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진화 학과 폴 멜러 교수팀은 6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출발하여 떠난 이유가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6월 미국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15만∼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이 출현했지만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만 년 뒤. 최근 미국 지리학회와 IBM이 공동 추진하고 있는 ‘제노그래픽(genographic) 프로젝트’가 내놓은 연구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도1>아프리카로 부터 인류의 이동경로
<도2>인류의 mt DNA 이동경로.
2. 부계 혈통의 이동경로
<도3>부계혈통의 이동
유전학상 Y염색체는 아버지-아들-손자 등 이른바 부계(父系)로만 유전된다. X와 Y 염색체는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반면 미토콘드리아(mt) DNA는 모계(母系)로만 전해진다. 수정을 할 때 정자의 핵만 난자 속으로 들어가고, 미토콘드리아가 속해있는 세포질을 난자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아프리카를 벗어난 현생인류가 일단 인도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분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즉 인도에서 헤어진 일단의 집단은 계속 동진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분기, 일부는 지금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진출했고 일부는 중국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까지 진출했다.반면 인도에서 분기한 또 다른 집단은 이란-터키를 경유해 유럽으로 진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아프리카를 떠난 당시 현생인류는 보행이 어려운 사막과 산맥을 넘기보다 해안선을 따라 원시적인 배로 항해를 한 끝에 인도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고 밝히고 있다.
B.C.1만년 경 한국인의 선조들은 오늘날의 서.남.남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 중국대륙의 남.서안을 거쳐 산동반도.발해만 연안과 동북아시아의 요하 양안과 극동의 한반도 서.동 해안선을 따라 제주도 섬나라(당시는 한반도와 제주는 연육지였었고..)에 이르기까지 국경도 없고, 통과목 적용 비자(Visa)도 필요없는 지구촌을 래왕해가며 삶을 영위하여 온 국제인들이었다.
3.1.연육시기시베리아 최東단 추코카(Chukotka) 반도와
알래스카의 최西단 스워드 반도의 베링陸橋(Beringia_land_bridge).
“.베링 해협(-海峽; Bering Strait,폭은 85 km, 깊이는 30-50 m 가량 )을 사이에 두고 있는 시베리아 최동단 추코카(Chukotka) 반도와 알래스카의 최서단 스워드 반도가 서로 연육되었다. 동북아 선조들이 아메리카로 건넌 이곳을 베링육교라 한다”
*) Map of gene flow in and out of Beringia, according to human mitochondrial DNA haplogroups. Colors of the arrows correspond to approximate timing of the events and are decoded in the colored time bar. The initial peopling of Beringia (the region depicted in light yellow) was followed by a standstill after which the ancestors of the Native Americans spread swiftly all over the New World while some of the Beringian maternal lineages (C1a) spread westwards. More recent genetic exchange (shown in green) is manifested by back-migration of A2a into Siberia and the spread of D2a into north-eastern America that post-dated the initial peopling of the New World.
Barbara Seyock의 논문, "제주도와 한반도 및 현재의 중국 동남해부분의 본토와의 聯陸관계<Jeju Island as a Case Study in Ancient Island-Mainland Interaction>"란 논문(Barbara SEYOCK, Asia Orient Institute, University of Tuebingen, Germany, published: April 2009)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대륙과 한반도, 오늘날의 제주도 섬은 聯陸되어 있었다.3)
3)The Beijing 2008 papers. Island Archaeology in East Asia � Interaction and Isolation (Barbara SEYOCK)
<도13>박용안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린 최종 빙하기의 해안선과 강줄기. 중국 대륙과 한반도가 육지로 연결.
<도13>는 박용안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린 최종 빙하기의 해안선과 강줄기. 중국 대륙과 한반도가 육지로 연결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만~1만 8000년 전이 마지막 빙하기의 최전성기였다. 서해안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150m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즉 지금의 중국 동부해안과 서해안이 하나의 육지, 즉 황토층이었다.”라고......
