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투병 극복 사례 김광숙(1948년 생, 광주시 북구 중흥동 325-8)
세월의 흐름은 참으로 빠르기도 하다. 바로 5년 전만 하더라도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절망의 늪을 헤매이던,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
어느 날인가 오른쪽 젖가슴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를 키울 때도 가끔 젖몸살을 앓아왔던 터라 그때도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후 열흘 뒤에는 젖가슴이 10센티미터 이상 부어오르면서 통증(목, 겨드랑이)이 시작되었다.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유방을 전문으로 치료한다는 단방약을 일주일 이상 써보기도 했지만 통증은 줄어들지 않고 더해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즈음 식사 때에 고기를 조금 먹었는데 그 이튿날에는 유방이 갑자기 더 커진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젖몸살이 아니구나 싶어 병원에 가서 진찰한 결과 악성 종양 6종(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런 진단 결과로 나는 강하게 밀려드는 참담함에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답답해졌다.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고 오진이나 꿈이 아닌 이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절박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자신의 불건강(병)을 알 수 있을 때, 삶보다는 죽음 쪽에 가까운 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통곡하고 어디엔가 매달리려고 발버둥치는 일이 고작이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지나온 날들이 너무도 선명히 내 기억 속을 스쳐 지나갔다. 두고 떠날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이 시야를 메워왔다. 어릴 적 친구들, 학교생활, 부모님, 형제들, 남편과 아이들…. 모든 것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내게 다가오며 그 순간순간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너무나 뚜렷이 가슴에 와닿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지금 내게 닥친 시련이 그 죄값인 것만 같았고, 그 죄들은 결코 다 용서받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천천히 내가 지은 죄들을 되짚어보며 하나씩 기록해 보았다. 남에게 짜증낸 일, 섭섭하게 한 일, 내 욕심만 차린 일….
공책 빽빽이 들어간 깨알 같은 내 잘못들을 보니 살아온 순간이 모두 죄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아무리 사죄해도 내가 그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마 내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드릴 염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전에 누군가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는 자연건강 생채식이란 게 생각이 나서 그 친구의 소개로 장두석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그때 마침 장 선생님 댁에 왔던 유방 전문의 전홍준 박사님, 김철영 내과 원장님, 김형진 내과 원장님 등 여러분이 내 상태(종양이 겨드랑이 림프선과 목의 림프선까지 번짐)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으시며 살기 어렵다는 쪽으로 말씀이 오가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장두석 선생님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때 전홍준 박사님이 "생채식을 6개월 정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생채식이라니. 나는 처음에 송아지 여물과 같은 풀(야채)과 시커멓게 보기 흉한 오곡밥(잡곡밥)을 보기만 해도 끔찍해했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심정으로 생채식을 시작했다.
1989년 12월 10일에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아침 기상과 더불어 풍욕(창문을 열고 맑은 산소를 몸 안에 넣어주는 운동, 암환자에게 있어서 중요함, 하루에 12회 정도)을 하고, 마그밀 5알을 먹은 후 마고약(토란으로 만든 고약)을 유방 부위에 붙이고 매실 농축액과 죽염을 먹은 다음 자연생채식 교육을 받음으로써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모관운동(혈액순환운동)과 붕어운동(몸의 균형을 잡음)을 하고 생수를 틈나는 대로 마셨다.
12시에 생야채와 오곡 생가루로 식사를 하고 휴식시간이면 틈나는 대로 모관운동, 붕어운동을 했다. 오후 3시에 각탕을 20분간 해 몸에 땀을 축축히 낸 다음, 모관운동, 냉온욕(냉탕 1분, 온탕 1분의 간격으로 7∼8회 실시)을 하였다. 저녁이 되면 생야채와 오곡 생가루로 식사를 대신하고 다시 모관운동, 붕어운동, 풍욕을 한 뒤 유방에는 마고약을 붙이고 마그밀을 먹는 순서로 하루가 끝났다.
