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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2021.4.)
한국 현대 아동문학사에 대한 시고(試稿)·1
노 창 수
(문학평론가·한국문협부이사장)
Ⅰ. 머리말
어떤 문학적 사안에 대하여 통사적 안목으로 고찰하며 기술하는 것은 오랜 문집이나 책을 다시 찾아 읽는 것과 같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흩어져 있는 아동문학의 편린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사적(史的)으로 기록하는 일도 그런 수고로움에 값하는 일이겠다. 문학사란 문학이 발생하고 발전해 온 역사를 말한다. 그 하위 체재로서의 ‘한국아동문학사’에 대한 탐구는 이 장르에 활동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변화와 변천의 궤적을 꿰어가는 일로 명시화된다. 그 기술 과정은 영역별로 다르겠지만, 아동문학을 당대의 문예사조에 대입하여 귀납하거나, 반대로 그런 사조의 당위성을 연역해 내기도 한다. 그게 한국 문학사의 한 줄기로써 아동문학이 점유할 몫이며 방향일 것이다. 한국아동문학의 발전사를 시대별로 덧대어 작가와 작품을 하나의 이해의 망으로 정리하는 일은 결국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의 과정이다. 또 이와는 다르게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개관하여 당시대의 아동문학을 의미화하고 특징화하려는 역순의 작업도 역시 아동문학의 줄기를 애정으로 다시 가다듬는 일이겠다. 하여, ‘현대아동문학사’라는 긴 구슬사래를 직조하는 것이며, 문학계에 ‘현대아동문학사’라는 성과물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일련 일을 통해 아동문학에 대한 공유는 물론 그것을 비판하게 하는 마당으로까지 진입한다.
대체로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과정은 개념 정립부터 시작한다. 아동문학이란 아동의 순수 동심을 향유하려는 성인은 물론 이를 읽는 아동을 위하여 창작되어지는 문학 양식이다.아동문학사는 이런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고, 작가와 작품을 탐색하며 그것을 시대의 경향성에 따라 분류해 내는 작업이다. 이때 중요한 일은 당대의 ‘문화’라는 망에 종적·횡적으로 ‘아동문학’을 접근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작가와 작품의 역사적 의미를 가치화해 나간다. 그건 후대에 남길 유산으로써의 작가·작품임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아동문학 문단에서 작품발표는 날로 확장되고 있다. 이 글 뒤의 시대 구분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오늘의 아동문학기는 실로 ‘난만(爛漫)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동문학가 개인의 작품이나 작품집을 비롯하여 각종 동인지, 문예지, 무크지, 어린이신문, 문학앱, 인터넷카페, 그리고 다양한 SNS를 통하여 작품들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인과 아동, 소년, 청년까지 아동문학작품의 독자로 확장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동문학의 문단에서는 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거나 체체를 잡지 못한 채 세월을 그냥 흘러가도록 방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세월이란 이재철의 『한국현대아동문학사』(1978) 이후부터이니, 44년 동안 한국아동문학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정리가 유보되어온 셈이다.그래서 이 다기한 흐름을 좇아 시대와 작품의 관계를 탐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아동문학의 양적 팽창은 실로 폭발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예컨대 그림책, 애니메이션, 환타지동화, 휴대폰 동화동시, 게임동화 등 장르의 확산이 급속도로 일고 있고, 무엇보다도 독자층이 확장되고 있는 점이 그 예이다. 하지만 그 과유(過猶)함은 불급(不及)함만 못하는 일이겠다. 아동문학에 대한 작품의 양적 증대와 사조(思潮)의 다양성이 오히려 통사적 소통을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동문학이 이처럼 지상의 풍요를 누리지만, 역설적으로 작품과 작가의 역사성에 대하여는 거의 무관심한 문단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아동문학가가 역사를 더듬어 가야 할 ‘통시성’ 보다는 작품 창작이라는 현장주의적인 ‘공시성’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기는 하다. 아동문학 작가란 현재에 처한 상황을 창작 면에서 관심을 기울이지만, 창작 과정에 굳이 ‘아동문학사’를 고려하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그게 아동문학사에 대한 무관심의 한 변인으로 작용된다. 아동문학사와 창작자 자신은 별 관계없다는, 즉 발전사에 대한 관심과 고구(考究)보다는 창작을 우선시한 입장을 취하는 성향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이 변천을 좇아 아동문학을 통사적으로 보려는 연구가 있어 고무적이다. 이들의 건재가 곧 아동문학 장르의 위의(威儀)를 올려주는 일이며, 그 연구자가 공들여 쓴 게 ‘아동문학사’라는 규범적인 틀이겠다.
