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시간에 들다
전순
누구나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다. 그러나 꽃이 이울 듯 어느 날 문득 눈가에 저물어가는 석양이 보인다. 뉘엿거리는 석양의 깊이를 더듬으며 나이 든다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이 든다……. 든다 ……. 그래, 든다는 것은 그만큼 든든해지는 것이리라. 부드러운 피부에 세월의 지문이 파이면서 단단한 골 주름이 새겨진다. 볼품없이 노쇠한 나무라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리게 되는 것이다. 노동이 햇살에 의지한 만큼 햇살은 그 솜씨를 발휘하여 생명체의 몸에 수(繡)를 놓는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든든해지는 것은 육체보다는 정신의 문제이리라.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려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수 있도록 단단해지는 일일 터이다.
또한, 나이 든다는 것은 하늘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땅으로도 한걸음 성큼 다가서는 일이다. 태초에 땅과 하늘은 하나였다. 번개가 증인을 선다. 땅의 전하(電荷)와 하늘의 전하는 본래 한 지체였던 서로를 그리워하며 서로에게로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다가 작은 인연의 옷깃이라도 스치게 되면 그들은 금세 한 몸이 되고 절정의 전율을 하게 된다. 경련의 횟수가 쾌감의 척도가 된다지만 숫자로써 어찌, 땅과 하늘이 접하는 그 순간, 천하 만물이 눈을 감는 찰나, 그 빛나는 번개의 극치감에 비견할 것인가. 하늘과 땅의 교합이 이처럼 사람과 비슷하다. 그래서 한방에서도 인간을 소우주라 했을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스스로의 작은 우주를 만들어가다가 이윽고 자신의 발원점인 대우주로 귀환하는 일이다.
더위가 한창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붉은 마음을 들이대는 백일홍들의 화양연화에 숙연해진다. 숨도 쉬기 어려운 무더위에 그 열화를 꽃으로 피워내는 인내심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 길에 서 있는 것이 자연이다. 빈손으로 떠났다가 돌아올 때는, 마치 시제 다녀오시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보따리처럼 계절은 한 아름씩 선물을 안고 온다. 나이 든다는 것은 받은 선물에 답례하듯 그동안 나에게 주어졌던 축복을 즐거이 되갚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완도 청산도가 고향이라는 어느 할머니가 부르시던 들노래가 생각난다. ‘청산에 저 나무는 날로날로 젊어지고 부뚜막에 이내 몸은 날로날로 늙어지네.’
눈물 구멍이 막혔다고 괜스레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찍어 그 성분을 분석해본다. 이 눈물에 어머니의 한 생이 녹아있을까? ‘내가 어머니를 낳아드렸나. 어머니를 길러드렸나. 어머니의 험난한 돌팍길에 부드러운 객토라도 깔아드렸나.’ 겨우 기저귀 몇 장 갈아드리면서 눈물로 공치사를 했던 내가 눈부처로 나를 들여다본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 징검다리를 맨 처음 놓았던 이에게 감사했던가. ‘자식 키운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귓바퀴에 감긴다.
달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저에게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다. 지구 중력의 육분의 일밖에 안 되는 조막손을 내밀어 지구의 바다를 끊임없이 다독이고, 바다가 외로움에 못 이겨 자신을 죽이지 않도록 한없는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자연의 원리는 순환이다. 나이 드는 일은 어쩌면 달을 닮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여름의 궁둥이가 들썩이고 있다. 나는 봄도 활짝 피워주고 여름도 무진장 더워줄 것이다. 노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다 보면 저 날렵한 푸른빛이 우울한 회색빛으로 마음을 바꿔 나를 짓누르기도 할 것이다. 하여도 나는 기꺼이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쉽게 돌아보는 날, 거기 우울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후배들에게 넌지시 속삭이리라. 나도 건너왔어. 젊음이라는 악어가 호시탐탐 붙잡고 늘어지거든 까짓것 뒷발질해버려. 망설이지 말고 어서 건너와. 거위의 솜털 같은 가벼운 노년이 기다리고 있어. 버리고 나누다 보면 가벼워지지. 아지랑이 간지러운 봄날, 살포시 눈을 뜨면 작은 풀꽃에게도 외로운 달빛이 놀러 오겠지? 나는 반가움에 볼이 후끈 달아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