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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무엘상 강해
본문 : 사무엘상 14장16-28절
설교 : 하영기목사(아름다운장로교회) 2012/09/19/
14: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더라 14:17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14: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14: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4: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14:21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 14: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14: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14: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14: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14: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14:27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14:28 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14:29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14: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14: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14: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있는 채 먹었더니 14:33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하고 14:34 또 가로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각기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잡아먹되 피 있는 채 먹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14: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20여년전 상연된 「ET」라는 영화가 있다. 유명한 영화감독 스필버그의 작품으로 대히트 영화였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와서 식물을 채취하던 중 추격을 받고 황급히 지구를 떠나다가, 한명의 외계인(ET)이 지구에 떨어져 남는다. 지구에 홀로 남은 ET는 미국인 어린 소년에게 발견되고, 소년은 ET를 자기집으로 데려다가 숨겨준다. 소년의 형과 어린여동생은 집에 숨어있는 ET를 발견하게 되고, 세 남매와 ET 사이에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우정이 싹트게 된다.
한편, 한 명의 외계인이 지구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 정보기관과 경찰은 ET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고, 세 오누이는 ET를 숨겨주느라고 애를 쓴다. 이렇게 엎치락 뒷치락하며 영화는 전개된다. 마침내 ET는 우주선과 연락하는데 성공하고, 깊은 밤, 외딴 수풀 속에 ET를 싣고 갈 우주선이 도착한다. 세 남매와 ET 사이에 작별의 시간이 왔다. ET는 그동안 배운 영어로 떠듬거리며 ‘굿 바이’ 하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우주선 안으로 걸어간다. 이때 세 남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ET가 떠나는 것이 너무도 섭섭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 마음속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원래 ET의 모습은 징그럽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ET가 조금도 흉측하게 괴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귀엽고, 같이 놀고 싶을 정도로 친밀감이 느껴지는 존재로 변했다.
영화의 시작이나 끝이나, ET의 모양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관객들 눈에는 영화의 처음과 나중의 ET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무엇이 변했나?
ET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 변한 것이다. ET를 보는 ‘마음의 눈’이 달라진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의 눈이 달라지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리 못생긴 아이라도, 어머니가 보았을 때는 제일 잘 생긴 아이로 보인다. 어머니의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사랑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증오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증오의 대상으로 보인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가 있다.
불평스런 눈으로 보면 세상이 불만거리로 가득 차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신앙인들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눈」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눈」입니다.
기독교 신앙인은 어떤 사람이냐하면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거창고등학교 설립자 정영창 교장선생님의 이야기
놓은 산 꼭대기에서 마음의 원망과 걱정으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지으신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산을 내려온 일
옛 말에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숲속에 갖힌 사람은 나무들만 보지만 산위에 올라간 사람은 울창한 숲과 넓은 들을 함께 볼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토굴과 숲속에 숨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 왕이 블레셋 진영에서 일어난 소동을 보았습니다.
이 소동은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듯이 이미 하나님의 권능이 블레셋을 제압하고 계셨는데 이스라엘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졌던 요나단과 그의 무기 맡은 신하 이 두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아갔을 때에 이 전쟁을 주관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온 백성들이 볼 수 있도ㅗ?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은 지금 내 앞에 일어나는 현상만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사울은 앞에 있는 3만명이 넘는 무장한 블레셋 군대를 보았습니다.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도망가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았습니다.
빨리 내려오지 않는 사무엘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안한 나머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제사장의 일까지 행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분명히 우리의 눈에도 현실이 보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들의 인생이 지나오는 동안 한순간도 우리들에게서 눈을 때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능력의 손으로 우리들을 감싸시고,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블레셋 진영의 소란을 보면서 어떤 상상을 했는지를 다음 구절에서 보게 됩니다.