왜 아동문학사가 현재나 미래에 필요한 것인가. 이제, 그 연원을 찾는 발전적 궤적들을 살피려 한다.
Ⅱ. 아동문학의 연원
1. 동화의 연원 : 설화, 고대소설
한국 아동문학의 시발점은 어디서부터일까. 무릇 문학의 원초가 신화에서 비롯되었듯이 아동문학도 그런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개국설화인 ‘단군신화’에서 아동문학의 원류를 찾을 수 있다. 단군신화는 가장 오래된 신화이면서도 동화문학의 주요 원형으로 보인다. ‘주몽설화’는 동화 발생기에 나타난 원초적 형태이며, 현전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등장하는 박혁거세 신화, 가락국의 수로왕 신화, 제주도의 삼성시조 신화 등은 우리의 동화문학에 바탕이 되어 왔다. 전래동화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작품은 방이설화, 귀토설화, 미녀설화, 추녀설화 등이다. 고전적인 동화 유산으로 온달설화, 『수이전』, 「최고운전」, 죽통미녀, 연오랑세오녀 설화, 거타지 설화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아동문학의 근간이다. 조선조에 등장한 소설 중 동화적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는 「홍길동전」, 「심청전」, 「흥부전」, 「임경엽전」 등이며, 더 거슬러가 한반도의 지질설화(地質說話)나 우주적 신화에 바탕을 둔 작품도 있다.
2. 동요의 연원 : 전래동요, 노동요
현대 동요의 유래는 전래동요와 노동요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전래동요는 민요와 혼류되어 그 구분이 불분명하게 구전되어오다가 문자가 창안되자 정착되기 시작했다. 근대에 와서 일반문학의 갈래에 있던 민요 중 생명력이 강한 동요적인 것이 전래동요로 분화, 전승되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그 전래동요가 많다. 그러나 교통과 영상매체의 발달 등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전과 아동생활 양상의 변모 등으로 전래동요는 그 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있다.
고대 가요 중 「구지가」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강림신화로 최초 동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서동요」, 「해가사」도 이 같은 동요적 원형을 보여준다. 신라의 계림요, 백제의 완산요, 고려의 보현찰요, 만수산요, 목자요 등이 있고, 조선시대의 남산요, 구맥요, 충성요, 파랑새요 등의 전래동요도 있다. 조선시대 영·정조 이후에 인기를 끌었던 「옹고집전」,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 등의 소설 속에도 약간의 동요적 형태가 노래로 삽입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또 이 무렵에 나온 판소리 계열의 전래동화도 있는데 이는 아동극의 한 원류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오랜 신화·설화·전설·민담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아동문학은 면면한 맥을 이어간다. 이들이 이미 아동문학의 뿌리이자 원형이 되어온 과정은 이미 밝힌바 있다. 삶의 노동에서 빚어진 노래와 이야기의 원천이 곧 아동문학이 된 사례도 많다. 우리의 농토와 갯벌, 해양에서 삶을 유지하며 부른 노동요, 예컨대 그물끌기요, 멸치잡이요, 도리깨요, 길쌈요, 소꿉놀이요 등의 전래 노동요와, 해요, 비요, 나무요, 꿩요, 어깨동무요 등의 사물의 구전동요가 파생·발전하여 오늘날 전래동요로 이어진 경우이다. 비교적 오래된 전래동화는 방이설화, 귀토설화, 바다설화, 도깨비방망이, 소금 이야기 등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동문학은 유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장르임이 드러난다. 따라서 윌리엄 워즈워스 식으로 해석한다면 오늘날 어른들은 옛날부터 아이들을 ‘아버지로 삼은 전통’을 지녀 이야기와 노래를 전파해온 셈이다.