4. 미주대륙 원주민들
안녕하세요 찾아가는...(45)에서 보내드린 바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4만년에서 1만년 전 사이, 마지막 빙하기에 해수면은 현재보다 50m 정도 낮았다. 베링해에는 물이 없었고,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구석기 후기이후 3만 4000-2만 6000년 전,여러차례에 걸쳐서 베링해협을 건너서 미대륙으로 이동한 인류는 古 아시아 인4) 들로 동북아 동이계 선조들이다. 고고학자, 언어 학자, 유전학자 등은 2010년 인간 genomes과 화석 유적에서 DNA의 비교, 화살촉 및 도구, 언어, 두개골 잇빨 등의 최첨단연구 결과 아프리카로 부터 이주하여, 동북아 이주민들은 구석기시대 후기이후 3차례에 걸쳐서 베링해협을 건너서 미대륙으로 이동하였다.
4) 신석기시대 한반도 주인공들은 몽고지역에서 황인종과 백인이 혼합된 古 아시아족(Paleo-asiatics) 또는 古 시베리아족(Paleo-siberians)이라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소련의 시뇌크카노후 학자와 중국 동북지역 학자들은 한민족 기원의 고 아시아족 또는 고 시베리아족은 기원전 6천 년경 퉁구스족으로 통합됐다고 하였다. 2007년에 고고학계에 발표된 논문에 러시아 동부의 시베리아 지역에 거주하던 퉁구스인이나 이누이트 등과 같은 몽골로이드 계열의 민족이 최소 12,000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거쳐 북 아메리카 대륙로 건너 갔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다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라시아 슬기사람들이 1만 2천년의 전후해 베린지아 대륙(Beringia) --지금의 베링해협 일대-- 마지막 빙하기에 북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이은 베링해협의 땅을 말한다. 당시 빙하로 바닷물이 얼어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베링해협 바다 밑은 육지 형태로 존재했다)을 3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건넜다.
간혈적으로 계속 이 경로를 따라 여러 차례 이동했고, 사냥과 어업으로 살던 유목민이던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고, ‘비어 있는’ 땅에 자리를 잡았다. 이주한 부족들도 다양했다.5)
현재 미국이 있는 대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메리카는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로 삼기 전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베링 육교를 건너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각지로 분산되어 갔고, 이러한 이주는 육교가 물에 잠기는 마지막 빙기가 왔던 1만년 전까지 이어졌다. 이들 (동북아선조들인) 몽고계 종족들은 15,000년 전 빙하기에 수위가 낮아져 다리처럼 연결되었던 베링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로 이동한 뒤,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6)
1513년 4월 2일, 스페인의 정복자후안 폰세 데 레온이 스스로 "라 플로리다"(La Florida)라고 부른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이 때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에 스페인 정착지가 들어서고 연이어 오늘날의 미국 서남부지역인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1607년 제임스타운의 버지니아 식민지와, 1620년 필그림의 플리머스 식민지이다.1610년대 말에서 미국 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50,000명의 죄수들이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송되었다.1607년 시작되는 영국 이주민은 차츰 세력범위를 넓혀 북미 동해안을 장악한다. 영국은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토를 서부로확대했다.이 단계에서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의 식민지를 대서양 연안에 만들었다.주에 따라서는 백인 인구가 인디언을 넘어서는 지역이 등장했다.
최초로 북미대륙으로 이주해 온 것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며, ....이주민들 대다수의 인구는 잉글랜드의 청교도, 프랑스와 스위스의 위그노, 아프리카에서 노예로서 이주하거나 중남미 식민지에서 들어온 아프리카계 남미인들이었다. 이들이 남부 곳곳에 이주하여 미국의 역사가 태동했다9.) 스페인과의 전쟁, 프랑스와의 전쟁에 승리한후 이주민 중심이 영국인이었으므로 현재 미국에서는영어가 일상어이다.
