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크루즈 낭만 여행
제26화 보헤미안의 불타바 “프라하3”
-2106년 7월3일-
우린 점심을 서둘러 먹고 프라하 성으로 올라갔다
프라하 성은 리부세 여왕의 예언대로 870년에서 890년경 프로제미슬 왕조의
보리보이(Borivoi)왕자가 블타바 강이 내려 다 보이는 흐라트차니 언덕에
터를 잡아 요새를 건설하였고 이 요새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 I. Courtyard and Entrance Gate 2. II. Courtyard 3. III. Courtyard 4. Picture Gallery
5. St. Vitus Cathedral 6. Old Royal Palace 7. St. George´s Basilica 8. Convent of St. Georgeo
9. Institute of noblewomen 10.Powder Tower 11.Daliborka tower 12.The Golden Lane
13.The Highest Burgraviate 14.Gardens of Prague Castle 15. Riding School
16. Ball Game Ha 17.Summer Royal Palace 18.Former Prezident´s House
프라하 성은 프로제미슬 가가 통치하는 영토의 중심부가 되었으며
지금도 체코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되고 있다고 한다
요새는 시대가 바뀌면서 여러번 증개축 되었으며 특히 18새기 중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태리 건축가 니콜라 피카시에게 위임해 성체를 확장하면서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를 통일 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의 이 성체 영역은 7만평방 메타로 유럽에서 제일 큰 성체이며
성 안에는 성 비투스 성당을 포함해서 구 왕궁은 물론 성 이지르 성당과
수녀원, 황금 골목, 왕실 정원등 다양한 건물들이 있기 때문에 도시속의
하나의 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1918년부터는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로 성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1중정부터 근위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제1중정 출입구는 자이안트 게이트(Gaant Gate)라하며 두 거인 타이탄의 발
아래에 깔린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조각상이 있고 두 조각상을 연결하는
아취형에 왕관이 걸려있는 데 왕관 아래에 M.T.J 약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조각물은 1770년부터 1771년에 제작된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장남
요젭2세(Josef II)” 황제의이니셜로 이들의 통치시대에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난간을 따라 가다보면 독수리 상과 사자상의 조각이 세워져 있는 데
독수리상은 지배자 오스트리아 함스부르그 가를 의미하고 사자상은
체코의 상징을 나타내는 동물이며 두 거인은 함스부르그 가를 의미하고
억압받는 사람은 보헤미안을 의미한다고 한다
제2중정에 들어서면 코르분수와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며 마티아쉬 문은
1614년 신성로마제국 마티아스 황제가 세운것이라는 새겨저 있으며
아래쪽의 작은 문장들은 함스부르그가가 통치하는 나라들의 문장이라고 한다
성의 제2광장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건축된 성 십자가 교회는 16세기에는
프라하 성 건축 사무소가 있었고 그 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황제
카를 6세를 위한 전용 주방이 있던 자리에 지었던 교회이라고 한다
이 교회은 현재 매표소를 겸한 인포메이션 센터와 작은 기념품 상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본당쪽 벽화나 제단 일부분이 남아 있어 그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3 중정에 들어서면 길다란 성체 맞은편에 프라하의 주교 성당인
비투스(Vitus) 대 성당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길이가 124M 폭이 64M 탑 높이가 96,5M나 되는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보헤미아의 왕들과 로마황제들의 묘소가 있는 체코를 대표하는 대 성당이다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청동문에 새겨진 부조는 하인리히 1세가 바츨라프에게 성 비투스의
팔 뼈조각을 기증하는 모습과 왕의 일대기가 새긴 부조라고 한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인상적이다.
원래 성 비투스 성당은 925년 독일 황제 하인리히1세가 성 비투스의 팔
뼈 조각을 보헤미아의 통치자 바츨라프에게 기증 하였으며 바츨라프는
이 뼈를 보관하기 위하여 자그마한 원통형 성당을 만든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14세기 들어서 카롤4세는 이곳에서 대관식도 올라고 왕족의 묘소도 옮기고
바츨라프의 묘소도 두어 이곳을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지로 만들기 위하여
1344년 교황청 건축가 마티외(Mathieu)에게 성당 재건을 맡겼다고 한다
마티외 사후 페터 파를러(Peter Parler 1380-1399)이 뛰어난 건축 구조미를
살려 건축을 계속했으나 그 마져 죽자 그의 아들이 황금 문을 완성하여
대관식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알폰소 무하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성 키릴과
성 메토티우스의 생애가 그려져 있었고 1931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형제 성인은 9세기경 슬라브 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했으며 러시아
세르비아 문자인 키릴문자를 전파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BANKA SLAVIE' 슬라비에 은행이 스폰했다는 광고도 보인다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주 제단 위에
예수의 최후를 말해 주고 있는 스테인드그라스 창이 있었다.
