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차
공무집행 중
우리 자신의 냄새
의사들의 담합
구역질을 넘어선 구토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우리는 왜 거룩한 그들의 인질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사명감조차 없는 그들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는가? 우리가 준 권리를 악용하는 자들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그게 국가 존립의 이유이다.
오래전 내가 자란 안동 하회마을, 할아버지의 형님은 의사였다. 그분은 계란 한 줄 들고 오면 치료해 주고 "가을에 추수하면 갚겠습니다." 하면 "그건 그때 봐서 그리하시게."였다. 돈을 요구한 적이 없으셨다. 그리고 돈 때문에 누군가를 차별하지도 않으셨다. 오로지 불타는 사명감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누구보다 더 뜨겁게 사람을 공부한 자였다.
동네의 어려운 이들의 근황도 물어보시고 온갖 궂은일 무료 상담도 해주시고 아이들 이름도 지어주시고 돈이 있어도 없어도 한밤중에 주무시다가도 첫 새벽닭이 울기 전에도 환자만 오면 다 받아주셨다. 표정은 없으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자신만의 표정관리를 평생 해 오신 것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화남도 그냥 한 가지 표정으로 수렴되었다. 마을 주치의이자 큰 어르신이었다.
애제자 만수가 야구공에 맞아 실명할 뻔했다. 다행히 뼈만 골절돼서 위기는 넘겼다. 종합병원 순례를 하고 왔다. 대전에서 유명 병원을 다니다 지친 모습이었다. 3일~5일 안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가 없어서 3주 넘게 대기 중이라고 했다.
보랏빛과 누리끼리한 색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으로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웃음과 짠함이 함께 나왔다. 갖고 싶은 게 있나고 물었더니 한화 야구선수의 싸인볼이라고 했다. 선물로 류현진 선수와 문동주 선수의 싸인볼을 받아 왔다. 야구에 야자도 모르고 포수 뒤에 딱정벌레처럼 생긴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서 남편이 황당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심판이라고 했다. 오늘 하루 하나의 배움을 얻었으니 이걸로 족하다.
새삼 두 선수들이 위대해 보이고 감사했다. 우리 만수가 헤벌쭉 웃는 모습이 찬란해 보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대해 보이고 싶은 이유는 하나이다. 그들이 나로 하여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사나 혁명가는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일하는 외숙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숙모님은 육 남매가 다 서울의대 출신이다. 혹시나 빨리 수술이 가능한가 부탁드려 보려고 뻔뻔하게 수년 만에 전화를 했다.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명감을 잊은 자들은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제자 연서는 다리가 부러져 병원을 찾고 있다. 성장판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어서 청소년 전문 분야 의사를 찾아 종합병원을 가야 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벌레였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보니 그들이 돈벌레로 바뀌어있었다. 카프카의 변신처럼 쓸모없는 벌레는 죽어야 하는 것인가? 배움이 탐욕을 키우고 돈과 명예만을 탐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인간이길 바라지 말아야 한다. 배울 수 있음에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내 동생 윤은 뉴욕에서 내과 전문의이다.
의사여서 좋은 점은 청진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술주정을 동생한테 했다. 마침 점심 식사 중이었다. 햄버거 하나 먹고 빨리 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의사 파업 이야기를 했다. 술을 너무 마셔서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이 너무 싫다고 정치인들이 다 썩었다고 했던 것 같다. 국민들이 열심히 살면 뭐 하나? 정치가 다 썩었는데.....라고 했던 것 같다.
한밤중에 거리를 걸어가는데 역겨운 냄새랑 음악소리가 들려서 뒤돌아 보았다. 콧노래를 부르면 "공무 집행 중"이라는 글자가 쓰인 차를 몰고 음식물 쓰레기를 싣고 가는 당신들을 보았다. 사명감으로 넘치는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있어서 우리는 역겨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하게 일하는 자를 만나면 하루가 즐겁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택시 기사를 만나면 가는 길이 즐겁다.
초여름 걷기에 좋은 밤, 2인 1조로 콧노래 부르면서 일하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공무수행 중"이라는 글자가 아름다운 고사 성어처럼 보였다. 당신들은 정녕 힘든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일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들이 파업하면 진심 우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심이 솟았다. 감동이 밀려왔다.
일개미가 일 더한다고 돈 더 달라고 파업했던가?
태양이 여름에는 더 뜨거운 빛을 낸다고 추가 부담금을 달라고 하던가?
일벌이 자신의 신분 낮음을 한탄했던가?
말똥구리가 소똥과 말똥을 차별했던가?
특권이 더 한 특권을 불러온다. 우리는 그동안 공짜로 치료받지 않았다. 날로 높아가는 보험료도 꼬박꼬박 미룬 적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자연사를 결심한 자라 병원 한 번도 안 가면서 이유 없이 깡패 같은 그들에게 돈 상납하고 있다. 종합 검사도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곡기를 끊을 것이고 조용히 죽을 것이다. 죽어가는 맛을 깊이 음미할 것이다. 음식을 서서히 줄이면 고통도 사라진다. 절대로 당신들의 손길을 빌리지 않을 것이니 내 걱정은 마시라!
돈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역겹다. 의사수가 늘어나면 국민들의 보험료가 올라간다고 우리를 걱정하는 당신들이 수개월째 파업 중인 게 정말 우리를 위함인가? 누구 하나라도 아픈 아이를 위해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과 의사인 자신들의 자식들을 위해 성역을 만드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시간이 흐를수록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틈이 생기는 기분이다. 대륙과 대륙을 건너던 인류의 조상들도 이리 답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경이로운 모습이 역겹다. 나도 모르고 살았는데 현실에 닥치니 지인들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아픔을 참고 또 참았으니 고통도 클 것이다. 의사들의 통 큰 파업과 우아함이 이제 그들과 우리 사이의 벽과 벽 사이에 금을 만들어 간다.
누군가를 인질로 잡고 돈 요구하면서 한 명씩 처형하는 흔한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다.
"그동안 많이 해 먹었다 아이가?"라는 영화 속 대사가 생각난다. 이제는 돌아봐야 하는 순간이다. 10년 후에 세상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개미지옥처럼 누군가가 빨려 들길 기다리고만 있다.
이 끔찍한 세상에 대통령은 놀러 갔다. 이태원 참사 장소에 대통령이 가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 많은 백성이 죽었는데 안 가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들이 진정받고 싶은 것은 이 한 많은 세상에서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따뜻한 위로 한번 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하는 해외여행이 그리 즐거운가? 남의 돈 함부로 하는 자가 자기 돈 늘기를 왜 바라는가? 왜 솔직하지도 진심이지도 않은 것인가? 주변의 정치인들이 요즘 해외여행 다니느라 바쁘다. 극도의 이기주의의 병폐가 낳은 괴물이 정녕 권력과 탐욕과 타인의 돈이었던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감히 누가 주인 행세를 하려 들고 나라를 대항해 싸우려 하는 것인가?
특정의 누구를 겨냥한 글도 아니고 모든 의사를 저격한 글도 아니다. 난 제부도 동생도 의사이다. 그냥 내 지인들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을 뿐이다. 나를 욕하려면 욕하시라! 이제 몸무게가 40kg을 넘었다. 혁명을 일으키기엔 아직 멀었다. 몸부터 만들어야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첫댓글 언니
주영 이어요 글 잘읽었습니다
주영 어찌지넴? 연락안된다고 다들 난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