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써 본 글인데
읽어봐 주세요.
짧은 소설.
투명공
나는 방랑자 꿀벌이야. 내가 왜 방랑자가 됐는지 이야기해 줄게. 아주 오래된 옛날, 온천지가 꽃으로 뒤덮였던 시절이지. 그때 우리 꿀벌은 아주 자유롭게 살았지. 속이 빈 커다란 나무줄기나 바위틈에 은신처를 짓고 살았어. 하지만 추운 겨울이 오면 절반 이상이 죽었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거지. 춥기도 했지만 먹을 양식이 없었어. 겨울엔 꽃이 피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연구했어. 오랜 연구 끝에 꿀을 모으고 은신처에 저장해두는 방법을 알아냈지. 추운 계절을 이겨내려면 꿀을 저장해야 했거든. 그 이후 우리는 추운 겨울을 잘 이겨냈어.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스스로 지배자라고 부르는 인간들이 나타났어. 인간들은 두 다리로 뻣뻣하게 걸어 다녔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다가 우리의 은신처를 발견하면 열 손가락으로 꿀을 훔쳐 갔어.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손가락들이라고 불렀지. 인간들은 손가락으로 많은 일을 했지만, 결국엔 도둑놈이란 뜻이야.
꿀을 빼앗기자 우리는 또 연구했어. 우리의 양식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방법을 찾은 거야. 하지만 도저히 인간들의 손가락을 당해낼 수가 없었어. 우리가 덤벼들면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거든. 하지만 결국 아주 좋은 방법을 찾아냈어. 산란관 끝에 독침을 만들었지. 그때부터 우리는 목숨 걸고 싸웠어. 그러자 손가락들도 함부로 꿀을 훔칠 수 없었지. 꿀을 훔치려면 독침에 쏘여야 하는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던 거야. 심한 경우엔 손가락들이 죽기도 했으니까.
그러자 손가락들도 연구했어. 그들도 아주 좋은 방법을 알아냈지. 옷과 마스크, 장갑 등으로 온몸을 가렸던 거야. 그러자 우리는 공격할 방법이 없었지. 그래도 기회를 엿봤어. 기회를 엿보다가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곧바로 공격했지.
전쟁은 오래 반복됐어. 그런데 말이야. 손가락들의 진화 속도는 그 어떤 생물보다 빨랐어. 지나치게 우수하고 위대했지. 손가락들이 우리를 나무상자 속에 가두어 놓는 방법을 알아냈거든. 우리에겐 불행한 일이었지만, 손가락들은 전쟁하지 않고 우리를 사육하는 방법을 알아냈던 거야.
그 이후 우리는 더 많은 꿀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했어. 손가락들이 꿀을 자꾸만 빼앗아 갔으니까. 우리는 당황스러웠어. 꿀을 저장해야만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데 손가락들이 꿀을 모조리 가져갔던 거야.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손가락들이 우리에게 먹이를 줬던 거야. 꿀을 가져간 후에 새로운 먹이를 줬지!
그 먹이는 아주 투명한데 꿀만큼이나 맛있었어. 꿀을 빼앗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먹이를 먹었지. 그런데 이 먹이는 향기가 없었어. 그래서 투명공이라고 불렀지. 그래도 우리는 투명공을 먹고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어. 투명공은 설탕을 물에 녹여서 만든 거야.
투명공은 아주 충분히 공급됐어. 그러자 많은 꿀벌이 투명공을 꿀보다 더 좋아하게 됐지. 속임수에 빠진 거야. 하지만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어. 투명공에 중독된 거지. 다시는 뒤돌아 갈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거야.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은 우리 꿀벌이 야생의 감각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거야! 그 이후 손가락들은 우리의 번식 능력을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우리를 사육했어. 결국, 우리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꿀벌은 손가락들의 사육 방법에 잘 적응했지. 그렇게 손가락들과 우리 꿀벌은 긴 역사를 함께 공존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공존엔 문제가 있어. 우리는 이것을 똑바로 인식해야 해! 바로 우리가 자유를 잃었다는 사실 말이야! 이젠 나무나 바위틈에 집을 지을 수도 없을 거야. 다시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이야! 아무 때나 먹이를 얻을 수 있으니 누가 야생으로 돌아가려 하겠어. 우리는 의지를 잃어버린 거야. 벗어날 수 없는 어떤 병에 걸린 거지.
아! 내가 너무 흥분했군. 너는 아주 궁금할 거야? 내가 어떻게 방랑자가 됐는지? 또 어떻게 야생으로 돌아왔는지? 이제부터 말해줄게.
어느 봄날 꽃향기를 맡으며 꿀을 모으고 있는데 땅벌이 다가왔지. 다짜고짜 왜 그렇게 열심히 꿀을 모으느냐고 물었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 꿀을 모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지. 그러자 꿀과 투명공 중에 뭐가 더 좋으냐고 묻더군. 나는 멈칫했어. 사실은 투명공이든 꿀이든 상관없었지. 풍족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땅벌이 그러는 거야. 향기가 없는 건 죽은 거라고 말이야! 그렇게 죽은 걸 계속 먹다 보니까 생각도 죽었다고 말이야! 또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묻더군.
그날 이후 난 곰곰이 생각했어. 땅벌은 투명공 없이도 잘살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우리가 손가락들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생명이 없는 투명공을 먹었기 때문이지. 생명이 없으니 당연히 생각도 없었던 거야. 땅벌의 말이 맞았던 거지. 그래서 이렇게 뛰쳐나왔어. 더는 손가락들을 위해 살 수 없었으니까. 이제부턴 나 자신을 위해서 살 거야!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기는 해. 추운 겨울이 오면 혼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다시 상자 속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사실 나는 요즘 집을 짓고 있어. 그 땅벌의 도움을 받아 땅속에 집을 짓고 있거든. 비록 나 혼자지만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다시 봄이 오면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겠지.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네가 나를 찾아와줘. 왕참나무 밑에 내 은신처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니면, 나와 함께 살아보지 않겠어? 우리가 내년 봄까지 산다면 말이야, 우린 혁명을 일으킬 수 있어! 우리 꿀벌의 해방을 위해서 말이야! 어때? 뭐라고? 생각 좀 해보겠다고? 물론 그래야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라고. 난 항상 마음의 문이 열려있으니까. 알겠지?
어! 나와 살기 위해 다시 온 거야? 정말 잘 생각했어. 우리 함께 혁명을 일으키자고! 그런데 같이 온 이들은 누군가? 함께 할 친구들인가? 빨리 들어오게.
뭐? 그게 아니라고? 날 잡으러 왔다고? 내가 가진 의심의 병이 전염될까 봐 잡아가는 거라고? 아, 이런! 혁명은 역시 어렵군!
첫댓글 양봉의시작이군요
그러쥬ㆍㅋㆍ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