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연구소에서 주관하는 해외 답사여행이 벌써 6번째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거의 1년 전부터 이미 장소가 정해져 있었고 또 홍보도 열심히 해서인지 참가 인원이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많았다. 모두 30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많은 인원 참가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인원 점검이나 이동시에 그 만큼 시간이 비례하여 더 소요되어서 전체적으로 충분히 여유있게 구경을 못하고 항상 쫓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정별로 간단하게 사진을 곁들여서 이번 여행을 되돌아본다.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도 대구에서 출발하여 대구로 돌아온다는 점이 좋았다. 중국 현지서도 이동 시간이 만만치 않은데 국내서도 또 인천이나 가깝다는 김해공항까지라도 이동하려면 적잖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대구공항에서 우리가 탑승할 동방항공 프론트에서 수하물을 탁송하기 위하여 줄을 선 모양.
우리가 타고갈 동방항공 비행기이다. 상해 현지서 8시 50분에 출발하여 손님들을 내려놓고 다시 우리를 태워서 돌아간다. 당연히 우리가 타고올 비행기도 이 비행기 편이다. 말이 국제 공항이지 고작 중국으로 취항하는 비행기 한 대 뿐인데 그래도 그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행기가 대구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당분간은 떠나 있어야 할 곳이다. 아래로 올시즌 우승한 삼성이 홈 구장으로 쓰고 있는 야구장과 그 옆으로 축구장이 보이고 있다.
비행기 창 밖 날개 아래로 보이는 솜을 깔아놓은 것 같은 구름은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번 여행의 기대감을 높여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드디어 상해 푸뚱(浦東) 국제공항에 도착. 동(東)자만 간체자로 쓰고 나머지 국제기장은 모두 번체자이다. 요즘 들어 중국인들은 번체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것 같다. 권위와 지식욕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나 똑같은 것 같다. 예전에는 홍챠오 공항이 국제 공항이었는데 홍챠오는 이제 국내기와 서울(김포) 등 몇몇 곳만 취항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입국 수속을 하는 모습. 일행 중 박은숙 선생이다. 사진을 찍는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인데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그래도 모두들 용케 촬영을 한다. 눈에 갖다대고 찍는 것만이 사진은 아닐터.
포동 지역과 포서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 상하이는 황포강을 경계선으로 하여 동서로 나뉜다. 포서 지역은 거의 개발이 끝났거나 더이상 개발이 힘든 곳이 대부분이어서 포동 지역을 새로 개발하였는데,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소개되는 야경 및 동방명주 같은 중국의 얼굴이 되다시피 한 유명한 곳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포동과 포서 지역을 연결하는 노포(盧浦)대교를 지날 때 보인 상해 세계 엑스포(스?:世博) 기념관. 중국은 북경 올림픽과 엑스포를 치르면서 역량을 세계적으로 과시한 바가 있고 세계의 정치와 경제 방면의 새틀을 짜는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차여행을 하기 위해 잠깐 들른 마트. 살 게 뭐 있겠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들어가면 見物生心이다. 특히 중국은 다른 것은 몰라도 과일 하나만은 싸고 달고 맛있다. 한국에서만 귤을 먹어본 사람은 하나도 골지 않고 즙이 뚝뚝 떨어지는 이곳의 귤을 보면 놀랄 것이다.
보따리 보따리 간식을 사서 나서는 일행. 홍계한 선생과 김정옥 선생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도 난전에서는 가격 흥정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백화점과 마트는 정찰제이다.
황혼 무렵에 도착한 상해남역. 저녁 어스럼이 기차여행에의 기대감을 높여주는 것 같다. 중간에 차가 퍼져 제시간에 못 대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또하나의 황당한 중국여행 해프닝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어 뇌리에 박힐 것 같다. 상해 같은 대도시에서도 저럴진데...
밑에서 찍었으면 멋있었을 상해난잔(上海南站) 표지판.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나름대로 멋있어 보인다. 일부러 무슨 효과라도 낸 것 같은...
