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는 4년마다 한번씩 조선 로동당 시.군 대의원 선거를 실시한다. 만17세이상의 공민증 소지자는 누구나 투표에 참가하여야 한다. 각 구역당의 대의원 후보자는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에서 1명을 추천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다. 선거는 바로 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결정된 후보자 1명에 대한 찬반투표인 것이다. 투표는 각 시.군 단위의 구역별로 실시된다.
선거 한 달 전부터 후보장의 사진과 경력을 담은 선전물이 담벽에 붙여지고 모든 학생들은
'선거 선전활동'에 동원된다.
대학생들은 토요일마다 각자 맡은 인민반에 나가 인민회의에 참석하고 선거 참여율 100%의 성과를 달성하고자 선동한다.
중학교,인민학교는 소년단 조직을 이용하여 '소고대'와'가창대'를 앞세우고 꽃다발을 흔들며 각자 정해진 구역을 돌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가하라는 선전을 해댄다.
TV와 방송.신문 등에서도 연일 선거 선전 노래와 구호로써 선거 참여를 부추긴다. 학교건
동네건 TV건 방송이건 온통 선거,선거뿐이었다.
투표 10일 전에 인민반장이 각 가구를 돌아다니며 공민증을 회수해서 동사무소에다 선거인 등록을 하고,투표 순서 번호를 백지에 적고 공민증에 붙여 다시 각 가구에 나누어 준다.
선거 날.
투표는 통상 아침 7시에 시작되는데 공민증에 붙은 번호 순서에 따라 줄을 섰다가 투표를 실시한다.투표장에는 소년단학생 소고대가 선거 노래를 연주하고 노인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흥을 돋구어 축제 분위기처럼 만든다. 투표방법은 투표장으로 들어가면 3~4명의 선거위원들이 앉아 있다. 그들에게 투표 번호표를 확인시키고 선거표를 받아 벽에 나란히 걸린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에 정중히 절을 하고 투표함 속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은 다음 다시 초상화에 절을 하고 나온다. 선거표를 투표함에 집어넣는 것은 찬성 표시이며 선거표를 함 속에 넣지 않으면 반대 표시이다.
그러나 등 뒤에서 선거위원이 지켜보고 다음 투표자가 보기 때문에 선거표를 함에 넣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100%찬성률을 얻을 수 밖에.
투표장에 갈 수 없는 입원 환자나 고령자 또는 장애자를 위해 '이동선거'라 하여 선거위원들이 투표함을 들고 직접 찾아가 투표를 하도록 해준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대의원 후보자로 입후보하는데 이 두 사람이 추천된 구역에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 하여 대대적으로 떠벌리는 선전을 한다.
그러한 북의 선거와 남조선 선거를 비교하니 좀 싱겁기도 하고 맥빠지기도 했다.
점심식사 때도 역시 죽이 나왔고 반찬으로는 김이 나왔다. 나는 완벽하게 중국인으로 연극하기 위해 일부러 김을 처음 보는 척 능청을 한 번 떨어 봤다.
'종이를 태운 것이에요?어떻게 먹지요?'
수사관들은 내가 묻는 중국 말에는 대답은 않고 웃기만 했다.
또 다른 꼬투리가 잡힐까봐 더이상 묻지 않고 지나갔다. 남산에 데려온지 이틀 동안은 나를 쉬게 하고 아무것도 묻지는 않았으나 나의 일거일동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듯햇다.
그리고 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조선 말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다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하고 연극을 하다나니 등에서 진땀이 나고 내쪽에서 오히려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어떤 젊은 수사관들은 죄인인 나에게 존대까지 써가며 말을 건넸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그동안 듣고 상상해 오던 그런 분위기와는 완전 백팔십도로 달랐다.
그것이 그들의 계산된 연극이었다면 그 연극은 너무나도 완벽한 연극이었다. 하지만 그 어는 구석에도 연극이라는 느김은 털끝만큼도 엿보이지 않았다. 내 계산과 남조선에서의 실지 상황이 완전히 빗나가자 나는 내가 처신해야 할 행동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울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이 섰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내 앞에 터지니 나로서도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형편이었다.