풍욕은 정말 힘들었다. 한겨울 동지섣달에 방에 있는 모든 창문을 다 열어놓고 옷을 벗고 담요를 썼다 벗었다 하면 30분간 살이 꽁꽁 얼어 칼로 살을 에이는 것처럼 느껴졌다.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내가 지냈던 하루의 일과를 생각했다. 어찌보면 참 우스운 일들이었다. 과연 이런 풀이파리, 이런 운동들이 현대의학에서도 포기해버린 불치병들에 얼마만한 효력이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둘째날은 금식이었다. 첫날과 똑같은 생활에 4시간의 된장찜질(장에 있는 변을 묽게 함)을 하고 생수를 수시로 마셨다. 관장(마그밀에 볶은 소금을 약간 넣은 희석액체로)을 하고 나서 1시간쯤 되니 화장실에 몹시 가고 싶었다. 내 경우 4∼5일, 길면 일주일에 한 번 갈까말까 하는 화장실을 하루에 4∼5회 이상 갔다.
마치 하수구에 고여 있는 시궁창의 찌꺼기와 다를 바 없는 변이 줄줄 나왔다. 냄새 또한 지독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뱃속에 이 더러운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니. 그때 나는 숙변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3일째 되는 날 겨자찜질(몸의 가스 제거)을 했다. 4일째에 단식을 시작했다. 장두석 선생님이 '모든 질병은 단식이 제1의 치료법'이라고 하셔서 나는 그것을 실천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생수, 죽염, 마그밀을 복용하니 사흘까지는 견딜 만하였다. 3일째에 냉온욕(피부 단련운동)을 하고 25분 냉탕을 할 때 몸이 꽁꽁 얼어 감각이 없었다.
나흘째가 되는 날은 물 한 방울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때가 가장 힘든 고비였다. 5일, 6일이 지나고 이렇게 해서 일주일간의 단식을 하고 일주일간의 회복식으로 단식을 마쳤다. 내 육신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비록 유방의 통증은 계속되었지만. 하루 2∼3시간을 자도 피로감이 없었다. 피부도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
단식 끝에 명현반응이 나타났다. 사나흘 정도 피부에 알레르기처럼 붉은 반점이 머리 속에서부터 얼굴로, 점차 아래로 내려가 발바닥까지 계속 나타났다. 붉은 반점들은 몸 안에 들어 있는 독소라고 한다. 계속 겨자찜질, 생강찜질로 독을 제거하니 점차 사그라졌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암환자 외에도 당뇨, 정신질환, 피부 알레르기, 관절염 환자 등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생활했고, 같은 식이요법을 썼다. 그런데도 환자 모두가 점차로 좋아졌다.
20일이 되던 날, 유방(젖꼭지)이 말랑말랑하게 되더니 22일째 되던 날 그 자리에서 연분홍색의 기름이 흘러나왔다. 이때 나는 악성 종양(암)이라는 것이 기름덩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기를 먹으면 더 악화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30일 정도 선생님 댁에 머물렀다 귀가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흰설탕, 소금, 조미료, 식용유, 밀가루 등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날부터 우리 집 식단은 자연생채식(오곡밥, 생야채, 조식 폐지)으로 바뀌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익히지 않은 것, 고기는 굽지 않은 것(찐것)을 식구들에게 먹이려니 처음엔 힘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응이 되어 가족 모두 잘 따라왔다.
3개월쯤 지나 가슴을 만져보았다. 주먹 크기의 종양덩어리가 사라지고 원래의 젖가슴이 되어 있었다. 이 모두가 생채식을 꾸준히 실천한 덕택이었다. 그때 친구의 부탁으로 나는 언니네 집일(방앗간 일)을 거들게 되었는데, 생채식이 끝나지 않은 터라 과연 야채와 생가루의 효력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체크도 할 겸 방앗간 일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 일을 마치고 9시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오후 7∼8시까지 남자들도 힘이 든다는 방앗간 일을 너끈히 할 수 있었다. 식사는 여전히 생야채와 오곡 생가루였다. 처음엔 손님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느냐, 힘든 일은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갈수록 손님들의 의아한 반응은 격려로 바뀌었다. 이젠 점심시간이 되면 동네 분들이 상추, 쑥갓, 열무, 배추 등등 쌈거리들을 가져와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 생야채를 먹으면 잠을 잘 자게 된다고 하였더니 열심히 야채식을 따라 했다. 이젠 잠이 너무 와서 고민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6∼7개월 생채식으로 거칠었던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허리의 통증이 없어졌다. 냉대하는 물론이고 몸무게도 10킬로그램이나 줄어 52킬로그램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들이 잊혀질 만큼 말끔히 나았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생활한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 식사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교육을 받은 바가 있어 1일 1식을 1년간 실천했다.