이렇듯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가 主를 이루어 북미를 개척하고 이주하는 것은 이들나라가 당시 스페인 왕(필립 2세:1527-1598)의 통치령의 나라였거나 왕실婚(합스부르그 왕가 혈통(스페인 찰스 5세 :1665-1700)이 프랑스의 브르봉(스페인 필립 5세왕:1700-1724)왕가로 이동)으로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통치령시대의 정보가 이들 이주민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었던 것이 그 이유라고 볼수있다.
미합중국 정부는 1778년부터 1868년까지 100년 미만 기간에 인디언으로부터 1억 1000만 에이커(44만 5200㎢)의 토지를 몰수하고 768만㎢의 땅을 입수했다. 서부 최대의 반항 세력이었던수 族 부족장, 王이던, 시팅 불이나 크레이지 호스가 죽은 후, 남서부에서는 아파치(본인해석, 아버지 부족이란 명칭의 의미) 族의 제로니모가 투항한 ‘운디드 니 학살’을 계기로 “미주개척에 방해가 되어 온 인디언 소탕 작전을 종료했다”고 선언했다.10)
10 ) 생활권을 빼앗긴 인디언은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걸쳐 각 부족이 일제히 봉기했다. 이것이미국 인디언 전쟁이었고, 미합중국 군대와 20년 이상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결국 나바호 족처럼 영토를 일시에 완전히 몰수당하거나(롱 워크), 보류지에 유폐되었다. 인디언 지도자는 전투에서 죽거나 독살되었고, 부족 공동체도 무너지고 인구도 감소하였다. 또한 《도스법》은 인디언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그들의 땅 대부분을 백인 농부에게 주었다. 1871년 미합중국 정부는 “미합중은 이미 인디언 부족을 독립 국가로 간주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권 조약을 체결한다”고 선언, 이 시점에서 미국의 인디언 부족의 영토(보류지)는 총 51만㎢에 불과했다
이어서 미합중국은 1890년에 ‘국경의 소멸’을 선언했다. 인디언정책은 새로운‘동화정책’의 의도로 ‘인디언 기숙 학교’로 아이들을 강제 입학시킨다.11)
북미대륙의 원주민들과 관련하여 미미하지만 언급하고 지나는 것은, 동북아 선조들의 나라가 이상에서 본것과같이 중세에 유럽인들에게 정복 당하여 본토의 원주민들은 소수인종으로 존속하게 된것이 현실이지만,
북미 원주민들을 포함하여 移住 한국인 및 그 후손들은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개안(開眼)하여, 오늘날 초 강국의 구성민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한국인들 특유의 강한 자부심으로 현 북미국가들에 임하여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역사인식의 주인공으로 후속세대들은 성장하고, 前 세대들은 이를 후속세대들에게 바르고,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도록 역사를 전수하여 주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강한 신념의 주인의식을 지닌, 한국인 대통령이 과거 선조들의 영토에서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여 북미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도 이유중의 하나이다.
2012.7월, 하바드醫大 보고서에 안드레스 루이즈 -라이나, 런던 대학 인간 유전학 (Andres Ruiz-Linares, professor of human genetics, University College London)교수에 의하면, 적어도 두 개의 다른 아시아 인구가 초기에 미주대륙으로 이주,15000년전 이상의 빙하기에 미주대륙 원주민들은 베링해협 聯陸橋인 베린지아(Beringia)를 건넌 고 아시아와 고 시베리아 인들이 북미의 카나다로 부터 남미의 칠레까지 적어도 3차례에 걸쳐서 이주한것으로 결론을 내렸다.12) 聯陸시기에는 연육橋를 건넜고, 해수면 상승후,15,000년 전에는 배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해협을 건넜다.
12) Scientists have found that Native American populations, from Canada to the southern tip of Chile, arose from at least three migrations, with the majority descended entirely from a single group of First American migrants that crossed over through Beringia, a land bridge between Asia and America that existed during the ice ages, more than 15,000 years ago. 12) http://hms.harvard.edu/news/unraveling-mystery-ancient-migrations-7-11-12
2012.7.12일자 (서울=연합뉴스)에서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1만 5천~5천년 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시베리아로부터 베링해협을 건넌 아시아인들의 자손이라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7.11일 보도했다.
