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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단의 미래와 과제
현 응
조계종개혁회의(1994년) 기획조정실장 / 조계종 교육원장(現)
※ 본 발표의 내용은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자산을 승계한 전통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1962년 출범 이후 1994년 종단개혁불사를 거쳐 50년간 이룩한 제도적 성과와 과제를 살펴보고, 한국불교의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종단(특히 중앙종단)이 사찰을 어떻게 공공적으로 잘 관리할 것인지와, 스님들의 수도와 전법교화를 어떻게 잘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행정적 개혁문제를 주로 다룬다.
< 목 차>
Ⅰ. 조계종단 출범과 오늘까지의 성과 2
1. 조계종단 출범과정과 의미 2
2. 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오늘에까지 중점적으로 해 온 일과 주요성과 4
Ⅱ. 조계종단의 현재의 주요 문제와 과제들 5
Ⅲ. 종단이 향후 10년 내에 추진해야 할 일들 9
Ⅳ. 재원 확보 방안 13
Ⅴ. 재․개정해야 할 종헌 및 각종 종법들 14
Ⅵ.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종단의 미래 15
Ⅰ. 조계종단 출범과 오늘까지의 성과
1. 조계종단의 출범과정과 의미
조계종단(‘대한불교조계종’)은 공식출범 50주년이 넘은 한국불교의 전통교단이다.
먼저 전국의 사찰과 스님들을 통할, 관리하는 ‘종단’이라는 제도가 출범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한국불교의 사찰과 스님들은 근대이전까지 왕조의 국가체제의 관리를 받아왔다.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의 불교는 경국대전(대전회통)의 관리체제 아래 있었지만 사실상 발전을 제약하는 억압체제 아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1897 ~ 1910) 시대에 들어 국가는 ‘전국사찰현행세칙’(1902년)이라는 국가법령을 제정하여 승려에 대한 도첩(승려증)발급을 재개하고, 전국사찰을 16개의 지역단위로 권역화(‘중법산’)하여 이를 중앙에서 총괄하는(‘대법산’) 국가제도를 수립하여 조선불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였으나, 기울어져 가던 왕조는 이 제도를 3년도 넘기지 못하고 백지화 하고 말았다. 이후 근대화라는 시대정신을 읽은 불교계는 더 이상 사찰과 승려들이 국가에 의존하거나 관리를 받는 제도를 탈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1908년 전국 주요 사찰의 지도자급 스님들이 뜻을 모아 사찰과 스님들을 더 이상 국가가 관리하게 하지 말자는 뜻에서, 불교계가 자율적으로 통할 관리하는 제도이자 시스템인 ‘종단’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그 종단의 권한과 위상을 인정받고자 했다. 이때 출범시킨 종단의 명칭은 ‘조선불교 원종’이었다.
원종은 1910년 5월, 전국사찰과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총본산의 기능을 하는 각황사를 건립하였으며, 당시의 정부(한성부, 통감부)로부터 사찰에 대한 인사권과 재산감독권을 행사하는 종단의 기본적인 권한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승인받지 못했다. 원종의 지도부는 정부 승인 문제에 집착하다가 일제에 의한 조선병합을 전후해서 조선불교를 일본불교(일본의 조동종)의 지도체제 아래로 두는 협약을 맺는 과오를 범함으로서 대중의 신망을 잃었다.
원종에 대한 반발과 대안으로 조선의 불교계는 ‘조선불교 임제종’이라는 새로운 종단을 출범시키기도 했지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됨으로서 조선불교는 또다시 총독부라는 일제의 국가관리체제 아래 들어가고 말았다.
그 당시 조선불교가 얼마나 불교계의 자율적인 ‘종단’을 필요로 했던가 하는 점은 일제시대에 발표된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 등에 잘 피력되어있다. 또한 그러한 종단을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 불교계의 일치된 열망으로 일제시대 전 기간 동안 ‘종단 건설’ ‘교단건설’ ‘종헌 제정’ ‘총본산 건설’ 등의 목표아래 구체적이고도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1942년, 명목상의 ‘조선불교조계종 총본산 태고사’가 출범했지만, 사찰령에 의한 사법(寺法) 체제 범주 내의 일이라 자율적이고도 실질적인 중앙종단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찰령에 의한 총독부의 직접관리는 변함없었다.
1945년 해방 직후 불교계는 승려대회를 열어 교헌(敎憲)을 제정하고 ‘조선불교’라는 교단(종단)을 출범시키기도 했지만 미군의 군정치하의 해방공간에서 현실적인 기구로 정착하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았다. 그 후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한국불교계는 1954년부터 본격화된 정화불사를 거쳐 마침내 명실상부한 한국불교의 최초종단이자 전통교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역사적으로 출범되었다.
한국불교의 역사는 크게 보면 조계종단 출범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고 본다.
근현대 한국불교사의 큰 특징과 성과라면 첫째는, 종단 출범을 위한 수많은 노력과 그 결과로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단을 출범시킨 점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조계종단의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이룩한 한국불교 각 분야의 눈부신 활동과 성취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한국불교사적으로 볼 때, 근현대 한국불교의 기점을 ‘종단 출범 필요성에 대한 각성과 그에 대한 노력’이 본격화 된 1908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계종단의 출범과 그에 따른 성취는 과거 왕조시대나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우리나라가 1948년도에 ‘대한민국’이라는 현대적 민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서 국가운영체제의 질적인 전환을 이루었고, 또한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과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962년에 출범한 조계종단은 1994년 종단개혁불사를 통해 종헌, 종법의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보다 엄정하고 효율적인 종단운영체제를 구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종단개혁불사가 있은 지 20년이 경과한 오늘날, 변화되고 발전된 종단현실과 국가적 상황에 부응하여 종단운영 시스템은 새로운 전면적인 제도적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2. 조계종단이 출범한 이후 오늘에까지 중점적으로 해 온 일과 주요 성과
조계종단이 1962년 3월 출범한 이후 1994년 종단개혁불사를 거쳐 오늘날까지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그 주요한 성과는 무엇인가?
1) 사찰의 주지 인사권 확립을 통해 전국의 사찰을 동일한 규율(종헌, 종법) 속에 묶음으로서 단일 종단으로서의 기본적인 행정기반을 확보함.
2) 사찰에 대한 인사권, 감사권, 징계권을 통해 사찰의 부동산(토지, 법당 등 건물)과 부처님 성상(聖像) 등 각종 성보(聖寶)들을 엄정하게 관리되도록 감독함.
- 사찰재산을 종단이 감독해야 하는 이유는 사찰(공찰)재산은 시방상주물(十方常住物)이며, 삼보정재(三寶淨財)는 시주로서 형성된 공공성 자산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현재 사찰에 거주하고 있는 스님들이나 주지스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임. 그리고 관리책임자인 주지는 임기가 있어 수시로 바뀌기 때문임.
3) 계단제도(사미계, 구족계)를 불교전통의 율장에 의해 종단적 차원에서 시행함으로서 정법(正法)에 의거한 스님들의 기본적인 자격 및 자질을 담보하고, 단일승가와 화합승가의 기틀을 확립함.
4) 1만 명에 이르는 스님들의 승적관리의 엄정한 행정체계를 갖춤.
5) 승가교육 체계(행자교육, 승가대학, 승가대학원, 연수교육 등)를 정비하여 시행함으로서 스님들의 전법교화력을 향상시킴.