먹는 즐거움보다 먹지 않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한 끼의 식사로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히려 배가 부르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끼의 식사, 생채식 식이요법은 1년으로 마무리하고 지금은 일반식(오곡밥에 채소 위주의 식사)에 가깝게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사실 생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효과는 불치의 악성 종양 6종을 물리치게 해주었다. 나의 권유로 당뇨(합병증으로 눈에 보이지 않음), 신장병 환우도 모두 완쾌되었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동안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무지할 수 있었을까. 내 몸의 상태를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왜 그 증상이 생기게 되는지도 모른 채, 의사의 진단 결과에 절망하는 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나는 모든 환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그냥 포기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든 질병은 먹거리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먹는 음식의 영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질병에 시달린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좋은 먹거리를 먹는다면 틀림없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것임을 확신한다. 식이요법은 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식이요법은 참으로 많은 정성과 인내, 끈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 몇 자를 적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몰라서 겪었던 내 고통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인해 느끼는 절망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을까 한다. 모든 질병이 주어진 것은 회개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의학적 소견 김광숙 씨의 경우처럼 심한 유방암 환자는 처음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악성 종양이지 암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환우들은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절망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왔을 때 마침 몇 분의 양의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진찰을 해보더니 손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그녀를 살펴보니 여간 의지가 강한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코가 우뚝했다. 어쩐지 나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수술을 하면 유방을 도려내고 죽을 텐데 죽더라도 내 손에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환우의 의지가 있으면 아무리 악한 병도 이겨낼 수 있다. 자연과의 합일점만 찾으면 살 수 있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촛불 같은 생명력만 있으면 환우는 살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경우 과식과 변비가 일산화탄소를 몸 안에 정체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육식을 하고 물을 잘 먹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부부간의 성격 차이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는데 말 없이 참은 것도 암이 악화된 원인이었다.그녀는 단식과 생식을 한 뒤, 두 달 후 엄청난 양의 변을 배설했다. 모든 질병이 변을 빼내야 낫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경우이다. 그녀는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건강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 정신세계사, pp.235-242
NOTE: 상기 투병 사례는 일부 환자의 사례이며 동일한 방법으로 투병을 한다고 동일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므로 단순하게 참고적 내용으로 여겨야 할 것 입니다. 암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특효약이나 비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특정한 방법이나 특정한 식품이나 약초를 먹고 암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암이라는 것은 개인의 암종이나 증례에 따라 결과치에 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무작정 남들이 한 방식대로 따라해서는 안 됩니다.
암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한 과정이며 어느 누구도 결과에 관하여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이 암 치료 입니다. 그러므로 특이한 방법이나 특정한 방법으로 암을 극복하였다고 하여도 일반인이 맹신을 하거나 따라해서는 안 되며 굳이 동일한 방법으로 시도하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분야 전문가와 상의를 하고 가족과 신중하게 의논을 한 후 결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현대의학적 표준치료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에는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잘 치료 받는 것이 정석 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법이 없다고 하거나 지금의 치료가 단순하게 생명 연장의 의미라고 할 경우에는 차선책을 강구하여 적절하게 잘 대처하는 요령이 필요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적 표준치료로 치유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밖의 방법으로 함부로 시도하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일부 항암 치료에 관하여 극단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는데 결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떠한 방법이라도 암이 완치가 된다면 그 것이 최고의 치료법이지만 자칫 무모하게 도전을 하여 금전적 손실만 초래하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암 투병에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검토를 하여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메디칼 엔지니어 김동우
현대의학 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http://blog.daum.net/inbio880
|
출처: 현대의학,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김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