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5일 언약형통교회 주일오전예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디모데후서 4장 1절과 2절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육신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숨을 쉬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고,
숨이 멎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생명을 말씀합니다.
영적인 생명입니다.
몸은 살아 있어도 영혼이 죽은 사람이 있고,
몸은 죽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이미 육신으로는 죽었습니다.
이삭도 죽었습니다.
야곱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는 건강하게 살고 있고,
돈도 있고,
사업도 잘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너는 죽었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단순히 육체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인가?”
⸻
본문 : 디모데후서 4장 1~2절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1.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참 이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
세상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고
죽었으면 죽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계시록 3장입니다.
사데교회를 향하여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저 교회 참 좋다.”
“저 사람 믿음 좋다.”
“저 사람 집사님이다.”
“저 사람 장로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죽었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겉모습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예배드립니다.
찬송도 합니다.
헌금도 합니다.
직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회개도 없습니다.
기도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세상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정직하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않습니다.
원망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미워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직 살아나지 못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보시는 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직분을 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사람은 재산을 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은 학력을 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느냐가 아닙니다.
직분이 무엇이냐도 아닙니다.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또 앞절에서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생명의 증거입니다.
미움은 죽음의 증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미워하고,
시기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도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저들의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식어 버리면
영혼도 점점 메말라 갑니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둘로 구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섞어 두시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똑같다”고 말합니다.
“착하게만 살면 된다.”
“종교는 다 같다.”
“결국은 모두 천국에 간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둘로 나누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1) 알곡과 쭉정이
농부는 추수할 때까지 알곡과 쭉정이를 함께 둡니다.
멀리서 보면 둘 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차이가 드러납니다.
알곡은 창고에 들어갑니다.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말씀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회개가 없습니다.
직분은 있지만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쭉정이 신앙입니다.
반대로 알곡 같은 신앙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이 많지 않아도 묵묵히 기도합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충성합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정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알곡으로 보십니다.
우리 모두 알곡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
2) 곡식과 가라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는 곡식과 매우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믿는 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속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늘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
3)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바다에 던진 그물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물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함께 들어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립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
4) 양과 염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나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자를 따라갑니다.
목자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양입니까?
아니면 내 생각이 먼저인 염소입니까?
진정한 신앙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이웃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 의인이고 예수님을 섬긴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이 영생에 들어가는 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5) 선한 일을 행한 자와 악한 일을 행한 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서 선한 일은 단순히 착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로마서 2장 6절로 11절에 말씀을 참고하여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롬2:6-11]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악한 일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뿐 아니라 삶 전체를 보십니다.
⸻
6)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과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두 가지 삶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시기하고,
분내고,
다투고,
미워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3. 하나님께서 보시는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둘로 구별하신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1)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디모데전서 5장 6절을 보겠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일락(逸樂)’이란 육신의 쾌락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즐거움 자체를 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예배보다 놀러 가는 것이 더 좋고,
기도보다 스마트폰이 더 좋고,
말씀보다 세상 오락이 더 좋고,
하나님보다 돈과 성공이 더 중요하다면,
성경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까?
말씀이 기다려집니까?
기도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 마음이 살아 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
2)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27절까지 아주 중요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다른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집 모두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자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반석 위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모래 위의 집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듣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말씀을 삶으로 옮겨야 합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사랑해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
3)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가장 큰 증거는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예배는 영혼의 생명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반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섰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인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직분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지금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을 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날에는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돈도,
권세도,
학식도,
직분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믿음에서 나온 순종의 삶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 제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육신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살아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말씀을 붙들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언약형통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