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문단사
* 정선군 문래국민학교 근무
* 전태규 이갑창 안효선 등과 정선아라리문학회 창립.
* 1981년 3월 교육자료지에 시 ‘저녁상’을 발표
저녁상
남진원
산마을 이야기가
개구리 울음으로 피어 술렁이는
초여름 저녁
한타래 피곤을
괭이자루에 걸어놓고
푸른 맛으로 둘러앉은
식구들
땀 냄새 흙냄새로 섞여가며
앞 단추 한하게
마음을 헤쳐놓고
상치쌈에
풍성한 웃음을 싸 담는다.
땡볕에 익은
하루를 싸 담는다.
- ‘저녁상’ 시 작품에 얽힌 이야기 -
여름이 한창 익어갈 무렵이면 산과 들이 풍성해진다. 사람들은 밭에서 들에서 해종일 일을 하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마당엔 멍석이 깔리고 그곳에 모여 앉은 식구들은 저녁을 먹는다. 더위를 식히며 둘러앉은 저녁상 머리는 식구들 이야기도 푸짐하다. 상치쌈을 가득히 입에 넣고 맛난 저녁을 먹는 사람들. 이런 모습이 정겨워서 시로 남겨놓았다.
1982년 정선 문래국민학교에서 나는 정선 벽탄국민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 학교는 병설중학교가 되어 중학생과 국민학생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병설학교는 정선교육청에서 실험학교로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나는 그 학교에 중학생들의 국어를 가르치기로 하여 옮겼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중학생 1학년들의 국어를 가르쳤다.
그 학교에서 아동문예에 신작시를 발표하였는데 ‘저녁상’ 작품이 들어있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내 작품이 수록된 아동문예를 한권 씩 드렸는데 어느 여선생님은 책 속에 수록된 ‘저녁상’ 작품을 보고 너무 기뻤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전에 교육자료에 발표한 내 작품을 읽으며 너무 좋아서 일기장에 옮겨 써 놓았다고 하였다. 집이 시골인 화천이어서 자신의 어릴 때 생활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기장에까지 써 놓았는데 그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고 놀라고 기뻤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동안 즐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이 작품을 쓰고 마음에 들어 무척 좋아했던 것이다.
* 1981년 5월 [소년]에 ‘우리 학교 소개(문래초등학교)’
* 1981년 시조문학 봄호에 시조 ‘어부’를 발표하였다.
* 1981년 2월 21일 어린이강원에 수필 ‘까맣게 잊은 제자’ 발표
- 까맣게 잊은 제자-
내가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는 삼척군에서도 가난한 광촌인 황지읍 화전국민학교라는 곳이다. 처음 부임할 당시에만 해도 도로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학교 옆이 탄광이라 연일 새까만 탄가루가 날려 흰옷을 입고 다니지 못하는 곳이다.
작년 어느 날 마침 그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을 뵐 일이 있어 첫 발령지인 그 학교를 가는 기회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검은 탄가루에 쌓인 마을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 맏은 편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하였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웃으시면서 나를 보고
“혹시 남 선생님 아니세요?” 한다.
“예, 그렇습니다만….”
“아이고, 우리 대철이 선생님 맞지요!” 하시며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대철이가 지금도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 대철이!’ 그제서야 나도 생각이 났다.
내가 5년이 되던 해 이 학교에서 2학년을 맡고 있을 때 우리 반엔 다리를 못 쓰는 지체부자유아가 있었다. 바로 그 대철이 어머니인 것이다.
그 날도 공부를 마치고 교실에서 잡무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바깥에서 아이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대철이가 미끄러운 골마루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아마 목발 끝이 미끄러져 그만 곤두박질을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아이를 업고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후에도 나는 대철이에 대해서는 각별히 관심을 쏟았다. 아마 그래서 그 녀석은 나를 잊지 못하는 가 보다.
“대철이 어머님, 추운데 어서 들어가 보세요.”
“아닙니다. 선생님, 대철이가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하던데 좀 들어와 쉬다 가시지요.”
“글쎄요, 꼭 들어가 봤으면 좋겠는데, 워낙 급한 일이 있어서요.”
대철이 어머님은 한사코 집에 들어와 놀다 가시라고 하였지만 나는 사양하였다. 생활도 어려운데 괜히 폐를 끼칠 일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극구 사양하자, 아기에게 과자를 사 주라면서 주머니에 있던 돈 500원을 꺼내 강제로 쥐어 주시는 게 아닌가. 따뜻한 인정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볼일을 마치고 정든 고향과 같은 화전을 끝내 잊지 못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대철이가 부디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마음 속으로 빌면서….