영국 런던대 연구진은 캐나다에서 칠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최초의 이주민은 베링해 연육교를 거쳐서 1만5천여년 전 빙하기에 처음 시베리아로부터 건너온 아시아인 집단이었고 이후 두 차례의 이주민은 중국의 한족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집단임이 밝혀졌다고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원주민 52개 집단과 시베리아인 17개 집단으로부터 채취한 30만개 이상의 DNA 염기, 즉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분석해 각 집단간의 유전적 유사성과 차이를 밝혀냈다.
이 연구는 1492년부터 시작된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유입, 그리고 이후의 유전적 섞임 때문에 복잡해졌는데 연구진은 순전히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만 있는 게놈 영역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이런 섞임을 제거해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이 도착하기 이전의 혈통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베링해협에 물이 차 오르면서 당시의 항해술을 고려할 때, 미주 대륙으로의 이주는 북 태평양 해안선 루트가 선택된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로 부터 배를 타고 알래스카 연안에 이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이주한다.
또한 동북,동, 동남아시아를 떠난 선조들은 한국의 서해안을 따라서, 대마도로 부터 일본열도를 징검다리 삼아서...또한 한국의 동해안을 거쳐서 알래스카 연안에 이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계속 남진했다.14)
14)1997년 칠레 남부의 몬테베르데(Monte Verde) 유적이 고고학계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태평양연안 이주설은 학계의 공인을 받은 상태이다. 파나마해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인류는 기원전 1만년경에는 최남단 ‘불의 땅(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른다.
이들은 대륙의 최남단,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의 섬들인 열도에 이르러 정착한다.
최초의 유럽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10.000여명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컬럽부스의 신대륙 상륙이후 원주민들은 1492-1560년까지 4000만명의 원주민들이 학살에 희생되었고, 그 이후로도 학살은 도처에서 지속되어 19세기말 원주민들은 거의 멸종에 이른다.
안녕하세요? 찾아가는...(47)에서 보내드린바와 같이,
16세기유럽인들이 개착당시 당시 3,000만 명으로 추산되던 북미주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1980년대 기준으로 불과 140만 명만 살아남았다.
이로보면, 結論적으로
빙하기 후기이후 한국의 선조들은 동북아시아로 부터 신대륙으로 이주를 지속하여 처음에는 먹이사냥을 목적으로, 역사시기에 접어들면서 夏.商.殷.周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시베리아 반도의 연육교(連陸橋:land bridge)를 건넜다. 연육교가 海水面으로 아래로 가라앉자, 다음에는 카누로, ....선조들은 여러차례 이주하였다.
이들은 북미주에 정착하거나,
이들 중 일부는 南下를 계속하여, 중남미를 거치면서 정착하거나, 거쳐서 남미대륙의 끝으로..,
동아시아로 부터 새로운 해안로선을 따라서 이주한 해양이주민들과 혼혈되면서 오늘날 남미대륙의 원주민들을 구성하였다.
이들 한국의 선조들인 원주민들은 미대륙 전 지역에 분포하여 살고 있었으며 특히 중남미에는 3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마야문명(Maya Civilization)과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중미의 아즈텍 문명(Aztec Civilization), 그리고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안데스 산맥의 지금의 페루에는 잉카문명(Inca Civilization)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농업, 건축, 수학, 천문학 지식을 가졌던 문화유적을 남겼다.
<도25> 동북아 선조들의 베링해협을 건너 북.중.남미로 이주한 경로
<도25> 동북아 선조들의 베링해협을 건너 북.중.남미로 이주한 경로
<도25> 동북아 선조들의 베링해협을 건너 북.중.남미로 이주한 경로
(Sketch by Brazilian artist Emiliano Bellini.
