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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술・안주 하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 전경/오종찬 기자
어른들의 생활에서 술은 밥만큼이나 친근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 잔’을 기울이고 다함께 ‘위하여’를 외친다.
전통적으로도 음주는 뿌리깊은 문화의 일부였다. 관혼상제 4례(四禮)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고, 새해 첫날에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온 가족이 모여 세주(歲酒)를 마셨다.
조선의 선비들은 술을 교양과 풍류로 즐겼다.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 삼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했다. 이 자리에서 술을 권하고 바르게 마시는, 배려와 존중의 예법을 배웠다.
우리 술의 알려지지 않은 면을 조명하고, 현대 생활에 재접목한 전시회가 한창이다. 우리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주최한 ‘맑은 술・안주 하나’ 전시회다.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의 아름지기 사옥에서 이달 30일까지 계속된다.
전국에서 선별한 우리 명주 10종을 소개하고, 여기에 전통문화연구소 맛공방인 온지음이 각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선보인다. 술병과 식기도 현대 공예가들이 맞춤형으로 디자인해 내놨다.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한 우리 전통 술의 이모저모를 온라인 중계한다.
◆ ‘청주 공용병’에 담아낸 우리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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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장 2층 한옥에 전시된 우리 술 10종과 제철 안주 /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정갈한 한옥 방 안,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 은은한 조명 속에 색색의 액체를 품은 열 개의 병이 나란히 섰다. 은은한 노랑, 짙은 황금빛부터 불그레한 빛깔, 맑고 투명한 무색까지 모두 다 전통 기법으로 담근 우리 술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빚어진 술을 같은 모양의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담아 각각의 특성을 더 부각시켰다. 디자이너 성정기가 제작한 ‘청주 공용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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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정기 디자이너가 제작한 청주 공용병에 담긴 10종의 우리 술 / 오종찬 기자
열 가지 다른 술을 같은 디자인의 공용병에 담은 것은 새로운 우리 술 이미지를 만들어가려는 생각에서다. 아름지기 문화재단의 김혜진씨는 “맥주병, 소주병, 와인병, 일본의 청주병은 병 모양만 봐도 어떤 술인지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 술은 저마다 다른 도자기병을 사용해 단일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며 “병만 봐도 우리 전통주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용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우리 청주 공용병에 담아봤다”고 했다.
이 전시는 아름지기 문화재단 문화기획팀이 1년 동안 준비한 것이다. 김씨는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가 발달해 수만가지의 술이 만들어졌지만, 일제 강점기 때 자가양조가 금지되면서 그 문화가 사라졌다”면서 “1년 동안 전통주 연구소 자문을 받는 것은 물론 아름지기 식구들이 직접 맛보면서 현대인이 문화로 즐길 만한 술을 골라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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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예가 장미네가 색소지로 만든 술병과 술잔 / 오종찬 기자
전시회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통의 맛을 살리면서도 현대의 재료를 사용해 실용성을 높인 다양한 술병과 술잔들이다. 이 전시회를 위해 술 전문가는 물론 전통 음식 연구가, 공예가들이 힘을 모았다.
전통 술 연구가와 요리 연구가들이 함께 선정한 10가지 술, 안주 목록을 공예가들에게 전달했고, 공예가들은 술과 요리가 최대한 돋보이도록 하면서도 현대인이 사용하기에 편한 디자인의 술병과 식기류를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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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예가 강웅기가 만든 찬 술을 위한 주전자 / 오종찬 기자
시음도 해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 하루 두 차례 전시에 소개된 술과 안주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전시된 술 10종을 하루에 맛볼 수는 없고, 매일 다른 종의 술을 시음할 수 있도록 했다. 술과 함께 즐기는 안주는 전통요리 연구가가 포진한 온지음에서 만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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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음회 때 술에 맞춰 내놓는 다양한 술잔들 / 오종찬 기자
◆ 제철재료로 담아낸 계절주
우리나라의 술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열매, 약초, 꽃 등 철마다 다른 재료를 사용했다. 김씨는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만큼 제철재료를 사용한 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철마다 빚을 수 있는 술의 종류가 달랐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절기에 맞춰 마시는 절기주가 생겨났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술은 두견주, 과하주, 소곡주, 허벅주 네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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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대표하는 술 두견주 /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두견주는 봄을 대표하는 충남 당진의 술이다. 봄의 대표 꽃인 진달래꽃(두견화)가 주재료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두견주는 본래 충남 당진 박씨 가문이 대대로 빚어 온 술이지만, 지금은 ‘면천두견주 보존회'에서 만드는 마을 공동 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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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의 제철안주 두릅죽순채 /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봄을 맞는 두견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역시 봄 제철재료를 사용한 두릅죽순채다. 한성의 사대부촌인 북촌 맹현(孟峴)가에 내려오는 음식으로, 새우무침에 죽순과 두릅의 어린순을 넣어 만든 냉채 요리다. 신선한 새우, 채소를 넣고 소고기를 끓여 우려낸 육즙을 식혀 소스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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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을 대표하는 술 과하주 /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우리나라는 높은 기온과 습도 때문에 여름에 술을 빚기가 매우 어려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미리 빚어 놓은 술도 여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 후기에 발달한 양조기법이 ‘혼양주’다. 술이 발효되는 시기에 소주를 부어 도수를 높여 여름에도 변질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과하주는 경상북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다. 혼양주 특유의 감칠맛이 분명하게 나타나면서 저온에서 오랜 기간 발효하는 기법을 사용해 청량감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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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하주에 어울리는 여름 제철 안주인 연계찜/ 오종찬 기자
과하주에 어울리는 여름 제철 요리는 연계찜이다. 17세기부터 전해지는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 ‘음식방문’에 소개된 닭찜요리다. 연한 닭 뱃속에 양념을 넣고 중탕해 쪄내는 요리로, 맹현가에서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봄을 보신하는 영양식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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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을 대표하는 술 소곡주와 전시된 송이섭산적/ 오종찬 기자
소곡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을 술 가운데 하나다. 충청남도 한산 지방에서 백제 시대부터 전해오는 명주다. 소곡주는 찹쌀과 멥쌀, 누룩, 콩, 엿기름, 들국화, 고추 등으로 빚어내는 이양주로, 저온에서 100일 동안 발효시켜 만든다. 보통 약주보다 강한 약 18도의 술이다. 며느리가 술 맛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취해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한산 소곡주는 순곡주 특유의 감칠맛에 9~10월 피는 들국화를 넣어 향을 더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소곡주는 충남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충남 한산면 호암리 김영신 명인의 전승자이자 며느리인 유희열씨가 빚어낸 것이다.
