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인모임 주일예배순
2025년 12월 28일
인도・ 말씀증언 김구 목사
예배 부름
송영 35장 (큰 영화로신 주)
신앙고백: 예수교회 신전
찬송 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대표기도 (맡은이)
말씀봉독(교독): 이사야경 65.1-25
말씀증언: 약속된 새 교회
봉헌: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봉헌기도
찬송 241장 (아름다운 본향)
축도
<말씀증언>
이사야경 65.1-25
약속된 새 교회
1. 오늘은 금년도 마지막 주일이다. 우리는 지난 주에 이사야경을 55장까지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56장부터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이사야경 독경을 일단락 짓게 된다. 그런데 56-66장 본문은 지금까지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56장 1절은 임박한 주님의 오심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56-66장은 주님이 오시면서 함께 이루어질 일들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 받아들여지고 또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시시비비가 갈리는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끝쪽으로 갈수록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2. 56장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법의를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라. 왜냐하면 내 구원이 임박했고, 내 정의가 [곧]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행하는 인간, 그것을 단단히 유지하는 사람의 아들은 복되리니, 안식을 범하는 데서 [자기를] 지키며, 온갖 악을 행하는 데서 자기 손을 지키는 [그것이다]’”(1, 2절, 개인역). 여기에 ‘법의’와 ‘정의’가 언급된다. 정의란 올곧음 그 자체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의(法義)란 오랜 세월 쌓여온 관습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 온 올바르게 사는 길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확실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원문 ‘커로바 라보’(קרובה לבוא)를 ‘임박’이라는 뜻으로 읽었다.) 그분이 오시면 옳고 그름이 분별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올바르게 살았던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3. 여기서 구원의 조건은 안식의 준수와 악행의 근절로 나타난다. 왜 안식이 특히 거론되었는가? 성경 처음에 제시되어 있듯이, 안식일은 본래 주님이 쉬시는 날이다. 엿새 동안 창조하시느라 수고하셨던 그분이 그 과업을 모두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을 성별하셨다고 한다(창 2.3). 안식일은 바로 그런 날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주님의 휴식을 거룩한 일로 받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쉬시도록 해야 한다. 구원을 위한 사역으로 애쓰시게 하는 한, 아무리 안식일이라는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말한들 참된 주님의 안식은 아니다. 주님을 쉬시게 하는 일은 사람들이 결코 악을 자행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안식에 이어 악의 근절이 언급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이는 이미 복된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다.
4. 주님은 사실 세상에 오셨을 때 안식일마다 문제를 일으키셨다. 복음의 말씀은 그 사적을 여러 곳에서 분명히 전하고 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던 까닭은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또 지금도, 그 참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날’도 지켜야겠지만, 그 가르침의 참뜻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트집을 잡았다. 자기를 하느님과 같은 등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동급이라고! 신성모독을 문제삼은 것이다. 원문의 뜻도 그러하다: ‘하느님께 적용되는 성품을 자기 자신의 것과 같게 하셨다’(요 5.18). 이렇게 보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은 중의적으로 헤아려진다. 이는,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아버지처럼 창조 사역을 하셨다는 뜻일 뿐 아니라 두 성품의 일치를 의도하셨다는 것이다. 일치란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류 구원을 위한 속량의 대업이면서 동시에 주님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하나 됨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을 받아들이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여기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룩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악을 멈추는 까닭에,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구원에 이를 것이다.
5. 순정진리에 따르면,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라고 여기는 자들, 또는 그렇게 되도록 하는 이들은 주님께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그 합일을 성별된 일로 받아들이는 이는 이방인이라도 교회로 인도될 것이라고 한다. 또 진리를 알지 못했던 이들, 특히 무지로 인해 거짓 안에 있었던 자들도 교회로 인도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겨우겨우 신앙 가운데 남아있던 자들도 부름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악한 탐욕에 물든 자들과도 결별하고, 또 거짓된 착란만을 원하는 자들과도 격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참조. PP 56).
6. 주님이 하시는 역사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주님의 심판에서 구원이 가장 먼저 적용될 이로 이방인이 꼽힌 것은 특기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성경이 알려주는 귀중한 원리 가운데 하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은 교회를 새로 세우시려 할 때 이방인들 가운데서 세우신다는 것이다. 한 시대의 교회가 끝장이 나면 이방인들을 앞세워 교회를 세우시는데, 그 까닭은 그들에게 믿음의 진리에 맞선 어떤 거짓된 원리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모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악한 생활로 인해 신성을 모독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AC 2986). 아브람이 그의 고향 땅에서, 갈대아 우르에서 택함을 받듯이, 옛 교회가 끝나는 시기에 이방인들은 부름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며 겸손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를 거짓되게 하고, 악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7. 말씀은 우리를 그렇게 촉구한다. 예언의 말씀이 그렇다. 그러나 대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장엄한 말씀을 짧은 시간에 하나하나 모두 살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제 나머지 각 장의 핵심적인 교훈들을 짚어보기로 하자. 57장이다. 신앙을 가졌다는 이들이 보기에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질 이들은 먼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들만이 이지(理智)스럽다고 여기는 자들은 오히려 진리와 선이 주님한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말미암는다고 여긴다! 그런 자들은 진리를 거짓되게 하고 선을 뒤섞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성정 때문에 악과 거짓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자들은 구원의 길에서 멀 수밖에 없을 것이다(사 57.10-12). 오직 겸손한 자들만이 진리를 배우고, 진리를 알아 자기 안의 거짓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20-22).
