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손님들
"손님은
왕이다". "손님은 항상 옳다." 라는
말을 성경 구절처럼 알고 31년 동안 장사를 해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까탈스러운 손님까지 끝없이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장사가 잘 되던 예전에도 진상 손님까지 잘 참고 상대해주었는데 경기가 나쁜 요즘
같은 시절에 더 이상 손님의 무례를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단골손님들은 항상 전화로 예약을 하고 오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정확하게 손님들이
예약을 한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별난 손님들이
있어서 피곤하게 할 때가 있다. Lynn이 약속시간 5분
전에 와서 자기 손톱을 손질해 줄 마리아가 안 보인다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마리아는 어디
있지?" 하기에 “10분 후에 waxing 손님이 끝나니 마리아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라고 했더니 “1시에 예약인데 왜 늦는 거야?” 라고 했다.
'지금 시각이
12시 55분인데 10분 후면 겨우 5분 늦는 것인데, 얼굴을 붉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불쾌해졌다. 어디를 가든
예약 시간에서 5분 정도 늦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업소에서는 오래된 단골손님 중에 Lynn 같은 사람이 꽤나 있다.
노화현상 중에 인내심이 줄어드는 것이 있다는데 바로 그런 현상인 것 같다. 그러나 10분 가량 늦을 것 같으면 꼭 전화를 해 주던 나의 서비스 자세가 손님들의 버릇을 잘못 길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 가게의 비교적 철저한 시간 관리 때문에 멀리 이사를 가도 찾아오는 까다로운 단골들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래도 5분 정도 늦는 것으로 불평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한
번은 돈 많은 변호사 손님이 30분이나 약속시간에 늦게 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직원이 기다려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맞받아 쳤다. 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면서
돈 많다고 특별대우를 바라는 꼴을 더 이상 봐주기가 싫어서 한 마디 했다. 다행히도 그냥 돌아갈 줄
알았던 그녀가 꼬리를 살짝 내려서 무사히 넘어갔다. 평소에도 나는 직원들이 돈 많고 팁을 잘 주는 손님에게라도
필요 이상으로 비굴하게 친절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를 해왔다. 어려서부터 갑질을 하는 이들 앞에서 머리를
꼿꼿하게 하라고 가르치신 어머니의 교육 탓일 것이다.
내
삶의 여정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도 하고 스쳐갔지만 그 중에는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도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이 있고 긴 세월을
옆에 있었어도 흔적이 남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은혜와 최윤희를 만난 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행운이었다. 두 사람은 세상을 살아온 세월이 나 보다 훨씬 적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갖추지 못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은혜와는 네일 협회에서 회장과 이사장으로 함께 일하면서 일본과
한국을 같이 여행하기도 했다.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사람 속을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은 어려울 때나 금전 관계를 할 때일 것이다. 그녀가 동업으로 대형 스파를 하자고 했을 때 나는 전적으로 그 동안 하는 일 마다 성공적이었던 그녀의 사업적
안목을 절대적으로 믿고 망설이지 않고 소위 ‘묻지마’ 투자를
했다. 그 동안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항상 여유자금을 가지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조건이 되지
못했음에도 그녀의 사업적 능력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 투자를 했기 때문에 적자에 대비할
준비가 안됐고 결과는 완전 실패였다. 그래도 흔히 동업을 하다 실패하면 사이가 벌어지지만 부푼 꿈을
꾸는 것부터 꿈이 산산이 깨어지는 과정까지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의 신뢰에는 조금도 금이 가지 않았다.
그
동안 여성들의 사업장이면서도 계속해서 남성들이 회장을 맡아왔던 네입업계에 여성으로서 첫 회장이 되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 동안 단체장들이 거의 남성 위주인 뉴욕 교민사회에서 경제적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네일업계의
회장을 여성이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은혜 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더불어 추진력도
있어서 남성 회장들에 비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은 협회 일을 떠나서 함께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꿈을 모색하고 있다.
10년 전, 국제결혼여성 모임에서 만난 최윤희는 빨강머리, 화려한 옷차림이 유별난
여자 같아서 처음에 선뜻 다가가기에 어려운 거리감을 느꼈었다.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의 최윤희는 뉴욕
교포사회에서 작은 일, 큰 일,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위해서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네일 협회의 이사장으로 재임 중일 때 행사에 초대
하면 잊지 않고 참석하고 또 우리 둘이 두엣으로 장기자랑에 나가서 상을 타기도 하며 우정을 지켜나갔다. 2016년
2월 29일 한인 네일 업계를 뒤흔드는 지나친 규제에 항의하는
역사적인 시위를 할 때도 직장을 하루 결근하고 우리와 함께 한 의리의 여장부이다.
그리스인의
오지랖
이혼할
때 해결하지 못한 그리스에 있는 집의 소유권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겨졌었다. 물론 렙터리로서는
나의 명의가 빠지고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을 변경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혼을 했고 우리들에게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에 렙터리가 8만 불을 줄터이니 소유권을
넘겨 달라고 했을 때 디나가 반대를 했던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흘러서 렙테리는
건강을 잃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바다가 보이는 그리스의 집은 값이 떨어지고 그리스는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재혼한
부인과 살고 있는 렙터리로서는 나에게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집의 소유권을 완전히 옮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재혼한 아내 쪽에서도 순순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혼을 하고 앞으로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야
할 자녀가 둘이나 있는 내가 과연 아무런 조건이 없이 집을 넘겨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렙테리도 그런 면에서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집에 대한 말을 못 꺼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가 번 돈으로 산
집이지만 처음부터 그에게 주려고 생각 하고 있었다.
딸
디나의 결혼식 때도 오지 못하던 렙테리가 2년 전에 손자 아담이 아프다고 왔을 때도 집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천 하늘에 날벼락 같은 아담의 병이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나빠져서 집안
전체가 혼이 빠진 상황이 되어 버려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2016년 6월에 아들이 그리스로 갈 일이 생기자 이번 기회에 서류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디나도 건강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이번에는 반대를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이 권리포기각서를 가져다 주게 된 것은 렙테리에게는 생애 최대의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서류를 만들기 위해서 먼 거리에 있는 그리스 대사관으로 두 번이나 가야 하는 일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대사관의 후진적 행정처리 때문에 쉽게 처리가 되지 않아 짜증이 났지만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는 심정으로 참고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공교롭게도 30도의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도 고치러 갈 시간이 없어서 에어컨이 안 되는 차를 타고 한창 바쁜 성수기에 내 집을 주기 위해서 이틀 동안이나 생고생을 하려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급기야는 몇 십 만블 짜리 집을 넘겨 주는 것은 아깝지 않았지만 고생을 해가면서
수수료를 몇 백 불을 내고 나니 심술이 나서 아들에게 그리스에 가면 렙터리에게 수수료는 꼭 받아 오라고 했더니 아들이 제가 대신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짜증나는 그리스 대사관의 행정처리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그리스 문화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 것은 그리스에 대한 많은 추억을 되살리게 해주었다. 내 일을 처리하던 여자 영사가 고치고치 묻더니 오지랖 넓은 그리스인답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충고를
했다. 그녀의 의견은 소유권을 넘겨 주는 것보다는 세를 주는 것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 여자로서는 10여 년 전에 헤어져 재혼해서 아들까지 있는 전남편에게
집을 준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요즘 그리스 집값이 올라가고 있는데, 그냥 넘겨주면 나중에 틀림 없이 후회할 것’이라면서 거듭 거듭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영사를 이해 시키는 일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 뜻을 납득하지
못하면 내가 바보 같은 여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간에 이틀을 소비해서 일을 처리했지만 전생의
나라 그리스의 문화를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