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도 울며 겨자를 먹는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한 평 남짓 되는 골방에서 청운의 꿈을 등불삼아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흘러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30년이 훌쩍 지났군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국가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한 번도 내 고향 청원과 청주를 떠나본 일이 없었고 비록 공무원 신분이라 전국 여러 곳으로 인사발령에 따라 몸은 떠돌았지만 마음만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오직 고향 청주검사장을 마지막 소원으로 간직하였던 저에게 고향에서는 1991년 충주지청장으로, 1997년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근무하는 기회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향 각지에서 검사 부장검사 차장검사 지청장과 검사장으로 봉사할 때에 늘 아껴주시고 지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대법원에서 제가 제기한 인사발령취소소송이 선고되었습니다. 마음고생도 크고 실리적으로 불리함이 많음에도 현직 검사로서 인사권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였습니다.
학연과 지연의 후광이 없는 저로서는 살얼음판을 걷듯 한 치의 방일함도 허락되지 않는 외길이었지만 오직 이끌어주신 여러분의 성원과 사랑에 힘입어 검사장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검사장으로서 나름대로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경험을 기초로 열정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고 있던 중에 약 6년 전에 검찰을 사칭하여 내사를 하는 것인지 적법하게 처리 중인 지를 확인해 준 사실과 관련하여 검찰 역사상 유례가 거의 없는 강등인사라는 날벼락을 당하였습니다.
제가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작 강등인사를 당하고 보니 제가 그처럼 조심하면서 생활해온 방식에 비추어 너무 억울하고 충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악의적 의도와 감정이 개입된 부정확한 음해성 주장 및 과장된 기사가 난무하고 이러한 영향으로 인사권이 잘못 행사되어 검찰의 위상에 저해가 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제가 마지막 피해자가 되고 동료 후배들에게는 이러한 과오가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람이었습니다.
한편 검사로 상당한 직위까지 역임하고 법을 공부 한 저 같은 사람도 억울함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는데 그야말로 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해 보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를 먹어야 하는지? 그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지나온 날이 부끄럽고 법을 배웠다는 것이 죄인이 된 듯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기와 자기 집단만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독선적인 법의 잣대로 재단된 잘못된 결정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낳고 스스로 법의 권위를 실추시키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난날 저의 과오로 인해 그러한 사례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만약에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이 글을 빌어 사죄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법을 잘 모르거나 법을 알면서도 법의 잘못된 잣대로 억울함을 당하는 서민들과 같은 눈높이로 그들과 같은 가슴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진실을 제대로 살피고 그들의 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하고자 합니다.
저보다 훌륭하고 깨끗하신 분들이 지휘부를 많이 맡았음에도 여전히 국민들께 신뢰받지 못하는 법조계가 제자리를 찾는 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다시 한 번 지도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0. 2. 11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권태호 올림
검사도_울며_겨자를_먹는다[1].hwp
첫댓글 그동안 어려운 결정을 하시고, 이제 대의명분은 상고기각으로 확립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앞날을 향한 재충전을 하시어 앞으로 더큰꿈을 향해 매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똑 떨어지는 글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인고의 3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앞으로 실제적으로 잘못된 법과 관행이 바뀌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얼마나 많은 희생과 인고가 따라야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