6) 호계원 제도 운용을 통해 스님들로 하여금 율장과 종헌종법 준수를 통한 종단승가 와 화합승가를 이루게 함.
7) 중앙종회, 교구종회, 사찰운영위원회 등의 대의제도를 운용함으로서 종단, 교구, 사찰 단위의 대중공의와 갈마를 활성화 함.
8) 교구 단위를 기본으로 결계를 하고 포살을 하는 제도를 시행함으로서 승풍진작과 승가의 활동상을 양성화함.
9) 포교사 양성, 포교단체 관리 및 지원, 군포교를 추진함.
10) 사찰과 교구 차원에서는 대응하기 힘든 대정부업무와 대사회활동을 전개함.
11) 타종교와 교류, 협력 사업을 함.
Ⅱ. 조계종단의 현재의 주요 문제와 과제들
종단은 1994년 종단개혁불사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개선되지 못한 주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사찰(공찰)의 주지 인사과정이 특정 문중과 개인의 연고권이 과도하게 인정되는 점.
- 공찰의 경우 창건연대가 거의 조선시대 이전이며, 현재의 조계종 소속 승가가 이를 공공적으로 관리하는 것임.
- 따라서 사찰(공찰)은 사유화되거나 문중화 되어서는 안되며, 그 관리권이 특정한 개인이나 문중에 과도하게 인정될 수 없음.
- 사찰(공찰)의 자산은 사방승가(四方僧伽), 즉 전체 승가가 공유하는 시방상주물(十方常主物)임.
2) 사찰(공찰)의 현금재원이 주로 해당사찰 스님들에게만 사용되고, 전체 승가를 위해 기여하는 면이 적음.
3) 1994년부터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한 사찰의 예산회계제도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며, 사찰(공찰)에서 발생하는 현금 재원의 수입과 지출이 공공적으로 엄정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음.
- 종단은 ‘예산회계법’(1994년)과 ‘사찰예산회계법’(2011년)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전국 사찰의 30% 정도만이 종단에 예산을 보고하고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신뢰하기 힘든 정도임.
- 예산을 편성하여 종단에 보고한 사찰도 그 재정을 예산에 의해 엄정히 집행하지 못하고 주지 등 사찰 소임자의 재량권에 의존하고 있으며, 예산안을 보고하지 않은 사찰의 경우는 그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실정임.
4) 1994년에 제정한 ‘분담금 납부에 관한 법’과 1996년에 제정한 ‘사찰등급조정규정’에 의한 사찰의 분담요율 적용, 분담금 책정, 통지, 수납 등의 사찰분담금 제도가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지 못함에 따라 사찰분담금의 합리성, 형평성, 적정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종단예산 확충과 수급에 막대한 차질을 초래하고 있음.
5) 조계종단의 전체 승려(약 1만명) 중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의·식·주 등 기본생활 대책이 안정적으로 마련되고 있지 못함.
- 대다수 스님들이 일반적 관점으로 말하면 자기 방이 없음. 책과 개인 사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으며, 차분히 앉아 독서를 하거나 연구를 할 공간이 없음.
- 일이 있어 타 지역을 이동할 때도 교통비가 신경 쓰이며, 언젠가부터 사찰에 객실이 없어 스님들이 일반 숙소(여관, 호텔)에 머물게 되는 현실도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품위를 생각할 때도 문제가 됨.
- 주지스님과 일부 소임자를 제외하면, 생활에 필요한 고정적이고 정기적인 보시금(월급?)이 없음.
- 스님들은 주지스님과 소수의 소임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자기 숙소(연구공간)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불안정한 떠돌이 삶을 살고 있음.(상당수 스님들이 그 날 잘 곳과 먹을 음식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 안정적인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까닭에 결제 때는 선원으로, 해제 때도 산철결제를 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는 스님도 상당수임.
- 공찰의 주지라 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또한 안정적인 숙소 없이 떠돌이가 되어야 함.
- 도시의 대학원 등에서 전법교화에 필요한 전문과정(석, 박사)을 밟는 경우, 종단적 차원의 숙소대책이 없어 젊은 스님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일반 주택가의 원룸 등을 임대하여 생활하고 있는 실정임.
- 스님들의 일상생활복은 논외로 하더라도 의례복(사미만의, 법계별 가사, 장삼 등)도 당사자가 직접 구입해야 하는 현실은 많은 문제가 있음.
6) 종단 스님들의 기본적인 의무교육 경비(연수교육비, 승가고시비 등)와 교화활동비(여비 등)를 종단이 제대로 지원하고 있지 못하고 개인이 마련해야 함.
7) 대다수 스님들이 질병이나 사고 등에 대비한 의료대책이 취약하며, 종단의 지원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못한 점.
- 종단은 2011년부터 ‘승려복지법’을 제정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함.
- 2013년도 종단결산서에 의하면, 스님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23억 원대로 집행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스님들에 대한 순수한 의료지원비는 스님 3인에 대해 500만원대로 지원한 것에 불과하고, 나머지 약 22억 9천만원은 회의비, 세미나, 홍보비 등으로 약 1억원을 사용하고 20억 8천만원은 이월한 것으로 나옴.
8) 스님들의 노후생활에 대한 대책이 종단적으로 마련되지 못함에 따라 대다수 스님들이 수행과 교화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종단에서 금하고 있는 개인재산 축적을 하게 만들고 있음.
이상의 문제들은 사찰(공찰)운영이 공공화 되지 못하고 사유화, 문중화 되고 있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면이 크다고 본다. 전국의 사찰에서 산출되는 재정이 전체 승가의 의식주 등 기본적인 후생복지와 전법교화 활동에 지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종단이 앞장서 조정하여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단일종단, 단일승가, 화합승가의 존속을 위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종단이란 것의 존재 이유를 스님들이 심각하게 회의하게 될 것이다.
종단이 소속스님들에게 거주할 숙소조차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경전과 어록을 읽고 사회교화를 위한 여러 가지 필요한 독서나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스님들에게 전문화된 현대사회를 교화하고 계도하는 법력을 펼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스님들이 질병이나 노후를 대비해 재산비축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종단풍토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으며, 스님들이 종단의 혜택과 지원을 받지 못하고 모든 면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 자력갱생(自力更生)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존경받는 승가의 도덕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종단이나 신도들은 오늘날 스님들의 사회교화력을 지적하고 도덕성을 문제 삼을 만큼 스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뒷받침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종단은 “종단이 우리에게 뭘 해 주고 있나?”라는 스님들의 질문에 대해 응답하고 부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참고로 말한다면, 조계종단은 스님들이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승려법 제 34조의 2조) 탁발도 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설사 사설사암을 설립하더라도 사찰명의로 등기하여 종단에 등록하게 함으로서 사찰을 개인소유로 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종단은 행자의 수계교육 입교 때부터 5년 단위로 모든 스님들에게 유언장을 미리 받아, 각자 명의의 재산을 사후에 사찰이나 종단에 귀속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승려법 제 34조의 2조)
한마디로 종단은 스님들로 하여금 무소유로 청빈하게 살아가도록 의무화 하고 있으며, 승가공동체는 철저한 무소유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스님들의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화활동비를 종단이나 사찰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상과 같은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음으로서 현재 종단은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으며, 스님들의 교화활동 또한 여러모로 미흡한 것이다.