Drawings based on photographs of Native Americans from theArctic to Tierra del Fuego.)
6. 全 미주대륙 원주민들은 "인디안"."인디오"가 아니고
"미대륙 원주민".
미주대륙 원주민 혹은 토착민들은, 원래 콜럼버스가 조난사고로 신대륙의 일부인 섬에 도달하기 전부터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즉, "1492년에 콜럼버스가 만난신대륙의 원주민들"이다.
안녕하세요? 찾아가는...(46)에서 보내드린 바와 같이,
1492년 바하마 제도의 과나하니 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 대륙의 일부인 줄 알았다. 그리하여 도착지역을 西인도,그곳 거주민들을 '인디오(스페인어로 인도인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하여 현재까지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른다.
南 중앙아시아의 인도인들과아메리카 원주민은 고고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미국을 비롯한 영어 사용권 국가들은 Native American(원주민. 토착민)이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북미 원주민들은 "Amerindian"으로 호칭하나 이들역시"아메린디안""인디오" "인디안"대신 "원주민.토착민"으로 호칭되어야 한다.
이글을 읽는 우리들만이라도 우리들의 선조인 대륙의 원주민들을, 멸시적 의미??를 내포하고, 사용이 적절치 않은, "인디오"나 "인디안"보다는 "원주민"이나 "토착민"으로 불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남미 성지순례이후, 고찰해 본, 非 전공인인 저 개인의 地.政.인류 생태학적 結論은,
1. 아프리카를 출발한 인류는 한 조상에게서 발생한 한 형제.
2. 古 아시아 족인, 동아시아.동북아 선조들은 사냥과 식량채집을 따라서 聯陸시대 베링브리지(Berring Bridge)를 건너 미주대륙으로 이동하였다.
3. 고 아시아족인 동아시아의 선조들은 중국대륙. 한반도. 제주도가 聯陸시기에 일본열도를 거쳐서, 베링 연육교를 건너서 또한 해로로 사냥과 고래잡이 식량채집을 따라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
4. 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夏.商.殷.周역사 시기에 정치적인 변동에 따라서 배링해협을 건너 이주하였다.(보내드린 자료에서 배경설명함) 이들이 북미주 원주민이 된다.
5. 이들중 일부가 남하하여 페루해안에 세친 알토(Sechin Alto, Coastal Peru, BC. 1800)문화, 카리브해안에 올맥(Olmec, Caribbean Coast, BC.1500) 문화를 건설한다.15)
6. 秦.漢 三韓.교체시기에 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海路로 베링해협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海路로 베링해협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맥시코와 과테말라에서 마야(Maya Guatemala, AD, 300-1000)문화를 건설한다
6. 四國(고구려.백제. 신라, 가야)시기에 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海路로 베링해협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맥시코에서 테오티오칸(본인추정 漢字. 大道칸:Teotiahuacan, Valley of Mexico, AD.600)문화를 건설한다
7. 四國(고구려.백제. 신라, 가야)시기에 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海路로 베링해협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유카탄반도와 과테말라지역에 마야(Maya, Yucatan & Guatemala, AD.1000)문화를 건설하였다.
8. 四國(고구려.백제. 신라, 가야)시기에 동아시아 동북아 선조들은 海路로 베링해협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미주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페루고원에 티아우나코(Tiahuanako, Highland Peru, AD.800)문화를 건설하였다.
9. 중세에 요.금.원.청.과 송.명 교체시기에 동북방.동아시아 거주민 선조들이 海路로 미주대륙으로 이주, 아즈택(아주댁:Aztec, Valley of 맥씨가:Mexico, AD.1325) 문화와 잉카(殷氏家:Inca, Unified Peru, c. 1438 AD.1438)문화로 통합,건설한다.
<도26>중미지역 문명구분 지도
10. 全 美州대륙은 한국인 선조들의 땅이다. 북미 원주민들은 "Amerindian"으로 호칭되고 있으나 이들역시"아메린디안""인디오" "인디안"대신 한국인들의 선조 "원주민.토착민"으로 호칭되어야 한다.