이 성당은 르네상스시대와 바로크시대를 지나면서 계속해서 건축하고 있었으며
600년이 지난 1929년 바츨라프 순교 1000년이 되는 해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성당은 하늘로 높이 솟은 복고풍 고딕 양식의 천정은 단조로우면서도
경의로웠다
이 성당의 제일 중요한 예배실은 성 바츨라프의 예배실이다
1364년 페터 파를러가 이 성소를 만들었으며 바츨라프의 조각상과
뒤 벽에는 바츨라프의 생애를 장식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또한 이 성당에서 보아야 할 예배실은 "안 네포무츠키"의 묘소이다
보헤미아의 왕 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고해 성사를 밝히기를 거부한 신부
얀 네포무츠키(1345-1393)의 혀를 잘라 버리고 카롤 다리에서 블타바강으로
던져 버린 사건 이후 300년 만에 얀 네포무츠키의 관을 열었을 때 잘려 나간
혀를 발견하고 피셔 본 에를라흐(Fisher von Erlach1693-1742)에 명하여
이곳에 기념비적인 묘소를 만들게 하였다
십자기를 끌어 안고 있는 성인의 모습과 주위에는 천사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2톤의 은으로 도금되어 있어 강력한 인상을 남기게 되고 뒤편의 아기천사가
들고 있는 방패 속에 혀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 처럼 오랜 역사와 전설적인 사건들이 잘 어울리는 구석구석의 조각품들은
이 성당을 기독교의 성지로 만들고 프라하의 명소로 만들었으니 카렐 4세의
원대한 꿈이 아루어 진 것 같았다
그러나 지하에는 카렐4세를 비롯한 황제들의 석관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을 나오면 바로 앞이 구 왕궁(Old Royal Palace)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블라디슬라프 홀 (Vladislav Hall) 을 통과하여 왕궁을 관람하는데
이 홀의 크기가 62M x 16M x13M의 크기로 중세 유럽 건축물중 기둥이
없는 공간으로서는 이 홀이 가장 크다고 하며 이곳에서 대관식, 무도회
심지어 마상 창 싸움도 열렸다고 한다
홀의 창에 서면 프라하의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역대 왕들도 이곳을 보며 통치를 하면서 국민을 생각했을 것 같았다
1135년 처음 세워진 왕궁은 16세기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으며 1618년
5월23일 30년 전쟁의 계기가 된 장소가 바로 이 왕궁의 창이다
합스부르그가의 페르디난드 황제가 임명한 보헤미아 귀족들이 개신교
귀족들을 이 창밖으로 던져 버린 사건이 발생하여 가톨릭의 함스부르그와
개신교의 보헤미아와의 3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국 보헤마아가
패하여 더욱 큰 고통을 받았지만---
4층으로 된 왕궁은 초기 로마네스코 양식을 비롯하여 고딕 스타일의 아취형
출입문도 보이고 르네상스식으로 된 벽장식과 바로크식의 창문등은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증축되면서 변화된 형태라고 한다
예배실도 잘 보전되어 있었다
왕궁은 일부만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바츨라프 왕관만 관람하고
성 이르지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츨라프 왕관은 2000캐럭의 순금으로 만든 왕관에 98개의 보석을 전면에
장식하고 6개의 사파이어가 조화롭게 밖힌 왕관으로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전시된 왕관은 모조품이며 5년 마다 진품을 시민에게 보이는 엄숙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구 왕궁을 나오면 붉은 건물의 성 이르지 성당 (Bazilika svatého Jiří)은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930년 블라드슬라프 1세의 명령에 따라 로마네스크양식의
목조 건물로 지은 소박한 성당이며 973년에는 최초의 여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는 블라디슬라브 1세(Vladislav I)의 무덤과 성 바츨라프(sv.Václava)
의 할머니인 성녀 루드밀라(sv.Ludmily)의 예배당과 무덤, 성 얀 네포무츠키
(sv.Jana Nepomuckého)의 예배당이 있다.