더 이상 사찰로부터 유래되는 공공적 재원이 10%대의 소수승려에게 사유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Ⅲ. 종단이 향후 10년 내에 추진해야 할 일들
종단의 기본적 역할이란
첫째, 기본적으로 사찰의 재산(삼보정재)을 엄정히 보호 관리하고,
둘째, 스님들의 기본적 복리를 뒷받침하는 일을 해야 하며,
셋째, 스님들이 사찰과 종단을 기반으로 수도와 전법교화를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종단 출범 50주년, 종단개혁불사 20주년을 맞은 오늘 날, 종단은 이 세 가지 기본적 역할 중 그 첫 번째 만을 그런대로 이루었을 뿐이다. 물론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종단은 스님들로부터 외면 받게 되고, 마침내 종단이 그 첫 번째 역할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종단이 10년 이내에 중점적으로 추진해야할 일은 바로 이 나머지 두 가지 부분에 해당하는데, 세부적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중덕급 이상의 모든 스님에게 소규모(약 6평 정도?)의 연구숙사(硏究宿舍:가칭)를 제공해야 함.
- 중덕급 이상의 스님들의 연구숙사 숫자는 약 5천개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됨.
- 중덕이상의 전체스님들에 대한 숙사 마련 및 제공기간 목표를 약 10년으로 잡음.(1단계 5년, 2단계 5년)
- 사설사암의 창건주(주지)와 직계 도제에 대한 연구숙사 제공문제는 별도 검토 필요함.
- ‘사찰법인’과 ‘사찰보유법인’의 임원과 분원장, 그리고 직계도제에 대한 연구숙사 제공 문제는 별도 검토 필요함.
2) 제공하는 연구숙사는 사찰 경내, 또는 인근, 그밖에 제 3의 장소에 마련함.
3) 연구숙사는 건립, 매입, 임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종단이 확보, 또는 조성함.
4) 종단이 제공하는 연구숙사는 9개실 이상이 모여 있는 일개 동(棟)의 건물형태(연립형태), 또는 사찰의 경내, 시골이나 산중인 경우에는 인접한 건물들의 방사로 조성함.
5) 9인 이상이 공주(共住)하는 환경에는 공동으로 이용하는 법당, 회의실, 편의실 등을 별도 구비가 필요함.
6) 대덕급 이상의 모든 스님에게는 중덕급법계보다 조금 큰 규모의 연구숙사를 제공할 필요함.
7) 9인 이상의 공주하는 하나의 단위를 하나의 ‘현전승가’로 간주하고, 현전승가 단위로 특성화된 수행, 연구, 교화활동 공동체로 발전시켜나감.
8) 현전승가의 규모와 성격, 활동상, 성과에 따라 교구와 종단이 지원하는 제도 필요함.
- 현전승가 단위로 특성화된 전법교화가 펼쳐진다면, 이것이 진정한 이 시대의 결사(結社=모임)운동이자 승가(스님공동체)운동이 될 것임.
- 종단은 현전승가의 활동을 지원할 행정시스템 운용함.
9) 스님들에게 제공되는 연구숙사는 종단과 교구본사가 공적자산으로 유지 관리해야 함.
- 스님들에게 제공된 숙사는 선원 등 결제정진을 할 때나, 사찰소임을 위해 다른 사찰에 머물 때도 변동없이 개인의 사용권을 반영구적으로 보장함.
10) 중덕이상의 스님들에게 연구교화비(생활, 활동) 매달 지급함.
- 종단은 중덕이상의 스님들에 대한 연구교화비 지급에 필요한 행정시스템 운용해야 함.
- 사설사암의 창건주(주지)와 직계 도제에 대한 연구교화비 지급은 별도 검토 필요함.
- ‘사찰법인’과 ‘사찰보유법인’의 임원과 분원장, 그리고 직계도제에 대한 연구교화비 지급은 별도 검토 필요함.
11) 견덕급 스님(중덕급 이하)들은 중덕법계 품서 때까지 본사급 사찰에 개설된 전문교육기관(사찰승가대학원)에 수학하면서 소임을 살거나, 수행기관(선원, 삼장원, 염불원 등)에서 정진하거나, 인연 사찰 및 불교시설에서 소임을 살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수련기간을 가지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함.
12) 모든 종단 스님들에 대한 의료지원
- 종단은 모든 스님들의 의료지원을 위한 행정시스템 운용해야 함.
- 의료지원 방식은 모든 스님들에게 국민개보험제도인 국가건강보험과 별도로 질병․상해 보장보험을 종단이 대리 가입하여 입급함.(만기 환급은 종단 귀속)
- 사설사암의 창건주(주지)와 직계 도제에 대한 의료지원은 별도 검토 필요함.
- ‘사찰법인’과 ‘사찰보유법인’의 임원과 분원장, 그리고 직계도제에 대한 의료지원은 별도 검토 필요함.
13) 전체 승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 연수경비, 승가고시비 등은 종단부담
14) 만의가사, 법계별 가사, 장삼 등 기본 의식복은 종단 지급함.(평상복, 내의, 양말 등 소모품은 사찰과 개인이 부담)
15) 종단의 스님들이 갖추어야 할 의식복과 일상복을 여법하고도 품위있게 제정할 필요함.
16) 본사 및 기도도량, 수행기관, 교육기관이 있는 도량, 지역 별 주요 사찰 등 종단이 정한 사찰은 객실을 다수보유, 운영하도록 제도화할 것.
17) 대도시의 대학원에서 불교교화에 필요한 석, 박사 과정을 밟는 스님들을 위한 별도의 연구숙사 마련이 시급함.
18) 특별분담사찰(200개 정도 *‘재원확보방안’에서 추가 언급)주지와 중앙종무기관 교역직 소임자들에게 ‘종무원연금’ 지급제도 도입.
- 사찰의 주지나 중앙종무기관의 교역직소임자의 경우, 복무연한이 4년(1만기)이 넘어도 퇴직금이 없으며 소액의 전별금이 있을 뿐임.
- ‘200개의 특별분담사찰’ 제도가 도입된다면, 이 사찰의 주지스님들은 모든 스님들을 위한 공공적 봉사소임의 노력을 하기 때문에 일반스님에 대한 연구교화비에 더해 보상적 종무원연금을 가산하여 지급하는 제도가 필요함.
19) 중앙종단의 행정체계를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음.
- 중앙종무기관의 부서 및 직제를 이상에서 언급한 사업을 추진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전면 개편하고, 이에 따른 종무원 인력 재배치를 해야 함.
20) 중앙종무기관 부서와 직제에서 특히 ‘승가수행교화 지원업무부서’(연구교화 지원 행 정, 의료지원, 종무원연금지원, 연구숙사조성 및 관리지원 등 전담)를 설치하여 주요한 비중을 두어 전문종무원을 대거 배치하여 운용해야 함.
- 국가는 취약계층 위한 공공주택사업과 의료지원 사업을 위해 중앙부처 산하에 별도의 ‘LH공사(과거 토지공사, 주택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나. 종단은 소규모 인원(5천명 ~ 7천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앙종무기관에서 직접 관리운영해야 할 것임.
- 중앙종무기관의 ‘승가수행교화 지원업무’는 현장성이 요구되는 업무의 특성상 교구본사와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이뤄져야함.
