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 원 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시러 오시라
삼대 째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거든
먼저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져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 모레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고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면 제발 오시지 마시라
첫댓글 이 시를 읽고 나니, 지리산에 더욱 가보고 싶어지는군요...
천왕봉 일출, 노고단 구름바다, 반야봉 저녁노을, 피아골 단풍, 벽소령 달빛,....직접보면 정말 어떤 느낌일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