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28)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여기 주민이오. 닭을 길렀소. 하늘에 별을 뿌리고 땅바닥에 등 깔고 누워 세었소. 하나도 빠뜨림 없이 세었소.
해가 떨어지더이다. 문에 뚫린 구멍으로 한 다발의 석양빛이 들어와 내 가슴에 꽂혔소. 빛이 나를 죽였소. 나는 빛에 살해당한 자요. 언어가 남쪽으로 기울더니, 나는 죽어 있더이다. 나는 언어로 살해당한 자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여기 주민이오. 내 발로 길을 새겼소: 개미 떼처럼 오가면서, 내 발로 길을 다졌소. 쇠와 밀알을 내 턱으로 물어 날랐다오. 밤과 낮도 내 턱으로 날랐다오.
내게 며칠은 남아 있소. 내 몸에 둘려 있는 몇 가닥의 밧줄을 큰 쥐처럼 갉으려오.
돌아라, 내 위에서 맴도는 매야. 언덕 위를 맴돌아라. 나는 밧줄을 갉아 스스로 놓여날 테니.
좀생이별이 울었소. 아침의 숨결이 내 얼굴에 끼치오. 내가 씨뿌린 밀은 어디 있소? 내가 바람에 묶어둔 머리끈은 어디 있소?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이 들판을 누볐소. 내 발등에 흙이, 내 혀에는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이 얹혀 있소.
사랑하는 이여, 내 이마에 둘러 묶을 주홍빛 비단 리본을 주오.
나의 부활을 살 플루메리아 꽃을 주오.
- 자카리아 무함마드(1950-2023), 시집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오수연 옮김, 강,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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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소탕을 명목으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의 숫자가 2만3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227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인구의 1%를 넘어선 숫자입니다. 사망자 중 5천3백 명이 여성이고 9천 명은 어린이라고 하니 여성과 어린이를 합한 수치는 전체 사망자의 거의 3분의 2에 해당합니다. 사망자 중 8천 명은 하마스 무장세력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나머지 1만5천 명의 사망자는 하마스와 무관한 무고한 시민들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하 동일)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지른 혐의로 이스라엘을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습니다. 이 혐의에 대한 청문회가 11일과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됩니다. ICJ는 이틀간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11일에는 남아공측, 12일에는 이스라엘측의 변론을 각각 청취합니다. 제노사이드는 고의적으로 인종이나 종교집단을 말살하기 위해 저지르는 집단학살을 말합니다. 1946년 유엔총회는 제노사이드가 국제연합의 정신과 목적에 반하고 문명 세계에 의해 유죄로 인정된 국제법상의 범죄라고 선언하고, 1948년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체택했습니다. 이 선언과 협약 채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마 2차 대전 중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일 것입니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판결은 전례를 보건대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됩니다만, 남아공이 제소하면서 요청한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군사작전 즉시 중지 긴급 명령이라도 속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노사이드 판결이 나든 나지 않든 현재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들의 죽음은 정황을 보건대 분명 학살입니다. 이 학살은 멈춰져야 합니다. (20240110)
첫댓글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여기 주민이오. 내 발로 길을 새겼소: 개미 떼처럼 오가면서, 내 발로 길을 다졌소. 쇠와 밀알을 내 턱으로 물어 날랐다오. 밤과 낮도 내 턱으로 날랐다오.
내게 며칠은 남아 있소. 내 몸에 둘려 있는 몇 가닥의 밧줄을 큰 쥐처럼 갉으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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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리아 무함마드 시 소개 두 번째 잘 읽었습니다.
첫 번째 소개는 작년 8월 30일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