수도원은 18세기에 문을 닫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라츨라프의 할머니인 루드밀라는 기도를 하면서 무릅을 끓었다는 이유로
이교도인 며느리에게 참수를 당한 왕족의 최초 순교자라고 한다
이곳은 음향의 울림이 좋아 매년 5월 “프라하의 봄” 축제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성 이르지 성당은 영어로는 성 조지 성당이라고도 한다 이곳을 나오면
바로 황금 골목이 나온다
성의 북쪽 성벽에 바싹 붙여 16세기에 1열로 만들어진 서민들의 작은 집들이 있다
이 골목길은 연금술사가 거주하면서 작업장으로 사용하든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 루돌프 2세 때에는 연금술사가 아니고 성채를 지키든 수비대원들이
살았든 곳이라고 한다
한때는 금세공인들이 살기도 했는데 1830년대 어느 교수가 연금술사의
매력에 빠져 납을 금으로 만드는 법을 연구 하다가 화재가 나서 죽은
교수의 손에는 금이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등이 있어 이곳을 황금
골목이라고 하며
이 골목 22번지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누이가 살고 있어 1916년경에는
카프카가 이곳에서 집필도 하였다고 한다
1883년 프라하에서 태여 난 독일 유대인계 체코인으로 꿈에서 깨어나니
흉축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로 시작되는 “변신”이외 장편소설 ‘성’ ‘실종자’
등이 있으며 20세기의 실존적 위기와 존재의 불안을 표현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한다
황금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1950년대 체코의 만화 작가 이르지 트른카
(Jiri trnka)는 14개의 각 집마다 각각 다른 파스텔색조를 입혀 골목을
탈바꿈시켜 프라하의 명소로 만들었고 지금은 기념품 가게등과 함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거리로써 이 거리를 통과하는데도 입장료를
받으니 정말 황금 알을 낳는 골목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갑옷과 중세 무기를 진열해 놓은 곳도 있으며
기념품 가게에도 여쁜 장식으로 단장해 놓고 있었다
프라하 성의 관광을 끝내고 프라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트라호프
수녀원으로 갔다
누구나 한번 가 보고 싶은 14만권의 중요 장서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 유명한
도서관이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은 1140년 블라디슬라브(vladislav)
2세 처음 세웠으나 17-8세기에 지금의 모습인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양식으로 혼합된 수도원으로 재건축되었으며 수도원 내부에는
작은 성모마리아 성당이 있다고 한다
도서관은 “진실을 알기 위한 인간의 투쟁”이라는 프레스코 화가
유명한 철학의 방과 신학의 방이 있다고 하나 우리들은 시간이 없어
관람하지 못하였다
스트라호프 성당 소유의 포도 농장이 펼쳐진 광장에 포토죤이 있어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서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수도원에서 휴식을 취한 후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 오니 천사의 종소리가
둘리는 로레타 성당이 나타난다
로레타는 이태리의 지명이다 특히 천사장 카브리엘이 예수의 잉태를
예언했든 장소의 이름이 “산타카사”“성스러운 집”이다
이 산타카사가 이태리의 로레타에 있다
이 성당에 산타카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가 때문에 로레타 성당이라고 한다
매시 정각에 종탑에 설치된 27개의 종에서 마리아를 위하여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하며 잘 보존된 산타카사가 아름다웠다
1694년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종 제작자 크라우디오(Claudio Fromm)와
체코인 에베르하드(엡Eberhard Glaukova)에 의해 제작되었고
2.5 옥타브의 음역을 가진 1400 kg의 종 27개를 사용했다고 하며
1695년 8월 15일 최초로 종이 울렸다고 한다
로레타 성당 맞은 편 길에는 이태리에서 나 볼 수 있는 특이한 건물이 보였다
주로 이태리에서 쓰이는 스크라피토(Scraffito) 건축법으로 16세기경 건축된
집으로 타일이 마르기 전에 윗부분을 긁어내어 무뉘나 형태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어 도자기 회화 유리공예 등에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며 16세기에 많이 유행했다고 한다
허지만 시공비가 엄청나서 크게 유행은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로브코비치 가의 집으로 건축가 아고스티노 칼리(Agostino Galli)가
1545년부터 1576년에 지은 것으로 르네상스식 건물이며 1719년에는
함스부르그 가의 대표 귀족 슈바르젠베르크(Schwarzebersky)가의 소유로
슈바르젠 베르그 궁전으로 사용하다가 20세기 들어와서는 전시회 목적의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며
프라하에서 제일 비싼 건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