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자리에 꽃이 핀다 외1편
장미자
문해교실에서 글눈 뜬 시골 할매
세상 바라보는 새로운 눈에 싹을 틔운다
종이 위에 연필심을 세우면
자음 모음들이 사사삭 모여 들고
낱말들이 한 움큼씩 펼쳐진다
우물처럼 깊고 아득한 눈
돋보기 올리고 내리며
행을 배우고 연을 배우고
더듬더듬 행간 침묵도 배운다
감자알이 호미 끝에 달려나오듯
손끝에서 시어가 달려나오고
빨랫방망이에 리듬이 실리면
빨랫줄에 널린 일바지 고쟁이 치마저고리
바람 따라 바지랑대 따라
직유로 은유로 흔들리며 이미지를 그린다
허기진 삶에 끌려다닌 지난 날들
주름진 손끝에서 한 송이 詩로 곱게 피어나
맺힌 한 허기진 상처 따스하게 다독인다
할매가 양팔을 크게 벌려 다림질을 한다
아코디언 주름이 쫘악 펴지고
주름진 자리, 개나리꽃* 샛노랗게 입을 연다
* 개나리 꽃말 – 희망
황토색 줄무늬 스웨터
/ 장미자
언니랑 과자 사 먹고 저녁 때까지 놀다 오너라
엄마의 목소리가 파랗게 흔들리고
눈물이 섧게섧게 대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들 복이 없다던 엄마는
딸 넷을 낳고 빌고 빌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첫돌이 되기 전 돌무덤이 되었다
돌들이 표석으로 뒹구는 시냇길 언덕
작은 돌무덤으로 동생이 누웠다
동생의 첫 돌복, 황토색 줄무늬 스웨터
소맷부리가 다 해질 때까지 내게 입혔다
스웨터 속에서 어린 아들을 찾으셨던 것일까
엄마의 뜨게바늘은 해어진 스웨터를
한 올 풀어 이어 짜고 한 올 풀어 이어 짰다
스웨터는 털양말이 되고 털장갑이 되어
작은 돌무덤 위를 덮었다
어린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는
정화수에 두 손을 모으고
저린 가슴으로 반백 년 숨을 죽이셨다
시냇길 언덕이 높은 건물들로 채워지고
헛헛한 가슴을 누르다 누르다
끝내 꽃신을 신으셨다
지금쯤
함박꽃 같은 얼굴로 어린 아들 젖 물리고 계실까
지금쯤
털양말, 털장갑 풀어 다시 스웨터를 짜고 계실까
엄마의 달 항아리 속에서
뜨개바늘 감기는 소리가 들린다
사락사락 사락사락......
*장미자 약력
2019 <님의침묵백일장> 장원, 2019 <효석백일장> 우수상,
2019 <상록수백일장> 준장원, 2020 <동서문학상> 맥심상,
2022 <KT&G복지재단문학상>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