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gia Sophia 성당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립했다는 말은 Order를 내리고 돈을 지불했다는 의미겠죠.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체통을 세우려고 겁나게 성당 건립을 추진합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신앙심이 얼마나 돈독하고 신실하신데 너 따위가 나불거리냐?
"깨갱"
서양 건축사라는 것이 중세로 가까워 질수록 징하게 성당 쪽 건축을 언급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
정말 종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경 공부를 매우 깊이 하셔서 웬만한 신부님은 꼬리를 내릴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이단과 정설을 구분하는 자신의 소견을 신부님들에게 피력할 정도이었으니 말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 혹은 Hagia Sophia(지혜로운 소피아 성당)이라고 하는 이 성당은 그리스-로마-비잔틴으로
이어지는 소위 건축의 단절이 없는 정통파입니다.
서로마 멸망 후 500년간의 암흑기(거의 폭력과 약탈로 일삼던)를 거치고 샤를마뉴 대제(마뉴가 magnus니까 중복이겠지만)
이 후 옛것을 더듬어 조금씩 건축적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던 서, 북 유럽의 건축을 가방끈 긴 동로마에서 보고는
"자식들~ 본 것은 있어가지고..."
이 말을 불어로 해석하면 'Romanesque'
다시 한글로 번역하면 '로마풍의'
영어로 영역하면 'Romantic'
"왜 잡설을 늘어놓냐!"
"간단히 끝내라."
간단히 말해 비잔틴은 원래 있던 아들이고 로마네스크는 가출했다 돌아온 아들입니다.
둘 다 로마를 뿌리에 두었지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같지 않은 가장 근본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상하좌우 길이가 같은 십자가가 그릭 크로스(Greek Cross)이고, 병원에서 흔이 쓰죠^^
교회에서 흔히 쓰는 것이 Roman Cross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로마네스크나 비잔틴이나 교회의 기본 평면이 자기들의 십자가에 근본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잔틴 건축은 정사각형이 되고, 로마네스크는 직사각형의 구조가 됩니다.
정사각형에서 중심점은 당연히 중앙이 되고, 로마네스크는 예수님 머리 쪽이 상석이 됩니다.
교회에서의 상석은 주교님의 자리죠.
주교의 자리(Chathedra) 그래서 주교가 있는 교회를 Chathedral... 해석하면 '대성당'이 됩니다.
주교가 앉는 곳을 치장한 것을 Baldachin(천개)라고 하는데, 로마의 성 베드로 대 성당의 천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수녀님의 오르가즘을 조각한 베르니니가 만들었습니다.
쪼끔 값나가는 침대, 특히 미국사람들이 침대에 요런 장식 잘 붙이죠.
천개를 붙인 침대에서 하는 부부관계를 정상위(전도사 체위)라고 붙인놈이 누구야!
"너 잖아!"
즉 비잔틴 형 교회의 천개는 성당의 중앙에 오게되고, 로마네스크 형 교회는 십자가의 머리 쪽이 됩니다.
십자가의 차이는 로마네스크가 선형공간을 형성하게 되고, 비잔틴에서는 구형 중앙집중식 공간을
형성하게 됩니다.
"너 자꾸 머리아픈 이야기 길게 하면 구독 끊는다!"
"아 정말 어렵다~"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선형공간에서의 주교좌는 교황의 권위를 강조하는데 매우 효과적이 됩니다.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들은(프랑크 왕국 이후 서,북유럽 왕이나 황제, 주교들) 권위가 절실했습니다.
왜? 원래 약탈과 탈취에서 시작된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양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비잔틴은 이미 수 천년간 양반이었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뭔데?"
"God"
신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신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은 성당의 벽화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Hagia Sophia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던 산 비탈레 성당(산비탈이 아니고, St. Vitale)의 모자이크 벽화에
그의 마음이 표현되어있습니다.
Justinianus황제와 테오도라 황후는 산 비탈레 성당의 예수님 바로 아래 벽화에 후광을 그려넣었습니다.
즉 성인으로 숭배하라는 무언의 메세지인 셈입니다.
테오도라 황후는 Nike riots에서 황제를 구원해 아마 정사에 깊이 관여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Mundus 장군은... 퍼걱!.. 그후 합참의장이... 빠직!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즉 성당에 들어와 예수님 밑에 자신의 벽화가 있을 때 Small Jesus의 느낌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부유 공간"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계는 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건축업자를 불러다 졸라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중을 건축적 공간으로 꿰뚫어 보고 설계도면으로 제시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찾은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건축가가 아닌 물리학자와 기하학을 전공한 수학자 였습니다.
황제는 그들이 제시한 건축적 공간이 자신이 꿈꾸던 신으로서의 숭배를 받기에 충분한 분위기 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건축사들이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건축학 적으로 절대 축조될 수 없는 공간이라고 말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는 거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실제로 건축이 진행되면서 6번이나 붕괴되었습니다. 총 7회 붕괴됬는데 한 번은 지진때문이라 횟수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바로 Hagia Sophia 성당입니다.
여기도 유스티아누스와 테오도라의 벽화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나...
이슬람 사원이 된 후 금 모자이크는 회벽칠을 하고 그위에 이런 것을 붙이고 모스크 사원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무지막지 하다구요?
기독교가 지나간 이교도 지역은 아예 유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십계명을 매우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죠.
지금도 회벽을 조금만 벗겨내면 그 당시 황금 모자이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더 주절거리면 심각해 질 것 같습니다.
이번 회 끝!
첫댓글 미어터지게 사람이 많아 피했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 본 기억..그렇게라도 죽기전에 돌아 다녀야 되나 봅니다. 이스탄불을 보고나면 여타의 도시들이 초라해보이는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