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2. 오후 3시, 오후 7시. 한남동 스트라디움. 안동혁 연주자님의 목요 음감회
추석 바로 전 토요일이었다. 전날 예당 콘서트홀에서 장장 1시간 20분에 걸쳐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들은 후, 밤이 새도록 블로그에 포스팅 하느라 고단했던지 정오 훨씬 넘겨서야 깨어났다. 토요일 오전이 송두리째 날라갔지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좀더 따스한 이불 속에서 맘껏 활개치다가 오랫만에 거품목욕이나 하기로 했다. 뽀글뽀글 거대한 거품 속에서 일정을 떠올린다......
어라?! 그러고보니 오늘 저녁에 「서울시향 강변음악회」가 있지....
그날 저녁 야외 연주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무수한 인파를 헤집고 귀가 하려는데 폰이 울렸다.
"아니~벌써 가려고?! 조금만 보고 가요." 안동혁 연주자님의 전화였다.
여의도 한강공원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추석지나 목요일 3시 이어 7시도 음감회 진행 해 줄래요? 내가 그날 서울대 동문 연주회 있어서 어렵거든요. 이참에 데뷔도 멋지게 해 보는거야."
사람의 맘은 참 묘하다. 얼마나 간절히 원하던 일이던가? 몹시 흥분되었다. 동시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매우 걱정스러웠고 의구심마저 일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그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음감회 진행 전날, 그니까 어제는 행복과 긴장 그리고 걱정으로 새벽 3시까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가.....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나보다.
스마트폰 알람이 요란히 울린다. 드디어 그날이다! 그래! 난 그날이 영영 안오는 줄로 착각했던거야...아니! 그리 믿고 싶던 거겠지.
마치 시험 전날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수험생마냥 난 허둥지둥 그간 연주자님이 카톡으로 보내주신 ppt자료들을 훑어보았다.
물론 음감회 곡목을 전달받은 그 순간부터
ppt를 숱하게 봤고 진행 멘트를 준비했으며 달달 외우기도 했지만...그럼에도...
여지없이 떨리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지하철 출근 길에서도...회사 조회 시간에도...
심지어 감상 전 우물우물 점심 들면서도...
머릿속으로 오늘을 위해 준비한 문구를 끊임없이 되새겼다.
실상 대중공포증은 기계공포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트라디움의 억대~고급 서라운드 시설들...그 복잡해 보이는 기계를 진행도중 괜히 잘못 건들였다가 망가지지나 않을까???아무래도 일찍 가 있어야겠어...그 비싼 전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배워야 할 테니까...회사 벽걸이 시계가 11시 정각을 가리켰을 때 난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감상실 뒤에 기계담당 메니저님 덕분에 진행을 위한 마이크와 포인터기만 다룰줄 알면 되었다.
오프닝 곡 차이콥스키의 가곡「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를 몰타 출신에 98년 카루소 콩쿨에서 우승한 조셉 칼레야의 육성으로 들으며 3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트라디움 박혜경 권사님이 들어오시는게 아닌가?!
"교회다니나요?"
"네..."
"내가 기도해줘도 괜찮을까요?"
차가운 손을 부드럽게 감싸는 온기어린 두 손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내가 이번 일로 알게 된 진리! 그날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고백하건데 해설하러 나가기 전, 그니까 현재 연주되는 곡이 끝나길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있을 때가 제일 떨린다.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 2, 3악장
차이코프스키
별사탕 요정의 춤
녹턴 4번
10분 휴식
심포니 4번 전악장
후에 3시 진행 마치고 4층 뽈 바셋 카페에서 기도응원차 오신 선배들과 티타임 나눌 때
"음감회 10분 휴식 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해설 때처럼 하지...그 전엔 좀 떨드라..."
난 희미하게 웃었다...
'오우!!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번 곡 끝나길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 있을 때가 훨씬 무서운걸요.'
7시에는 좀더 릴렉스 되길 기도하며 근처 신선설렁탕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실 점심 먹은 거가 소화가 덜 된 듯하여 아예 7시 음감회도 마치고 홀가분한 상태에서 맛을 음미하며 먹으려 했는데.....엄마같이 포근한 선배님 중 한 분이 꼭 저녁 사주고 싶어하셔서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근데 사실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고 몽롱한 상태에서 배만 채웠던 듯 싶다.)
추석지나 명절의 피로가 아직 안 풀렸든지
오늘 저녁 음감회는 여느 때보단 참석 인원이 적었다. 아!!이제야 장르 막론하고 강의하는 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의 심정을 알 듯도하다. 3시보다 수가 적어서 차분하게 진행할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가라앉더라...
그래도 전체적으로 그간 준비한 멘트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했다. 다만 처음이다보니 표정, 몸짓, 발음, 목소리 크기, 말의 속도 등등...보완해야 할 점, 고칠점이 수두룩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이들마다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늘 그러했듯이 감상곡에대한 후기를 기대했을테니까...나도 처음엔 그럴까했다.
그러다 이내 쑥스럽고 민망해졌다. 연주자님의 부재로 두 차례의 음감회 모두를 진행했는데,
내가 진행한 음감회를 내가 리뷰 한다는 게 좀...
또한 블로그 포스팅을 작품에대한 후기로 채운다면 삼경이 지나가고 있는 이 야심한 밤에
아무도 없는 빈 강의실에서 혼자 떠들어대는 것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서다.
여하튼 드디어 꿈을 향한 스타트가 실현되었다. 스트라디움 멤버, 모교 선배님의 기도 응원으로 두 차례의 음감회 무사히 마쳤다.
막상 끝나고 나니 찾아오는 허탈감~~
이러한 기회를 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