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구개왕국'을 끝으로 KBS1 다큐멘타리 '차마고도'가 끝났다. NHK가 공동제작사에 포함되서일까? 확실히 영상이 죽여주는 최근 보기 드문 TV다큐였다. 실크로드에 '누란'왕국이 있었다면, 차마고도엔 '구개'왕국이 있었다 한다.
히말라야 남단 중국 '츠완'에서 인도 북부 '다람살라'까지의...
잉카제국의 최후와 마찬가지로, 구개왕국은 '수미산'(불교에서 말하는 이상향. 실제하는 히말라야의 산) 가까운 높은 곳에 성채를 짓고 살았다. 작품에서 그 왕국은 쌍봉낙타를 썼던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과 교역하고, 대제국을 이뤘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너무 많이 가졌던 금(사금)은 외세의 침탈을 불러왔던 것 같다. 700년동안 유지해왔다는 왕국의 최정상 왕의 처소에는 그곳을 모두 점령한 침략군조차도 접근할 수 없을만치 완벽한 요새였다지만, 왕은 침략군들이 백성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오래 버틸 수 없어서 마침내 항복했다고 한다.
벌집같이 땅굴을 파 불상들을 모신 사람들의 처소...
언젠가 다시 재방송을 할텐데, 혹 못보셨다면 그땐 꼭 보세요. 다큐를 좋아했는데, 예전에 나이지리아의 줄루족 이야기'샤카', '징기스칸' 같은 걸 할 때는 애니나 연출이 많이 등장했고, 대륙을 건넜던 인디언 이야기를 할 때도 추정들이 많았고, NHK에서 만들었던 '대황하'도 좋았는데... [차마고도]는 정말 TV다큐의 진수를 맛본 느낌이었어요. 연출이나 가상상황은 전혀 없죠. 암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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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부터 29일까지 KBS1 밤 11:30에 6회에 걸쳐 재방송을 하고, 30일에는 제작후기를 방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엔딩자막에 NHK가 써있길레 그곳 제작진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토록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내심 자조적인 부러움을 가져봤는데, KBS에서 편당 2억원씩 12억원의 돈을 들여 1년 4개월만에 만들었고, 지금까지 일본, 스페인 등 11개국에 수출될 예정이라 하니 새삼 '영상시대의 총아'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기실 얼마 전까지도 영상산업의 총아로 영화를 많이 얘기했었고, 지금도 광주국제영화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즈음 일군의 사람들은 현재와 같은 영상산업구조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작금,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정부투자기관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애니메이션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조선대에도 애니메이션학과가 활성화 돼 있고... 최근엔 '스토리텔링작가협회'를 만들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광주의 영상기구와 인력들이 왜 이 돈 안드는 다큐에 그리 무관심한지 의아하다. 아시다시피 '영상'이라 함은 그 양상은 무궁무진하다. 비엔날레 같은 국제미술행사에 출품되는 30% 정도의 작품이 실은 뉴미디어-영상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법들은 실로 기기묘묘하다. 영상으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그림도 그린다. 5분, 15분짜리 필름으로 현실문제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파헤치는 경우도 있고, 남아공 탄광의 문제를 그토록 명징하게 드러내거나, 팔레스티나 사람들의 저항을 영상이라는 그 방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류의 작품들... 아무튼 영상적 표현방식들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우리의 영상표현방식은 할리우드식 스토리텔링에 젖어 있거나, 애니, VJ와 같은 몇몇 표현방식에 지나치게 함몰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각설하고...
나는 광주의 영상활동가들이 왜 이렇게 다큐에 무관심한지 의아하다. 피상적인 생각은 이렇다. 광주는 한국 어디에 못지 않게 풍부한 자연조건과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이 자산을 십분 활용한 것이 다큐라는 거다.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다큐 제작은 몸뚱아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리와 손, 카메라와 편집기만 있으면 된다. 기획, 촬영, 편집, 배포가 핵심이 될 것이다. 이것들은 영화나 고가의 애니작업 같은 자본이 들지 않고 '맨땅에 헤딩'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오래 전 BBC에서는 노근리사건을 작품화한 적이 있다. 그 작품을 보진 않았지만, BBC는 그것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제작진을 국내에 수차 파견해 취재 촬영했다. 그런데... 우리는 노근리사건에 대해 BBC처럼 객관적이진 못하지만 훨씬 더 잘 '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가는 별도의 비용지불 없이 노근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고가의 배우나 대본값이 필요 없다. 다만, 그에 필적하는 대본이 필요하고, 여러 제작시스템이 이에 충분히 조응해줘야 할 것이다.
광주MBC나 지역 영상작업자들의 경우 예를 들어 지리산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것은 거기에 살았던 사람, 20세기의 전쟁, 자연...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보다 지리산을 더 잘 안다. 우리는 산동애가와 빗점골, 섬진강, 그 강에서 은어를 잡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잡는지, 민물게탕... 구례... 하동... 모두 너무 잘 아는 것들이다. 그럼 우리는 한 열명 노는 셈 치고 1년여 시간을 투자하면, 서울사람들이 비용 들여 왔다갔다 하며 촬영할 것들보다 훨씬 좋은 작품을 만들지도 모른다.
또 있다.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이 '쌀'의 문화 말이다. 아랍과 미국, 유럽, 호주는 물론 작금에 들어 전세계적인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 쌀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미래의 희망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훌륭한 자산을 가졌다. 이 쌀을 가지고도 우리는 6부작이 아니라 10부작도 만들 수 있다. '주몽'을 후원할 게 아니라, 더 넓게 보면 쌀값에 죽고 사는 나주시장이 이거 만들면 후원해줄지도 모른다.
갯펄. 이것도 그렇다. 펄 위로 썰매를 타고 다니며 꼬막을 캐는 모습은 우리에겐 평범한 것이지만, 외국 사람들에겐 기이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싸우는)... 목포대에 근무하다 최근 퇴임한 박석규라는 화가가 있는데, 그의 갯펄을 그린 풍경화가 파리에서 대단히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갯펄의 문화 또한 무궁무진하다. 소금을 만드는 것 하나만 갖고도 충분히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가거도, 홍도... (나는 홍도에 깃든 설화와 전설로만 한편의 다큐멘타리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기실 이러한 것들은 하이테크가 아니라 어쩌면 로우테크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는 '디지로그'라는 말을 했다. 첨단과 전통을 아우른 우리가 활용 가능한 다양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유럽에는 지역방송이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모두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방송3사가 지방방송사별로 자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과문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앙이 거의 모든 편성권을 쥐고 있는 형편인데 비해 유럽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그럼. 요즘 영어 잘하는 젊은 축들 많고, 인터넷시스템이 발달되었으니, 예를 들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소금이야길 만들어줄테니 품값만 주라. 그래서 그거 작품 팔아먹고, 또 다른 어디에서 접촉해보고... 이즈음은 서울에 국제문화교류사업을 대행해주는 대행사도 많으니, 우리가 작품 만들어주면 늬들이 팔아주라. 팔아서 얼마얼마씩 나눠먹자... 뭐 이런 거 불가능할까?를 하릴없이 끌적여본다.
첫댓글 예전에 봤는데 어제 또 봤습니다. 야크 200마리에 소금을 실러 가는 머나먼 장정이 가슴 아프지만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