기차 여행은 지난 무이산 여행 때도 해보았다. 그때는 터콰이(特快)로 우리의 지금 여행 목적지인 남평남역에서 탔는데 당시는 그저 그런 시골 역사의 모습이었다. 이날 이용한 상해남역은 말이 기차역이지 비행장 같은 규모였다. 중국의 경제 수도라는 상해에 걸맞는, 13억 인구가 사는 나라에 어울릴 법한 그런 규모였던 것 같다.
오른쪽에 우리가 탈 기차의 목적지와 시간, 차편이 적혀 있다. 2001호 푸저우(福州)행 17시 23분 발 기차이다. 국내서도 기차를 거의 이용할 일이 없어서 뭐라고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역사의 시설은 이 정도면 최상급인 듯하다.
기차표. 이번 여행에서는 4인실을 다 확보하지 못했다. 17명만 4인실이었고 나머지는 6인실이었다. 나는 6인실에 갔다. 2001이라는 차편과 출발과 목적지가 적혀 있다. 시간 아래는 차비인데 181위엔이다. 우리 돈으로 약 32000원 정도. 그리고 그 옆에는 좌석 번호가 있는데 13차 1호의 상(上: 3층)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신공조(뉴 에어컨) 잉워(6인실)라 적혀 있다.
우리가 탄 기차. 우리는 13호차였고 바로 밑의 객차는 5호차였다. 대합실에서부터 여역무원에게 쫓겨나다시피 내려왔는데 또 이렇게 길이가 긴 객차를 8개나 걸어야 했다. 적어도 한 량의 길이가 30m는 족히 되어 보였는데 8량이라면 240m 이상은 걸은 셈이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긴 기차 가운데 4인실은 딱 1량만 배정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좌석과 6인실이었다. 그러니 한 기차에 우리 일행이 다 함께 하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었다. 지난번 남평서 항주로 갈 때는 복주에서 항주까지 구간을 통으로 다 사는 덕에 그나마 우리 일행이 한 량에 배치될 수 있었던 것이다.
6인실의 내부, 닭장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4인실은 칸막이마다 출입문이 있는데 6인실은 이렇게 모두 오픈되어 있어서 실제로 108인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래도 이곳에 배정된 13명이 거의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얘기도 할 수 있는 등 추억을 남기기에는 더 좋았던 것 같다. 1층만이 그래도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고 2층과 3층은 아예 모두 똑바로 앉아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 2명 정도 함께 배치가 되었다가 4인실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 사람들이 인심이 좋아서 1층 자리를 소등을 하는 10시까지 빌려주기도 하고, 또 여자들이 불편해할까봐서 3층을 2층으로 바꾸어주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장면이었다.
환표증. 침대차에는 일단 승차를 하면 표를 이 환표증과 바꾼다. 그러면 내리는 역의 전 역에서 출발하자마자 다시 원래 표로 바꾸어준다. 그러니 절대로 목적지를 지나칠 리는 없다. 물론 그 사이 다시 잠들면 방법이 없겠지만... 나는 3층에서 잤는데 무이산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 그곳서부터는 1층에서 지냈다. 그러나 협소하기는 해도 잠만 자기에는 3층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일단 왕래하는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고, 덜커덕거리는 기차 바퀴소리도 덜 났으며 외풍도 더 없었다. 사람들은 3층이 담배 등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였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감기에 걸려서인지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였다. 다만 한 가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는 것. 사실 한번 잠들면 끝인데... |
출처: jangsehoo 원문보기 글쓴이: 장세후
첫댓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선생님!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어 지나봐요. 찍지 말라고 부탁한 사람 사진만 꼭 찍어 놓으셨네.
사진찍으면 혼이 조금씩 빠져 나간다는 사실 아직 모르셨나봐요. ㅎㅎㅎ
그건 선생님찍으려고 찍은 것이 아니라 입국수속하는 답사팀 대표 자격으로 찍히신 겁니다. 공교롭게 바로 제 앞에 서신 탓도 있을 것이고...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이 사진 찍느라 애먹었는데...
출발부터 기차를 타고 갈때까지를 시간차로 찍으셨네요.
다시 되새김질하니 그때의 설레임이 되살아납니다. 여행의 서막이 기차로 시작했기 더욱 더 설레었고 친숙해졌습니다.
곡부여행 42명 동참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26명... 적지 않은 인원이었는데도 앞자리가 2와 3이라는 것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