과연 북에서 남조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남조선 특무들이 날 의식해서 특별하게 굴고 있는 것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철없는 중국인 행세를 하려고 온갖 기지를 다 발휘해 보았다. 모든 것이 바레인에서보다 열배 스무 배 힘들었다. 바레인에서는 서로가 다 외국인이므로 그들끼리의 대화에는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부터는 수사관들끼리 늘어놓는 담화내용이 모두 조선말이기 때문에 안들으려고 애써도 자연히 귀가 기울여져 신경이 쓰였다. 아예 못 알아들으면 모를까 모두 알아들으니 불쑥 그 담화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더구나 수사관들도 모두 조선사람, 나도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조선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같은 것이 탈이었다. 그들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면 나도 웃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고
그들이 화를 낼 일이면 나도 화가 나는 것을 어쩌랴.제발 수사관들이 입 당무고 긴장한 채 나를 감시한다면 이런 고통이 덜어질 것이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잠시도 입을 다물고 있질 않는지 모르겠다. 계속 헛소리라도 지껄여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자유분방한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다.
남산 지하 조사실에 도착하여 이틀은 매끼 죽이 나왔다.
입안의 상처와 오랫동안 굶다시피 한 내 소화기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내가 식사할때는 여수사관1명도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녀는 죽을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의 반찬으로 된장찌게 가 나왔다. 외국인들은 찡그리며 싫다고 할 구수하고 쿰쿰한 냄새의 된장찌개가 앞에 놓이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내 몫의 죽만을 먹어야만 했다. 된장찌게를 앞에 놓고 죽을 먹자니 갑자기 입맛이 떨어져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중국인 행세를 한다 해도 구수한 된장 냄새를 참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한달 전 평양을 떠난 이후 조선 음식은 먹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된장을 듬뿍 떠서 물에 풀고 풋고추와 양파,그리고 두부 썰어넣고 멸치도 같이 넣어 바글바글 끓이는 그 맛,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여수사관에게 다음부터는 나도 밥을 먹겠다고 제의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잠은 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누워 있는데 수사관들은 내가 잠든 줄 알고 속닥속닥 농담을 나누었다.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말장난인 듯 싶었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재미도 없는 말을 계속 떠들어대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인기없는 코메디언?'
'틀렸어.학교 선생이야.'
그 말에 여수사관이 '피'하고 코웃음을 쳤다. 수사관들의 잡담은 계속되었다.
'어느 판사가 도둑놈에게 왜 도둑질을 했냐고 물었대요.그랬더니 도둑놈은 배고프면 무슨 짓을 못하느냐고 항의조로 덤비더래요.판사가 네가 훔진 건 구두가 아니냐고 따진 거예요.
그러자 도둑놈 왈 '맨발로 어떻게 도둑질을 다닙니까'하더래요.맞는 말이죠,뭐.'
'대머리가 까진 남편에게 아내가 하는 말이' 남자들은 머리를 많이 써서 대머리가 되는 거라고 잡지에 났던데요'하니까 남편이 말하기를 '그럼 여자는 말을 많이 하느라고 턱을 쓰기 때문에 수염이 안 나나?'하고 쏘아부치더래.'
'소련에서 시베리아 유배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판사에게 말했대요.'미국이 그렇게 나쁜 나라면 왜 나를 그곳으로 유배 보내지 않느냐'고요.'
수사관들은 소리 죽여 킥킥대고 웃었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위'제발 그만들둬!'하고 소리지를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들의 농담이 얼마나 우스운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따라 웃었다가는 정체가 모두 드러나고 말기 때문에 억지로 참으려 했지만 곧 실수를 저질르 것만 같았다. 얼른 자리를 피해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도 그 농담 내용을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려 했다. 나는 감시하러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온 여수사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세면대에 물을 바아 세수하는 시늉까지 했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대로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얼마나 내 정체를 숨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바레인 경찰 조사실에서는 줄곧 수갑을 채워 침대에 연결시키는 등 신체적 구속이 심했다. 또 핸더슨과 마리아가 나의 정체를 알기 위해 매일매일 들볶아 대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신쳬적 제약도 들볶아대는 사람도 아직 없는데 순간순간을 넘기기가 힘겨웠다. 사람 대접도 해주고 대화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지만 그것이 내게는 함정이었다.
빨리 사실대고 모든 것을 불라고 강요받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강요하면 딴청을 부리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버틸 수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내 스스로도 둘러대면서 버틸 수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내 스스로도 불가항력적인 패배가 있으리라고 예상되었다. 그것은 조사하는 특무들도 조선인이고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나 역시도 조선인이기 때문이었다.
남산 지하 조사실은 평온하고 조용한 가운데 나를 점점 더 압박해 왔다.
첫댓글 그렇게 우리나라 음식 좋아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왜 일식집을 차렸는지...-_-);;
김현희 씨의 남편이 차린것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