가을 술에 곁들이는 제철요리로 소개된 것은 송이섭산적이다. 소고기 우둔살을 잘게 다져 갖은 양념을 하고 반대기를 지어 구운 고기 구이다. 약산적이라고도 하는데, 가을 송이 철에는 송이를 구워 곁들어 내기도 하고, 고기에 송이를 다져 섞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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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을 대표하는술 허벅주/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허벅주는 제주 지역의 향토기업 ‘한라산’이 빚는 증류주다. 겨울에 어울리는 도수 높은 술이다. 쌀보리와 현미를 원료로 하는 순곡주의 발효 공법을 응용해 현대식 증류주로 만들어냈다. 천연 암반수에 유채 꿀을 더해 독특한 맛을 낸다.
허벅주는 제주도의 불룩한 배 모양의 허벅이라는 제주 전통 옹기에 담긴 술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약 35도로 전통 소주 중에서는 도수가 낮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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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벅주와 잘 어울리는 겨울 요리 도미찜 / 오종찬 기자
도수 높은 겨울 술에 어울리는 겨울 안주는 도미찜이다. 도미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이바지 음식에 빠지지 않고 사용해 온 생선이다. 주로 구이나 찜으로 만들어 먹었다. 도미 속에 고기와 표고, 숙주 등을 채워 만든 이 도미찜은 진주 허씨 묵동댁에서 만들던 내림음식이다.
◆ 새해, 혼례, 성인식 때 마시던 우리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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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에 온가족이 함께 마시던 도소주/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도소주는 새해 첫날 온 가족이 함께 마시던 세주(歲酒)의 시초격이다. 새해 첫날 한 해 동안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나쁜 기운을 쫓고 복을 들이는 것이다. 약재를 베 주머니에 넣어 섣달 그믐날 밤 마을 우물 밑바닥에 걸어두었다가, 새해 첫날 꺼내 미리 만들어 둔 청주에 넣어 끓였다.
그 뒤 차게 만든 도소주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동쪽을 향해 앉아 마셨다. 청주를 끓이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 덕분에 어린아이도 함께 마실 수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연장자 순으로 마셨는데, 전염병에 약한 어린아이를 배려한 관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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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가지 꽃으로 빚은 술 백화주/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합환주(合歡酒)는 남녀가 결혼할 때 함께 잔을 나눠 마시는 술이다.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을 축하하며 일생의 화합을 기원하는 술인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백화주는 철마다 피는 꽃잎들을 모아 100여가지 꽃으로 빚은 술이다.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향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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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례주로 제안된 교동법주/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관례(冠禮)는 성년을 맞는 의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자라 열다섯 살이 지나면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하며 성년례를 행했다. 오늘날에는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해 만 19세가 되는 이를 축하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처음 접하는 술인 관례주로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술은 경북 경주 교동 최부자댁에서 대대로 빚어온 교동법주다.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는 곡주로 화려한 금빛을 지닌 술이다.
◆ 알려지지 않은 우리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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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도 해남 지역의 두륜탁주/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심마니들은 2박 3일 정도 특정 지역에 머무르며 그 지역의 술을 마셔보고 숙취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두륜탁주는 전라도 해남 지역을 찾았던 한 심마니 부부가 마셔보고 소개한 술이다.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막걸리 맛에 단번에 반했다고 한다. 이 탁주는 쌀을 더덕과 야생 당귀, 봉삼 등 약초와 함께 숙성시킨 생막걸리로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삼산주조장에서 빚는다. 전라도 두륜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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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 오미자를 쓴 발포 막걸리 오희 / ⓒ 이종근, 아름지기 제공
불그레하면서도 투명한 이 술은 의외로 막걸리다. ‘막걸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를 실험하기 위해 만든 술로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이 추천했다. 주재료인 쌀과 함께 오미자를 부재료로 썼다.
신선한 오미자를 쉽게 구해 쓰기 위해 문경에 터를 잡았다는 문경주조에서 만든다. 맑으면서도 탄산 맛이 강한 발포주로, 오미자 막걸리가 1차 발효로 완성된 뒤 오미자 발효액을 넣어 다시 한 번 발효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첫댓글 술 잘 못하는데 왜 먹구싶지~?