8. 옛 교회는 옳지 못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58장). 옛 교회에 속한 자들은 성전을 찾으며 주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 같고, 금식의 수행을 통해서 회개한 자들처럼 나타내 보일 것이다(1-3). 그러나 그것은 악한 동기에서 회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4). 말하자면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란 ‘멍에를 꺾고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처럼 먼저 악에서 떠나는 일이다. 그 다음에 ‘주린 자를 먹이고 떠돌이를 맞이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는’ 인애를 실천하는 것이다(7). 그렇지 않다면 모든 종교적 행동은 허울뿐이고 가식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9. 주님을 방해하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악과 거짓으로 교회를 파괴할 것이다(59장). 그들은 진리를 뒤엎고 악한 생활과 거짓된 교리를 일으켜 기만하면서 진리를 가두어 말라죽일 것이다(5). 그들에게 평화의 길은 없다(8). 최고의 평화란 주님께 있고, 또 그분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평화’는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 평화학에서도 평화는 간단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흔히 염두에 두는 그러한 평화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앙상의 평화는 분명하다. 악과 거짓에 맞선 투쟁이 끝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전을 짓기 위해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며 솔로몬이 한 말이 바로 그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당신도 내 아버지 다윗을 아실 것이오. 그분은 그의 하느님이신 주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없었오. 주께서 그[대적]들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실 때까지, [부친]을 둘러싼 전쟁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 내 하느님이신 주께서 주위의 [적들한테서] 나를 쉬게 하셨으므로, 사탄도 없고 악마의 도발도 없오”(왕상 5.3,4[히5.17,18], 개인역). 57장 27절에는 ‘악인에게 평화가 없다’고 했다. 진리를 말살한 자들에게 그분과 그분의 나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까닭이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10. 주님이 오시는 때는 거짓만 있고, 또는 거짓에서 비롯되는 악만 있을 때다(60장). 말하자면 더 이상 다른 구원의 방도가 없을 때, 주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께 나오는 이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장차 사방에서 많은 무리 가운데서 그분에게 나아올 것인데, 그들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삶 속에서 참되게 살려는 자들로 파악된다(4-5). 여기서도 이방인들이 먼저 거론된다. 그 다음에 진리에 속한 자들이 언급된다: “구름처럼 날아드는 이들이 누구이며, 비둘기처럼 창문으로 오는 이들은 누구인가?”(8, 개인역). 여기서 ‘난다’는 것은, 새가 높이 날면서 주변과 아래를 살펴보고 또 앞에 있는 것들을 알아보는 것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앞날을 내다보는 일로 헤아릴 수 있다. 구름과 비둘기는 성경 본문에 대한 탐구와 진리에 대한 영적 정동을 가리킨다(AE 282). 따라서 그들에게는 장차 주님한테서 깊은 진리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15,16).
11. 이제 주님의 강림이 예고된다(61장). 주님의 강림은 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를 알리기 위한 것이고, 또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1-2). 그렇지만 주의 오심은 심판을 동반한다(3). 그래서 황폐한 교회는 회복되고 다시 세워질 것이다(4). 이는 회복된 새 교회의 약속이다. 5절은 이렇게 알려준다: “이방인들이 서서 너희 무리에게 시중들고, 이민족의 아들들이 너희 밭을 갈고, 너희 포도원에서 일할 것이다”(개인역). 여기 이방인들이 언급되는 것은 외적 예배의 회복을 가리킨다(AC 1097). 또 제사장과 통치자가 언급된다: “너희는 주의 제사장들이라, 우리 하느님의 통치자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민족들의 물자를 너희가 먹고 그들의 영광을 너희가 [자기 것으로] 뽑낸다고 [사람들이] 말하게 될 것이다”(6, 개인역). 제사장과 통치자 곧 왕은 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맡아 행하시는 직분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서 제사장은 검스런 사랑에서 기인하는 검스런 선을 의미하고, 또 왕은 그것에서 기인하는 검스런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지된다. 이 구절에서 물자와 식음은 제사장에, 영광과 자랑은 통치자와 대구를 형성한다.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선을 이루는 것을, 또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은 진리를 듬뿍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AC 9809). 61장은 이렇게 주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의 외적인 요소들과 내적 요소들의 회복을 알려준다.
12. 주께서 오셔서 교회가 세워지면(62장), 주님과 교회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4,5). 왜냐하면 그 교회는 주님을 시인할 것이고, 그 안에는 천계의 진리들이 있게 될 것인데, 이전보다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1-3).
13. 그 모든 희망은 아무 수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오셔서 싸우신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63장). 주님은 말씀으로 오시는 까닭에(1), 홀로 싸우시고 그래서 홀로 승리하실 것이다(3-6). 그렇게 그분만이 홀로 속량주가 되시는 것이다(15,16).
14.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승리(64장)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4). 만일 그분이 오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5,6). 그래서 우리는 고백한다: “만일 그 일이 없었다면, 죽을 운명에 처한 자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VCR 2).
15. 주님은 이제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려고 준비하신다(65장). 거기에는 온갖 선과 진리가 있고, 그래서 천계의 모든 것들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17-23). 왜냐하면 주님이 가르치실 것이므로, 거짓과 악이 더 이상 그것들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24, 25).
16. 이제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것이다(66장). 겸허하며 계명을 따르는 이들에게 천계가 열릴 것이고, 그렇게 교회가 될 것이다(1,2). 교회 밖에 있는 자들도 순종하는 까닭에 받아들여질 것이지만, 악한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5,6). 그들이 멸망하기 전에 교회가 준비될 것이고, 그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이다(7-9). 이제 우리 앞에 새로운 교회는 약속되었다. 누가 그 교회로 들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