일반적으로 고대의 문학이란 성인과 아동의 구별 없이 공유하던 장르였다. 구전민화와 전래동화를 비롯하여, 「심청전」, 「흥부전」, 「홍길동전」, 「임경업전」, 「박문수전」 등의 이야기가 나왔고, 이는 민담으로 구술되다가 글자의 발명으로 서책에 기록되어 오늘에 전해오게 되었다.
Ⅲ. 아동문학 장르적 위상
아동문학이란 아동에게 읽힐 것을 쓴 특수한 문학으로서 동시, 동화 등 다양한 아동문학 장르가 이에 포함된다. 이 같은 아동문학이 왜 광의의 일반문학으로부터 분기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다. 세계 문예사조로 보아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시대까지는 이렇다 할 분파가 없지만, 이후 ‘어린이’라는 인격체가 독자적으로 인식되면서부터 문학작품에서도 어린이의 참모습과 ‘동심’을 효율적으로 이미지화 하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일반문학에서 아동문학만이 다루어야 할 문학적 담론으로 자리하는 전문성, 예컨대 아동의 행위, 아동의 심리, 아동의 동심, 아동의 위상, 아동의 인격 등을 존중하는 문학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출현한 결과이다. 이를 위해 힘쓴 선대 아동문학가들의 업적이 아동문학에 대한 장르와 그 의의와 가치를 키워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동문학은 한국을 비롯 동양 3국에만 있는 대표적 장르이다. 서양문학엔 아동문학이란 별도 장르가 없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국은 아동문학 장르가 보다 발전된 나라로 꼽힌다. 정치적, 그리고 시대적 부침에 따라 일반 문학은 요동치거나 은둔하여 소극성을 띨 때도 있었지만, 아동문학은 순수 생명의 원천(源泉)과 그 동심에서 출발하여 면면히 이어간 독특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우여곡절도 많았음은 물론이다. 현재 한국의 아동문학가는 어림잡아 1,500여 명에 이르는 인구로 변모했으며, 다양한 작품이 연간 천여 편 정도 발표되고, 약 200여 종의 동인지와 문예지에서 각 작가와 작품을 다루고 있는 중이다. 또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아동문학론’을 가르치는 유일한 국가라는 것도 그 사례가 드문 일이다. 아동문학에 대한 장르 또한 세분화되어 동요, 동시, 청소년시, 동시조, 동화, 청소년소설, 동극, 그림자극, 인형극, 애니메이션, 환타지극, 그림책, 동시평론, 동화평론, 동극평론, 그림책평론, 애니메이션 평론 등 많다.