- 결계(結界) 제도를 ‘승가수행교화 지원업무’와 연계하면 효율적일 것임.
이상의 중점 추진사항은 거의가 스님들을 위한 기본 복리와 전법교화활동을 지원하는 일들이다.
‘승중즉법중(僧重則法重), 승경즉법경(僧輕則法輕)’이란 말이 있듯이 스님들이 훌륭해서 사회의 존중을 받으면 불법도 덩달아 존경 받고, 스님들이 가볍게 취급받으면 불법도 덩달아 침체하는 법이다. 따라서 스님들이 품위 있는 위의를 갖추고 전법교화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불법을 사회 속에 중흥시키는 필수적인 일이다.
그동안 종단과 사찰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과거에 비해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해진 시절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종단이 스님들의 전법교화 활동을 지원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야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사회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상에서 언급한 일들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 비로소 율장과 종헌종법에서 규정한 무소유 승가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게 되며, 조계종단을 출범시킨 근본적인 취지인 단일종단, 단일승가, 화합승가를 통해 전법교화를 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재원 확보 방안
종단이 이상의 일을 당장 추진하기 위해선 관련 재정이 확충되어야 할 것이다. 상당한 규모의 재정이 매년 집행되어야 하는 만큼 예측가능한 안정적인 재정확충이 긴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체 스님들의 공감대가 이루어져 결정을 하고, 신도들의 적극 후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충분히 재원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1) 현행 직영사찰 직영분담금 유지.
- 4개 사찰 직영분담금 71억원대(2013년 결산)
2) 현재의 7개의 특별분담사찰을 대폭 늘려 공찰을 대상으로 200개 정도의 특별분담사찰을 지정함.
- 분담요율은 사찰예산에 따라 현행 특별사찰기준(10%, 12%, 14%, 16%, 18%)를 엄정 적용.
- 7개 사찰 특별분담금 24억원대(2013년 결산)
- 특별분담사찰이 200개로 늘어나면 특별분담금 규모가 대폭 늘어날 것임.
3) 특별분담사찰을 제외한 모든 공찰을 공영화하여 중앙분담금 책정을 합리화 함.
- 공찰의 공영화는 ‘분담금납부에 관한 법’과 사찰등급조정규정‘에 의한 분담요율 적용, 분담금 책정, 통지, 수납 등이 엄정히 이루어지는 것을 뜻함.
- 2013년 결산에 의하면 전체 사찰(공찰, 사설)의 중앙분담금은 44억원대지만, 이 중 공찰의 중앙분담금은 39억원대로 추정됨. 하지만 공찰의 공영화원칙을 엄정히 적용하면 전체 중앙분담금 규모는 대폭 상승될 것임.
4) 년간 문화재구역입장료 400억원대를 종단 공적기금으로 확충.
- 문화재구역입장료 징수사찰이 특별분담사찰인 경우 특별분담금 책정시 감안.
5) 전국 사찰에서 매년 도로개설, 공공사업 등의 이유로 공용수용 됨에 따른 토지처분금 80억 ~ 100억 원대를 향후 10년간 스님들의 연구숙사 건립기금으로 사용.
- 이 기금은 스님들의 연구숙사 건립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
6) 사설사암의 경우도 그 예산이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협의에 의해 승가복지에 필요한 분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함.
- 이 경우 사설사암 주지스님과 도제들에 대한 각종 지원(연구숙사 제공, 연구교화비 지원, 의료지원 등) 문제를 연동해서 결정해야 함.
- 사설사암의 종단분담기준은 별도로 적용하여 공찰에 비해 대폭 낮출 것.
- 등록된 사설사암의 경우, 창건주 권한(운영권)을 절대 보장하고 분담금 감면혜택을 주어 지역사회 포교에 전념토록 함.
7) 사찰교무금을 스님들 전법교화 지원비로 사용.
- 현재의 사찰교무금 규모는 년간 5억원대지만, 신도증가 운동차원에서 종단적 역량을 모으면 사찰교무금 규모는 대폭 상향될 수 있을 것임.(최근 중앙종회의 한 종책모임의 ‘200만명 등록신도 확충계획안’에 의하면 년간 500억원대의 사찰교무금을 조성가능하다고 주장함)
8) ‘승려수행교화기금(僧侶修行敎化基金)’ 설치운용.
Ⅴ. 제·개정해야 할 종헌 및 각종 종법들
이상에서 주장한 사업이 추진되려면 예산확충 뿐만 아니라 종단의 각종 법령도 대폭 개정하거나 개정해야 할 것이다.
1) 종헌 개정
- 종단의 스님들을 위한 기본적인 복리와 각종 지원을 종단이 책임지고 수행한다는 의 무조항을 규정하는 것과, 관련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종무기관의 운영구조와 직무를 대폭 개편해야 함.
2) 종법 개정 : ‘승려법’ ‘승려복지법’ ‘총무원법’ ‘특별분담사찰법’ ‘분담금 납부에 관한 법’ 등
3) 종법 제정 : ‘교구법’ ‘승려수행교화 지원법’ ‘교역직종무원 연금법’ ‘연구숙사 설립 특별법’ ‘수행교화를 위한 결사법’ 등
Ⅵ.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종단의 미래
1994년 종단개혁불사가 있은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1994년의 개혁입법으로 인해 종단은 많은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 당시에 제정하거나 개정한 핵심적인 주요 입법내용들이 아직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회계법’이요, ‘분담금 납부에 관한 법’이다.
이 두 법은 사찰의 공영화를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법임에도 아직 시행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 따라 종단의 공찰이 공영화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발표문에서 지적한 종단의 문제 대다수가 이 법이 시행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고, 향후 바람직한 종단의 미래를 열어가는 대다수 방안과 그 출발점도 이 두 법의 시행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종단이 전국의 조계종단 소속사찰(공찰)의 소득을 전체 스님들의 수행과 교화활동을 뒷받침 하는데 사용하지 낳고, 일부 스님들과 사찰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현실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사회에서는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절 집안의 점잖은 스님들은 아마 종단을 무시하거나 종단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대책을 세워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더 나아가 종단 해체를 요구하거나 탈종을 하여 개별 사찰과 개별 스님 차원으로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종단체제가 붕괴될 것이다. 혹자는 본사중심제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있지만, 본사제도 또한 종헌종법에 의한 종단체제 속에 있을 때 그 권한과 법적 위상이 존재하는 것이지 종단이 붕괴된다면, 교구니, 본사니 하는 지방 종무행정기구 또한 법적 지위와 권한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조계종단의 현실은 ‘무소유공동체’냐, ‘사유화각자도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분기점에 서있다. 전자의 길은 단일승가, 화합승가의 길이며, 후자는 승가와 종단이 없는 개별사찰과 개별승려의 길일 것이다.
손을 놓고 있으면 5년 이내에도 종단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만일 종단의 스님들이 합의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모든 사람들이 전법교화의 능력을 갖춘 승가, 존경받는 도덕성을 갖춘 승가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20년 뒤의 미래로 미룰 수는 없다.
10년 이내에 완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종단이 의지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면 5년 이내에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스님들이 이 뜻에 공감하고, 신도들이 적극 후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고, 사부대중이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스님들에 대한 종단의 각종 기본적인 지원이 현실적으로 이뤄진다면 향후 한국불교의 전법교화의 주체는 당연히 스님들이 될 것이다.
