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보살)행론 1-26,27 사유]
불교이념의 2대 지주는 ‘반야般若’와 ‘자비慈悲’라고 한다.
반야 즉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 작용이고, ‘자비慈悲’는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며, 고뇌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2개의 지주 중 자비의 ‘자慈’는 최고의 우정(정신적인 유대감)을 의미하며, 특정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우정을 갖는 것이고 '悲비'의 원래 의미는 '탄식한다'는 뜻으로 중생의 괴로움에 대한 깊은 이해·동정·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과 <광대 원만 무애 대비 심대 다라니경>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하면 관세음보살이 응하여 구원을 한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 관음신앙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위 내용은 “관음정근”으로 관세음보살 염불 하기전 서두에 읽는 발원문 내용인데,
보문시현普門示現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타나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시다’는 뜻이고,
원력홍심願力弘深은 ‘원력이 크고 깊다’는 뜻이며,
대자대비大慈大悲는 ‘넓고 커서 끝이 없는 자비’라는 뜻이며,
구고구난救苦救難은 ‘중생들의 고통과 액난을 소멸시켜 준다’라는 뜻으로, 전체 내용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나타내시어 중생을 고통과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 주시는 원력의 힘 넓으신 관세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모든 신통력을 갖추고 지혜와 방편을 널리 닦아 어느 곳에서든지 몸을 나투시는 관세음보살님게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라는 의미다.
불교인들에게 자비 하면 떠오르는 성인은 당연히 관세음보살님이 아닐까?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천수경에 나오는 위 ‘여래십대발원문’은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표현한 열 가지 큰 원으로서,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뜻을 갖고 있으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것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구성상으로 보면 먼저'속(速)'자가 나오고 다음으로 '조(早)'자가 연결되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화제를 바꾸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전생이야기를 옮겨본다.
"아득한 옛적 인도 남쪽에 마열파타국(摩涅婆咤國)에 장나(長那)라는 장자와 마나사라(摩那斯羅)라는 부인이 살았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천신에게 기도한 후 아들 둘을 얻었습니다. 장자는 바라문을 불러 관상을 보이고 장래를 점치니 일찍 부모를 여읠 운명이라 하여 조리(早離)와 속리(速離)라는 이름하였으니 일찍이 부모를 여원 다는 뜻이다.(조리와 속리라는 말은 중생의 고통을 일찍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함.)
그러던 중 형인 조리가 일곱 살 동생인 속리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고, 그녀는 두 아들을 불러 놓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조리야! 속리야! 엄마는 아무래도 병이 나을 것 같지 않구나.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누구라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니 죽는 것은 무서울 것이 없다마는 너희 어린 형제를 남겨놓고 떠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아프고 쓰리구나. 너희들은 슬퍼하지 말고 내가 죽은 뒤라도 아버지 말 잘 듣고 또 아버지에게 효행을 극진히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잘 배워서 훌륭한 큰 성현이 되어서 만백성을 지도하는 인물이 되어다오.” 말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두 아들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게 되자 장자는 어린 두 아들을 위해 후처를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 해 가뭄으로 큰 흉년이 들어 들판의 곡식을 하나도 수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자는 집안을 새 부인에게 맡기고 이웃나라에 가서 보물과 식량을 바꿔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혼자 남게 된 부인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아이들을 없애려고 뱃사공을 매수하여 두 아이들을 멀리 떨어진 무인도에 갖다 버리게 하였다.
두 형제는 목이 터져라고 뱃사공을 불렀지만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어린 형제는 몇 날을 추위와 굶주림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다가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쓰러진다.
“속리야, 우리는 죽을 시각이 다가왔다. 이 몸은 기한(飢寒)을 이기지 못하여 비록 죽더라도 정신이나 차려보고 죽자. 우리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죽더라도 우리 혼신은 성현이 되고 보살이 되자. 그리하여 고통이 많은 자에게 의지가 되어 주고 그들을 구제하여 주자.”
형 조리는 열 손가락을 돌로 쳐 흐르는 피로 누더기가 된 옷에, 부모 잃고 버림받은 어린 영혼의 가슴에 사무친 아픔들을 대비의 발원으로 승화시켜 비원을 써 내려갔다. 피로 누더기 천이 빨갛도록 한자 한자 대비원(大悲願)을 적었다.
“우리 형제가 죽으면 부모 없는 설움으로 슬픔에 젖은 사람에게는 대성자모(大聖慈母)와 자부(慈父)가 되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절한 벗과 형제가 되며, 헐벗은 자에게는 옷이 되고, 굶주리는 자에게는 밥이 되며, 온갖 병고 중생들에게 명의가 되고 약이 되어 고쳐주고,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는 중생에게는 부처님의 몸을 나투어 구제하겠노라'라고 썼다.
“열 손가락이 문드러지도록 중생을 구원하고 고통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주겠다는 손고여락(損苦與樂)이 되겠노라”, “열 발가락이 짓이겨지도록 시방세계를 쫓아다니며 고독한 영혼의 고통을 없애 주고, 외로움을 달래 기쁨을 주는 발고여락(拔苦與樂)이 되겠노라”다짐하고 발원했다.
조리와 속리는 이와 같이 서른두 가지의 원을 세우고 이것을 혈서로 상의에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다음 두 형제는 서로 얼싸안고 대비원을 성취하며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장나 장자는 단나라산(檀那羅山)에 가서 진두감과(鎭頭甘果)를 많이 무역하여 낙타와 말과 코끼리 등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먼저 뛰어나와야 할 두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후처에게 물으니 “두 아들이 집을 나갔다”라고 말하였다.
장자가 백방으로 두 아들의 행방을 찾아다닌 끝에 바다를 건너 무인도에 왔을 땐 두 무더기의 하얀 유골뿐이었다. 자식의 유골을 품에 안고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비장한 심경으로 조약돌 사이에 널려있는 바래져서 약간 희미하기는 했으나 어린 자식들의 누더기 천 조각에 쓰인 피의 유서인 '대비발원문'이 눈에 들어왔다.
장자는 정신을 돌려서 읽어가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도심(道心)을 발하고 아들의 간절한 서원을 다 읽은 다음 하늘을 우러러보며 “원컨대. 나도 모든 악한 중생을 제도하고 조속히 불도를 이루오리다.”라고 발원하고 오백 가지의 대원을 세웠다.
장자는 조리가 혈서로 써놓은 서른두 가지의 슬기로운 비원(悲願)을 읽으면서 아들의 슬픔과 괴로움이 곧 자기의 슬픔과 괴로움이요, 나아가서는 일체 모든 중생의 괴로움이요, 슬픔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조리는 자기의 슬픔과 괴로움이 모든 중생들에게도 얽혀 있음을 관찰하고 이 일체중생의 고뇌를 해발 시켜 주기 위하여 대비 원력(大悲顯力)을 세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이셨고, 조리와 속리는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시다.
위의 10대원에서 ‘속’자와 ‘조’자를 전생담의 속리와 조리의 이름으로 연결시킨 것은 자료를 찾으며 느꼈던 점이기에 순전히 개인적인 사유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버리고 간 새엄마에 대한 원망 대신 일체 중생의 고통과 괴로움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고통을 구제하겠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원은 우리 불자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일이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남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겠다는 거룩한 마음이 보리심이다. 이웃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라고 돌아보는 것이 보리심이다.
그 위대한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성현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로 다가가고 있는가? 그 성인들을 닮고자 우리는 오늘도 그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
2564. 4. 17 종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