14: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더라 14:17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14: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사울은 제사장 아히야를 불러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미 제사장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사울이 언약궤와 제사장을 부른 이유에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먼저 제사장 아히야가 입은 에봇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입는 옷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속죄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봇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또 에봇을 사용할 때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8: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레위기 8:6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8: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8:8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대제사장의 입는 옷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출28:30> 이라는 것을 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할 때에 사용을 하기도 합니다.(레8:8).
분명한 것은 에붓을 사용하기 위하여 성막의 제단 앞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사무엘이 떠난 뒤에 아히야를 불렀고, 에봇을 입게 했고,
제사장의 역할을 하겠했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지금 제사장을 자신의 옆에 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의 바른 지세는 아닙니다.
어떤 학자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 외적 문헌에도 가끔 이와같은 기록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자신의 왕권(王權)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예들이었습니다.(Klein).
아마도 사울은 왕이 된 후에 자신의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제사장을 마음대로 세우고, 에봇을 입게 하고, 언약궤를 가져오게하는 월권(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력을 이용)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이처럼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물으려 했던 것이 무었이었는지는 성경에 기록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몇가지로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1.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에 간 것을 알고 요나단의 안위를 묻기 위함이었는지?
2. 아니면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게 하고 예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이 궤를 앞세우고 나갔다가 전쟁에서도 지고 언약궤도 빼앗긴 경험이 있기에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갈 것인 말 것인지를 물으려 했었던지?
3. 아니면 전쟁에 나갈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곳에 머물 것인지를 물으려 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블레셋 진영에 일어난 소동을 보고도
하나님의 능력이 이미 이 전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은 우리들이 몰라서 우왕좌왕할 때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을 위하여 권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 앞에 있는 현실이 너무도 절박하게 느껴져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기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흔들거리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사울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한 광경을 보게 하십니다.
14: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4: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사울이 우왕좌왕하며, 머뭇거릴 때에
오늘 본문에 보니 블레셋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 심하여 집니다.
블레셋에 들어간 사람은 요나단과 그의 신하뿐인데
블레셋 진영은 점점 더 혼란이 더하여 갑니다.
이정도 되면 아무리 영적으로 무딘 사울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사울은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믿고 공격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지만
사울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증거를 다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4: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하지만 사울은 자신이 전쟁을 하여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4: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14: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14: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14:27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14:28 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상으로 보면
블레셋 진영에 소동이 일어날 때에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기 위하여 나아갈 때에 사울이 그의 백성들에게 한 맹세가 세웁니다.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내가
내 원수
복수 할 때까지
내가 내 원수를 다 갚을 때까지 열심히 싸워서 완벽한 승리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시간까지도 지체하지 말고 전쟁을 끝낸 다음에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백성들에게 맹세를 하게 합니까?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하여서 입니다.
대승을 거두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 자신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숨어서 상황을 살피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던 사울의 마음에 자만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조금만 나에게 우리하게 작용을 하면
곧 자만해지고 교만해집니다.
어찌되었던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여호수아의 전쟁도 하루종일 되었다.
백성들의 곤고함을 돌아보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자신의 성과와 자신의 전공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요나단은 이러한 사울의 결정을
14:29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14: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14:36 사울이 가로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가로대 왕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가로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14: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지 아니하시는지라 14:38 사울이 가로되 너희 백성의 어른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보자
사울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승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앞에 범죄하게 만들었다.
바가 고팠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을 피체로 잡아먹는 부정함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이기는 것은 분명했는데 사울이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사울은 하나님께 물으려 합니다.
처음으로 재단을 쌓았다.
처음으로 사울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처음 쌓은 단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승인받고자 한 제단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결국은 사울은 자신이 지키지 못할 맹세를 공포하고 하나님앞에 자신의 약속을 깨뜨리는 자가 되었다.
그의 성급하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자신의 아들을 요나단을 죽일뻔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문제로 돌립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주관적이 관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것으로 착가합니다.
잘되지 않으면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보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합시다.
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함임을 발견하는 즈의 백성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