만일 종단의 노력으로 중덕 이상의 스님들에 대해 안정적인 연구숙사가 지원되고, 연구교화지원비가 지원된다면 스님들이 연구숙사를 중심으로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함께 정진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스님들의 사회교화활동이 대폭 활성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종단의 중덕급 이상의 스님들은 대략 7천명에 이른다. 이 스님들이 소규모 단위(9 ~ 15인 정도)로 공주(共住)모임을 이루어 같이 수행하고 교화활동을 한다면, 이러한 모임들이 전국적으로 약 700개의 결사체(結社體)를 형성할 수 있다.
일정한 수행력을 갖춘 스님들이 모임의 규모와 내용에 따라 사찰, 교구, 종단의 후원을 받으며 다양한 성격의 소규모 모임과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쳐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수행결사, 교학연구결사, 사회활동결사가 아니겠는가?
특성화 된 다양한 승가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무가 된다.
무엇보다 종단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는 스님들은 부처님 당시의 마승(馬勝)비구 처럼 산중에서나 도시에서 품위있는 복장과 의젓하고도 자비가 넘치는 위의를 갖추어 사람들의 존경과 귀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기본적인 처우와 지원을 받는 스님들은 무소유의 청빈한 생활을 함으로서 일반인의 도덕적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종단제도에 의해 공직자 선출과 관련한 선거가 있더라도 현재처럼 수행자의 품위를 잃는 일도 대폭 줄어들 것 같다.
어쩌면 대다수 스님들이 은사스님이나 문중에 의존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종단관행과 풍토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승가교육이나 각종 연수라든지 스님들의 기초생활을 종단이 지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율장 시대의 ‘화상, 아사리’ 제도에서 유래한 오늘날의 은사제도와 문중제도도는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고, 문중개념 없이 종단체제하의 일불제자로 화합승가를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공찰의 주지소임을 둘러싼 과열된 경쟁분위기도 줄어들 것이다. 공찰은 특히 공적인 운영을 통해 모든 스님들을 위한 뒷바라지를 하는 기능을 해야 하기에 그 수고로움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종단은 1만기 이상의 공찰주지소임 경력자에게 근무연한에 따라 종무원 연금을 지급하는 배려를 할 것이다.
아마 조계종단이 모든 스님들을 위해 정성껏 배려한다면, 젊은 출가자도 훨씬 증가할 것 같다. 그럴 경우 현재의 출가 연령 상한선을 낮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바탕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불교는 조계종단이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가짐으로서 새롭고도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사회에서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교화를 펼치는 청빈한 무소유공동체인 조계종단의 승가가 있을 것이다. <끝>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
현응스님(교육원장)
<목 차>
-2011년, 열두 번의 토론회
-조계종이란?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
-맺는말
◆2011년, 열두 번의 토론회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 총무원장스님께서는 작년 2010년 11월,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장의 자격으로 승가교육 진흥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서는 승가교육을 혁신하는 일이 기본이 되며 출발이 된다는 것이었으며, 승가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2011년에는 1년간 매월 교육과 포교, 수계, 고시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토론회를 개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이 시작되면서 종단은 자성과 쇄신의 5대 결사를 천명하면서 기존의 종단운영과 불교적 관행을 전면 쇄신하여 시대와 역사에 부응하는 한국불교를 이룩하겠다는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토론회 열두 번의 토론주제도 한국불교의 자성과 쇄신을 위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한국불교의 자성과 쇄신의 내용이 결국 승가교육을 통해 이룩해야 할 이 시대의 교육적 내용과 기본적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승가교육의 혁신을 위한 토론회 주제는 곧바로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토론회 주제로 승격되어 2011년 한 해 동안 매월 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가 개최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열한번의 대토론회의 주제들을 그 유사성으로 묶으면 대략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이념과 구현해야 할 가치,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4개주제)
1월 주제 :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
3월 주제 : “현대사회에 구현해야 할 불교적 가치 - 종단 5대 결사를 중심으로”
9월 주제 : “현대 명상문화와 한국 선(禪)의 과제”
11월 주제 : “조계종지(曹溪宗旨)의 현대적 구현”
사회와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불교의 역할에 대해 (4개주제)
2월 주제 : “한국불교 교단과 국가”
4월 주제 : “생명 ‧ 생태문제와 한국불교”
5월 주제 : “한반도 평화 ‧ 통일문제와 한국불교”
6월 주제 : “사회정의 실현과 불교의 자비실천”
종단제도와 운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과제 (3개주제)
7월 주제 : “출가와 재가의 역할을 찾다”
8월 주제 : “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보전활용할 것인가?”
10월 주제 : “지역불교 활성화를 위한 교구의 역할”
대토론회의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주제들은 조계종이 시대와 역사에 부응하기 위해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열한번의 토론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참석자들의 의견들이 일치가 될 때가 있었고, 어떤 때는 주제에 대한 대립된 의견을 팽팽하게 표출함으로서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얻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 토론주제에 대한 기본 전제부터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어 조계종의 문제는 얽히고 설켜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막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와 배경은, 첫 번째는 토론자들과 참석자들이 한국불교의 사상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는 점과 두 번째는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진단과 해답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은 이번 토론회에 참여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평소 종단의 스님들과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우리 조계종을 대하는 태도와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중흥을 말하려 할 때는 우선 한국불교의 사상과 교리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불교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한 바탕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조계종의 교단적 성격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계종이란?
한국불교는 2012년이 되면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교단으로 출범한 지 50년이 됩니다. 한국불교는 조계종의 출범 이후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1700년 이래로 가장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조계종이라는 교단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자랑스러운 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이 기간 중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단체인 점.
둘째, 국가(정부)가 아닌 승단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교단인 점.
셋째, 한반도(현재는 남한)내의 전래의 전통사찰과 승려, 신도를 동일한 종헌 종법으로 규율하는 점.
넷째, 교단의 주축인 승가가 ‘출가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는 비구, 비구니’로 구성되어 있는 점.
다섯째, 승가는 사찰의 부동산과 동산 등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적이면서 공동적으로 소유하고 관리를 하는 점.
여섯째, 구현하고자 하는 불교적 가치가 선불교의 정신을 중심으로 하되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등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는 점.
일곱째, 대중포교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불교를 사회와 역사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점.(이사무애를 제고提高, 대승불교의 성불도생成佛度生을 실천, 민족통일과 문명사의 새로운 흐름을 대비, 불일을 만고에 빛나게 하고, 삼보를 법계에 유전케 함 ― 종헌 전문前文에서)
이상의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교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조선왕조가 무너지던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시대와 해방 후의 정화불사를 거쳐 마침내 1962년 역사적인 최초의 불교교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종단관을 가진다 할 때는 이상과 같은 조계종의 교단적 성격과 그 역사적 흐름을 잘 아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 번다하지만 그동안 대한불교조계종 출범을 최초의 불교교단 출범이라는 의미로 역사적 해석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과정과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해 보겠습니다.
