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는 이제 그만
정 상 호
“.....나의 이웃집은 미군 장교 접대소가 되어, 매일 한낮부터 술에 취한 군인들이 국적도 알쏭달쏭한 여인들과 희롱하며 드나들고 있었다...... 그 즈음의 일본인은 누구나 패전의 허탈감 속에서 무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하 역사소설인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쓴 야마오까 소하찌가 밝힌 저술 동기의 일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동남아종군 기자였던 그는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패전 조국의 참담함은 그에게 좌절감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고뇌하던 끝에 그는 창작 소설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쓰기 시작한다. 어두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국민에게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빛, 즉 이상(理想)을 보여 주고자 함이었다. 그 후 장장 십칠년에 걸쳐 홋카이도오 신문에 연재하고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천칠백만부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망(大望)’으로 번역․출판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대학생이던 나도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이십권 전집을 모두 사서 밤잠을 자지 않고 나흘만에 읽어 버렸다.
“삶의 거대한 허무와 역사의 큰 선을 담고 싶었다. 지금까지 삼국지의 크고 작은 번역본이 50권이 넘는 데 나까지 나서자니 쑥스러웠다. 하지만 원전에 충실한 삼국지를 그리기 위하여 6년 동안 공을 들였다.” 소설가 황석영이 자신의 삼국지 출간에 즈음하여 어느 일간신문과 인터뷰한 요지다. 그 신문에는 그럴듯한 예상까지 실려 있었다. “화려한 문장력 돋보여....이문열 작품과 경쟁 예고”
중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이 한 분 있었다. 두꺼운 테 안경에 항상 물총을 가지고 다녔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 짓을 하면 소리 없이 다가와 얼굴에 사정없이 물총 세례를 퍼붓고는 “놀랐지? 요놈!” 하며 어린아이처럼 웃곤 하였다. 우리는 그의 허물없는 성격을 좋아하였지만 고사성어와 한시를 외워 야만 하는 딱딱한 한문시간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흐른 후 그가 ‘원본(原本) 삼국지’를 펴냈다. 장난꾸러기 같던 물총 선생님이 책을 펴낸 것이 신기하기도 하여 7권을 사서 숙독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이문열의 ‘평역(評繹) 삼국지’가 나왔다. 원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비평을 곁들였다는 것에 구미가 당겨 10권을 모두 사서 읽었다. 다시 황석영의 것은 ‘원전(原典) 삼국지’다. 원전과 원본이 어떻게 다른 것인 지 모르지만 이 번에는 단 한 권도 사지 않았다. 왜냐고? 글쎄, 삼국지를 종교로 믿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같은 전집을 세 질이나 살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나는 앞으로 중국의 삼국지는 더 이상 사지 않을 것이다. 그 것이 원전에 충실한 것이 든,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위주로 하는 것이 든 간에...
중국의 ‘삼국지’는 도대체 어떤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이 야단인가? 중국의 한족이 북방 이민족인 몽골족의 지배를 받던 원나라 말기 나관중(羅貫中)이 당시 시중에 유행하던 이야기를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정리한 것이다. 아니, 단순히 정리에 그친 것이 아니다. 그가 삼국지를 편찬한 속뜻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데 대한 지식인의 울분과 메시지를 몽골 관리들이 쉽게 알 수 없도록 교묘하게 담아 민중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중국 역사상 최초로 북방 유목민족을 제압한 한나라는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한나라 부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가 되고, 밑바탕에는 중화주의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주변 민족에 대한 한족의 우월성을 나타낸다. 6700여명의 등장인물 중에서 제갈량과 관우는 더 할 나위 없는 훌륭한 인물, 즉 중국 사람들의 표상으로 묘사된다. 이런 구도 하에 문장과 표현을 재미있고 그다지 속되지 않게 가다듬어 누구 나가 읽고 즐길 수 있는 대중소설로 만들었다. 그는 삼국지를 통하여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중국의 민중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 추락한 한족이 다시 일어서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것 보다 중국 청나라 때 모종강(毛宗岡)이 편찬한 모종강 본을 따르고 있다. 모본은 나관중의 것에 비하여 문장이 수려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져 웬만해서는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작품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삼국지는 순수 문학이 아닌 일정한 의도와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소설은 독자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나의 경우 ‘대망’을 읽고 난 후 근대 일본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문화의 깊이와 사고의 스케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임진왜란의 배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라 도쿠가와의 어머니인 오다이는 젊은 시절 나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자리잡았다. 감성적인 차원에서 솔직히 고백한다면 나는 반일(反日)에서 지일(知日)로 바뀌게 된 것이다.
삼국지를 읽고 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나라에서 불경이나 성경보다도 많은 사람이 본다는 삼국지가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요즘 어린이들은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 장군들의 이름은 줄줄 꿰어도 진작 우리나라 장군은 잘 알지 못한다. 황석영 삼국지 출간에 때맞추어 한 신문은 뒤질세라 또 다른 유명 소설가의 삼국지를 연재한다. 어떤 유력 신문은 ‘나를 사로잡은 삼국지 명장면’을 시리즈로 내 보내고 있다. 그만큼 삼국지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 아니 우리에게 그것말고는 음미하고 인용할 만한 역사가 없다는 말인가?
삼국지는 물론 좋은 책이다. 그 점을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삼국지를 읽지 말자는 편협한 문학 국수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소설가가 나서서 삼국지로 도배를 하고 언론이 이에 장단을 맞추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그들의 빛나는 창조의 재능은 어디에 두고 한낱 남의 나라 사람이 쓴 작품의 번역에 매달리는 것인가? 아니면 반만년이라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이런 창작 역사 소설을 쓸 만한 재료가 없어서란 말인가?
지금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들의 역사로 꿰어 맞추기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수행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3조원 짜리 프로젝트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역사를 백주대낮에 빼앗아가려는 마당에 정작 우리는 그들의 삼국지에 코를 쳐 박고 취해 있으니 우리 사회의 무심함과 대범함(?)이 놀라울 뿐이다. 바로 이 점에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소설가 이문열 선생의 강의가 있었다. 그의 강의가 끝난 후 새파랗게 날을 세워 평소 생각하던 바를 물었다. 작가의 지명도만 있으면 삼국지야말로 흥행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라는 시중의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그는 무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의 질문에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지만 공감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면서 “황선배는 60대에 삼국지를 냈지만, 자신은 한참 창작열이 불타던 30대 때 삼국지를 번역하였으므로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었다.”고 자인하였다. 그러나 끝내 우리의 민족 정기를 곧 추 세우는 창작 역사소설을 기회가 되면 쓰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세 나라이다. 인도와 중국이 각각 한 명이고 일본이 두 명이다. 세나라 모두 삼국지나 대망, 리그 베다와 같은 대하역사 소설이나 장편 서사시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노벨 문학상은 문학 천재 한 두 명이 나와 운 좋게 받은 것이 아니다. 그 민족이 축적해온 문학적 자산과 저력의 꽃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의 삶을 삼국지나 대망, 일리아드 오딧세이같이 창의적으로 이야기한 대중적인 작품이 언젠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작품이 대박을 터트리고, 이를 패러디한 만화나 게임, 영화가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그 속에서 자신들의 꿈과 체취를 키워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