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봉 박쥐길의 추억'
선인봉의 암벽루트 중 가장 상징적인 루트는 '박쥐길'. 그리고 '표범길'일 것이다.
인수봉을 대표하는 길이 '의대길' 과 취나드a.b' 인 것처럼...
실제 박쥐길 날개 안쪽에는 실제 많은 박쥐들이 살았었다.
그리고 그 박쥐들은 드세고 시끄러운 인간들 때문에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수많은 클라이머들의 추락과 외침들을 듣고 보았을 것이다.
박쥐길 등반에 얽힌 추억담. 스토리들이 많지만 그 중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지금 도봉산자락에 중고장비점을 운영하는 공재은씨는 고등학교시절 산악회에 가입하고 선배들에게 바로 선인봉으로 끌려갔단다.
지금처럼 발에 딱맞고 폼나는 암벽화는 고사하고 당시 운동화로 즐겨 신던 농구화(일명 BB화)를 신은채 박쥐길에 붙었다고 한다.
암벽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신발도 그런데 제대로 등반이 될 수가 없을터.
미끄러운 신발때문에 날개부분에서 추락을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등반을 못하고 야영장 텐트로 돌아온 공재은씨를 기다리는 건 산악회 고참 형의 꾸지람과 벌칙.
즉 박쥐길같은 쉬운 길을 제대로 등반하지 못하고 추락해 산악회의 명예를 떨어뜨린 것에 대한 벌칙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선배가 가한 벌칙이란 다름아닌 미제 군용 숟가락으로 이마를 100대 때리는 벌이었단다.
신입생이라 어쩔 수 없이 선배가 때리는 벌을 앉아서 고스란히 받았다고 하는데, 50대 쯤에서 이마가 찢어져 피가 마구 흐르더라고...
그 선배는 화가 덜 풀렸는지 아니면 미안했는지 할 수 없이 때리기를 멈추고 다음 주말에 나머지 50대를 마져 때리겠다고 했단다.
나중에 50대를 맞았는지 안맞았는지 후일담을 듣지는 못했지만, 암튼 80년대초 박쥐길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 중 하나이다.
공재은형이 속한 산악회는 경송산악회였는데 '경송' 그 이름처럼 서울을 지키는 푸른 소나무처럼 영원할 것같았던 그 학교(수송전공)은 지금은 없어진 학교가 되었다.
선인봉의 인기있는 루트 중 하나인 '경송A'도 그렇고 난이도 높은 '경송B' 루트 역시 재은형이 개척한 루트이다.
오늘은 그 사연 많은 박쥐길을 (이)상조형과 함께 줄을 묶었다.
상조형은 1997년 LSCK 트랑고 원정대(이상조. 신윤정. 최승철. 김형진의 이니셜)대장과 초대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전북대 미대에서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있는 대학교수이자 11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여전한 현역 화가이다.
그리고 내게는 친형과 같은 넉넉하고 큰 그늘을 주는 존재이자 영원한 멘토이다.
그 형돠 함께 오랫만에 줄을 묶으니 감개무량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벅찬 희열을 느낀다.
역시 우리들은 함께 묶은 자일을 통해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느꼈던 '사헤일루' 를 똑같이 느끼는 모양이다.
- The end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정(正) 바른 것,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사전적의미로 正을 ‘바르다. 세상의 옳바른 이치”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난 그것보다는 어떤 ‘순리’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소승폭에서 내려서 눈밭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틀즈가 노래한 Let It Be 는 직역하면 ‘그냥 내버려두라’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동사원형 ‘BE’가 뜻하는 것이 바로 그 순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순리란 일종의 어울림 즉 하모니이니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양복입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보다, 설악산 언저리 어디쯤에 자리잡고 살면서 벗들과 어울리거나 산 속에 얹혀 사는 내 모습이 과연 순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리속에서 어쩌면 내 속의 영감과 열정을 끄집어 내어 얼마 전 블로그에 썼던 미완성의 소설 ‘인수봉’을 제대로 쓸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옛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 역할을 맡아도 전혀 어색할 것같지 않은 준교형과, 마찬가지로 선녀 역할을 맡으면 적격인 도시 내음이 풀풀 풍기는 예쁜 우렁각시 형수님의 모습은 내가 살고 싶은 워너비(Want to be)이다.
외모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두 사람의 현재 삶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방하나 딸린 매점을 운영하면서 무릎 툭 튀어나온 오래된 등산복 바지 입고 눈꼽 떼어가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슬리퍼 끌고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남은 밥을 모아서 마당에 있는 개에게 밥을 주고,
찾아오는 벗들과 어울려 낮술도 마시고, 함께 산행하고, 등반하고 밤 깊은 줄 모르고 술을 마시고 싶다.
벗들이 다 떠나고 나면 밤 깊은 시간에 혼자 책상에 쪼그려 앉아 그들과 어울렸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산행했던 사진을 정리하고 싶다.
그렇게 쓴 글 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을 수 있다면 좋고, 팔리지는 않겠지만 벗들과 지인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나의 진정한 롤 모델은 도종환 시인이고, 그가 쓰는 오두막 이야기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정신까지 들어있다.
도종환시인과 준교형의 생활을 절반씩 섞어 놓으면 참 좋겠다.
인제군 한계리는 그런 면에서 나이 먹고 찾아갈 나의 이상향, 청학동, 엘도라도 중 하나이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나비족이 '사헤일루'를 통해 모든 생명체와 교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 마을 어딘가에 내 블로그에 '겨울깊은' 닉네임으로 자주 들어와 글 남기시는 상조형님께서도 함께 살고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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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소승폭 등반기 중에서
첫댓글 공재은님이 제가 아는분인가요! 현재 중고 암벽장비판매점대표????
네. 중고장비점 어프로치 운영하는 그 분 맞습니다.
예전 선인봉에서 날리던 맹장이었죠.
ㅎㅎ대장님 빨강색이 잘 어울리시네.....^^
참!!!!코드가 잘 맞는단 말야~`ㅎㅎㅎ
형~~~ 맥주한잔하게 의정부 넘어 오세요~~^^
네. 그러리다.
이번주는 토.일 근무라 다음주에 가야할 듯.
추석 연휴에 등반 안가유?
함께 갑시다. 연락 좀 줘
@한상섭 형~,전 설악 들어가요...아직 좀 그렇지만...^^
담주 대회 출전하시죠~~ㅎㅎ
박쥐를 20여년 만에 끌려올랐네.
평소에 걸을 기회가 없어서 선인에 도착하니
다리가 풀리더군요...
오랫만에 등반하니 좋았습니다.
석용씨도 만나고 또 정교장도 만나보고^^
이제 더위도 물러가니 등반 열심히들 하겠네요
즐겁게 안전등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