조계종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교단입니다. 조선왕조 말기인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던 교단설립운동의 최종결과로 1962년에 출범된 교단이며, 그 교단의 이름이 조계종인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불교도들에 의한 자율적인 교단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 감독했습니다. 가까운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이라는 국가법령에 그 구체적 감독내용과 승인사항이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예컨대 ‘승려가 되려는 자는 3개월 이내에 예조에 보고하고 베 30필을 납부하면 도첩을 발급한다’, ‘선종과 교종은 3년마다 승려를 선발하는 시험(승과)을 치러서 각 30명씩 지도자를 배출한다’, ‘사찰의 주지는 선교양종에서 예조에 복수로 추천하면, 예조는 이조에 문서를 이첩하고 이조가 심사하여 최종 주지를 발령한다. 주지 임기는 30개월이다. 주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주지는 물론 추천한 자까지 처벌한다’는 내용 등이 그것입니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직접 관장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혹독한 억불숭유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들은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중종 시대인 16세기부터는 일시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도승(度僧)제도 자체를 금지하였고 승과(僧科) 또한 폐지되었습니다. 국가에서 관장하여 시행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승려가 되는 길이 공식적으로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비공식적으로 승려가 배출되었기에(私度) 사회적 수준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조시대인 당시에는 사찰과 승려를 관장하는 불교자체적인 교단이 있었을 턱이 없으니 도승(度僧)제도를 불교계가 스스로 직접 주관하여 시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왕조가 망해가던 1902년에 와서야 국가법령(국내사찰현행세칙)을 새롭게 제정하여 국가가 사찰과 승려를 관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사사(寺社)관리서라는 관청이 설치되어 전국사찰을 지역과 규모를 나누어 피라미드 형식의 체제로 관리하고자 하였고, 승려가 되는 절차를 새롭게 정하여 승려증(도첩)을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전국의 승려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뿐, 관리능력을 상실한 조선왕조는 1904년 사사관리서를 폐지하였으며 국내사찰현행세칙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르러서 조선의 승려들은 근대화의 큰 흐름을 읽고 이제는 국가가 아닌 승려 스스로가 교단을 만들어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직접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1908년 3월 전국 각 도의 사찰대표 52인이 모여 전국 사찰과 승려를 자율적으로 통할하고자 하는 기구, 즉 교단을 만들었으니 그 교단 이름이 ‘조선불교 원종(圓宗)’이었습니다.
20세기 초에 한국의 불교인들이 승려를 자율적으로 규율하고 사찰을 자주적으로 관리ㆍ운영 하고자 하는 교단을 만든 것은 근대적 의식에 눈 뜬 당시 불교인의 크나큰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원종 출범으로 시작된 교단설립운동은 제대로 완성되어 시행도 못한 채 일제 강점기를 맞아 국가법령인 사찰령을 통한 국가(총독부)의 통제시대로 환원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교단설립운동은 일제 총독부 치하에서도 임제종 설립(1911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설립(1922년),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 개최 및 종헌ㆍ교무원규정ㆍ교정회법ㆍ종회법ㆍ법규위원회법ㆍ승니법규 등 제정(1929년), 조선불교선종 종헌제정(1934년), 조선불교조계종 및 태고사총본산법ㆍ승적법ㆍ종회법ㆍ포교법 등 제정(1941년)으로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이러한 교단 형태의 조직들은 사찰재산과 주지인사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진 명실상부한 교단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협의체의 수준에 머물렀고, 실질적인 인사권과 재산권 등은 여전히 사찰령에 의해 총독부가 행사했습니다.
해방을 맞아 비로소 승려에 의한 자율적인 교단을 출범시켰으니(1946년) 교단 이름이 ‘조선불교’였습니다. 조선불교교헌을 제정하고 중앙총무원조직, 도 교무원 설치, 교구제 실시, 재산통합조치(중앙5: 교구3: 사찰2) 추진 등 의욕적인 불교교단을 만들고자 했으나 이 또한 해방공간의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남북의 두 개 정부수립, 한국전쟁의 격변을 거친 후 1954년부터 불교계는 다시 교단 설립을 위한 대작불사에 들어갔습니다.
1954년부터 시작된 교단설립운동을 그동안 정화(淨化)불사로만 호칭하였습니다만 그것은 교단설립운동의 한 측면만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당시의 운동을 많은 사람들이 ‘정화운동’ 또는 ‘정화불사’라고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근대 불교사의 큰 맥락으로 본다면 1954년부터 시작된 정화불사의 본질은 1908년 이후부터 50년간 진행되어왔던 미완의 불사인 교단설립운동인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광복운동과 건국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0년 일제에 병합된 이후 36년간 지속적인 국권회복의 노력을 하였는데, 그 노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됐다고 봅니다. 한 측면은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일제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또 한 측면은 왕조사회가 아닌 현대적 민주국가를 지향하되, 자유시장주의국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산주의국가로 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적 노력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해방이후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해방을 맞은 한국불교도 두 가지 측면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교단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으며, 두 번째 과제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교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가 되어 국가가 직접 종교단체를 관리하는 것이 헌법에 의해서도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불교도는 이제 당연한 권리로서 자율적인 교단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자율적인 교단설립이라는 첫 번째 과제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하여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두 번째 과제인 교단의 정체성 문제는 시급히 정리하여야 할 점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불교계가 추진하고자 합의된 교단의 정체성은 승려는 청정독신 비구승이라야 한다는 점과 무소유공동체, 그리고 선불교의 정신으로 모든 불교의 가르침(諸宗)을 포괄한다는 점, 그리고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하나의 종헌종법으로 통합하는 종단승가를 구축한다는 등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정체성의 문제는 앞서 언급한 조계종의 일곱 가지 특성으로 최종 구현되었지만 1950년대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승려의 청정성 확보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 ‘정화불사’라는 슬로건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보면 20세기 초부터 진행된 일련의 불교운동은 국가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불교교단을 설립하겠다는 근대적 노력이었습니다. 또한 1954년부터 시작된 ‘정화불사’의 취지는 교단설립에 필요한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1950년대의 정화불사를 보는 시각도 큰 틀로 정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비구승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교단청정운동인 정화불사 또한 교단설립운동의 한 축이며 그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각종 불교단체와 기구의 창립, 그리고 해방 후와 정화불사시대의 노력을 ‘종단을 재건하기 위해서’라고 하거나 ‘종단을 새롭게 정화하기 위해서’라고 표현해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과정과 노력은 ‘사상 최초의 교단 설립운동’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
이상과 같이 ‘조계종이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교단이다’라는 의미로 정리했을 때 한국불교 중흥의 길은 이제 새로운 시각과 방향, 그리고 내용으로 전망할 수가 있습니다.
교단이라는 입장을 바탕으로 불교중흥을 추진한다는 것은 종헌 전문(前文)에 서술하고 있는 “교단이 수행과 전법의 영겁기단(永劫基壇)이 되도록 한다”라는 취지와 부합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섰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자성하고 쇄신해야 할 것인지가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부각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조계종을 기반으로 한국불교 중흥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조계종의 역사적 책무이기도 합니다.
그럼 교단의 입장에서 무엇을 자성하고 쇄신할 것인가?