Ⅳ. 현대 아동문학의 효시와 시대 구분
1. 현대 아동문학의 효시
현대 아동문학의 효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건 현대의 기준 설정을 어떻게 잡느냐의 입장, 또 ‘최초’라는 문제에 대한 어떤 관념적 향수가 발생하느냐의 입장 등에 의해 달라진다. 즉 ‘주변론’이냐 ‘본질론’이냐에 따라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 이설이 있으나, 한국 현대 아동문학이 싹 트고 발전한 것은 대체로 근대문학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이 1908년부터 ‘소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1923년부터 방정환이 ‘어린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쓰면서 ‘어린이’의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아동문학계에서는 최남선이 1908년에 발행한 《소년》에 실린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아동문학’의 효시로 삼고 있다. 이는 이재철이 ‘새 시대의 주인공인 소년을 대상으로 구어체에 가까운 선구적 정형동시이자 소년시’라고 극찬한 이후, 이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거나 아무런 비판 없이 맹종한 이상현, 신현득 등을 비롯하여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그것을 인정하거나 추종함으로서 빚어진 일이다. 하지만 구태여 최남선의 ‘소년’이란 칭호와 그의 ‘신체시’에 기대어 아동문학의 첫출발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게 필자는 회의적 소견이다. 사실 이 시의 제목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일본식 문체이며 우리의 문체로는 ‘바다가 소년한테’가 된다. 단지 시에 소년이 들어갔다 해서 아동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가 첫 번째 회의적 소견이다. 이 시는 제목과 달리 ‘소년’이 아닌 청년을 대상으로 한 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시는 시문학의 연원으로 족하며, 그것을 아동문학의 효시로 보는 것은 주변론적 입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소견은 아동문학의 단초로 단단해진 연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를 아동문학 작품의 효시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예컨대 1923년 방정환의 《어린이》 시대로 최초라는 이름을 적용하면 더 적합한 자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해서, 아동문학의 효시는 방정환 시대로 내려 잡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아니면, 1913년의 《붉은 저고리》와 《아이들 보이》로부터 아동문학의 출발점을 잡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그 근거를 확보할 작품으로 「남잡이와 저잡이」나 「센둥이와 검둥이」 등의 최초 동화요가 게재된 때문이다. 또한 방정환 시대로 가면 많은 동요 작품이 나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할 자료로 보아진다. 이렇게 설정하는 건 결국 아동문학의 효시를 본질론적 입장으로 봐야 한다는 필자의 입장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아동문학에 대한 효시의 시비는 더 이상 없어질 것은 물론 떳떳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가 가급적이면 빠른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유사한 것을 연결지어 확보하려는 주변론적 입장을 취하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는 중에 ‘최초’라는 유혹에 빠지면 객관적으로 근거가 희박한 곳에까지 감정이 미치는 수가 있다. 최남선의 ‘신체시’에게 아동문학의 효시 근거를 설정하고 기대려는 심사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 신체시는 근대시의 효시로 이미 써먹은 사료(史料)이다. 시의 내용 또한 관념적인 ‘소년’으로 계몽적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동원된 존재에 불과하며, 소년이란 구체적 대상에게 주는 시는 아니다. 또 소년을 실제적 동시의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더 옳다. 나아가 이 시는 순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문학의 효시로 정립하기엔 생경하고, 일본식 제목 등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과연 동시라고 할 수 있으며, 《소년》지를 아동문학 잡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검토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아동문학의 효시 문제는 아동문학의 본질론적 입장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다.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 1955년 《현대문학》 창간호에서 최남선은 ‘소년지 그것은 문학 또는 학술 잡지는 아니었으며, 바로 민족운동, 청년운동의 일념 아래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해 또는 문학을 위해 《소년》을 창간한 게 아니라, 사회교육운동가로서 청년세대의 계몽과 국민정신 개조라는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발행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그래 이를 밝힌 이정석의 지적은 일견 타당한 논지라 본다. 그러므로 《소년》지와 거기 실린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정치적 목적의 계몽시일뿐 최초 아동문학으로서 동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2. 현대 아동문학사의 시기 구분