유럽인들의 이주로 시작된 북.중.남미주 원주민들은 인구감소를 초래하고 현재는 소수인종으로 남았지만, 북중.남미주 대륙의 주인으로서의 한국인 특유의 자부심으로 굳건하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세계시민으로서 미래에 대한 높은이상과 열린마음으로 삶을 개척해 나아가며 살아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 2部. 신대륙 宣敎의 結論-맥시코중심-
교황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 세계 인구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17.4%로 집계됐다.
중남미는 전체 인구의 49.4%, 그리고 유럽은 전체 인구의 24%가 가톨릭 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를 합친 가톨릭 신자 비중은 전체인구의 15.2%였고 아시아는 10.7%이다. 16)
중.남미국가들은 Latin America와 Caribbean해안(서인도 제도)국가를 합하여, 46개국(25개국 : 섬나라)을 말한다.
1)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19개 나라로 구성됨을 원칙으로 하나 오늘날에는 Belize(스페인어, 영어 사용)와 Surinam(네덜란드어 사용: 독립국)과 Guyana(영어 사용: 독립국)와 French Guiana(불어사용, 불란서 영)와 Falkland Islands(영어 사용, 영국영)를 포함하여 24개 국으로 구성된다.
2) 중미(Central America) -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중미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5개국을 말하였으나, 오늘날은 파나마와 벨리체를 포함하여 7개국을 의미한다.
3) 서인도 제도(Caribben 海)국가 -서인도 제도 지역은 중미지역과 남미지역에서 제외되어, 카리브해 국가 군으로 분류, 12개국의 독립국과 10개의 도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남미 전역이라 함은, 중미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 24개국과, 카리비안 해안국가 22개국을 합한 46개국을 지칭함을 말한다.
15세기말 시작된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통치는, 1810-1824년사이 스페인은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에서 그 세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각 나라들은 독립했다17.)
당시 콜롬부스가 ‘인디언’이라 부른 원주민들은 카리브해연안 섬들에 거주민들은 약 5000만명이었다.
유럽 인구 6700만명에 버금가는 數였다. 그러나 150년이 지나고 원주민들의 수는 5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정복자들에 의해 학살 당하거나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1.
라틴 아메리카. 중.남미지역- 선교
중남미 지역의 종교의 분포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Christianity)의 인구는 91.7%를이루고, 그 중 개신교(Protestant 혹은 Evangelical)는 10.6%를 차지한다. 카톨릭 신자는 전체인구의 약 80%-85%를 차지하고 있으나, nominal 카톨릭 신자는 그 중의 50%-60% 이상을 차지한다.회교는 전체 인구의 0.34%(약 140만 명)를 차지하고 있으며, 불교는 0.16%(약 23,000여 명), 힌두교는 0.13%(약 894,000여 명), 유대교는 0.20%(약 10만여 명)를 차지하고 있다.
중.남미지역인 오늘날 맥시코와 페루의 아즈택, 잉카문화지역에서,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통치시대(the conquest and colonization: 1492-1821)는, 선교의 시대로 호칭되기도 하며, 서구 유럽의 기술과 문명과 문화의 소개 및 도입으로 문명화에 기여, 교육제도와 언어의 도입(스페인어, 포르투갈어)과 로마식 알파벳 표기개발과 함께 복음화(Roman Catholic)가 이루어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수도 있겠으나,
부정적인 면으로 보면, 원주민 문화의 파괴와 원주민의 노동력 강제착취와 학살, 유럽의 질병을 전염 시킴으로써 수백만 명의 원주민들이 면역성 부족으로
컬럼부스 대륙 발견 당시의 인구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약 1,300만 명이던 것이 16세기 이후 원주민들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문화의 파괴를 초래했다.19)
1). 1523년 3인의 프란치스코회 성직자 도착이후, 1524년 5월 13일에 프란치스꼬회 12명이 도착하였고 1526년 7월 2일에 도미니꼬회 12명이 도착하였다. 1533년 5월22일, 어거스틴 수도회 7명이 도착하였다.