크고 작은 과제가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첫째로는 한국불교가 1,000년 전에 형성된 종파불교를 벗어나 현대불교적 회통불교로 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며, 둘째로는 조계종이 이념이나 종교적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단체일 뿐만 아니라 사찰, 교구, 종단을 관리ㆍ운영해야 하는 교단임을 고려하여 종단운영 시스템의 일대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과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의 적합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교단의 명칭은 교단의 진로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한국불교중흥의 길을 말함에 있어 교단 명칭문제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계종은 서두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한국불교의 유일무이한 교단이지만 ‘조계’라는 그 명칭은 선불교의 특정가풍만을 표현하고 있고 ‘○○종’이라는 것은 종파불교의 명칭으로 그 당시의 역사적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가 중흥하고 세계 속에 그 교화를 넓히려 할 때 제약하는 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살펴보자면 교단의 명칭을 ‘○○종’이라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종(宗)’이란 ‘사상적 특성’ ‘가르침을 펼치는 가풍’을 뜻하는 말로서 예컨대 ‘임제종’이라 하면 ‘임제스님의 선풍(禪風)’을 뜻합니다. 그래서 임제스님의 가르침과 선풍을 추종하는 선사는 ‘나의 가풍은 임제종이다’ 혹은 ‘나는 임제종 승려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개 중국 당송시대의 운문종, 위앙종, 조동종 등의 표현들은 교단이름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각각 운문스님, 위산스님, 동산스님의 가르침과 그 선풍을 표현한 것입니다.(중국은 역사적으로 교단이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선불교의 역사에 나타나는 다양한 ‘○○종’ 뿐만 아니라 불교학 또한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시대와 지역에 따라 수많은 경전들과 논서들이 각각 별도로 유통되어 유포되는 과정에서 화엄종, 천태종, 법상종 등 다양한 사상적 종파불교가 형성되었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과거 중국, 한국, 일본불교사에서 ‘○○종’이라 표현함은 교단의 명칭이 아니라 불교의 특정교학이나 특정선사의 선풍(禪風)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파불교는 일본이 유독 심하게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특정한 불교종파의 가르침을 펼치는 스승과 그 제자들이 거주하는 사찰들이 연합하여 각각 ‘○○종’이라 표방하면서 그 사찰을 ‘○○종 사찰’이라 하고, 스님들을 ‘○○종 스님’이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 이후에 근대적 서구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각 불교종파들이 개별 사찰을 법인화하였고, 법인으로 된 사찰을 다시 연합법인으로 묶어 종파별로 따로 교단을 만들었는데 그 때 그 종파불교의 교단이름을 ‘조동종’ ‘본원종’ ‘정토종’ 등 ‘○○종’으로 했던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오교구산 등 다양한 선풍을 표방하는 선문(禪門)과 특정경전을 존중하는 교학적 종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회통적 입장이었고 일본불교처럼 사찰과 승려가 별도로 분리되어 조직화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마 일본은 근대이전까지 정치제도가 봉건제와 막부제 등으로 지방자치를 시행했지만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로 군현제를 근간으로 한 중앙집권제를 시행해 온 오랜 정치적 전통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가 앞서 언급한데로 1908년 처음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통할하는 자체적인 교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단명칭을 ‘조선불교원종’이라 했습니다. 한국불교는 종파불교의 전통도 없는데 일본불교의 교단제도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종’이라는 종파불교적 교단명칭을 짓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나마 ‘원(圓)’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특정 종파가 아닌 모든 불교를 아우르는 통불교를 지향하는 뜻을 담았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원종설립 추진 이후로 한국불교는 100년 가까이 교단명칭을 정할 때마다 ‘○○종’이라는 일본의 종파불교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962년 교단출범 때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교단이름이 정해진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힐 때 그 한계의 핵심은 한국불교를 특정한 종파불교의 굴레 속에 갇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조계’라는 말이 가지는 선종사에서의 독보적 위상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가 중흥하고 세계에 그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는 선불교의 뜻만 표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조계종은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이 기간 중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법률적으로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교단임을 감안할 때, 조계종이라는 명칭에 국한됨으로서 다양한 불교의 가르침(화엄, 법상, 천태, 정토 등)을 기반하여 형성된 불교자산을 승계하여 관리하는 법률적 주체로서의 지위에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통일한국의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단 명칭의 문제는 조계종 출범 50주년을 맞은 현단계에서 한국불교중흥을 추진하는 자성과 쇄신결사의 일환으로 종단적(교단적) 차원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공론화하여 해결할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조계종의 종지(宗旨)의 그릇을 보다 크게 만들어 그 내용을 풍부하면서도 이 시대 한국불교가 구현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내어야 합니다.
현재 조계종의 종지라고 하면 대개 ‘조계’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조계선풍을 진작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의 조계선풍은 육조 혜능스님의 유명한 게송의 한귀절인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본래 한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띠끌이 있으랴?)’에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만일 이러한 조계선풍을 진작하는 것이 오늘날 조계종 종지로 정의된다면 조계종이라는 한국불교교단의 포괄적 성격과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불교의 사상적인 한 측면만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조계종 종헌 제2조에 규정되어있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그 종지로 한다”는 내용에서 앞의 부분은 빼고 뒷부분의 일부만 인용하여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조계종의 종지이다”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선불교의 조사선 가풍을 오늘날 조계종의 종지라고 하는 것으로서 앞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이전의 조계종은 선종가풍을 뜻하는 용어였지만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은 교단의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근자에 오면 간화선이 조계종의 종지요 정체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간화선은 조계의 선풍(禪風)이 침체해진 선불교 후기에 형성된 참선수행의 여러 방법론 중의 하나인데 이를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종지라고 생각함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불교가 간화선이라는 선불교의 특정수행법만을 사부대중에게 일반화시키려 하는 것도 불교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종지(宗旨)’라는 용어에서 ‘지(旨)’의 의미는 뜻, 취지,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종지는 ‘종단의 목적과 취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종헌 제1조는 명칭과 연혁을 서술하고 있고, 제2조는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목적과 취지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단체를 규율하는 정관의 내용도 대개 명칭, 목적 등의 순서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행 조계종 종헌 제2조 종지조항의 해석은 “본 종단은 석가세존의 근본교리를 잘 깨닫고, 마음 밝혀 성불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포괄적이고도 함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불법을 펼쳐야 하는 조계종의 종지로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종단의 종지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사부대중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 내용도 오늘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략히 예를 들면 “본 종단(교단)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깨닫고, 마음 밝혀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함을 지향한다. 특히 사부대중은 2600년을 이어온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한반도에서 1700년간 형성되어 온 불교재산을 보호하며 불법을 오늘날의 가르침으로 되살려 한국의 민족통일과 새로운 문명사에 대비하여 노력하며, 이 땅의 어려운 이웃과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 우리 모두가 아픔을 함께 하며 동체대비의 대승보살도를 실천하여 불국정토를 이룩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예문은 소략한 것으로 우리 교단의 취지와 목적을 다시 새롭게 정리하게 될 때는 전문적 검토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한국불교를 사회적 자비실천을 하는 현대불교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불교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불교들이 21세기 현대사회에 와서도 여전히 천년, 이천년 전 과거의 불교에 안주해 있습니다. 뜻있는 학자들이 역사상의 여러 종교 중에 불교가 가장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가르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색합니다. 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불교를 적극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불교를 너무 낡은 옛날 가르침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기본적 공부 방법은 한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문불전을 해석하고, 외우고, 음미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그 한문이 1000년, 2000년 전의 불교관으로 번역되고 저술된 중국 언어라는 점에서 내용적인 면에서나 언어적인 면에서 현대적으로 소통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20세기 이후에 집적된 현대불교학의 성취를 교재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듭니다.
