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전성훈
주로 토요일에 산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주일날 산행을 한다. 평소 같으면 성당에서 미사 참례할 시간인데 코비스19 때문에 미사를 드릴 수 없다. 일요일에 산행을 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4월의 첫째 주일날 북한산에 오르려고 집을 나섰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 창동역 버스정거장에 도착하니 4월임에도 제법 쌀쌀하였다. 겨울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더니 한기가 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일에 비해 배차 간격이 늘어졌는지 버스가 오지 않았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버스를 기다렸다.
우이동 입구 버스정거장에 내려 보니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알록달록한 다양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아침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북산한국립공원 안내소를 지나 개울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산행은 백운대방향이 아니라 대동문 코스로 잡았다. 소귀천계곡으로 올라가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올 생각이다.
초봄의 산 냄새를 맡으며 혼자 걷는데 눈에 확 띠는 젊은 군상의 모습이 들어왔다. 울긋불긋한 색깔, 파랑 또는 노란 원색을 입은 등산객은 늘 보았지만 검정 레깅스차림의 등산객은 처음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길거리에서 레깅스차림의 젊은이들이 눈에 띠었다. 몇 년 전 유럽 여행을 할 때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놀라고 신기했던 기억이 났다.
레깅스를 입고 산행하는 사람들의 몸에서 젊음이 용틀임하는 듯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역시 봄날의 젊은이는 나이 먹은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확연히 다른 듯했다.
소귀천계곡으로 가려면 할렐루야 기도원을 지나야 한다. 할렐루야 기도원 초입에 ‘만민의 기도처, 통곡의 벽’이라는 입간판이 있다. 세속과는 동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가는 경계선에 통곡의 벽이라는 표지가 있는 보니 뭔가 생경하다.
소귀천계곡에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걷기를 잠시 멈추고 개울 쪽으로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물은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은 너무나 조용히 흐른다. 아직은 소리를 내며 흐를 때가 아닌 가 보다. 계곡에 물소리만 들리지 않는 게 아니다. 숲속에 들면 으례 노래하던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심산유곡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적막강산에 빠져 있는 듯한 분위기다. 게다가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나 혼자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떨어져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귀천계곡과 진달래능선이 만나는 곳에 이르러 대동문까지 200미터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앞서 가던 사람 뒷모습이 아는 사람 같았다. 마음이 통했는지 그 사람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기에 깜짝 놀랐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감염 예방의 세태로 악수 대신 주먹인사로 반가움을 표했다. 산중에서도 별스런 주먹인사법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대동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능선 좌우에는 진달래가 함박눈처럼 피었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진달래능선이라고 부르는지 이제야 알았다. 어린 시절 외갓집 궁산에서 보았던 진달래처럼, 활짝 핀 진달래가 웃음꽃을 피우고 내게 인사하는 듯하다. 진달래능선의 이름에 걸맞게 온통 능선에는 진달래 동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탄성을 짓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니,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봄의 전령, 진달래꽃이 우리들 마음에 피었습니다.” 움츠렸던 마음을 털고 잠시나마 4월의 하늘아래 북한산의 봄기운을 마음껏 맡으며 하늘 높이 소리를 지른다. 그래, 털고 일어나자. 4월의 하늘을 향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노래하자. (2020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