신대륙 도착 선교단체들은 상호간에 영역을 나누어서 1524년 도착 Franciscans은 새 스페인의 중앙 지역과 유카탄반도 지역의 선교를, 1526년 도착 Dominicans은 푸에불라시 오악사카 주변과 남쪽, Augustinians 수도회는 멕시코 시티의 북쪽 미초아깐 지역과 서쪽지역으로 선교담당 영역을 분담하기로 하였다.20)
6). 1530-1600 년 사이에 뉴멕시코에 400여 개의 선교근거지가 만들어지며 비스타 (vistas)라고 부르는 부속교회들은 1000 여개쯤 시골 각지에 만들어진다. 400년간 수도원과 성당은 10만개 이상이 건축되었다
7). 2013년 현재, 전세계 카토릭인구를 다스리는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회가 활발하게 선교와 교육사업을 전개하던 알젠틴의 브에노스 아이레스교구 예수회 출신 첫 교황님이다.
8).
신대륙정복을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운 스페인카토릭 선교의 시작으로 대서양 서쪽의 첫 감독교구가 1511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 산토 도밍고에 설치가 되었으며, 1522년,8개의 감독 교구를 설치한다.
2010년 통계로 아즈택제국이던 맥시코는 맥시코시를 중심으로 <도29>와 같은 분포와 비율을 보여주는 카토릭국가가 된다.
<도29>맥시코의 카토릭분포비율
현재 멕시코의 로마 가톨릭교구는 18개 관구, 18개 관구장좌 대교구, 68개 일반교구. 5개 성직자치구로 구성되어있다.
1.2. 스페인 카토릭선교화의 업적
1.2.1.1537년 원주민의 존엄성 옹호
1). 프란치스코 수도회 알론소 드 몰리나(1513- 1514 - 1579- 1585: Alonso de Molina )사제는
" 그들이 "인디안" 이라고 하더라도 인디안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무능하다면 어떻게 이렇듯 화려한 건축물들과 화려한 세공품들을 만들어 낼수있으며, 훌륭한 화가일뿐만 아니라, 놀라운 商術로서, 유통 및 공급의 기술, 그리고 개인생활과 공공서비스, 富의 유지, 섬세하고 예의바른 언어행동, 그리고 외모유지 등이 나올수 있겠는가?" 라고 원주민들이 무능력하고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는 이론에 반박하였다. 22)
2). 16세기 유럽대륙의 모든,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신학자 포함)이 원주민들을 "인간이 아니고 짐승같은 동물"이며, "복음을 받아드릴 능력이 없다"라고 선언 하였을때, 카토릭 성직자들은 인신공양도, 교육을 통해 선도 가능한 일이며,
"원주민들은 심성이 착하고 선량하며 욕심이 없고 콩 한조각도 나누며 살아갈 줄 아는, 예술적,기술적,도덕적으로 우수한, 절대 열등한 인간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1537년 교황에게 인디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예수님의 복음말씀을 이해하고 구원받을 능력이 있으며, 원주민을 노예화하는것은 불법이며, 원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할수 있도록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23)
23) The friars helped get laws passed such as the papal bull of 1537 and the New Laws, which declared the Indians were humans and capable of salvation and outlawing Indian slavery .
이에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는 1537년에 발표한 서한에서:Pope Paul III to issue the 1537 bull Sublimis Deus affirming that "the Indians are humans capable of receiving Christian faith)는 신세계의 식민지 확장으로 위협 당하고 있는 원주민의 존엄성을 옹호했다.24)
24) This resulted in the 1537 bull Sublimis Deus. In it Paul III wrote, “The Indians are truly men, and are not only capable of understanding the Catholic faith, but according to ourinformation they desire exceedingly to receiv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