(1981.2.26 어린이강원)
1981. 10. 1.
『물레문학』창간호(정선 아라리문학회)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조]
뻐꾸기
숲뒤에 혼자 남아
생각조차 물든 설움
송화가루 묻은 설움
잎새 뒤에 숨겨놓고
해종일 누굴찾는가
가슴 아리게 우는 한낮
고사리 참나물 뜯는
치마폭에 고여와서
뒤 울안 장단지 속
장맛으로 익어가고
더러는 마당에 남아
그냥 그렇게 스러집니다
괜스레 울적한 맘
그냥 슬퍼지는 날은
뜻없이 발닿는 대로
개울가로 내려와서
한 마리 나도 뻐꾹새
꺼칠한 소리로 웁니다.
봄 비
온통, 부산스레
바람 떼를 열어놓고
숲속 갈피
갈피
빗소리도 걸어놓고
백금빛 투명한 못을
종일 박으며
술렁인다
싯푸른 물소리로
봄비 흘러
가는 밤은
한 줄기 나도
봄비
잎새 푸른 물이 배고
질펀한 산도랑 따라
마구 팔려 가는 봄
봄 바 람
봄바람 냄새는
내 여인의 살 냄새라
알맞게 분칠한 입술
몸에 절로 스며드는
어스름 저녁 개울에 선
내 야ㅕ인의 숨소리라
내 여인이 오늘 이 밤
설레는 것 모두 챙겨
헤매는 듯 눈빛에 담아
문밖을 나서더니
그리움 그 축축한 바람에 안겨
알몸으로 피고 있다.
화산 같은 죽음의 빛 속에
오늘을 팔아가며
내 생애를 태우는 밤
새벽녘 잠을 죄다
달빛으로 깨워놓고
산 앉아 강물도 앉아
바람소리를 팔고 있다
몇 천년 숨결 맑은
고려의 항아리들
천성은 고운 잡목
마을 안에 쌓이면
승천의 북소리들은
귀를 사고 있었다
한다발 핏덩어리
철장 안에 쏟아놓고
火氣를 이기지 못해
무덤들이 떠나는 밤
하얗게 부서진 죽음
죽음 위에 앉은 죽음
세월의 늪 옆에 서서
내 삶의 전부를
죄로 살다 동면하는
수많은 내 눈물의
허리 굽은 정거장에
가을날 코스모스여
하늘 빛도 서러워
영혼의 불티 모아
삽질하는 거름더미
深山의 玉水처럼
아우성만 살아나고
地神의 무릎위에 떠는
내 허구의 낟알들
번뇌와 절망으로
헝크러진 빗물 앞에
육신의 뼈가 마른
진실의 내 달빛은
애끓는 애증의 길섶
悔恨으로 흐르더니
도금한 세월의 늪
길게 가로누운 위에
세상사 모든 한은
고독의 꽃으로 피었는가
푸르른 하늘 복판에
별빛 한 점 떠 있다.
( 제목 ‘囚人’을 ‘세월의 늪에 서서’로 바꿈. 2024. 11.27 )
봄 날
토담집 위로
노란 새소리 떼
곰실곰실 내려앉는 한낮
꽃나무 밑에서
노곤히 잠이 든
발목이 바알간
바람 한 무더기
목이 긴 뻐꾸기 소리가
가만 가만
숲속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꽃 망 울
안으로
안으로
설레는 마음
감추고
활짝
꽃 피울 날
기다리며
송이
송이
발그레
익어가는
꿈 망울.
꽃 망 울 (2)
새 신부처럼
얌전한
꽃망울
나오려는 웃음을
안 보일려고
자꾸 고개를 숙이지만
나비가
모올래 넣어둔 기다림이
몽실몽실 웃고 있다.
산 골 버 스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 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 버스가
숩바꼭질 한다.
아 가
한낮에
아기가 잔다
솔솔
바람이 아기를
깨워 보지만
바람을 감고
더 활짝
재롱이 줄줄 흐르는 잠을 잔다
창밖에서
해바라기가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저녁 들길에 서면
아늑한
들길에 서면
하루 동안
법석대던 것들이
가라앉아
조용히
삭아내리고
살며시 피어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내일의 기다림
평화로운 저녁 햇살이
아늑한 들길에
같이 기대선다.
별 • 풀벌레
어둠을 타고 내려온
별들이
풀벌레 울음을 듣다가
풀잎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습니다
풀벌레들은 살며시 별들을
풀잎들의 잠 속에
눕혀놓고
풀벌레 울음은
고운 노래가 되어
하나 둘
별이 되어 날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