불길을 순이가 지켜보고 있다. 낯빛이 환하다. 그녀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좋아한다. 원수 같은 방이 이제 없어진다. 열다섯 순이, 세상이 그 아이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었다. ✧ (1925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