안혁이 낸 첫 『조선문학사』(1922)는 시대를 상고, 중고, 근대, 현대 등으로 구분한다. 시대의 명칭은 사건의 관점에 의한 구별이지만 실제로는 왕조의 교체기를 따르고 있다. 이후 김사엽의 『조선문학사』(1948)도 왕조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즉 상고문학, 삼국시대문학, 고려문학, 조선문학, 현대문학 등으로 나누어 다룬다. 왕조 교체에 따른 시대 분류는 기준의 혼란이 없고 분류 결과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왕조와 문학사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문제 제기에 해답이 어려워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의문만 제기될 뿐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병기와 백철의 『국문학전사』(1957)가 선정한 조선문학의 시대 구분은 훈민정음 창제전과 이후로 구별하였다. 가장 널리 채택된 방법은 다른 기준과 타협하여 왕조를 교체함으로서 시대의 분열을 일부 수정하는 것이다. 사회경제사와 역사의 분열이 문학에서 역사만큼 진전되지 못한 건 이명선의 『조선문학사』(1948)의 한 예만 남겼다. 조윤제의 『국문학사』(1949)에서는 문학사는 민족정신에 따라 발전하며 민족정신의 생물학적 발전을 바탕으로 문학사를 이해하고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른 시대 분류의 결과가 대동시대, 형성시대, 수축시대, 잠복기, 소생시대, 개발시대, 성찰시대, 운동시대, 유신시대, 재건시대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는 이념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사실 여건의 변화와 문학현실의 변화가 다양하게 반영되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저러 비판적 논란 끝에 김윤식과 김현의 『한국문학사』(1973)가 나왔고 이 문학사의 서사를 통해 저저들은 새로운 시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영·정조부터 18세기부터 4.19까지의 문학사를 서술하였고 갑오경장 이전의 문학에서 근대의식이 성장한 흔적 들을 더듬어 살폈다. 그리고 이들을 총체적으로 종합하거나 시기 구분을 상세화하고 현대 작가와 작품을 보정한 문학사로는, 원시시대부터 1945년까지의 문학사를 통합 기술한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1988),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인용사항을 확장한 권영민의 『한국현대문학사』(2002), 조남철 외의 『한국근현대문학사』(2011), 배규범의 『한국근대문학사』(2011), 장석주의 『한국근현대문학사』(2017) 등이다.
한국문학사의 시대 구분은 이처럼 그 저자마다 달리 편성되고 있다. 사실 ‘한국아동문학사’에 대한 시대 구분은 더 어려운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아동문학사가 진실을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과학이지만 그 속의 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견 예술이어야 한다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문학사나 소설문학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여러 형태의 역사적 수난을 거치면서 아동문학이 그 지향하는바 많은 변수를 거듭했던 점도 시기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아동문학사’란 아동문학이 우리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화하고 발전해 온 역사를 말한다. 범위를 좁혀 ‘한국현대아동문학사’라고 하면 현대 즉 1908년 육당 최남선과 이광수 이인문단 시대부터로 그 기점을 잡아 이후 현재까지 서술하는 아동문학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에는 문제점이 있으나 집필의 편의를 위해 제한 년도를 설정하여 ‘현대’라는 카테고리에 두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근대라는 기점을 1908년으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형성된 근대적 의미의 아동문학, 그리고 1920년대부터 1945년 해방 후까지를 현대적 아동문학의 시기로 잡고, 이 시기에 대한 아동문학작가와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다시 구분한다면
(1) 근대적 관점에서, ①초창기(1908~1920), ②성장기(1920~1930), ③발흥기(1931~1940)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 해방 후의 시기는, ④수난기(1940~1950), ⑤팽창기(1950~1969), ⑥논쟁기(1970~1989), ⑦중흥기(1991~2000) ⑧난만기(爛漫期,2001~2022)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문학사에 대한 시대적 구분이란 수순의 기준이 각기 다를 수 있다. 이 분류는 오롯 필자의 관점에서 나누어본 방안일 뿐이다. 다만 이렇게 구분하기까지는 여러 선학들의 자료를 검토하여 나름대로 체계화한 것임을 밝혀 둔다.
참고로, 여기서 한국 아동문학의 태동을 육당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이 발행된 1908년을 기점으로 하는 학계와 아동문학계의 지배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점에 대하여는 전술한 바 있으나, 시대구분에서는 아동문학의 효시로 보는 최남선의 자료 외에, 아동문학사적 의의는 선대 아동문학가들이 이야기한 것을 참고하여 진술하기로 한다.
‘현대아동문학사’는 현대사 안에 그 바탕을 두고 있지만 현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아동문학을 좁혀 논의·기술하는 건 아니다. 물론 현대에 출판된 아동문학 작품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변화·발전해온 양상들을 객관으로 살피는 일이겠다. 그러나 때로 이 작품들이 오히려 역사를 추동시키거나 이끌어간 일도 있음을 강조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