공부하는 내용이 천년 이전의 불교교학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특정 종파불교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한국불교 뿐만 아닙니다. 이러한 점은 초기불교시대의 불교학의 범주에만 주로 머물고 있어 현대적인 응용이 부족한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의 남방불교나 특정 종파불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불교, 중국불교, 티벳불교, 베트남불교 등 아시아 불교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의 정신으로 시대마다 불교 가르침을 종합해냈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의 500년 억불탄압으로 인한 교학적 공백 때문에 장기간 유지ㆍ전승된 특별한 교리체계가 없어 전통적 도그마로부터 일단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하는 노력에 비교적 큰 제약이 없다는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불교가 특유의 포용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2600년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회통하여 현대적 불교로 만들어내어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로 펼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타 아시아 불교국이 과거 전통의 무게에 못 이겨 옛날 방식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때 한국불교만이 현대적 불교를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불교를 현대화한다는 것은 과거의 불교를 바탕으로 오늘의 불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에만 머무는 불교에서 세계로 넘나드는 불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은둔하는 불교,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불교, 기도(기복)만 하는 불교, 명상(참선)만 하는 불교에서 연기적(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사회적 자비를 실천하는 한국불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이제 2000년 전 인도시대의 불교관과 중국 당나라 송나라 시대의 불교관을 현대사회의 불교관으로 그 내용과 언어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 또는 한국불교의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따져볼 수 있는 풍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교육과 연구에 대한 교단의 과감한 투자와 노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불교인들이 기존의 낡은 권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힘을 모아 성원하는 것입니다. 이제 각성된 불교대중들이 소수의 종교적 권위를 타파하고 전면적인 불교혁신과 불교현대화에 나설 때입니다.
넷째, 종단(교단)의 운영시스템을 전면 혁신해야 합니다.
현재의 종단시스템은 1962년 체제에서 시작되어 1994년에 크게 개편된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십년을 넘긴 오늘날의 한국불교 현실에서는 근본적으로 종단시스템을 혁신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체제와 내용으로 지금까지 큰 발전과 중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진작부터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규모는 커졌지만 내용이 부실하며, 역동성은 있지만 방향이 없습니다. 현재 조계종은 1000명 미만의 스님들이 힘겹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사람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칩니다. 이래가지고는 한국은커녕 조그만 지자체 규모에서조차 전법교화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50년, 100년 뒤를 말할 것 없이 당장 5년 뒤, 10년 뒤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착수해야 할 때입니다. 그 주요내용은 사부대중이 종단(교단)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불교중흥의 노력을 다함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앙종무기관을 효율적이고 내실있는 기구로 만드는 일
불교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ㆍ운용하여 예산규모를 대폭 늘려야 하고, 교단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해야 함
2. 교구제도를 전법 포교의 책무와 연계하여 시행하는 일
현행 24교구를 국가의 기초자치단체(약 270개)와 대응하여 획정하되,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는 총무원이 관련 사무처를 별도로 두어 직접 관할하고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 여타 광역시는 인접한 교구들이 협의회를 통해 공동으로 관할하는 방법. 그리고 북한지역 포교와 지원을 위한 특별교구도 설립해야 할 때임
3. 비구니스님도 전법교화 현장에 적극 나서고 종단운영에도 적극 참여하여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일
비구스님 중심으로 종단을 운영하기에는 규모도 커졌고 다양한 전문성을 필요로 함. 그리고 비구니스님이 우수한 전법교화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임
4. 전문 종무원제도를 만드는 일
종단운영과 관리를 위해 사찰, 교구. 중앙종무기관, 종단산하 시설과 단체에 순환 임용될 수 있는 전문 종무원제도를 도입해야 할 단계임
5. 재가불자들의 불교적 활동(불교시민단체 등)을 적극 지원하는 일
언필칭 이천만 불자들의 불교적 실천이 한국불교중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으로 지원 육성하고 조직화, 네트워크화 할 필요
6.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제도를 현대에 맞게 전면 쇄신하고, 젊은 출가자를 교단이 전적으로 지원하여 육성하는 일
젊은이들이 보다 쉽게 불교교단에 참여하여 보람 있는 삶을 살며 훌륭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출가의 문을 폭 넓게 열어야 하며, 승가의 청규와 규범, 사찰환경과 종단풍토 또한 현대적 문화로 대폭 개선해나가야 할 것임
◆맺는말
한국불교가 20세기 들어와 조계종이라는 사상최초의 통일된 단일교단설립에 성공하여 50년이 흘렀습니다. 해방 후에 불교재산과 사찰이 국유화 되지도 않았고, 불교계가 본산제로 분리되거나 개별 사찰로 사유화되지도 않았습니다. 훌륭한 선조스님들의 판단과 위법망구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무소유공동체인 조계종이라는 교단을 구성할 수 있었음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은 소수의 세력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이 대장정을 거치며 중국인민의 마음을 얻어 마침내 중국대륙을 통일해낸 일과 비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정화불사기간의 고초는 힘겨웠고, 최종적으로 교단설립으로 나타난 결과는 뜻 깊었기 때문입니다.
정화불사와 조계종 출범 이후의 50년 역사를 분쟁의 역사로 매도하는 일도 있는데 이 또한 조계종이라는 교단 설립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사회가 해방 후 전쟁도 겪고 어려운 시절과 분쟁의 시절을 거쳐 왔지만 오늘날은 분단의 상태이나마 현대적 민주국가로 어엿이 성장해온 역사이듯이, 한국불교도 대한불교조계종을 통해 1700년 역사를 승계하여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하지만 조계종은 다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조계종은 지난 5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그 내용과 형식을 전면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현재 조계종의 종파불교적 사상적 정체성과 낙후된 교단 운영시스템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됩니다.
반드시 지금, 이 시기에 한국불교의 내용과 형식을 전면 혁신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때가 되었습니다. 종단의 지도자와 전국의 교구스님들과 불자들이 한 목소리로 한국불교의 자성과 쇄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사의 정신으로 한국불교를 새롭게 중흥하자고 합니다. 국민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불자들은 마음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남은 것은 종단의 지도자들인 스님들이 결단하여 현실적으로 추진할 때입니다.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출발합시다.
감사합니다.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40
첫댓글 조계종의 구조적인 문제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꿰뚫고 있는 분이 없으며 대안까지 제시하는 스님은 더 없다.
이분의 주장처럼만 된다면 승가는 더욱 화합할 것이고 포교는 저절로 되어서 조계종 번영은 눈앞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분이 총무원장에 당선될 수 없는 정치적구조가 지금의 조계종의 현실이다.
길은 있다.
이런 일을 해낼 분을 총무원장에 모시든가 이 분이 총무원장이 되도록 10년이상의 비구 비구니들이 참여하는 총무원장 직선제를 이루어 내면 가능 할 것이다.
선학원과 조계종이 법인관리법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때에 과감히 조계종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단일종단 의 방향
을 제시했던분으로, 어쩌면 갈등해결책 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젼을 제시하므로써 선학원 탈종사태
의 근본적 문제해결의 대안을 보이고 있다 할수 있겠네요. 꿈의 비전이라 할만한데..현실의 벽은 어떨지..
현 총무원 집행부도 의견을 적극수렴하여 제도장치를 마련해야 조계종의 발전을 앞당길수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승가의 보편적 복지군요^^
정확히 본 측면은 있지만
세속의 이념대립이 보편적 복지를 가로막듯이
승가도 이점은 더 심할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